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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에세이] 1975년 5월 1일, 그날에...- 작성자sanlike
- 작성일2019-05-07 06:39
- 조회676
- [보도자료]
- 2019-05-07
이규, 유신철폐 모의 사건을 말하다!
*편집자: 이규님은 고교 시절부터 박정희 유신 체제를 비판하다 제적.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거쳐 현재는 태양광의 전도사로 활약하고 계십니다.
광주일고 51. 52회 동문들이 유신헌법을 철폐하기 위해 광주일고 개교기념일인 5월 1일에 대규모 학생시위를 벌이려고 모의한 사건이다.
1975년 4월 15일 김상진 열사의 추모 시위를 주도한 박석면이 제적되었다. 이에 최수일과 오순기, 황광우는 학교 측의 부당한 처사에 항의하여 5윌 1일 대규모 시위를 감행할 것을 계획하였으나 사전에 모의가 누설되었다.
거사 전날 4월 30일 40여명의 학생들이 불법 연행되었다. 체포 영장도 없이 서광주 경찰서 정보과에 끌려가 심문을 받았다. 취조와 고문은 이렇게 진행되었다.
1단계는 '겁주기'이다. “어린놈들이 빨갱이야? 데모를 해?” 폭언과 함께 먼저 온몸을 짓이겨 놓았다.
2단계는 '배후세력 캐기'이다. 심문은 새벽 3시까지 진행되었다. “간첩이 지령을 내렸지. 다 알고 있으니 불어!” 협박하였다. 때리고 짓밟았다. 순진한 학생들은 새장에 갇힌 새처럼 벌벌 떨었다.
제3단계는 '진술서 쓰기‘이다. 구타는 여전하였다. “입학 이후 시위에 참석한 적이 있느냐?”, “입학 이후 지금까지의 모든 활동을 자백하라”, “가족 중 부역자가 있지?” 심문하였다. 주먹질, 몽둥이질을 해댔다. 학생들은 취조실의 바닥에 쓰러졌다. “이 자식들 진짜 간첩들 대하는 매운 맛 좀 볼래? 물고문 당해 볼 거야?" 쓰러진 학생들의 귀에 들려오는 소리였다.
5월 3일, 51회 최수일과 오순기, 52회 황광우 3인은 광주교도소에 구속 되었다. 51회 윤성석, 이재직, 박광규, 노상혁, 유성, 이병옥, 이규, 김형중과 52회 민영돈, 김용준, 이태연, 최해갑, 김종현 13인은 10일의 구류를 처분 받았다. 16명 모두 제적되었다.
이후에도 공안당국은 감시를 계속하였다. 하지만 대부분 대입검정고시를 거쳐 대학교에 진학하였다. 현재 사회 각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광주일고 동창회는 1994년 2월 19일 제적당한 17인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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