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보세

한 권의 책은 하나의 사건이다. 한 권의 책에 담긴 지은이, 만든이, 읽는이의 고뇌와 정성을 기억한다.



제목≪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연암(燕巖)박지원(朴趾源)2020-05-19 21: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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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보라

자신의 본분으로 돌아가라(還他本分). 이 말이 어찌 문장에만 해당되는 것이리요. 일체의 가지가지 만사가 그렇지요. 이는 다른 까닭이 아닙니다. 색깔과 모양에 정신이 뒤죽박죽 바뀌고, 슬픔과 기쁨에 마음이 쓰여서 이것이 망상이 된 것입니다. 지팡이를 두드리며 익숙한 걸음걸이로 걷는 것, 그것은 우리의 본분을 지키는 이치요, 집으로 돌아가는 증인(證印)입니다. -자신의 본분으로 돌아가라

이번에 코끼리를 열 걸음 밖에서 보았는데 그때 동해에서 상상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 생김새가 몸뚱이는 소 같고, 꼬리는 나귀 같으며, 낙타 무릎, 범 발굽에 짧은 털은 잿빛이었다. 어질어 보이는 모습과 슬픈 울음소리에 귀는 구름장같이 드리웠고 눈은 초승달 같았다. 두 어금니는 굵기가 두 줌쯤은 되고 길이는 한 발 남짓 된다. 코는 어금니(상아)보다 길어 굽혔다 펴는 것이 자벌레 같으며 도르르 말기는 굼벵이 같고, 코끝은 누에 꽁무니 같은데 물건을 족집게처럼 끼우고 두루루 말아 입에 집어넣는다. 성인이 주역을 지을 때 코끼리 상()자를 취하여 지은 까닭도 이 코끼리 형상을 보고 만물의 변화하는 이치를 연구케 하려는 것일진저. -코끼리 이야기

소리와 빛깔은 바깥 사물에서 생겨난다. 이 바깥 사물이 항상 귀와 눈에 탈을 만들어 사람으로 하여금 똑바로 보고 듣게 하는 힘을 잃도록 만든다. 더구나 한 세상 인생살이를 하면서 겪는 그 험하고 위태함이야 강물보다 훨씬 심하여 보고 듣는 것이 문득문득 병이 됨에 있어서랴. 내가 사는 연암협 산골짝으로 돌아가 다시 앞 개울의 물소리를 들으면서 이를 증험해보니 영락없이 맞았다. 그리하여 이로써 사람이 제 몸 건사하는 처세술에 능란하고 제 자신의 듣고 보는 총명만을 자신하는 것을 경고하는 바이다. -하룻밤에 하홉 번 강을 건너며

도는 장차 어디에 있는 것인가? 공적인() 곳에 있네. 공은 어디에 있는가? 비움()에 있네. 비움은 어디에 있는가? 실행()에 있네. 실행은 어디에 있는가? 지극함()에 있네. 지극함은 어디에 있는가? 중지함()에 있네. 중지함은 어디에 있는가? 균평함()에 있네. 균평함은 어디에 있는가? 바름()에 있네. 바름은 어디에 있는가? 중용()에 있네. 중용은 어디에 있는가? ()에 있네. 대체로 하나의 원리이네. -()

학문과 문학의 길

어린아이가 나비를 잡는 광경을 본다면 사마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앞정강이는 반쯤 굽히고 뒷다리는 비스듬히 발돋음하며 두 손가락을 집게 모양으로 만들어 살금살금 다가가며 잡을까 말까 망설이는 순간 나비는 그만 훨훨 날아가버립니다. 사방을 돌아보지만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어 에이씨하며 웃고 맙니다. 한편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 속이 상하기도 합니다.
바로 이 마음이 사마천이 글을 지을 때의 마음입니다. - 사마천과 나비 잡는 아이

박씨집 청년 제운(齊雲, 朴齊家)의 나이 스물셋인데 문장에 능하고 호는 초정(楚亭)이다. 나를 종유(從遊)하며 여러 해 배웠다. 그는 글을 지으면서 선진(先秦)시대와 양한(兩漢)시대의 작품을 흠모했으나 옛 문체에만 얽매이지 않았다. 그러나 케케묵은 말을 지나치게 없애려 힘쓰다가 혹 전거가 없는 말을 짓는 실수를 저지르고 입론(立論)을 지나치게 높게 하여 혹 불경한 데 근접하기도 하였다. 이는 명나라 여러 문장가들이 법고(法古)와 창신(創新)에 대해서 서로 흘근거리고 헐뜯었음에도 불구하고 다 함께 정당함을 얻지 못했고, 한결같이 말세의 번쇄한 기풍으로 떨어져 결국은 문화발전에 도움도 되지 못하고 한갓 세속을 병들이고 교화를 손상한 결과를 빚은 것과 같다. 나는 바로 이 점이 두렵다. 창신을 하여 교묘한 문장을 짓기 보다는 옛 것을 배우다 진부한 편이 차라리 낫지 않을까? -법고창신

독서하는 방법으로는 일과(日課)를 정해놓고 하는 것이 제일 좋고 오늘 읽을 것을 내일로 미루는 것이 제일 나쁜 방법이다. 너무 많이 읽으려고 욕심내지 말고 빨리 읽으려고 하지도 마라. 순서와 횟수를 한정해놓고 날마다 하여야 한다. 가리키는 대의를 정밀하고 분명하게 하며 음성은 무르녹게, 뜻은 익숙하게 한다면 절로 암송하게 될 것인데, 그런 다음에 차례대로 그 다음으로 넘어간다. -선비와 독서

조선의 현실과 북학

학문하는 길에는 특별한 방법이 없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길가의 남모르는 사람을 붙잡고서라도 물어보는 것이 옳다. 부리는 종복이라 하더라도 나보다 한 글자라도 많이 알고 있으면 우선 그들에게 배울 것이다. -북학(北學)

그들이 열하일기(熱河日記)를 두고 오랑케의 칭호를 쓴 글이라고 시비한다는 게 대체 무엇을 두고 그러는 지 모르겠습니다. 청나라 연호인 건륭(乾隆)을 썼다고 그럽니까? 청나라 지명을 말하는 것입니까? 열하일기는 기행록에 지나지 않습니다. 애초부터 춘추의리(춘추의 대의명분을 지키는 것)에 비교하여 따질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만약 어떤 사람이 갑자기 그런 것을 들고 나서서 남에게 책임을 추궁한다면 잘못된 일입니다. 서글픕니다. 그래 춘추의리에 그렇게 철저한 그들이라고 해서 집문서에 오랑케 칭호가 붙었다고 그 집에서 살지 않으며, 또 밭문서에 오랑케 칭호가 붙었다고 그 땅에서 나는 소출을 먹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열하일기의 내력

복어알 같은 벼슬살이

우리나라 속담에 있지 않습니까? “삼정승 사귀지 말고 제 몸을 조심하라는 속담은 허물을 남에게 돌리는 말이고 밤에 흰옷을 입지 말라, 물 아니면 돌이다.”라는 속담은 어두운 길을 걷는 사람을 주의시키는 의미요, “들며 고개 숙이고 나며 허리 굽힘은 문짝을 존경해서가 아니다라는 속담은 남과 충돌하지 말 것을 타이르는 의미요, “주인집에 장 떨어지자 나그네가 국을 마단다라는 속담은 주객이 다 함께 편안해한다는 의미입니다. 형이 나에게 하려는 충고는 이들 속담 중에서 어느 방향으로 인도하려는 겁니까? -인사고과

나의 벗들

옛날 붕우(朋友)를 말할 때 벗을 제2의 나라고 일컫기도 하고 혹 자신의 일처럼 돌보아주는 사람이란 뜻에서 주선인(周旋人)이라 일컫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한자를 만드는 사람이 우()라는 글자를 빌려서 붕()이라는 글자를 만들고 손 수()와 또 우()라는 글자를 합하여 우()라는 글자를 만들었으니, 말하자면 벗이란 새의 양 날개가 협력해야 날 수 있고 사람에게 두 손이 있어야 함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이 세상의 친구

제비바위의 정경

집 앞 왼편으로 깍아지른 듯 서 있는 푸른 절벽은 그림 병풍을 둘러친 것 같고, 바위틈은 속이 뻐끔뻐끔 벌어져 절로 암혈을 이루고 있습니다. 제비들이 그 속에 둥지를 틀었으니 이것이 제비바위(燕巖)이지요. 집 앞으로 100여 걸음 떨어진 곳에는 높고 위가 평평한 둔덕이 있으며, 둔덕은 모두 바위가 층을 이루어 우뚝 솟아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제비바위 골짜기의 정경

천하를 가지고 즐거워할 적에는 여유가 있다가도 정작 자신의 문제를 놓고 즐거워할 적에는 오히려 부족해지는 경우가 있다. -혼자만의 즐김

박지원, 김혈조 옮김,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학고재, 1997

박지원: 조선 후기 소설, 철학, 천문학, 병학, 농학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활동한 북학의 대표적 학자. 자는 중미, 호는 연암으로 이덕무·이서구·서상수·유금·유득공 등과 교류했으며, 박제가·이희경 등도 그의 집에 자주 출입했다. 1780년 연행에서 접촉한 청의 문물은 그의 사상체계에 큰 영향을 주어, 인륜 위주의 사고에서 이용후생 위주의 사고로 전환하게 되었다. 귀국 후 저술한 열하일기<호질>·<허생전> 등의 소설도 들어 있고, 중국의 풍속·제도·문물에 대한 소개와 조선의 제도·문물에 대한 비판 등도 들어 있는 문명비평서였다. (다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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