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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세계회화사에 빛나는 인류의 유산” ≪이인문의 강산무진도≫ 오주석 2020-01-15 21:4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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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문은 조선 후기 화단에서 김홍도와 더불어 솜씨와 명성을 나란히 했던 대가이다.

그의 화풍은 구성이 치밀하고 세부 표현이 정치한 것이 특징이다. 결과적으로 사실적이고 단아한 작풍을 띠고 있는 것이 많다.

이인문의 작품에는 화가 개인의 기질이 반영된 결과로서 화면에 맑고 청아한 기운이 충만한데 이 점은 그 특유의 깔끔란 선묘 선염법이라든가 기타 그림을 맑게 보이게 하기 위한 여러 세부 기법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는 그 작품의 예술성으로 보아 비단 조선 후기 최대 걸작의 하나일 뿐만 아니라 세계회화사에 빛나는 인류의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이인문(李寅文, 1745~1824 이후)의 본관은 해주(海州), 시조는 이인후(李仁垕), 연안이씨(延安李氏)에서 분파했으며, 자는 문욱(文郁), 호는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館道人),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觀道人), 기성유수고송관도인(碁聲流水古松館道人), 송수관도인(松水館道人), 도인(道人), 유춘(有春) 등이 있으며, 다섯 아들을 두었다. 이인문의 일가는 16세기 이래 중인 기술직인 의관, 역관, 율관, 산관 등에 종사하였고, 특히 사자관(寫字官)을 대물림하기도 했다.

이생은 생김이 깡마르고 마음 또한 기특한데,
의관이 남루하니 때를 잘못 만남이라.
두 눈동자 형형한 빛은 늙어도 쇠함 없고,
그림은 사람 아닌 자연을 스승으로 했네.
아지랑이 구름 낀 산수로 가슴 가득 채웠으니,
윤곽도 없는 능란한 포치 알아볼 이 누구런가? - 남공철 -

<강산무진도>는 횡권으로 비단 바탕에 수묵담채로 그렸다. 현재 표구는 일본식으로 되어 있는데 표구 규격은 44.4×915.6cm이고 그림 부분만은 44.0×856.6cm이니 상당히 긴 횡권이다.

이인문은 횡권의 폭 정중앙에서 전 화폭을 통하여 가장 큰 다섯 그루의 소나무(고송)를 그리며 그림을 시작하면서, 수많은 봉우리와 흐려지는 연봉은 계속되지만 강에는 이 봉우리와 언덕을 이어주는 듯 자잘한 바위들이 주위에 물결을 짓게 하며 솟아 있다. 이것이 유수이다. 이 횡권이 고송에서 시작하여 유수로 끝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바로 고송유수(古松流水)인 것이다. 그리고 끝없이 흘러가는 강과 확장되어 가는 공간의 묘사는 강산(江山)은 무진(無盡)하다는 언어보다 더 조형적 언명이다.

<강산무진도>는 거리 원근법(遠近法)을 구사하여 시종 대단히 높고 먼 곳에서 바라보는 시점으로 되어 있다.

<강산무진도>준법(皴法)-산석(山石) 등의 주름을 그리는 화법의 한 가지-의 전시장이라고 부를 만큼 다양한 준법이 횡권 전체를 통하여 펼쳐져 있다. 중국 회화권에 있어 준법이란 산과 들의 형태와 질감을 필묵으로 표현해내는 것이지만, 다만 형식적(形式的) 효과의 측면에 머무를 뿐만 아니라 산수로부터 느껴지는 내면의 의취까지도 표현해내는데 묘미가 있다. 때문에 준법은 산수화의 영혼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그밖에 태점법(苔點法)-태점이란 산이나 들의 윤곽부에 점과 같은 형태를 그려 넣어 원경으로 본 수목이나 덤불 등의 초목상을 묘사한 것-과 농담의 변화가 매끄럽고 붓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깔끔한 묵법(墨法), 연록과 주황계통을 대비시킨 위에 묵색으로 중요 경물을 강조한 설채법(設彩法) 등이 구사되었다.

<강산무진도>의 주제는 첫째, 위대한 자연과 평화로운 인간의 삶. 둘째 고송유수이다. 즉 군주의 통치대상인 국토와 백성이 영원하다는 것으로, 여기에 고송(古松)과 유수(流水)를 앞뒤에 특별히 배치함으로써 은연중 고송유수관(古松流水館) 이인문 자신의 존재를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강산무진도>구성의 원리로 보면 주돈이(周敦頤)태극도설의 논리가 구성 논리로 작용하고 있으며, 태극도설은 주자학의 입문서인 근사록첫머리 문장인 동시에 정조 홍재전서경사강의 모두(冒頭)에서 깊이 있게 논의되므로, <강산무진도>는 궁극적으로 당시의 지배이념인 조선 성리학(性理學)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오주석 지음, 이인문의 강산무진도, 신구문하사, 2006

오주석 : 수원 태생. 서울대 동양사학과와 동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 졸업. 코리아헤럴드 문화부 기자, 호암미술관 및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원, 중앙대학교 겸임교수, 간송미술관 연구위원, 연세대학교 영상대학원 겸임교수 역임. 20052월 지병으로 생을 마쳤다. 저서로는 오주석의 한국의 특강, 단원 김홍도(1998 문화부 선정 우수학술도서),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2가 있고, 공저로 우리 문화의 황금기-진경시대(1998년 백상출판문화상 수상)단원절세보가 있다.

이인문<강산무진도>를 분석한 이 논문은 오 선생의 본격적인 미술사논문으로 그가 세상을 뜰 때까지 계속 다듬고 있었던 노작이다.(역사문화연구소장 유봉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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