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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프리드리히 엥겔스-‘현대 가족은 과거 모순의 축소판’2020-03-13 21: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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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론의 관점에 따르면, 역사를 결정하는 결정적 계기는 궁극적으로 직접적 생활의 생산 및 재생산이다. - 1884년 초판 서문

원시사에서 시초의 모권제 씨족이 문화 민족들에게 널리 쓰이던 부권제 씨족의 선행 단계라는 이 새로운 발견은 다윈의 진화론이나 마르크스의 잉여가치론이 각각 생물학이나 정치경제학에서 지니는 의의와 같은 것이다. - 1891년 제4판 서문

루이스 H. 모간은 전문 지식을 가지고 인류의 선사(先史)에 일정한 체계를 세우려고 시도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 1장 선사시대 문화의 단계들

야만 : 주로 자연이 만들어 내는 산물을 가져다 쓰는 시기. 낮은 단계: 인류의 유년기. 열대나 아열대에서 살았고, 먹을 것은 열매, 견과(堅果), 뿌리 등. 분절언어의 발생. 중간단계: 어류를 잡아먹고, 불을 사용했다. 초기의 석기시대(구석기)에 만든 조잡한 석기 사용. 최초의 무기인 몽둥이와 창을 발명, 짐승 고기를 먹었다. 높은 단계: 활과 화살의 발명으로 수렵이 정상적인 노동의 일부가 되었으나 토기 제조법은 모르고 있었다.

미개 : 목축과 경작을 도입하는 시기. 낮은 단계: 토기 제조법을 터득하면서부터 시작한다. 중간단계: 동부대륙(유럽)에서는 가축을 길들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고, 서부 대륙(아메리카)에서는 관개(灌漑)를 통해 식용작물을 재배하며 아도브와 돌을 건축에 사용하면서부터 시작한다. 높은 단계: 인류는 철광석을 제련하고 문헌을 기록하는 데 문자를 이용하면서부터 문명으로 이행한다. 동반구(東半球)에서만 독자적으로 거친 단계. 농경이 가능.

미개의 높은 단계의 전성기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특히 일리아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문명 : 자연물을 한층 더 낫게 가공할 수 있는 기술을 터득하는 시기. 본래적인 의미에서의 공업 및 기술의 시기.

모건에 따르면 원시 상태로부터 다음과 같은 가족 형태가 매우 일찍부터 발전해 나갔다. - 2장 가족

혈연가족: 가족의 첫째 단계, 여기서는 혼인 집단이 세대별로 되어 있다. 가족의 전형적인 모습은 한 쌍의 부부의 자손들이며, 각 다음 세대의 자손들은 모두 서로가 형제자매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서로가 부부이다. 혈연 가족은 전멸했다.

푸날루아 가족: 가족의 조직에서 부모와 자녀 간의 성교를 배제하는 것이 제1의 진보라면, 2의 진보는 형제와 자매 간의 성교를 배제하는 것이었다. 하와이 관습에 따르면, 일정한 수의 친자매 또는 방계의 자매(즉 종자매, 재종자매 또는 그보다 촌수가 먼 자매)는 그들의 공통남편들의 공동아내였다. 그러나 그들의 형제는 그들의 공동남편들 중에서 제외되었다. 이 남편들은 이미 서로 형제라고 부르지 않고 푸날루아라고 불렀다. 즉 친근한 동료, 말하자면 동반자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 계열의 친형제 또는 촌수가 먼 형제들도 자기의 자매를 제외한 일정한 수의 아내와 공동결혼생활을 했으며, 이 아내들도 서로 푸날루아라고 불렀다.

푸날리아 가족 형태는 군혼으로 볼 수 있으며-푸날루아 가족은 우리가 알고 있는 한 군혼의 최고 발전단계이다-씨족이라는 제도도 푸날루아 가족에서 직접 발생한 것 같다.

대우혼 가족: 대우혼 가족은 야만과 미개의 경계에서, 대개는 이미 야만의 높은 단계에서 발생했고, 곳에 따라서는 미개의 낮은 단계에 들어서야 비로소 발생했다. 씨족이 발전할수록 친족(혈족) 간의 혼인이 금지되어감에 따라 여자들에 의해서 대우혼으로 이행되기 시작하고 남자들도 엄격한 일부일처제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대우혼對偶婚 - 쌍방에서 손쉽게 이혼할 수 있는 단혼제.)

구세계에서는 가축을 길들이고 사육함으로써 전대미문의 부의 원천이 조성되었고, 전혀 새로운 사회관계가 형성되었다. 재부가 증대함에 따라 모계에 의한 혈통의 결정과 모권 상속은 폐지되고 부계에 의한 혈통의 결정과 부권상속이 결정되었다. 이 혁명은 전적으로 선사시대에 있었던 일이다. 모권의 전복은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였다

현대의 가족은 그 맹아 속에 노예제뿐만 아니라 농노제도 포함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처음부터 농경을 위한 노력과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 가족은 그 후 사회와 그 국가에서 광범하게 발전한 온갖 모순을 축소판의 형태로 내포하고 있다,”(마르크스)

가부장제 가족의 출현과 함께 우리는 기술(記述)된 역사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일부일처제 가족: 일부일처제 가족의 궁극적인 승리는 바로 문명 시기가 열린다는 표식들 중 하나였다. 일부일처제 가족은 남편의 지배에 따른 것으로, 아버지의 혈통이 확실한 아이를 낳자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간통과 매음으로 보충된다.

그리스 인들 사이에서는 이 새로운 가족 형태가 매우 엄격하게 유지되고 있다.

일부일처제는 자연적 조건이 아니라 경제적 조건에 기초한, 즉 원시적자연발생적 공동 소유에 대한 사적 소유의 승리를 기초로 한 최초의 가족형태였다.

1846년 마르크스와 필자의 오래된 원고(독일 이데올로기)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최초의 분업은 자식을 생산하기 위한 남녀 간의 분업이었다.”

역사에 나타난 최초의 계급적 대립은 단혼제도에서 보게 되는 남녀 간의 적대적 발전과 일치하며, 따라서 최초의 계급적 억압은 남성에 의한 여성의 억압과 일치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족 형태 중에서 일부일처제만이 근대적 성애를 발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형태였다. 하지만 단혼과 함께 군혼의 유물인 난혼이 병존, 매음과 간통 등이 재산의 불평등에 비례하여 불기피한 사회현상이 되었다. 여기에서 비난받고 배척당하는 대상은 여자 쪽이고, 남자는 오히려 일종의 명예로운 일로 여겨지며, 최악의 경우에도 그리 탓할 것이 못 되는 사소한 도덕상의 오점으로 간주된다.

아메리카 발견 당시에는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모권제의 원칙 위에서 씨족으로 조직되어 있었다. - 3장 이로쿼이 인의 씨족

씨족의 성원은 아무도 씨족 내부에서 결혼할 수 없으며, 서로 돕고, 보호할 의무가 있으며, 평의회가 있었다. 등등.

몇 개의 씨족이 모여서 포족을 형성하고, 몇 개의 포족이 모여서 부족을 형성한다. 아메리카 인디언 부족의 특징은 먼저 자신의 영토와 자신의 명칭을 가지고 있으며, 부족만의 독특한 방언이 있으며, 공동의 종교적 표상(신화)과 예배의식이 있다. 등등.

그리스 인들은 역사 무대에 등장하자마자 이미 문명의 문턱에 있었다. 영웅시대의 그리스 인들의 씨족은 이미 이로쿼이 인들보다 앞서 있었으며 군혼의 흔적은 눈에 띄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모권은 부권에 자리를 내주었고, 이에 따라 발생 중에 있던 사적재화는 씨족제도에 첫 번째 균열을 가져왔다. - 4장 그리스 인의 씨족

 여자의 재산을 자기 씨족 내에 보존하기 위해 처녀가 자기 씨족 내에서 결혼하는 것이 허용되었고 또 그것이 의무적인 것으로 되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우리가 보는 그리스의 부족들은 대부분 이미 소규모 준민족들로 결합되어 있었으나 씨족, 포족 및 부족들은 그 내부에서 여전히 자신의 자주성을 보존하고 있다.

이 다양한 소규모 준민족들은 더 좋은 토지를 차지하기 위해 그래서 전리품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치렀다. 전쟁 포로의 노예화는 이미 공인된 제도였다. 이 부족들과 준민족들의 관리 조직은 평의회, 즉 볼레(상설적인 권력기관), 민회(궁극적인 최고 권력), 군사령관(바실레우스-재판관 및 최고 제관)이 있었다.

국가는 점점 발전해가는 재산 획득의 새로운 형태들, 따라서 재부의 증식의 새로운 형태들에 보편적인 사회적 승인의 도장을 찍는 제도이다. 그리고 또 이미 시작되고 있던, 사회의 계급적 분열뿐만 아니라, 나아가 유산계급이 무산계급을 착취할 권리와 유산계급의 무산계급 지배를 영구화시키는 그런 제도이다.

국가의 본질적인 특징은 인민 대중과 동떨어진 공적 권력이라는 것이다. - 5장 아테네 국가의 탄생

모든 정치혁명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종류의 소유를 몰수(‘일종의절취이다)함으로써 한 종류의 소유를 보호(‘또 다른절취이다)하기 위해 수행되었다. 이리하여 사적소유가 2,500년 동안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소유권의 침해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통치조직에 사적소유라는 전혀 새로운 요소가 도입되었다.

아테네 인들은 국가와 함께 헌병대를 만들었으나 이 헌병대는 노예로 조직되었다. 자유로운 아테네 인은 경찰 업무를 천박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자신이 그런 수치스러운 일을 하기보다는 노예에게 체포당하는 쪽을 택했다.

아테네를 멸망으로 이끈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의 노동을 천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 노예제였던 것이다.

로마에서는 소위 왕권이 아직 폐기되기도 전에 개인의 혈연적 유대에 입각해 있던 낡은 사회제도는 붕괴되고, 그 대신 영토에 따른 구분과 재산상의 차별을 기초로 한 새로운 현실적인 국가제도가 수립되었다.    - 6장 로마의 씨족과 국가

아일랜드에는 잉글랜드 인들이 씨족을 파괴한지 오래된 오늘날에도 씨족은 여전히 인민의 의지 속에 본능적으로 살아남아 있다. - 7장 켈트 인과 게르만인의 씨족

스콜틀랜드에서는 지난 세기(18세기) 중엽에도 씨족이 아직 전성기에 있었다.

11세기의 켈트 인들 사이에서는 아직 대우혼이 결코 일부일처제에 의해 밀려나지 않았다.

웨일스 인과 스코트인들 사이에서는 푸날루아 가족의 잔재가 초야권의 형태를 띠면서 중세기에 이르기까지 보존되고 있었다.

민족의 이동 직전까지 게르만 인이 씨족으로 조직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씨족은 후세의 마르크 공동체, 또는 촌락공동체와 아주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게르만 인 공통의 용어는 고투어의 kuni였을 것이다.

타키투스 시대에는 게르만 인들 사이에는 모권이 이미 부권에 자리를 내주고 있었는데, 아직 엄격한 일부일처제는 아니었으며, 여성은 존경의 대상으로 처녀의 정조는 엄격히 지켜졌다.

여러 민족으로 결합된 게르만 부족들에게는 대체로 그리스 인들이나, 소위 왕정시대의 로마 인들에게서 발전한 것과 동일한 통치조직이 있었다.

고대 노예가 사멸한 것은 기독교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노예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으며, 그렇기 때문에 없어졌다. - 8장 게르만 인의 국가 형성

게르만 인들은 유럽을 소생시켰다. 고대세계의 절망적인 멸망에서 서유럽 인류를 새로이 형성하고 편성한 것이다. 유럽을 재생시킨 것은 그들의 특정한 민족적 특성이 아니라 그저 그들의 미개성, 그들의 씨족제도였다.

게르만 인들은 일부일처제의 고대적 형태를 개조하여 가정에서 남자의 지배를 완화하고, 일찍이 고전적 세계가 알고 있던 것보다 더 높은 지위를 여자에게 부여했다.

그들은 적어도 독일, 북부프랑스 및 잉글랜드 등 주요 국가 세 개에서 본래의 씨족제도의 한 가닥을 마르크 공동체의 형태로 봉건국가에 도입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가혹하기 그지없는 중세적 농노제의 조건하에서서도 피억압계급인 농노들에게, 고대의 노예나 근대의 프롤레타리아트가 기존 형태로는 가질 수 없었던 지역적 단결력과 저항수단을 부여했던 것이다.

민족 이동 이전에 게르만 인들이 도달한 미개의 높은 단계야말로 노쇠하고 빈사 상태에 빠진 문명세계를 짊어질 수 있었다.

목축은 최초의 커다란 사회적 분업이었다. - 9장 미개와 문명

가족 내의 분업은 남녀 간의 재산 분배를 규정했다.

가정에서 남자의 지배가 실제로 확립됨으로써 남성독재의 마지막 장애물이 없어졌다. 이 독재는 모권의 전복, 부권의 도입, 대우혼으로부터 일부일처제로의 점진적 이행으로 확인되고 영속화되었다.

수공업이 농업에서 분리됨으로써 2의 거대한 분업이 발생했다.

문명은 생산에도 종사하지 않고 생산물의 교환에만 종사하는 계급인 상인을 낳았다. 이 계급은 생산에 종사하지 않으면서 생산에 대한 지도권을 행사하여 생산자를 경제적으로 자기에게 예속하여 어떤 두 생산자들 간의 필수불가결한 중계자가 되어 양자를 착취한다. 가장 유익한 계급이라는 구실 하에 진짜 사회적 식객인 기생계급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금속화폐가 상인층과 함께 출현하였다. 화폐의 재부와 함께 토지의 재부가 등장하였다. 자유민과 노예, 빈민과 고리대금업자, 부자 귀족과 평민, 이들 계급분화와 함께 계급들 상호 간의 끊임없는 공개적 투쟁이 격화되면서 씨족제도는 국가로 대체되었다

경제생활의 발전 즉 분업에 의한  계급의 발생으로 사회가 분열되면서 파멸되고 씨족공동체는국가로 대체되었던 것이다.

국가는 결코 외부로부터 사회에 강요된 권력이 아니다. 국가는 헤겔이 주장한 것처럼 윤리적 이념의 현실태이성의 형상 및 현실태가 아니다. 국가는 일정한 발전 단계에 있는 사회의 산물이다.

국가는 계급 간의 대립을 억제하기 위해서 생겨났기 때문에, 동시에 그것은 이 계급들이 충돌하면서 발생했기 때문에 대개 가장 강력한 계급, 경제적으로 지배하는 계급의 국가이다. 이 계급은 국가의 힘을 빌려 정치적으로 지배하는 계급이 된다. 그리하여 피억압계급을 압박하고 착취하기 위한 새로운 수단을 획득한다.

요컨대 국가는 아득한 옛날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한 계급에 의한 다른 계급의 착취가 문명의 기초인 만큼 , 문명의 발전은 끊임없는 모순 가운데 진행된다.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김대웅 옮김,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두레, 2012

이 저서는 고대사회의 사회구성체와 계급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대한 포괄적인 분석이자 완성된 기술이다. 엥겔스는 이 저서를 통해 사적유물론을 더욱 폭넓게 심화시키고 다방면으로 확산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는 합법칙적인 발전과정과 경제적 사회구성체의 분리로서의 인류 역사에 관한 마르크스의 관념을 확고히 했다. -요하임 헤르만

☞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원시공동체 사회의 붕괴 과정과 착취에 기초한 계급사회 출현을 밝히고 계급사회의 일반적 특징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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