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보세

한 권의 책은 하나의 사건이다. 한 권의 책에 담긴 지은이, 만든이, 읽는이의 고뇌와 정성을 기억한다.



제목≪나의 칼 나의 피≫ ≪사상의 거처≫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김남주2020-05-12 00:00:41
작성자
첨부파일나의칼 니의피 표지.hwp (763KB)



     <나의 칼 나의 피>                                  김남주

만인의 머리 위에서 빛나는 별과도 같은 것
만인의 입으로 들어오는 공기와도 같은 것
누구의 것도 아니면서
만인의 만인의 가슴 위에 내리는
눈과도 햇살과도 같은 것

토지여
나는 심는다 살찐 그대 가슴 위에 언덕에
골짜기의 평화 능선 위에 나는 심는다
자유
(평등)의 나무를

그러나 누가 키우랴 이 나무를
이 나무를 누가 누가 와서 지켜주랴
신이 와서 신의 입김으로 키우랴
바람이 와서 키워주랴
누가 지키랴
, 왕이 와서 왕의 군대가 와서 지켜주랴
부자가 와서 부자들이 만들어 놓은 법이
, 판검사(법관)가 와서 지켜주랴

천만에! 나는 놓는다
토지여
, 토지 위에 사는 형제(농부)들이여
나는 놓는다 그대가 밟고 가는 모든 길 위에 나는 놓는다
바위로 험한 산길 위에
파도로 사나운 뱃길 위에
고개 너머 평지길 황톳길 위에
사래 긴 밭의 이랑 위에 가르마 같은 논둑길 위에 나는 놓는다
나는 또한 놓는다 그대가 만지는 모든 사물 위에
매일처럼 오르는 그대 밥상 위에
모래 위에 미끄러지는 입술 그대 입맞춤 위에
물결처럼 포개지는 그대 잠자리 위에
구석기의 돌 옛
(사랑)의 무기 위에
파헤쳐 그대 가슴 위에 심장 위에 나는 놓는다
나의 칼 나의 피를

오, 자유(평등)여 자유(평등)의 나무여.

<학살 2>                        나의 칼 나의 피

오월 어느 날이었다 
80
5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12시 나는 보았다
경찰이 전투경찰로 교체되는 것을
12시 나는 보았다
미국 민간인들이 도시를 빠져 나가는 것을
12시 나는 보았다
도시로 들어오는 모든 차량들이 차단되는 것을

아 얼마나 음산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계획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날 낮이었다

12시 나는 보았다
총검으로 무장한 일당의 군인들을
12시 나는 보았다
야만족의 침략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12시 나는 보았다.
야만족의 약탈과도 같은 일군의 군인들을
12시 나는 보았다
악마의 화신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아 얼마나 무서운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노골적인 낮
12시였던가

오월 어느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12
도시는 벌집처럼 쑤셔 놓은 심장이었다
12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12
바람은 살해된 처녀의 피 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12
밤은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의 눈동자를 파먹고
12
학살자들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체의 산을 옮기고 있었다
.

아 얼마나 끔찍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조직적인 학살의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낮이었다

12
하늘은 핏빛 붉은 천이었다
12
거리는 한 집 건너 울지 않는 집이 없었다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 올려 얼굴을 가려 버렸다
12
영산강은 그 호흡을 멈추고 숨을 거둬 버렸다

아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렇게는 처참하지 않았으리
아 악마의 음모도 이렇게는 치밀하지 않았으리 

   <산에 들에 봄이 오고>                   사상의 거처

누가 와서 물었네 지나가는 말로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나는 대답했네
거기에 갔다고

누가와서 물었네 거기가 어디냐고
나는 대답했네 담 너머 하얀 집을 가리키며
자유가 묶여 발버둥치는 곳이라고

산에 들에 봄이 오고
누가 와서 물었네 지나가는 말로
그는 이번에 나오지 않았느냐고
나는 대답했네 무덤 하나를 가리키며
그는 지금 저기에 있다고

  <혁명의 길>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시대의 절정에서
대지의 사상에 뿌리를 내리고
새벽을 여는 사람이 있다 어둠의 벽을 밀어

혁명하는 사람이 그 사람이다
굶주림이 낯익은 그의 형제이고
몸에 밴 북풍한설이 그의 이불이다
그리고 얼굴 없는 그림자가 그의 길동무고

혁명의 길은
다정히 둘이 손잡고 걷는 길이 아니다
박수갈채로 요란한 도시의 잡담도 아니다
 
가시로 사납고 바위로 험한 벼랑의 길이 그 길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도피와 투옥의 길이고
죽음으로써만이 끝장이 나는 긴긴 싸움이 혁명의 길이다
그러나 사내라면 그것은 한 번쯤 가볼 만한 길이다
전답이며 가솔이며 애인이며 자질구레한 가재 도구며
……
거추장스러운 것 가볍게 털어버리고
한 번쯤 꼭 가야 할 길이다
과연 그가 사내라면
하늘의 태양 아래서
이름 빛내며 살기란 쉬운 일이다
어려운 것은
지하로 흐르는 물이 되는 것이다 소리도 없이
밤으로 떠도는 별이 되는 것이다 이름도 없이

     ◎ 高銀, 양성우 , 나의 칼 나의 피김남주 詩集, 인동, 1987
김남주 詩集, 사상의 거처, 창작과 비평사, 1991
김남주 유고시집,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창작과 비평사, 1995

☞ 김남주: 19461016일 전라남도 해남군 봉학리에서 태어났다. 해남중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제일고등학교 2학년 때 획일적인 입시위주 교육에 반발하여 자퇴하였다. 1969년 검정고시로 전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한 뒤 3선 개헌 반대 등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였다. 1972년 유신헌법이 선포되자 이강(李綱) 등과 전국 최초로 반()유신 지하신문인 함성을 제작하였으며, 이듬해 제호를 고발로 바꾸고 전국에 배포하려다 반공법 위반혐의로 구속되고 대학에서 제적당하였다.
8
개월 복역 후 고향에서 농사일을 하면서 창작과 비평1974년 여름호에 잿더미진혼가7편의 시를 발표, 문단에 데뷔하였다. 이듬해 광주에서 사회과학 전문서점 카프카를 열었으나 경영난으로 1년 만에 문을 닫고, 1977년 해남에서 한국기독교농민회의 모체가 된 해남농민회를 결성하였다. 같은 해 광주에서 황석영 등과 민중문화연구소를 열고 활동하다 사상성 문제로 1978년 서울로 피신하여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남민전)에 가입하였다. 1979'남민전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광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 1984년 수감 중 첫 시집 진혼가가 출간되었다. 198812월 형집행정지로 93개월 만에 석방되었으며, 이듬해 남민전 동지 박광숙과 결혼하였다. 1990년 민족문학작가회의 민족문학연구소장이 되었으나 1992년 건강상의 문제로 사퇴하였고, 1994년 췌장암으로 사망하여 망월동의 5·18묘역에 안장되었다.
스스로 '시인'이라기보다는 '전사'라고 칭했듯이 그의 시는 강렬함과 전투적인 이미지들이 주조를 이룬다. 유장하면서도 강렬한 호흡으로 반외세와 분단극복, 광주민주화운동, 노동문제 등 현실의 모순을 질타하고 참다운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하였다. 시집 나의 칼 나의 피(1987), 조국은 하나다(1988), 사상의 거처(1991),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1995) 등과 시선집 사랑의무기(1989), 학살(1990), 산문집 시와 혁명(1991), 번역서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프란츠 파농, 1978) 등이 있다. 신동엽창작기금(1991)과 단재문학상(1992), 윤상원문학상(1993), 민족예술상(1994)을 받았으며, 20005월 광주 중외공원에 노래가 새겨진 시비(詩碑)가 제막되었다. -<두산백과>

 

 

댓글
자동등록방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