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보세

한 권의 책은 하나의 사건이다. 한 권의 책에 담긴 지은이, 만든이, 읽는이의 고뇌와 정성을 기억한다.



제목≪사지통속고史誌通俗攷≫-우리말로 풀어낸 우리역사와 문화-정윤(鄭潤)2020-07-29 22:51:19
작성자

사지통속고史誌通俗攷

내가 두만강을 건너 멀고 아득한 북방 대륙에서 홀로 외로운 발자취를 남기며, 겨울엔 가죽옷, 여름엔 삼베옷을 바꿔 입어가매,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험한 산과 황량한 초원을 방황한 지 14년이었다.
그동안에 () 가장 염두에 두고 연구한 것은 아주 옛날부터 지금까지 불변하는, 고려의 크고, 밝은 아름다운 이름들과, 비바람에 씻기우고 닳아져도, 순수한 넋이 옛처럼 신령스럽고 큰 성곽들과, 궁전의 큰 돌무더기 유적지들이었다. - 저자 서언(叙言)

1편 나라이름(국호國號)

한나라(단국檀國 또는 한국韓國) 은 천(), (), ()의 뜻이요, ‘나라는 국()이니 우리 국호가 고대의 초기부터 한나라이거늘. ‘을 단(), (), () 등의 글자로 번역하여 한검을 단군(檀君)으로 썼으니, 이는 단국군(檀國君 : 한나라 임검)이란 뜻이요, 환검(桓儉)도 역시 그러하니 뜻으로 풀면 한나라가 천국(天國)이나, 대국(大國)이나, 유일국(惟一國, 오직 한 나라)이니라.
한검께서 심양 평야-평양(平壤)-에 도읍을 옮기시고. ‘됴션(조선)’-도선刀先 또는 조선으로 번역되어 전해짐-이라 한 것은 지명으로 인하여 그리 된 것이요, () 이렇게 보면 조선은 국호가 아니요, 지명이며 한나라가 우리의 반만년 전래하는 국호인 것이 확실하도다.

부위나라(餘國) 부위(扶餘)’는 고어(古語)에 태자(太子)란 말이니, 즉 부여(扶餘), 불여(不與), 부유(鳧臾) 등의 여러 표현이 모두 부위의 음역(音譯)이 동일하지 않은 것을 드러내고 있으며, ‘한검의 아들이 부위이고 북부여의 황제인 해모수(解慕漱)의 아들도 부위라 하였으니, 태자의 칭호가 분명하며 부위가 북방의 임금이 됨으로 인하여, 국호(國號)가 되었더라. 이에 중국인들이 예국(銳國), (), () 등의 나라로 칭하였도다.
▷ ≪문헌비고(文獻備考)에 이르기를 단군(檀君)이 예지(濊地, 예나라 땅)로 옮겨가매, 자손이 상전(相傳)이라.”
▷ ≪후한서(後漢書)에 이르되, “부여(扶餘)는 본래 예지(濊地).”
▷ ≪해동역사(海東歷史)에 이르기를, “급독(及讀)하면 예()가 되고 완독(玩讀)하면 부여(扶餘)가 되니 기실(其實)은 일()이라.” 하였더라.

신한(동한東韓 또는 신한辰韓) 우리말에 동쪽이 , 인즉 신한이 즉 동한(東韓)이라. ‘신한이 마한의 동쪽에 있으니, 기준(箕準)이 마한의 왕 노릇한 지 2년 후에 신한(辰韓)이 따로 세워졌으니, 푸른 바다 반도 동남부 일대의 땅으로써 신한이라 하였으니, 동한(東韓)의 뜻이 명확하며, 혁거세(赫居世) 원년(元年) 갑자(甲子)까지 137년간을 신한이라 하였도다.

지린나라(계림국桂林國) 기원 2277(B.C. 57)에 박혁거세(朴赫居世)가 처음 경주지방에서 새나라를 세운 후, 122년을 지나 탈해이사금(脫解尼師今) 9년 즉 기원 2398(A.D. 65)에 국호를 지린나라(桂林國)’라 고쳤고, 439년을 지나 지증마립간(智證麻立干) 4년에 이번에는 신라(新羅)’로 국호를 정하였으니, 이때부터 한문에 중독이 되는 버릇이 생겼다.

멍우(몽올蒙兀 또는 몽고蒙古) 사원(辭源)에 이르되, “몽골(蒙古: 멍구)은 몽올(蒙兀: 멍우)의 전음(傳音)이라.” 하였으니, 몽올(蒙兀: 멍우)은 몽아(蒙阿: 멍어)의 전음일지니, 사궁(射弓, 활을 쏨)의 뜻이라. 만주어와 몽골어에 선사자(善射者, 활 잘쏘는 자)를 탁림몽아(卓琳蒙阿: 줘린멍어)라 하니, 줘린(卓琳)은 선()이요, 멍어(蒙阿)는 사(: 활 쏨)이다.
고구려 시조 주몽(朱蒙)줘린멍어(卓琳蒙阿)’의 축약된 발음이니, 선사(善射)로 칭호를 얻었다 하니라. 멍우(蒙兀)가 후에 국호를 ()’이라 하였으니, 원은 ()’의 변체자(變體字)이고, ‘멍우인(蒙兀人)’이 예부터 말 타고 활쏘기를 잘했으며, 궁술로 짐승을 사냥하여 생활하는 동시에 멍우(蒙兀)“로 부족의 칭호를 삼았다가 국호까지 되었나니라.

2편 임검이름(王號)과 사람이름(人名)

한검(檀君 또는환검桓儉) 한검은 천신(天神), 천제(天帝), 일신(一神), 대제(大帝)의 뜻이라. 우리말에 천(), (), (), ()이라 하고 신(), (), (), (), ()이라 하였거늘 뒤에 을 환(), (), (), () 등의 글자로 번역하고 을 검(), (), (), () 등의 글자로 번역하였나니, , 환검(桓儉), 왕검(王儉), 가한(可汗), 단군(檀君), 천왕(天王), 거서간(居西干), 마립간(麻立干), 이사금(尼師今), 김수로(검수로, 金首露), 김알지(金閼智) 등이 그것이다.

커한(대왕大王) 는 대()의 뜻이, 우리말에 대()한 것을 커다란, 두커, 크다라고 하고, 왕을 이라 하나니, ‘커한이 곧 대왕(大王)이라.
거서간(居西干)’커한의 전음이다.

얼지(을지乙支) 은 신()이니, 우리나라 풍속에 처음 태어난 아이가 영특하면 얼지게 낳다하며, 한문으로는 신동(神童)’이라 하나니, ‘얼지’, ‘신동등의 말이 준수하고 영특하다는 말인 것은 설명이 필요치 않겠다.
얼지(을지乙支) 문덕(文德)은 아릴 때부터 매우 영특한 고로, 얼지(신동)’라 한 것이 문덕 위에 관사(冠詞)가 되어, ‘을지문덕이라 하였다.

커수원(개소문蓋蘇文) 는 클 대()의 뜻이요, ‘수원은 고구려 방언에 장군이란 말이며, 만주어의 소문(蘇文: 수원)과 같으니, ‘커수원은 의역하면 대장군이어늘, 당나라 사람들이 음역하여, 개소문이라 하였도다.
고구려 말년에 천개김씨(泉蓋金氏)가 막리지(莫離支)가 되었나니, 막리지는 머리치의 음역이며 머리는 수(), ‘차지의 줄인 소리이니, 차지할 전(), 차지할 사(), 차지할 령()의 뜻인즉, ‘머리치가 수령(首領)이란 뜻이다.

애신쑈뤄(애신각라愛新覺羅) 애신은 만주어에 금()이니, 애신(愛新)은 음역이며, 흑수(黑水)도 애신수(愛新水)이다 흑수는 검물, 애신수는 금물이니, 검과 금이 와전됨 오늘날 영고탑의 목단강(牧丹江)도 애신수라 하였으며, 뒤에는 애신(愛新)으로 만주족의 성씨라 하였고, ‘쇼뤄는 만주어에 조조(皂雕, 하인 독수리)이니 우리말로 솔개()이며 각라(覺羅)는 음역이로다.
만주() 태조가 쑈뤄를 자청하였으니, 흑취(黑鷲: 검은 수리, 솔개) 곧 조조(皂雕)가 작은 닭을 채어 가듯이 대륙에 웅비하여 여러 나라를 석권하는 약육강식의 의지와 기세가 넘치는 표징(表徵)이라.

3편 뫼물(산수山水)

희마리뫼(백두산白頭山) 하얀 것을 다 하며, ()마리라 하니, ‘희마리뫼가 백두산이라.
아홉 종족이 희마리뫼를 중심으로 하고 흩어져 살았나니, 신사기(神事記)에 이르되, “황족(皇族)은 대황원(大荒原, 크고 거친 초원)에 살고, 백족(白族, 白夷)은 사막 사이(현재의 몽골사막)에 살며, 현족(玄族)은 흑수빈(黑手濱, 흑수 물가)에 살고, 적족(赤族)은 대영안(大瀛岸, 큰 바닷가)에 살며, 남족(藍族)은 군도(群島, 무리를 이룬 크고 작은 섬들) 속에서 살았다.”

한낫뫼(한라산漢拏山) 한 개(一個)한낫이라 하나니, 한낫뫼를 한라산(漢拏山)이라 하였도다. 제주도 섬 한가운데에서 솟아오른 한 개의 높은 산을 한낫뫼라 하였고, 제주는 옛적에 섬나라(島國)’이었나니라.

압누에물(압록강鴨綠江) 우리가 앞 전()이라 하고, 평탄하니 확 트이고, 넓고 거대한 물을 누에물이라 하나니, ‘압누에물을 의역하면 전대강(前大江)이어늘, 압록강(鴨綠江)으로 번역하였도다.
()나라 재상 두우(杜佑)가 편찬한 통전(通典)에는 강물 색깔이 압액(鴨額, 오리 이마)과 같다 하여 압록강이라 한다.” 하였으니, 이러한 사실 왜곡이 후세의 혼란을 만들었도다.
압누에물은 어느 한 강물에 고정된 명사가 아니오, 대도시나 큰 촌락의 전면에 넓고 평탄하게 흐르는 물이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압누에물이라 하였다.
전남 곡성에도 압록이 있다.

빼지바다(백제해百濟海) 또는 발해渤海) 맏 백(), 일백 백(), 조개 패(), 강이름 패(浿), 바다이름 발() 등의 글자를 중국인들이 뻬, , 뻐 등으로 불러 읽으며, 만주어에 발극렬(勃極烈, 빼리지)가 만호장(萬戶長)의 뜻이요, ()
백제가 뒤에 여러 소국들을 병합하여, 동북방은 지금의 봉천(奉天, 심양), 무순(撫順, 고대의 비리국卑離國으로 54개국 중의 하나)을 지나, 개원(開原)에 미치었고, 서북방은 현재의 열하(熱河) 지방을 가졌던 것이요, 그 남방으로 둘러싸고 있던 영해를 빼지바다(百濟海)라 한 것이다.
이를 한인(漢人, 중국인)들이 같은 발음에 상호 다른 번역으로 발극해(勃極)’ 또는 발해(渤海)’라 하였고, 만주어에도 발(), (), (), ()이 같은 음으로 서로 통한즉, 발해(渤海)가 처음에 백제해(百濟海, 빼지 바다)이던 것이 명확하다.
백제해가 발해의 명칭이 된 후에 당나라 사람 등이 이 백제해를 자신들도 둘러싸고 있는 관계로, 대진국(大震國)발해국이라 지칭했던 것이다. () 원래 대진국은 곧 한울나라, 발해는 국명(國名)이 아니도다.

정윤(鄭潤) 지음, 정재승(鄭在乘) 역주, 사지통속고史誌通俗攷-우리말로 풀어낸 우리역사와 문화-, 우리역사연구재단, 2020

우리나라에 한문이 성행한 지가 1000년이 다 되어 가거늘, 4300여 년 전 개천입국(開天立國: 단군께서 나오셔서 나라를 세움)하신 우리 시조(始祖) ‘한검을 단목(檀木) 아래 내리셨기에 단군(檀君)이라 하였다 한 것과 부여(扶餘), 구려(句麗), 백제(百濟), 신라 등 나라 이름도 반드시 처음에는 우리말로 지었을 것인데, 역사책에 일언반사(一言半辭, 한 마디, 반 마디) 언급이 없으니, 그동안 우리말을 한문으로 옮기며 본뜻을 잃어버리고 거짓이 진실을 어지럽히는 일이 허다했으리라.”
오늘 지우(志友)의 저서 사지통속고를 읽어보매, 흉금(胸襟)에 품었던 의문이 홀연히 없어지고, 아협(牙脥, 어금니와 빰)에 상쾌한 향기가 바로 생겨나는도다. -서문 2, 李一

정윤(鄭潤) : 독립운동가. 1898년 함경남도 홍원 출생. 일명 신(), ()는 일우(一雨). 1918년 만주지역 최초의 항일독립운동단체인 중광단(重光團)’에 가입하여, 기미(己未)독립선언의 기폭제가 된 무오(戊午)독립선언(11)에 참여. 19198월 서일(徐一, 1881~1921), 김좌진(金佐鎭, 1889~1930)과 함께 군정부(軍政府)’ 조직. 삼일신고(三一神誥), 신단민사(神檀民史), 신단실기(神檀實記), 사지통속고(史誌通俗攷)등과 단군 관련 고전(古典) 및 대종교 종경(倧經) 등을 인쇄, 출판. 1925년 흑룡강성 영안현(寧安縣)에서 김좌진 장군과 함께 신민부(新民府)’를 조직. 1927년 길림(吉林)에서 김좌진, 황학수(黃學秀) 등과 함께 만주의 독립운동단체 대표들과 군민의회(軍民議會)’를 결성. 1929년 김좌진 장군 및 대종교신도, 무정부주의 청년 등과 한족총연합회(韓族總聯合會)’ 결성. 19307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결성. 19311월 친일좌익 공산당원에게 피살, 순국함. 1963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追敍)되었다.

 

댓글
자동등록방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