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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은 하나의 사건이다. 한 권의 책에 담긴 지은이, 만든이, 읽는이의 고뇌와 정성을 기억한다.



제목“역사(歷史)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2019-10-26 21: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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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歷史)란 무엇인가. ()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적으로 발전하고 공간적으로 발전하는 심적(心的) 활동(活動)의 상태에 관한 기록이다.
역사는 역사를 위하여 역사를 쓰는 것이고 역사 이외에 무슨 다른 목적을 위하여 쓰는 것이 아니다. 영국의 역사를 쓰면 영국사(英國史)가 되어야 하고 러시아 역사를 쓰면 러시아사가 되어야 하며, 조선의 역사를 쓰면 조선사(朝鮮史)가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조선에 조선사라 할 만한 조선사가 있었는가 하면,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렵다.
내가 보건데 조선사는 내란이나 병화(兵火)에서보다도 조선사를 저작(著作)하던 그 사람들의 손에서 더 많이 없어지고 파괴되어 버린 것 같다.

단재 신채호 원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비봉출판사, 2006

역대 왕조가 쓰던 나라 이름들은 다 단군 때의 부()의 이름이거나 관명(官命)이거나 지명(地名)들이고 원래 나라 이름으로 정한 것이 아니다. 오직 朝鮮(조선)만이 단군이 정한 나라 이름이다.
고구려(高句麗) · 고려(高麗) 등은 단군조선의 중부(中部)의 이름이다.
진번(眞番) · 삼한(三韓) 등은 다 단군조선의 삼경(三京) 혹은 삼경 장관(長官)의 이름이다.
부여(夫餘) · 낙랑(樂浪) 등도 다 낙랑조선의 3(三京) 9(九部) 중의 하나였다. 서울은 곧 솝울이니 이는 돕아도아가 되고 눕어누어가 됨과 같이, ‘의 꼬리음(尾音) ‘이 소멸되어 없어져서 소울이 되었고, ‘의 모음(母音) ‘로 변하여 서울이 된 것이다. ‘소부리는 백제의 남경(南京)이고 한양(漢陽)은 고려의 남경이니, 한양을 서울이라고 한 것은 솝울곧 남경이란 뜻이다.
백제의 남경은 부여이고 남부여의 다른 이름은 所夫理소부리솝울이니, ‘는 우리말 고어(古語)에서 남쪽을 가리키는 명사이고, ‘솝울은 고어에서 서울(南京)을 가리키는 명사이니 부여는 솝울이다.
신라 · 백제 · 가락(駕洛) · 발해 · 태봉(泰封) 등도 다 단군 때부터 있었던 이름이다.

조선 근세(近世)에 종교나 학술이나 정치나 풍속이 사대주의(事大主義)의 노예가 된 것은 어디에 그 원인이 있는가? 나는 한마디로 대답하기를 고려 인종(仁宗) 13년 서경(西京)전쟁, 즉 묘청(妙淸)이 김부식(金富軾)에게 패한 것이 그 원인이라고 한다. - <조선 역사상 1천년 이래 최대 사건> -
이 전쟁은 즉 화랑(花郞), 불가(佛家) 대 유가(儒家)의 싸움이고, 국풍파(國風派) 대 한학파(漢學派)의 싸움이고, 독립당(獨立黨) 대 사대당(事大黨)의 싸움이고, 진취사상(進就思想) 대 보수사상(保守思想)싸움이다. 묘청은 곧 전자의 대표이고 김부식은 곧 후자의 대표였던 것이다.
이 전쟁에서 묘청 등이 패하고 김부식이 이겼으므로 조선사(朝鮮史)가 사대적(事大的) 보수적(保守的) 속박적(束縛的) 사상, 곧 유교사상(儒敎思想)에 정복되고 말았거니와, 만일 이와 반대로 김부식이 패하고 묘청 등이 이겼더라면 조선사는 독립적 진취적 방면으로 진전하였을 것이니, 이 전쟁을 어찌 1천년 이래 최대 사건이라 하지 않겠는가. 

단재 신채호 원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문화사(), 비봉출판사, 2007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는 구한말(舊韓末)에 낳은 천재적 사학자이자 열렬한 독립운동자이다. 그 천성(天性)의 준열(峻烈)함과 안식(眼識)의 예리함은 시속(時俗)의 무리들이 따를 수 없었던 바였고, 그의 조선상고사는 그의 유저(遺著)들 중에서 가장 이채(異彩)나는 것이다 <서문 -신단재의 조선상고사권두에 적음>, 민세 안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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