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유럽 전쟁에서 혁명적 사회주의자의 임무 ○ 프랑스 부르주아지가 조국 방위를 말할 때 그들 역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데, 왜냐하면 사실 그들은 자본주의적 기술면에서 낙후되어 있고 보다 느리게 발전하고 있는 나라들을 방어하고 있기 때문이며, 침략 전쟁을 위해, 즉 오스트리아와 독일 영토를 약탈하기 위해 수백억 루블을 들여 러시아 차리즘의 흑백인조(Black-Hundred ganga)를 고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전국 양 진영 어느 쪽도 전쟁에서의 잔학함에 있어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 ☞ 흑백인조(Black-Hundred ganga) : 혁명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차르 경찰이 결성한 군주제 옹호 폭력단으로서, 혁명가들을 살해하고 진보적 지식인들을 공격하고, 대규모 학살을 조직하기도 했다. 유럽 전쟁과 국제사회주의 ○ 도처에 부르주아지와 제국주의자들이 존재하고, 도처에서 비열한 살육을 위한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 러시아 차리즘이 특히 악명 높고 야만적(그리고 그 어느 것보다 반동적)이라면 독일 제국주의 또한 군주주의적ㆍ봉건적ㆍ왕조적이며, 저열한 독일 부르주아지 역시 프랑스 부르주아지보다 덜 자유롭다. 차리즘이 패배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해가 가장 작다고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말할 때 그들은 옳다. 왜냐하면 그들의 직접적인 적은 무엇보다도 대러시아 배외주의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자(기회주의자가 아닌)는 각각의 나라에서 ‘자’국의(국내산) 배외주의자를 자신의 주적으로 삼아야만 했다. 전쟁과 러시아 사회민주주의 ○ 모든 나라의 정부와 부르주아 당들이 수십 년 동안 준비해온 유럽 전쟁(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선진국들에서 자본주의 발전의 최근 단계—제국주의 단계—에 이르러 군비증강이 가속화되고 시장 획득을 위한 투쟁이 끝 간데 없이 격화하였다. 보다 낙후된 동유럽 군주제들의 왕조적 이해와 함께 이러한 요인들이 지금의 전쟁을 야기하는 것이 불가피했고, 실제로 야기했다. 영토를 강탈하고 타국을 복속시키고, 경쟁국을 파멸시키고 그 부를 약탈하고, 러시아, 독일, 영국, 그리고 여타 나라들에서 국내의 정치적 위기로부터 노동대중의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고, 노동자들의 단결을 깨뜨리고 민족주의로 호도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운동을 약화시키기 위해 프롤레타리아 전위를 말살하려는 것, 이것들이 바로 현 전쟁의 유일한 실제 내용이자 중요성이자 의미다. ☞ 이 글은 막 발발한 세계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볼셰비키 당의 입장을 표명한 최초의 공식 문서다.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현황과 임무 ○ 현 위기의 가장 심각한 특성은 유럽 사회주의 공식 대표자들의 다수가 부르주아 민족주의 와 배외주의에 굴복했다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하게도, 모든 나라 부르주아 언론이 이제는 그들에 대해 조롱과 기특하다는 투의 칭찬을 섞어가며 기사를 쓰고 있다. ○ 계급 협조의 옹호, 사회주의 혁명 이념과 혁명적 투쟁 방법의 포기, 부르주아 민족주의로의 순응, 민족과 나라의 경계선은 역사적으로 일시적이라는 사실에 눈감기, 부르주아 합법성에 대한 물신화, ‘광범한 주민대중’(소부르주아지를 뜻하는)’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 두려워 계급적 관점과 계급투쟁을 폐기하기 등이 기회주의의 이데올로기적 기초임이 분명하다. ○ 기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발생기에 진실이었던 것을 자본주의의 종말기로 확장하면서 ≪공산당 선언≫이 강조한 진실을 왜곡한다.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 기회주의자들이 왜 이 사회주의적 명제를 받아들이는 것을, 심지어 대부분의 경우에 그 명제를 열어놓고 고려하는 것마저 그토록 두려워하는지는 누구나 잘 알 수 있다. ○ 사회주의 운동은 조국이라는 낡은 틀 내에서는 승리할 수 없다. • 사회주의 운동은, 각 민족 노동대중의 정당한 필요와 진보적 열망이—기존의 민족적 칸막이가 제거됨에 따라—국제적 단결을 통해 처음으로 충족되는, 새롭고 우월한 형태의 인간 사회를 창조한다. • 위선적인 ‘조국 방위’ 호소를 통해 각 민족 노동대중을 분열시키고 단결을 깨뜨리려는 작금의 부르주아지의 시도에 대해, 계급적으로 각성한 노동자들은 거듭 새로운 불굴의 노력으로 모든 민족의 노동자들을 부르주아지의 지배를 타도하는 투쟁으로 단결시키는 것으로 응답할 것이다. ○ 부르주아지는 제국주의적 약탈을 ‘민족 전쟁’이라는 낡은 이데올로기로 위장하여 대중을 속이고 있다. 이러한 사기는 제국주의 전쟁을 내란으로 전화시키라는 슬로건을 내건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낱낱이 폭로되고 있다. ○ 전쟁은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며, 기독교 목사들(애국과 인류의 평화를 설교함에 있어 조금도 기회주의자들에 뒤지지 않는)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죄악’이 아니다. 전쟁은 자본주의의 불가피한 단계로서, 평화만큼이나 자본주의적 생활방식의 적법한 형태다. • 오늘날의 전쟁은 인민의 전쟁이다. 마르크스 간략한 전기와 마르크스주의 해설 마르크스의 탄생 ○ 카를 마르크스는 1818년 55월 5일(신력) 트리어 시(프로이센 라인 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변호사로, 1824년에 신교로 개종한 유대인이었다. ○ 1841년 대학과정을 마치고서, 에피쿠로스의 철학에 관한 학위 논문을 제출했다. 당시 그는 헤겔파 관념론자였다. • 졸업 후, 교수가 되고자 본으로 이주했으나 정부의 반동적인 정책에 학자의 길을 포기한 마르크스는 1842년 10월, 급진적 부르주아지들이 쾰른에서 만든 <라인 신문Rheinische Zeitung>(1842년 1월 1일에 첫 호가 나왔다)의 편집장이 되어 본에서 쾰른으로 이주했다. ○ 1843년에 마르크스는 크로이츠나흐에서 어릴 적부터 친구였으며 재학 중에 약혼한 예니 폰 베스트팔렌과 결혼했다. • 1843년 가을에 마르크스는 파리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아놀드 루게와 함께 급진적 잡지 <독불연보Deutsch-Französiche Jahrbücher>를 발행했다. ○ 1844년 9월에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며칠간 파리에 와 있었는데, 이때부터 그는 마르크스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소부르주아 사회의 각종 학설과 정력적인 투쟁을 벌임으로써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마르크스주의)의 이론과 전술을 확립했다. • 1845년에 마르크스는 위험한 혁명가로 낙인찍혀 파리에서 추방당해 브뤼셀(벨기에)로 이주했다. ○ 1848년 2월 혁명이 일어나자 마르크스는 벨기에서도 추방당해 독일로, 그것도 바로 쾰른으로 건너가 <신라인 신문>의 편집장이 되었다. • 하지만 반혁명이 성공하자 마르크스는 기소되었다가 1849년 5월 16일에 독일에서 추방되었다. • 마르크스는 처음에 파리로 건너갔으나, 1849년 6월 13일 시위운동 뒤에는 이곳에서도 추방되어 런던으로 가서 죽을 때까지 그곳에 거주했다. ○ 마르크스와 그의 가족은 경제적 궁핍에 짓눌렸다. 엥겔스의 부단하고도 헌신적인 재정적 지원이 없었더라면 마르크스는 ≪자본Capital≫을 완성하지도 못했을 것임은 물론이고, 물질적 곤궁의 압박으로 쓰러졌을 것이다. ○ 1850년대 말과 1860년대는 민주주의 운동이 부활하던 시기로서, 마르크스를 실천 활동으로 끌어들였다. • 1864년에 저 유명한 제1인터내셔널, 즉 국제노동자협회가 런던에서 창립되었다. 마르크스는 이 협회의 중심인물이었으며, 그 최초의 선언과 일련의 결의와 성명, 선언의 기초자였다. ○ 인터내셔널의 정열적인 활동과 더욱 정열적인 이론 연구가 마르크스의 건강을 결정적으로 파괴했다. • 그는 경제학에 대한 새로운 연구와 ≪자본≫의 완성을 위해 쉬지 않고 작업을 계속하였고, 이를 위해 수많은 최신 자료들을 수집하고 몇 개 언어(예를 들면 러시아어)를 연구했으나, 병 때문에 ≪자본≫을 완성할 수는 없었다. ○ 1881년 12월 2일 그의 부인이 죽었다. • 1883년 3월 14일, 마르크스는 자신의 의자에 앉은 채로 고요히 영면했다. • 그는 런던 하이게이트 묘지의 부인 곁에 묻혔다. 마르크스의 학설 ○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의 견해와 학설의 체계다. • 마르크스는 인류의 가장 선진적인 세 나라에서 생겨난 19세기의 3대 사상적 조류의 계승자이자 천재적인 완성자였다. • 3대 사상적 조류란 독일 고전철학, 영국의 고전경제학, 프랑스의 혁명적 학설 일반과 결합되어 있는 프랑스 사회주의이다. • 마르크스의 견해는 그의 적들조차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일관되고 정연한 체계를 갖고 있으며, 세계의 모든 문명국 노동운동의 이론과 강령으로서, 현대 유물론 및 현대 과학적 사회주의다. 철학적 유물론 모든 철학, 특히 근대 철학의 가장 큰 근본 문제는 …… 사유와 존재의, 정신과 자연의 관계 문제, …… 무엇이 근원적인가, 정신인가 아니면 자연인인가 하는 문제다. …… 이 문제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철학자들은 양대 진영으로 나누어진다. 정신이 근원적이라고 주장하고, 그리하여 결국은 세계의 창조를 어떤 식으로든 인정하고 있는 사람들은 …… 관념론 진영을 이루고 있다. 자연을 근원적인 것으로 본 다른 사람들은 유물론의 각종 학파에 속한다. ○ (철학적) 관념론과 유물론의 개념을 이와 다르게 사용하는 것은 모두 혼란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마르크스는 관념론—어떻게든 항상 종교와 결부되어 있는—뿐만 아니라, 근래에 특히 널리 퍼진 흄과 칸트의 견해, 즉 각종 형태의 불가지론과 비관주의와 실증주의도 단호하게 거부했다. • 그는 이러한 철학은 관념론에 대한 ‘반동적’ 양보이며, 좋게 보아도 “유물론을 슬쩍 받아들이면서 세상을 향해서는 그것을 부인하는 부끄러운 얼굴을 한” 철학이라고 지적했다. ○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이 있는데, 그것은 마르크스의 자유와 필연의 관계에 대한 견해다. • “자유란 필연성의 인식이다. ‘필연은 그것이 인식되지 않은 한에서만 맹목적이다.’”(엥겔스, ≪반뒤링론≫) 즉 이것은 자연의 객관적인 합법칙성을 승인하는 것이며, 변증법적으로 필연이 자유로 진화하는(아직 인식되어 있지 않으나 인식 가능한 ‘물 자체thing-in-itself’가 ‘우리에 대한 물thing-for-us’로, ‘사물의 본질’이 ‘현상’으로 전화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것을 승인하는 것을 의미한다. 변증법 ○ 가장 전면적이고 가장 내용이 풍부하며 가장 심오한 발전의 학설로서의 헤겔 변증법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독일 고전철학의 가장 위대한 성과로 간주했다. 변증법적 철학의 앞에는 궁극적인 것, 절대적인 것, 신성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철학은 모든 것에 관해, 또 모든 것에서 그것이 일시적인 것임을 밝혀내고 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생성과 소멸의, 또 낮은 것으로부터 높은 것으로의 끊임없는 상승의 부단한 과정 외에는 아무것도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이 철학 자체가 사유하는 뇌 속에 이 과정이 반영된 것에 불과하다. • 그러므로 마르크스에 따르면, 변증법은 “외적 세계와 인간 사유. 이 둘 다의 운동의 일반 법칙에 관한 과학”이다. ○ 헤겔 철학의 이러한 혁명적 측면이 마르크스에게 채택되어 발전했다. • 변증법적 유물론은 “다른 과학들의 위에 서 있는 어떤 철학도 필요치 않다.” ○ 오늘날 발전, 진화의 사상은 사회적 의식 속에 완전하게 자리 잡고 있지만, 그것은 여러 경로를 통한 것이지, 헤겔 철학을 통한 것은 아니다. •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헤겔을 토대로 하여 정식화한 형태로의 이 사상은 현행의 진화 사상보다 훨씬 더 전면적이고 내용이 풍부하다. • 이미 지나간 단계로 다시 돌아온 듯 보이면서도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더욱 높은 기초 위에서 그 단계로 다시 돌아오는 발전(<부정의 부정>), 직선으로서가 아니라 말하자면 나선으로 진행되는 발전, 비약에 의한, 파국과 혁명에 의한 발전(<연속성의 단절>), 양질 전화, 주어진 물체에 대해, 또는 주어진 현상 내에서, 또는 주어진 사회 내에서 작용하고 있는 각종 힘들, 경향들의 모순, 충돌에 의해 생겨나는 발전의 내적 충동, 현상의 모든 측면 간의 상호의존성 및 가장 밀접하고 불가분한 연관(항상 역사는 새로운 측면을 드러낸다), 단일의 합법칙적인 보편적 운동 과정을 제공하는 연관, 이것들이 기존의 인습적인 학설보다 더 내용이 풍부한 학설로서의 변증법적 특징 가운데 일부다 유물론적 역사관 ○ 마르크스는 구 유물론이 불철저하고 불완전하며 일면적임을 통찰하여, “사회에 관한 과학을 …… 유물론적 기초와 일치시키고 그 기초 위에 다시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는 확신에 이르렀다. • 유물론이 일반적으로 의식을 존재로부터 설명하는 것이며 그 역이 아니라면, 인류의 사회 생활에 적용된 유물론은 사회적 의식을 사회적 존재로부터 설명해야 한다. • 마르크스는 ≪자본≫ 1권에 이렇게 썼다.
기술학은 인간이 자연을 취급하는 방식을 드러낸다. 즉 인간이 자신의 생활을 영위해나가는 직접적 생산과정과, 그의 사회적 관계 및 그것으로부터 생겨나는 정신적 관념들의 직접적 생산과정을 밝혀내고 있다. ○ 마르크스는 인간 사회와 역사에까지 확대시킨 유물론의 근본 원리에 대한 완결적인 정식화를 ≪정치경제학 비판≫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인간은 자기 생활의 사회적 생활에서 일정하게 필연적이며 자신의 의지와는 독립된 관계, 말하자면 물질적 생산력의 일정한 발전단계에 조응하는 생산관계를 맺는다. 이 생산관계의 총체는 사회의 경제적 구조를 형성한다. 이것이 현실의 토대로서, 그 위에 법률적ㆍ정치적 상부구조가 서 있고, 또 그것에 일정한 사회적 의식 형태가 조응한다. 물질적 생활의 생산양식이 사회적ㆍ정치적ㆍ정신적 생활과정 일반을 규정한다.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한다.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은 일정 정도의 발전단계에 이르면, 현존의 생산관계(이 생산관계 내에서 이제까지 생산력이 작동해왔다) 또는 그것의 법률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 소유관계와 모순되게 된다. 이들 관계는 생산력의 발전 형태에서 그것을 구속하는 질곡으로 변한다. 그때 사회혁명의 시대가 시작된다. 경제적 토대의 변화와 함께 거대한 상부구조 전체가 완만하거나 급속하게 변혁된다. 이와 같은 변혁을 고찰할 때에는 자연과학적 정확성으로 확인될 수 있는 경제적 생산조건의 물질적인 변혁과 인간이 이 충돌을 의식하여 그것을 추동해나가는 법률적ㆍ정치적ㆍ종교적ㆍ예술적ㆍ철학적 형태들, 즉 이데올로기적 형태를 구별해야 한다. 한 개인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그 자신의 생각에 따라 판단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변혁의 시대를 그 시대의 의식에 근거해서 판단할 수 없다. 오히려 이 의식을 물질적 생활의 모순에 근거해서, 즉 사회적 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의 현존하는 충돌에 근거해서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체로 말해서, 경제적 사회구성체의 잇따른 시대로 아시아적ㆍ고대적ㆍ봉건적ㆍ근대 부르주아적 생산양식을 들 수 있다.(마르크스가 엥겔스에게 보낸 1866년 7월 7일자 편지에 있는 짧은 정식, <생산수단에 의해 노동조직이 결정된다는 우리의 이론>)
계급투쟁 •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이렇게 썼다.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엥겔스는 나중에 원시공동체의 역사는 여기서 제외한다고 덧붙였다). 자유민과 노예, 귀족과 평민, 영주와 농노, 길드 장인과 직인, 요컨대 서로 영원한 적대관계에 있는 억압자와 피억압자가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공공연하게 끊임없는 투쟁을 벌여왔다. 그리고 이 투쟁은 항상 사회 전체가 혁명적으로 개조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투쟁하는 계급들이 함께 몰락하는 것으로 끝났다. …… 봉건 사회가 몰락하고 생겨난 현대 부르주아 사회 또한 계급모순을 폐기하지 못했다. 이 사회는 단지 새로운 계급들, 억압의 새로운 조건들과 투쟁의 새로운 형태들을 낡은 것과 바꿔놓은 데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시대, 즉 부르주아지의 시대는 계급모순을 단순화했다는 점에서 특수하다. 사회 전체가 두 개의 적대 진영으로, 즉 서로 대립하는 두 계급인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로 더욱더 분열되고 있는 것이다. ○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가운데 다음의 구절은 마르크스가 근대 사회의 각 계급의 발전 조건을 분석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각 계급의 지위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사회과학에 어떠한 요구를 제기하고 있는지 우리에게 보여줄 것이다.
오늘날 부르주아지와 대립하고 있는 모든 계급 가운데 오직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참으로 혁명적인 계급이다. 다른 모든 계급은 대공업이 발전하면서 몰락하여 멸망하지만, 프롤레타리아트는 대공업 자체의 산물이다. 하층 중간계급들, 즉 소매뉴팩처 사업자ㆍ소상인ㆍ수공업자와 농민은 모두 중간계급이라는 자신의 존재를 파멸에서 구하려고 부르주아지와 투쟁한다. 그래서 그들은 혁명적이지 못하고 보수적이다. 아니 반동적이기까지 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려 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뜻밖에 혁명적이라면, 그것은 그들이 머지않아 프롤레타리아트로 넘어가게 될 것을 고려하는 한에서만, 그들이 현재의 이익이 아니라 장래의 이익을 옹호하는 한에서만, 그들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입장에 서려고 자신의 입장을 포기하는 한에서만 그러하다. 마르크스의 경제학설 ○ 마르크스는 ≪자본≫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근대 사회”의, 즉 자본주의적 부르주아 사회의 “경제적 운동 법칙을 드러내는 것”이 “이 책의 궁극 목적”이다. • 역사적으로 규정된 한 사회의 생산관계를 그 발생ㆍ발전ㆍ쇠퇴를 통해 연구하는 것, 이것이 마르크스의 경제학설의 내용이다. 가치 ○ 인간은 생산물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천차만별의 노동을 서로 견준다. • 상품생산은 개별 생산자가 다종다양한 생산물을 만들어내고(사회적 분업), 이러한 모든 생산물이 교환과정에서 서로 견주어지는 사회관계 체제다. • 그러므로 모든 상품에 공통으로 내장되어 있는 것은 특정 생산 분야의 구체적 노동이나 특정 종류의 노동이 아니라 추상적 인간 노동, 즉 인간 노동 일반이다. • 모든 상품가치의 총합으로 표시되는 한 사회의 총노동력은 한 가지의 동일한 인간 노동력이다. 수십억, 수백억 건의 교환 행위가 이것을 증명한다. • 따라서 개개의 상품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의 일정 분량을 표시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 [한 상품의] 가치의 크기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의 양 또는 그 상품, 즉 그 사용가치의 생산을 위해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된다. ○ 교환과 상품생산 발전의 최고 산물로서의 화폐는 모든 개별 노동의 사회적 성격을, 시장에 의해 결합된 개개의 생산자 간의 사회적 연관을 모호하게 하고 은폐한다.. • 마르크스는 화폐의 각종 기능을 매우 자세히 분석하고 있다. 잉여가치 ○ 상품생산의 일정한 발전단계에서 화폐는 자본으로 전화한다. • 상품 유통의 정식은 다음과 같다. C(상품)-M(화폐)-C(상품), 즉 한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다른 한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다. • 이것에 반해 자본의 일반적 정식은 다음과 같다. M(화폐)-C(상품)-M(화폐), 즉 (이윤을 덧붙여) 판매하기 위해서 구매하는 것이다. • 유통에 투입된 화폐의 최초 가치에 대한 이 증가분을 마르크스는 잉여가치라고 부르고 있다. ○ 잉여가치를 획득하려면 화폐 소유자는 “그 사용가치가 가치의 원천이 되는 독특한 성격을 지닌 상품”, 즉 그것의 소비과정이 동시에 가치 창조의 과정이 되는 상품을 “시장에서 …… 발견 …… 해야만 한다.”(≪자본≫ 1권) • 그러한 상품이 존재한다. 인간 노동력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 노동력의 소비가 노동이며, 노동은 가치를 창조한다. • 화폐 소유자는 노동력을 그것의 가치대로 구매한다. • 노동력의 가치는 다른 모든 상품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그 노동력을 생산하는 데 드는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에 의해(즉 노동자와 그의 가족이 일용하는 생활재료의 가치에 의해) 결정된다. • 화폐 소유자가 노동력을 구매한 이상, 그는 그것을 소비할 권리, 즉 하루 동안, 말하자면 12시간 동안 그것을 가동시킬 권리를 갖는다. • 그러나 노동자는 6시간(‘필요’노동시간)의 노동 속에서 자신의 생계를 보전하는 생산물을 생산하고, 나머지 6시간(‘잉여’노동시간)의 노동으로는 자본가에게서 지불을 받지 않는 ‘잉여’생산물, 즉 잉여가치를 생산한다. ○ 자본이 발생하는 데는 두 가지 역사적 전제가 있다. • 첫째, 상품생산 일반의 비교적 높은 발전단계에서 각 개인의 수중에 일정량의 화폐가 축적되어야 한다. • 둘째, 이중의 의미에서 ‘자유로운’ 노동자의 존재다.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는 데 있어 일체의 제약과 제한에서 자유롭고, 토지 및 생산수단 일반에서 자유로운 노동자, 즉 자신의 노동력을 파는 것 외에는 생존할 길이 없는 ‘프롤레타리아’의 존재가 필요하다. ○ 잉여가치를 늘리는 데는 근본적으로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노동시간의 연장(‘절대적 잉여가치’)과 필요노동시간의 단축(‘상대적 잉여가치’)이 그것이다. • 전자의 방법에 대한 분석에서 마르크스는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노동자계급의 투쟁과, 노동시간 연장(14~17세기) 및 그것의 단축(19세기의 공장법)을 위한 국가권력의 개입에 관한 아주 인상적인 그림을 제시한다. • ≪자본≫ 출간 이후 세계 모든 문명국의 노동계급 운동의 역사는 이 그림을 더욱 완결하게 하는 무수히 새로운 사실들을 공급하고 있다. ○ 마르크스는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을 분석하는 대목에서, 자본주의가 노동생산성을 증대시켜온 역사상의 주요한 세 단계를 연구했다. 1) 단순 협업, 2) 분업과 매뉴팩처, 3) 기계제 대공업. •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발전의 기본적이고 전형적인 특징을 여기서 얼마나 깊숙이 파헤쳐냈는가는, 러시아의 이른바 시장 생산 수공업에 대한 연구가 위의 세 단계 중 1, 2단계를 예증해주는 풍부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로도 잘 알 수 있다 사회주의 ○ 마르크스의 사회주의는 민족과 국가의 문제들도 이와 동일한 역사적 기반 위에서 제기하고 있는데, 이는 단지 과거를 설명한다는 의미에서 만이 아니라, 미래에 대해 대담하게 예견하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 대담하게 실천적 행동을 한다는 의미에서다. • 민족은 사회적 발전의 부르주아 시대의 불가피한 산물이며 불가피한 형태다. • 노동자계급은 “자기 자신을 민족으로 구성”하지 않고는, “민족적”(“그 말의 부르주아적 의미는 아니라 하더라도”)이지 않고서는 강력해질 수도, 성숙해질 수도, 형체를 갖출 수도 없었다. • 그러나 자본주의 발전은 점차 민족적 장벽을 허물고, 민족적 고립을 근절하고, 민족적 적대 대신에 계급적 적대를 그 자리에 앉혀놓는다. • 그러므로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는 말과, 노동자들의 단결 행동-적어도 문명국들의-이 “프롤레타리아트의 해방을 위한 우선적 조건의 하나”라는 말은 발달한 자본주의 나라들에서는 완전한 진리다.(공산당 선언) • 조직된 강제인 이 국가는 사회의 일정 발전단계에서, 사회가 화해할 수 없는 계급들로 분열되어 있으며, 외형상 사회 위에 있고 어느 정도까지는 사회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권력’ 없이는 사회가 존립할 수 없게 된 때에 불가피하게 발생했다. • 계급모순으로부터 등장한 국가는 “가장 강력하고 경제적으로 지배적인 계급의 국가가 된다. 그 계급은 국가를 통해 정치적으로도 지배적인 계급이 되며, 그리하여 피억압계급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새로운 수단을 획득한다. 이렇게 하여 고대 국가는 무엇보다도 노예 억압을 위한 귀족의 기관이었다. 근대 대의제 국가가 자본에 의한 임노동 착취의 도구이듯이 말이다.”(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The Orign of the Family, Private Property and Srate≫) • 부르주아 국가의 가장 자유롭고 가장 진보적인 형태인 민주공화국조차도 이 점을 조금도 제거하지 못하며 단지 그것의 형태를 완화시킬 뿐이다.(정부와 증권거래소의 유착, 국가 관료와 언론의 직간접적인 매수 등) ○ 사회주의는 계급의 폐절을, 그럼으로써 국가의 폐절을 가져올 것이다. • 엥겔스는 ≪반뒤링론≫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국가가 자신을 실제로 전 사회의 대표자로서 나타내는 첫 행위—사회의 이름으로 생산수단을 장악하는 행위—는 동시에 국가가 국가로서 행하는 마지막 독자적 행위이다. 국가가 사회관계에 간섭하는 것은 하나의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차례로 불필요하게 되며, 그리고 나서는 자연히 멈춘다, 인간에 대한 통치를 대신하여 사물에 대한 관리와 생산과정에 대한 지도가 그 자리에 들어선다. 국가는 ‘폐지’되는 것이 아니라 고사한다.”
프롤레타리아트 계급투쟁 전술 ○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 전술의 근본 임무를 그의 유물변증법적 세계관의 모든 전제와 엄밀하게 일치시켜 규정하였다. • 한 사회의 모든 계급들 간의 관계의 총체를 객관적으로 고려하는 것만이, 그것을 통해 그 사회가 도달한 객관적 발전단계 및 그 사회와 다른 사회들 간의 관계를 고려하는 것만이, 선진적인 계급의 올바른 전술을 위한 기초로 복무할 수 있다. • 동시에 모든 계급 및 모든 나라는 정태적으로가 아니라 동태적으로, 즉 정지 상태에서가 아니라 운동(그것의 법칙은 각 계급의 경제적 존재조건에 의해 규정된다) 속에서 고찰된다. ○ 운동은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의 관점에서도 고찰되며, 그것도 완만한 변화만을 보는 ‘진화주의자’가 이해하는 바의 속류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변증법적으로 고찰된다. • 마르크스는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이러한 위대한 역사적 발전에서는 20년은 하루”와도 같다. “물론 그 후에는 20년을 하루로 압축한 날들이 올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왕복서한집 3권, 127쪽)
○ 어떠한 발전단계에서도, 어떠한 계기에서도 프롤레타리아 전술은 이렇게 객관적으로 필연적인 인류 역사의 변증법을 고려해, 한편으로는 정치적 정체의 시기, 또는 거북걸음 같은 이른바 ‘평화적인’ 발전의 시기를 선진적인 계급의 계급의식과 힘과 투쟁 능력을 발전시키는 데 활용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활용 작업 전체를 이 계급의 전진의 ‘궁극 목표’ 쪽으로 기울여, “20년을 하루로 압축한” 위대한 날들이 올 때 위대한 임무를 실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이 계급 안에서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죽은 배외주의와 살아있는 사회주의 - 인터내셔널은 어떻게 재건될 수 있는가 ○ 솔직하게 사실들을 밝히자. • 내일이 아니면 모레라도 어떻게든 전쟁은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밝히도록 강요할 것이다. 국제사회주의에 세 개의 조류가 존재한다. 1) 일관되게 기회주의 정책을 추구하고 있는 배외주의자들. 2) 기회주의에 대한 일관된 반대자들로서, 이미 모든 나라에서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내란을 향한 혁명적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입증해 보이고 있는 이들. 3) 어찌할 바를 모르고 동요하는 사람들로서, 현재 기회주의자들의 뒤를 쫓고 있고, 기회주의를 정당화하려는 위선적인 시도-그들이 이른바 과학적으로, ‘마르크스주의적’ 방법을 사용하여 하고 있는 모종의 것-로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가장 큰 해악을 끼치고 있는 이들. • 세 번째 조류에 휩쓸린 사람들 중 일부는 구제될 수 있고 사회주의로 복귀할 수 있지만, 첫 번째 조류와의 가장 단호한 단절과 분립 정책을 통해서만 그렇게 될 수 있다. • 전쟁공채에 대한 찬성 투표, ‘조국 방위’, ‘전시법에 대한 복종’, 합법적 수단만으로 만족할 용의, 내란 거부 등을 정당화하는 자들 모두와 철저히 결별해야 한다. • 이와 같은 정책을 추구하는 사람들만이 실제로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을 건설하고 있는 것이다. 대러시아인의 민족적 긍지에 대하여 ○ 요즘 민족과 조국에 관한 담론과 주장, 선언 등은 정말 많기도 하다! ○ 민족적 긍지의 감정은 우리 대러시아인의 계급적으로 각성한 프롤레타리아에게 낯선 것인가? • 확실히 그렇지는 않다! • 우리는 우리말과 우리나라를 사랑하며, 우리나라의 근로대중(즉 우리나라 인구의 10분의 9)을 민주주의적, 사회주의적 의식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 노예로 태어난 게 죄는 아니다. • 그러나 자유를 위한 지향과 노력을 회피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노예 처지를 정당화하고 찬미하는(예를 들어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를 목 조르기 위한 전쟁을 대러시아인의 ‘조국 옹호’라고 부르는) 노예, 이러한 노예는 분노와 경멸과 혐오의 감정을 일으키는 아첨꾼이고 시녀다. ○ “타민족을 억압하는 민족은 자유로울 수 없다.” • 민족적 긍지의 감정으로 충만한 우리 대러시아인 노동자는 이웃 민족과의 관계를 (위대한 민족에게 참으로 모욕적인 봉건주의적 특권원칙 위에가 아니라) 인간적인 평등 원칙 위에 수립하는 자유 독립의 러시아, 민주주의적 공화주의적인 러시아, 자긍심 있는 러시아를 꼭 원한다. • 우리가 이러한 러시아를 원한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모든 혁명적 수단으로 자기 조국의 군주제와 지주와 자본가, 즉 우리나라의 최악의 적들과 싸우는 것 외의 방식으로는, 20세기에, 그리고 유럽에서(심지어 유럽의 최 동부에서도) ‘조국 옹호’란 가능하지 않다. • 대러시아인은 어느 전쟁에서든 차리즘의 패배(대러시아 주민의 10분의 9에게는 해악이 가장 적은)를 바라는 것 외의 방식으로는 ‘조국 옹호’란 가능하지 않다. • 왜냐하면 차리즘은 이 10분의 9 주민을 경제적, 정치적으로 억압할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타민족을 억압하도록 가르치고, 이 수치스런 짓을 위선적이고 사이비 애국적인 언사로 덮어 감추도록 가르침으로써 그들에게 모욕감과 불명예를 안기고, 그들을 타락시키고 저속화시키기 때문이다. ◎ 레닌, 양효식 옮김, ≪마르크스≫, 아고라, 2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