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보세

한 권의 책은 하나의 사건이다. 한 권의 책에 담긴 지은이, 만든이, 읽는이의 고뇌와 정성을 기억한다.



Title리영희 산문선 ≪희망≫ 임헌영 편2022-11-05 08:15
Writer

리영희 산문선 희망≫ 

 

한 인문주의자의 소망 임헌영 문학평론가

리영희 선생을 보내드리면서 대화의 속편으로 반드시 새로운 작업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굳히게 된 데는 두 가지 연유가 있다.

첫째는 현실비판과 실천적인 역사 인식의 지식인이라는 사회과학적인 관점을 수용하면서 그 바탕을 이룬 리영희의 사상적인 측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민족사적 당면과제를 풀어내는 데 탁월한 분석력으로 언제나 논란의 여지가 없는 모범답안을 작성했던 그 밑바탕에는 풍요로운 인문학적인 소양과 인간중심주의 사상이 깔려 있었음을 강조해야 할 절박성을 느낀다.
선생의 글은 이런 인문학인 사상성 때문에 시사 칼럼의 차원을 넘어 고전적인 영원한 생명력을 담보해내는 셸리의 <사슬 끊는 프로메테우스>를 연상케 한다.
그런데 이 산문선에서는 정세 분석으로 널리 알려진 사회과학적인 논문보다는 오히려 그런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도록 연동해낸 사상적인 바탕을 다룬 인문학적인 글을 엄선했다.
민족분단의 비극, 통일론,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독재체제와 민주주의 투쟁 등등의 사회과학적인 담론과 함께 주시해야 할 주체는 인간 존재론ㆍ역사ㆍ평화ㆍ신앙ㆍ자연ㆍ예술 등 지역과 세대를 초월한 삶의 슬기를 다룬 글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실린 글들은 지난 독재체제 시대에만 유효했던 게 아니라 민주화가 실현되든, 또는 다른 독재체제가 도래하든, 혹은 분단시대든 통일 이후든, 영원한 민족지성사의 고전으로 남을 사상을 담은 예리한 분석력과 번뜩이는 기지와 해학, 예술적인 표현이 넘치는 작품들이다.
이런 글을 통하여 우리는 리영희의 에스프리가 루소나 볼테르, 혹은 디드로가 세계 혁명사에 남겼던 영향력에 뒤지지 않는 감동을 받을 것이다.
아니, 수난의 밀도를 따른다면 아마 그 셋을 다 합해도 감히 리영희 선생이 생애에 겪었던 고초(9회 연행, 5회 기소 혹은 기소 유예, 3회 징역, 언론사 및 대학교수 2회 해직)에 못 미칠 것이다.
민족지성사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아마 단재 신채호 이후 처음 맞는 총체적인 사상가로서의 실천적인 지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선생이 글이 지닌 예술성 혹은 문학적 형상성의 탁월함을 정당하게 평가하고자 함에서다.
사회과학적인 논문 작성의 분석력과 종합력, 그리고 연역과 추리의 전문가로서 리영희 인식에서 예술적인 형상성을 갖춘, 문학적인 감성을 수반하는 서정성의 확보로 공감대를 확대시켜나가는 세련된 기교의 묘사력은 가히 전문 문학인을 압도한다.
그의 칼럼은 정지용의 어휘력과 피천득의 서정성, 법정 스님의 안정감, 고은의 기지에다 진중권의 예리성을 담아내고 있는 듯하다.

따라서 이 산문선에서는 리영희 선생의 사상사적인 면모와 문학적ㆍ예술적인 재기를 읽을 수 있는 명편들을 중심으로 골라 뽑았다.
이 글들은 지난 한 시대 증언으로서의 기능에 국한되지 않고 어느 시대든 유효하며, 특히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절실한 자양분이 되어줄 것이다.
나아가 한국만이 아닌 남북한이나 해외동포는 물론 자유와 평등과 평화와 행복을 소중한 가치로 여기는 세계시민 누구에게나 감동을 줄 것이다.
리영희 선생을 현대사에서 사르트르ㆍ러셀ㆍ촘스키 등과 나란히, 세계의 평화운동 지성들의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게 우리들의 몫일 것이다.

 

D검사와 이 교수의 하루

197712월 어느 날의 환상

무슨 이야기를 쓸까?’
책을 들여다보며 한참 동안 골똘히 생각하다 말고 창밖으로 눈을 돌린 이 교수의 상체가 소파 속에서 가볍게 떨리는 것 같았다. 그의 눈은 슬래브 지붕 위에 멀리 푸른색을 배경으로 떠 있는 구름을 응시하고 있었다. 멋대로 변화하며 푸른 바탕에 흰 무늬를 한가하게 수놓고 있는 구름의 형상이 마치 책상을 가운데 놓고 마주 앉아 있는 두 사람 같이 보였던 것이다. 아마 그 자리 그 순간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 모양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뿌우연 형상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것은 몇 개의 구름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교수의 두 눈 속으로 꽉 차 들어온 구름의 모양은 그의 머릿속에서 책상을 사이에 놓고 마주 앉아 있는 한 사람의 공안검사와 포승에 묶인 몸으로 마주 앉아 있는 반공법 피의자로 굳어져 있었다. 그는 10년 전인 197712월 어느 날의 환상에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포승에 묶인 반공법피의자

검사의 위엄 있는 커다란 책상 위 정면에는 군대의 지휘관들이 겉모양을 돋우기 위해서 애용하는 것과 같은 흑단으로 만든 명패가 놓여 있다. 두 자는 족히 되어 보이는 기다란 명패에는 금박으로 검사 D〇〇라고 씌어 있다.
말없이 마주 보고만 있는 두 사람의 얼굴은 긴장되어 있다. 분위기로 미루어 여태까지 무엇인지 격론을 벌이다 말고 잠깐 서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순간 같았다. 방안은 스팀의 효과로 훈훈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공기는 냉냉하다.

천공을 날아가는 프로메테우스

반공법
그 글자는 이 교수에게 1977년의 현실을 생각하게 했다. 폭정과 탄압이 온갖 요사스러운 이론과 궤변을 동원하여 모든 진실과 순정을 짓누르고 있었다. 이 교수는 자기 힘으로 시대를 변혁할 수 있다고 믿을 만큼 과대망상에 빠진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의 지식으로 조그마한 십자가를 져야겠다는 신념에 도달했던 것이다.

나는 유신체제를 찬성할 수 없습니다

D검사는 두 눈을 가늘게 하고 피의자를 바라본다. 유신체제와 긴급조치를 찬성하고 학생들의 의식화를 바로잡는글을 써달라고 요구했다. 육법전서의 지식이 미치는 온갖 이론을 동원하여 군사독재체제의 정당성을 역설하기 시작했다. 그의 열변은 한참 동안 계속되었다. 그의 여러 가지 설명과 갖가지 암시로 미루어 이 사건의 동기와 목적이 여태까지 추궁해온 책의 내용보다는 피의자의 유신반대와 반정부적인 언동을 금지시키는 데 있음이 분명해진다. D검사는 몇 번이고 같은 말을 같은 이론으로 되풀이한다. 그의 요청에 공개적으로 응하기만 하면 사건이 백지화되리라는 것도 분명하다. 검사가 책임진다고 하지 않는가.
듣고 있는 이 교수의 심경에 잔파도가 일고 있다. ‘반공법이 떼어진다? 그 혹독한 반공법의 멍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럽시다라고 한마디 하는 순간에 몸과 팔과 손목에 친친 감겨 있는 더럽고 단단한 밧줄이 스르르 풀려버리는 것이다.
집을 나올 때 중태로 병상에 누워 있는 어머니께 잠깐 어디 다녀올게요라고 말했던 것이 떠오른다. 이미 말을 못 하시게 된 어머니는 입술만 떠는 듯 움직였고 눈으로만 어딜 가니 얘야. 곧 돌아오니?”라고 물었다. 그때 이 교수는 잠깐이에요라고 말했던 것이다. 정말 잠깐인 것으로 생각했다.
영문도 모르고 부엌에서 뛰어나와 겁에 질린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던 아내의 얼굴도 떠오른다. 아내는 빨리 검사가 하라는 대로 하겠다고 말하세요라고 숨가쁘게 간청하고 있다. 그 뒤로 자식들의 얼굴이 세 번 차례로 지나간다. 그들은 어머니의 말을 반복한다. 푸른 하늘과 태양이 눈부시게 비추고, 햇볕을 받으며 책가방을 들고 발걸음도 가볍게 학교의 문을 들어가는 교수의 뒷모습이 보인다.
이때 이 교수의 얼굴을 살핀 사람이 있었다면 그가 생사의 결단을 내리기 위해서 간장을 쥐어짜는 아픔을 겪고 있음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 계속되지 않았다. 그의 표정은 곧 부드러워진다. 결심을 한 것이 분명하다. 그의 입에서 조용하게 말이 새어 나온다.
검사님 말의 뜻을 잘 알았습니다. 대답을 하지요.”
검사의 얼굴에 일순간 긴장의 빛이 지나간다. 그의 눈은 피의자의 입을 지켜본다.
나는 유신체제를 찬성할 수 없습니다. 현 정권을 지지할 수도 없습니다.”

육법전서에 갇힌 좁은 학문

이 나라의 2,123개 면 가운데 의사가 없는 면이 어째서 절반이 넘는 1,200개나 되느냐는 사회제도와 현실 문제의 본질을 그들이 납득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세계에서 가장 빈곤하다는 중국 상해(上海)의 병원 병상수가 세계에서 제일 부유한 미국 뉴욕시의 병상수보다 더 많다는 사실을 그들은 처음에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 부장이, 그것은 미국경제학회 회장 갤브레이스 박사의 현지 탐방 후에 나온 글에서 비교한 자료에 의한 것임을 확인시켰을 때 그들은 고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 나라에서 어째서 일제 강점기의 친일파ㆍ민족반역자들이 반공을 빙자한 애국자로 권세와 영달을 누리고 있느냐는 문제에서 그들은 젊은이답게 더욱 괴로워했다. 그 사실과 이 나라의 외세의존적 자세가 무관한 것이 아님을 깨달으면서 그들은 상황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찾아야 했다. 분단된 남북한의 한민족 간에서 전쟁만이 해결책일 수 없다는 상황지식을 얻었을 때, 학교에서 주입되어온 것과 다르다는 사실에 곤혹을 느끼고 고민하기도 했다.
그런데 서울대학교 졸업의 수재들 중에서 딱 한 젊은이만은 그 모든 것을 끝까지 깨닫지 못했다. 다른 동료들과는 달리 그 기자는 번번이 질문했다. 아니 반문이라 함이 옳았다.
부장님. 베트남전쟁은 자유 진영이 공산주의 세력을 무찌르려는 것인데 이런 기사가 나온다는 것은 언어도단이 아닙니까?”
〇〇이라는 그는 흥분해 있었다. 큰 체구에, 둥글고 유달리 흰 얼굴에 눈이 각별히 작아서 더욱 반들거리는 김 군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졸업생이었다. 그의 손에는 방금 텔레프린터에서 뜯어낸 외신 기사가 쥐어져 있었다. 그것은 버트런드 러셀, 아인슈타인, 사르트르…… 등 수많은 세계 석학들이 베트남 사태에 대한 미국의 군사개입을 비난하는 성명의 기사였다.
어느 날 그는 또 외신기사를 찢어 들고 부장의 옆에 와 앉았다. 둥글고 큰 얼굴은 붉게 흥분해 있었다.
이 부장님, 공산주의자 중에서도 현대의 괴수라고 할 모택동을 유럽이나 일본의 지식인들이 폭군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럴 수가 있을까요. 공산주의를 모르는 탓이지요. 큰일이 아닙니까?”
수습기간을 끝내고 정치부ㆍ문화부 또는 사회부ㆍ경제부 등으로 배치될 때까지 그는 수습을 시작했던 당시의 상태에서 발전하지 못했다.

자본론필자가 누구요?”

이 교수는 자기가 연행돼 온 후에 많은 책들이 압수되어온 사실은 경찰관에게 들었지만 다시 대면하기는 처음이다. 마루에 쏟아져 흩어져 있는 책들을 보는 그의 뇌리에는, 10여 년간 가난한 월급생활에서 절약하고 아낀 돈으로 한 권 한 권 사들이던 때의 고통 섞인 기쁨이 되살아난다. “생활은 어떡하려고 또 책을 사들여와요?” 하고 나무라던 아내의 얼굴이 책더미 위에 떠오른다. 아내의 꾸지람을 듣지 않으려고, 대문 밖 기둥 뒤에 포장된 책을 숨겨놓고 태연하게 방으로 들어가서는, 옷 갈아입고 다시 나와 기회를 보아서 서재로 들여다 책장에 꽂던 죄책감 섞인 스릴도 되살아난다.

조 계장이 다음 책을 상관에게 건네준다. 두툼한 세 권의 일본어책이다. 책을 받아든 D검사가 격식대로 묻는다.
이건 뭐요?”
자본론올시다. 일본어판입니다.”
검사는 잠시 머뭇거렸다.
자본론? 무슨 책이오? 필자가 누구지요?”
그때까지 고본고분 사무적으로 간략하게 대답하던 피의자도 멈칫하는 듯하다. 검사의 질문의 뜻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검사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러자 검사가 되묻는다.
필자가 누구냐니까? 내용은 뭐고?”
그제서야 피의자는 의문이 풀린 것 같다. 검사는 정말 자본론을 손에 쥐고 그것이 무슨 책인지, 필자가 누군지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 교수는 어처구니가 없다. 처음에는 검사가 무슨 흉의를 품고 시치미를 떼고 있지나 않은지 의심했다. 무슨 농담을 하려는가도 천착해본다. 그러나 D검사의 얼굴과 눈동자에서 그것이 아님을 역력히 읽을 수 있다. 당황한 것은 오히려 이 교수다. 책의 필자 이름과 책의 성격 내용을 밝혀 대답하면, 모르는 공안검사에 대한 모욕이 될 것이 걱정스러워진다. 그는 어색하고 난처해진다. 그는 더듬는다.
아 아니, 그거야…… . 말할 필요도 없는…….” 그는 …… 없는 일이 아닙니까?”까지 말을 잇는 것이 상대방에게 지나친 욕이 될 것 같아서 말을 맺지 않는다. 그런 마음으로 검사의 눈을 쳐다보고 있는 피의자에게 검사는 재차 독촉한다.
빨리빨리 합시다. 나도 피곤해요.”
이 교수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다시 더듬는다. 어쩔 수 없이 조소의 빛도 약간 섞인 채.
그거야 바이블이 어떤 책이냐고…… 묻는 거나, 훈민정음을 누가 지었느냐고…… 묻는 거나…… 다름이…… 없지 않겠어요?”
D검사는 발칵 화를 낸다.
누가 당신과 농을 하자고 했어? 무슨 그따위 소리가 있어? 빨리 끝냅시다. 나도 피로해요.”
이 교수는 체념한다. 그도 벌써 서대문의 감방이 그리워진 상태다. 빨리 오늘의 수모와 고욕에서 해방되고만 싶다.
책의 내용은, 모든 경제제도, 특히 자본주의의 역사적 형성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것이고…….”
, …… 그리고 필자는?”
검사는 필자의 이름을 재촉했다.
카를 마르크스라는 19세기의 독일인 학자입니다.”
D검사는 마르크스라는 이름에 찔끔 놀란 것이 분명하다. ‘피의자 진술서를 쓰느라고 서류에 떨구고 있던 얼굴을 홱 들어 피의자를 쳐다본다. 그의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말이 새어 나온다.
마르크스…… ≪자본론!…… 마르크스?”
D검사는 벌떡 일어선다. 안면근육들이 격하게 짧게 경련한다. 속에서 일어난 얻던 감정을 억누르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이 피의자의 눈에도 역연하다. 섣달의 짧은 해가 저물어가는지 제〇〇호 검사실의 북창 밖은 어둠이 덮어가고 있다. 이 교수는 물에 젖은 솜처럼 눅신했던 심신이 상쾌해짐을 느낀다.
D검사가 느닷없이 형무관을 향해 소리 지른다. 불그스레하던 그의 얼굴이 창백해 보인다.
이 피의자를 호송해서 돌아가시오!”
그리고는 이 교수에게는 눈길을 돌리지 않은 채 문을 꽝 닫고 황급히 검사실을 나가버린다.
이 교수는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의 얼굴에는 오늘 처음 보는 가벼운 미소가 흐른다.

파시스트는 페어플레이의 대상이 아니다

민족의 꿈과 역행한 40

저무는 이 해의 마지막 달과 함께 우리는 민족분단으로부터 40년의 해를 넘기고, 광복으로부터 43년의 해를 넘기게 된다. 1988년의 해를 넘기면서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면 역사의 반복이 이렇게 정확한 것인가 하는 놀라움에 사로잡히는 심정이다.
우리는 광복 40여 년 동안 마땅히 했어야 할 중대한 결단적 행동을 회피했음이 분명하다.

이제 한 해를 넘기려는 1988년 백일하에 폭로된 모든 반민족ㆍ반국민ㆍ반인간ㆍ반민주적 행적의 인물들은, 그들의 사상ㆍ철학ㆍ인생관ㆍ이데올로기ㆍ행동방식……에서 바로 40여 년 전의 친일파ㆍ민족반역자들의 재현이다. 그리고 그 친일파ㆍ민족반역자들의 직계 후손인 것이다. 사상에서 그렇고 인간적 계보에서 그렇다.
그들은 지난 40년 전, 이 나라의 정치ㆍ행정ㆍ군사ㆍ경찰ㆍ사법ㆍ경제ㆍ사회ㆍ문화ㆍ교육ㆍ종교……의 온갖 분야에서 그 상층을 구성했던 인물들 또는 측근 제2세들이 아닌가?
현재도 그렇다. 이 나라 국민생활ㆍ국가기관에 어느 하나 예외없이 일제 통치를 이은 자들이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장악하고 있다.

무릇 노예상태에서 벗어난 민족(국민)은 신생 국가를 건설하는 마당에서 식민지 통치의 하수인이었거나 방조자였던 인적ㆍ제도적ㆍ사상적 요소들을 말끔히 척결해야 했던 것이다. 그래야만 비로소 국가사회는 과거의 부정적인 역사와 단절할 수 있다. 부정의 부정이다. 부정을 부정해야 긍정을 낳는다. 그것이 민족적 작업일 때 다름아닌 민족 정기가 확립되는 것이다.

지난 7년간(그리고 되풀이하지만 이승만ㆍ박정희 30년간)은 다시 말해서 제1세대와 제2세대 친일파ㆍ민족반역자들의 통치시대였다.

일제하의 친일파ㆍ반민행위자들 대부분은 하늘이 명한 생명공산(生命公算)을 다하고 사라졌다. 하지만 그 직계들은 지금도 우리 국민대중의 머리 위에 군림하고 있다. 역사의 교훈을 지난날에도 못 배웠고 지금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책상 위에서 읽고 있는 책은 히틀러의 충성스러운 파시스트 중 한 사람으로서 나치 정권 최후 단계에서 전쟁 수행 군수생산의 총책임자였던 알베르트 슈페어의 나치-광기의 내막이다. 나치 전쟁 범죄자로서, 연합국에 의해 뉘른베르크 전범재판 결과 유죄판결로 형을 살고 나온 뒤에 저술한 파시스트 생태에 관한 기록이다. 소름이 끼치는 회고담이다.
이 회상록에서 재현되는 파시스트들의 모습을 나는 1988년 한국에서 텔레비전을 통해 생생하게 목격했다. 국회 증언에 불려 나온 전두환 범죄의 브레인임을 자처한 허문도라는 자와 전두환 범죄의 행동적 대리인이었음을 자랑스럽게 자인하는 장세동이라는 자는 서슴지 않고 자기가 나치 파시스트의 선전상 괴벨스를 제일 존경한다고 공언했다(허문도). 박정희라는 권력욕의 화신은 과거에 자기는 히틀러를 존경한다고 공언했다자기가 애독하는 책이 히틀러의 나의 투쟁이라는 사실도 서슴지 않고 고백했다.
보르만은 히틀러의 가장 측근으로서 정치보위군(수도경비사령부 격) 사령관을 맡았던 음모가다. 그는 장미꽃의 아름다움에 미친 사람이었다. 그는 어느 날 아침 사랑하는 장미꽃에 입 맞추고 나간 수용소 사령부에서 몇십만 명의 유대인을 가스실에 몰아넣어 학살해버렸다. 장미꽃에 바치는 사랑과 살아 있는 인간에 대한 증오심! 힘러와 보르만의 정신분열증을, 나는 1988년 겨울 텔레비전에서 대한민국 제5공화국 권력의 브레인과 집행자라는 자들에게서 발견하면서 치를 떨었다.
그들은 단 7년 동안에 그 많은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이고, 체포하고, 고문하고, 투옥하고, 전 국민을 사실상 감옥에 처넣었던 것이다.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말이다.

전두환과 그의 도당들은 전체주의를 신봉하는 파시스트들이었다. 나치-광기의 내막의 필자 슈페어는 히틀러와 그의 심복 권력자들이 모인 어느 날의 식탁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식탁에 둘러앉은 그들 가운데 외부 세강을 알고 있는 자는 거의 없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사건(문제)일 수 있었다. 히틀러 자신도 (자기 위주적 관념 외에는) 세상에서 한 가지도 배운 것이 없고, 지식이나 통찰을 얻은 것이 없었다. 그보다 한심한 사실은 그를 둘러싼 당과 군인 실권자들이 교양이라고는 갖춘 것이 거의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제국의 지도층 엘리트를 구성하는 50명 안팎의 전국 및 지방의 지도자들 가운데 정규 대학 교육을 받은 자는 불과 10, 대학에 재직한 일이 있는 자가 몇 명, 나머지는 중고등학교 교육의 소유자였다. 이들 가운데 어떤 뚜렷한 경력과 업적으로 이름을 나타낸 자는 없었다. 거의 한심할 정도로 무식하고 무교양이었다……. 히틀러가 이런 무리를 모아들인 까닭은 바로 히틀러 자신과 근본적으로 같은 정도와 수준의 패거리 속에 있는 것이 제일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었으리라. 그중에서도 이론가라 자처하는 힘러는 게르만 민족신앙, 선민사상, 어설픈 혁명사상 따위를 뒤범벅으로 반죽해서 황당무계한 사이비 종교적 정치신념을 불어대면서 그의 독특하고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보였다.

인류를 파괴하려 했던 히틀러와 그의 일당, 국민을 파괴하려 했던 전두환과 그의 일당들의 유사성은 이 이상 상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내 윤영자와 나

색 바랜 일기장

오늘은 토요일.
학교를 쉬고 아랫목에 누워서, 지나간 한 시기의 험난했던 생존의 기억들을 정리할 셈으로, 그동안 미루어두었던 문서니 기록이니 교신 따위의 해묵은 다발을 끌어내어 들추고 있는데, 누렇게 색이 바랜 아내의 일기장이 나온다.
이 사람이 혼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나는 남의 보지 못할 곳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야릇한 죄의식과 호기심으로 대학 노트의 겉장을 넘긴다. 서투른 글씨지만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1978929
오늘은 여러 달 동안 계속되어온 재판의 항소심 마지막 결심(結審)의 날이다. 나는 한발 한발 조용히 발을 옮기면서 법원으로 갔다.
날씨는 맑고 하늘은 높았으나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방청석에 나온 인사들을 맞았다. 오늘 석방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는 조그마한 희망이 없지 않았다. 어젯밤에는 김치도 담가놓았고, 아침에 집을 나오기 전에 목욕물도 데워놓았다. 하지만 방청 온 분 누구에게도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뜻밖에도 징역 2년이라는 판결을 받는 순간, 나는 분노와 증오심으로 몸이 떨렸다. 걷잡을 수 없이 흐트러진 마음을 억누르면서 친구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실컷 목놓아 울고만 싶었다. 그러나 친구들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엄마의 이런 가련한 모습을 보이기는 싫었다.
앞으로도 1년이 넘는 세월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암담하기만 하다.
저녁에 아이들이 돌아왔다.
아버지 재판 어떻게 되었어요?”
나는 아이들의 물음에 짐짓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2년형을 받았단다. 앞으로 1년 이상 더 기다려야겠다. 너희들은 몸 건강하게 공부 잘하면 그것이 아버지를 생각하는 길이다

나는 하루분의 일기를 읽고 나서 공책을 내려놓고 잠시 눈을 감고 회상에 잠긴다. 19771123일 아침, 느닷없이 찾아든 네 사람의 사복경관에게 끌려가 영문도 모른 채 조사를 받은 결과 8억인과의 대화우상과 이성의 저서가 해외 공산집단을 찬양한 것이 된다는 것이었다. 온갖 항변도 소용없이 한 달 뒤인 1227일에 기소되었고, 바로 기소된 날 새벽 4시에 늙은 어머니는 오랜 숙환 끝에 아들이 어디 갔느냐?”고 채 말을 맺지 못한 채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물론 이 이야기는 2년 후 출옥해서 들었다). 그리고 제1심에서 징역 3년이 언도되었고, 항소심에서 2년의 판결이 난 것이다.
그날 밧줄에 묶여서 공판장을 끌려나가는 나와 눈이 마주친 아내가 말은 못 하고 손만 흔들어 보였던 모습이 한 옛날의 꿈을 회상하듯 아련히 떠오른다.
, 그날 당신은 내가 나오기를 기다려 김치를 담그고 목욕물도 데워놓고 나왔구려.”
나는 일기장을 펴들고 넘긴다.

 

임헌영 편, 희망-리영희 산문선, 한길사, 2011

 

리영희(李泳禧) : 1929년 평북 삭주군 대관면에서 태어났다. 1957년부터 1964년까지 합동통신 외신부 기자, 1964년부터 1971년까지 조선일보와 합동통신 외신부장을 각각 역임했다. 1960년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신문대학원에서 연수했다. 1972년부터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 겸 중국문제연구소(이후 중소문제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 박정희 정권에 의해 1976년 해직되어 19803월 복직되었으나, 그해 여름 전두환 정권에 의해 다시 해직되었다가 1984년 가을에 다시 복직되었다. 1985년 일본 동경대학 초청으로 사회과학연구소에서 그리고 서독 하이델베르크 소재 독일 연방교회 사회과학연구소에서 각기 한 학기씩 공동연구에 종사했다. 1987년 미국 버클리대학의 아시아학과 정식부교수로 초빙되어 ‘Peace and Conflict’ 특별강좌를 맡아 강의했다. 1995년 한양대학교 교수직에서 정년퇴임한 후 1999년까지 동 대학 언론정보대학원 대우교수를 역임했다. 2010125일 지병의 악화로 타계했다.
저서에 전환시대의 논리(1974), 우상과 이성(1977), 분단을 넘어서(1984), 80년대의 국제정세와 한반도(1984), 베트남전쟁(1985), 역설의 변증(1987), 역정(1988), 自由人, 자유인(1990), 인간만사 새옹지마(1991), 새는 좌ㆍ우의 날개로 난다(1994), 스핑크스의 코(1998), 반세기의 신화(1999), 대화(2005) 및 일본어로 번역된 평론집 分斷民族苦惱(1985), 朝鮮半島ミレニアム(2000)이 있다. 편역ㆍ주해서로는 8억인과의 대화(1977), 중국백서(1982), 10억인의 나라(1983)가 있다. 위의 주요 저서와 발표되지 않은 새 글을 모아 리영희 저작집(12, 2006)을 펴냈다.

임헌영(任軒永) : 1941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중앙대 국어국문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66현대문학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했다. 1972년부터 1974년까지 중앙대학교 등에서 강의했으며, 1974년 긴급조치 시기에 문학인 사건으로 투옥되었다. 월간독서≫ ≪한길문학≫ ≪한국문학평론등 여러 문예지의 편집주간으로 일했으며, 1979년부터 1983년까지 남민전사건으로 복역했다. 1998년 복권되어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2005년에는 리영희 선생과 대담을 나눈 대화를 펴냈으며, 이밖에 한국현대문학사상사20여 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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