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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은 하나의 사건이다. 한 권의 책에 담긴 지은이, 만든이, 읽는이의 고뇌와 정성을 기억한다.



Title≪매월당 김시습≫ 이문구 장편소설2022-10-26 07:06
Writer

매월당 김시습≫ 

 

이 가슴 씻으리니 어디가 그곳인가

오늘도 걸었다.
오늘도 어지간히 걸었다.
오늘도 걷는 것이 일이었다.
그러나 고단하였다.
어느덧 삼십 년을 걸어서 이제 쉰 고개에 이르렀지만 그렇게 일삼아서 걷다보면 언제나 고단하였다.

걷는 동안은 늘 즐거웠다. 마음이 가볍고 머리가 맑고 몸이 가뿐하였다.

문득 귓결에 스치는 소리가 있었다.

세조가 위에 오르던 날부터 그 나름으로 세상을 비판하거나 인간을 혐오하거나 하여 있던 벼슬까지 다 신은 짚세기짝 버리듯이 팽개치고 산수간에 몸을 숨긴 절의지사들이 허다한 터이지만, 경력을 쌓기에 겨를이 없는 훈구대신들과, 뛰는 재주 넘는 재주를 다하여 줄을 잡고 더운 비지나 식은 지게미를 나눠 가려고 파루(罷漏) 칠 때부터 인정(人定) 칠 때까지, 가랑이에 가래톳이 서도록 부산한 대소 벼슬아치들을 못 먹어 하면서 이를 갈아온 것으로 치면 강호에 매월당과 겨룰 만한 사람도 드물 터이었다.

가슴을 씻지는 못하더라도 그나마 가슴을 어루만져주고 다독거려주는 것은, 그것은 성()도 아니고 들도 아니고 산이었다. 또 집도 아니고 절도 아니고 길이었다. 울음도 아니고 웃음도 아니고 광기였고, 욕도 아니고 잠도 아니고, 책이었고, 물도 아니고 차도 아니고 술이었고, 병도 아니고 꿈도 아니고 글이었다. 

산새는 정을 다해 울어주는데

생각하면 기막힌 일이었다.
공신이 죽이고 남은 선후배나 동료들의 유족을 상으로 받아서 재산의 물목(物目)을 보태는 것, 그리하여 그 유족들을 놓고 얼마는 골라서 첩으로 삼고, 얼마는 골라서 종으로 부리고, 그러고도 모자라서 서로 에누리를 해가면서 사고, 서로 웃돈을 얹어가면서 팔고, 때로는 서로 바꾸고, 더러는 마음대로 죽이고 하는 짓들이, 일찍이 나라의 기틀을 삼고 식자들 또한 생명으로 받들어온바, 그 유학(儒學)이 말하는 그 도덕과는 과연 어떤 관계라고 할 것인가. 사덕(四德)과 오상(五常) 가운데 어짊은 어디까지가 어짊이며, 의로움은 어디까지가 의로움이며, 예의는 어디까지가 예의이며, 신의는 어디까지가 신의라고 할 것인가.

시를 썼다.
산에서는 시가 한번 솟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어서 그때그때 가랑잎에라도 써내렸고, 또 그렇게 가랑잎에 써내린 시는 쓰는 족족 흐르는 물에 던지거나 달리는 바람결에 띄워 보내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되풀이해온 터였다.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매월당 자신의 회포가 아니라 칡을 캐어간 그 이름 모를 유민의 목소리인 까닭이었다.

작년엔 봄 가물에 늦장마에
사태마저 덮쳐
채소밭은 자갈밭이 되어버리고
물풀이며 질경이만 우거졌었네
여편네와 어린것들 배고프다 칭얼대고
보는 사람마다 안 됐다고 한마디씩
쌓인 빚 밀린 땅세 밤낮없이 독촉하니
백정의 부역 피할 길이 없었네
부역은 엉클어진 실타래 같아
오너라 가거라 정신없이 닦달하고
도토리며 시래기까지 흉년이라
해마다 기근 들어 살 수가 없네
지어 먹던 밭뙈기
힘 있는 놈에게 빼앗기고
농사에 부리던 아이
작년에 군대 가고
어린 것들은 옆에서 보채쌌지만
들어도 못 들은 척하는 수밖에

 

매월당은 밤길을 갔다. 딱따구리는 나무를 두들기지 않았다. 그 대신에 부엉이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동짓달 밤에 우는 새는 정을 다해 울어주지 않았다. 동짓달 밤에 우는 새는 외로운 나그네의 벗이 되어주지 않았다. 밤길은 더디었다. 갯바람이 드세어져 사정없이 앞을 할퀴어서만도 아니었다. 노새가 자주 걸음을 멈추는 것이었다. 노새는 두려움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갈기털 밑으로 반짝이는 것이 보이고 있었다. 겁이 나서 흘리는 목덜미의 식은땀이었고, 그 땀방울에 달빛이 어리는 것이었다.
매월당은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겁이 많은 노새를 위안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휘파람을 불다가 목이 마르면 술병을 뽑아서 기울였다.  

봄이 가고 봄이 오니 그 주인은 누구

매월당은 태어나기를 사대 독자로 태어난 탓인지 몰라도 그 영발함에 못지않게 어린 데가 있었다. 따라서 어머니의 사별과 더불어 모성애의 결핍을 병적으로 느꼈다. 어머니를 대신했던 외숙모의 뒷바라지는 실로 모성애에 버금가는 것이었으나, 일년 남짓한 사이 외숙모의 타계와 계모에 대한 거리감은 이중 삼중의 시련일 뿐이었다. 그 무렵 외로움이 얼마나 사무쳤으면 어렸을 적 젖어미였던 개화(開花)의 품을 다 그리워했을 것인가.

누구던가.
매월당은 그윽하게 들여다보았으나 낯이 설기는 아까보다 조금도 덜할 것이 없었다. 매월당은 또 물었다.
네 뉘더냐. 네가 진정 오세더란 말이냐
이번에도 역시 물음이 곧 대답이었다.
하면 네 어이타가 몰골은 이 지경에 이르렀더란 말이냐.
매월당은 소매 속에 공수를 하고 눈을 감으면서, 이전에 스스로 객이어라(有客)’ 하고 제영했던 자신의 몰골을 되짚어보았다.

객이었구나 오랑캐 귀신 같은
중얼거려봤자 못 알아들을 말들
이십 년 동안이나
남북으로 떠돌았는데
손에 염주는 돌리고 있지만
머리에는 쇠털 모자로구나
어찌타 본업을 내던지고
어렵사리 그 먼 길 달려왔더냐

 

저 달은 누가 나누어 옹달샘에 던졌나

소쩍새 울음소리는 가까이에서 울어도 아득하게 들리고, 아득한 데서 울어도 가까이로 들린다. 들려도 가슴으로 들렸다. 가슴으로 들려 심장이 메아리치고, 심장에 메아리치면 간에 메아리치고 간에 메아리치면 연하여 쓸개에 메아리치고, 허파에 메아리치고, 창자에 메아리치고, 그렇게 오장육부에 메아리치고 남은 여운은 다시 핏줄에 들어가 흐르면서, 피를 덥게 하고 핏줄을 떨리게 하는 것이었다.

달은 져가는데 소쩍새 우는 소리
한 시절 그리워서 다락에 올랐더니
네 울음소리 차마 못 듣겠네
너만 아니면 견딤직도 하건마는
괴로운 이들이여 이르노니
춘삼월의 자규루엔 오르지 마소

 

상왕을 영월에 가두고 난 대궐(수양대군, 세조)은 벌써 십육 년 전에 명부로 돌아간 현덕왕후의 영혼과 겨루는 데에 왕권을 썼다. 먼저 종묘에 모신 위폐를 들어내어 짓밟게 했다. 다음은 안산군(安山郡)에 모신 능을 파헤치게 하였다. 재궁(梓宮)에 칼을 대지는 않았으나, 군졸들이 석실을 깨고 끌어내어 사흘 동안이나 낮에는 파리떼가 모이게 하고, 밤에는 이슬이 내리는 대로 젖게 하였으니, 매죽헌(梅竹軒, 성삼문)이 말한 나리의 참혹한 형벌은 이승을 가득 채우고 넘쳐 저승에까지 미치는 바를 천하에 본보인 셈이었다.

종친 쪽에서는 일쑤 양녕대군이 앞장을 섰다. 그쪽에서는 그가 맨 손위이자 연장이어서 어른값과 나잇값을 하느라고 그러는 모양이었다. 양녕대군은 효령()ㆍ임영()ㆍ영웅()ㆍ경녕()ㆍ함녕()ㆍ익녕()ㆍ계양()ㆍ의창()ㆍ밀성()ㆍ익현()ㆍ영해()ㆍ계림군(흥상) 등의 종친과 안맹담ㆍ박종우ㆍ윤사로ㆍ윤암ㆍ권공ㆍ송현정(松峴正) 견신(堅信) 등 척당을 거느리고 들어가서 듣기 좋은 소리로 골라서 늘어놓았다.
전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엊그제도 노산과 유의 죄를 청한 바 있사온데, 지금에 이르도록 윤허를 입지 못했사오니 저희 종친들은 밥을 먹어도 무엇을 먹는지 맛을 모르옵고, 잠을 자도 자는지 마는지 하고 깊이 들지 않사오니, 저희들을 어여삐 여기사 속히 처치하도록 하소서.”
과인도 모르는 일이 아니나, 요사이 사무가 번다하여 미처 상량(商量, 헤아려서 생각함)할 겨를이 없었소. 내 장차 상량하리다.”
대궐은 미소를 띤 낯으로 대답하였다. 고마워하는 속을 비친 것이었다.

충이란 또 어떤 것인가.
충신은 어려운 시대를 맞으면 오직 살신성인으로 대처하고 의로움을 실천하는 것으로써 맡은 바 책임을 삼을 따름인 것이다. 시경그대여 목숨을 내놓아도 변함이 없구나(彼其之子 舍命不渝)’ 하고, 겨울이 되어야 굳센 풀을 알게 되고, 세상이 어지러워야 충신을 알아본다(歲寒知勁草 亂世識忠臣)’고 한 것이 그 요체인 것이다. 어떤 이는 충()이란 글자를 몸과 마음을 극진히 함으로 풀이한 바 있거니와, 몸과 마음을 극진히 한다는 것은 삶과 죽음, 위태함과 어려움에도 신하의 도리를 극진히 하여 힘을 다하고 몸을 다할 따름인 것이지, 반드시 용기로써 참고 죽음에 나아가거나, 구차스럽게 피하기만 할 것도 아닌 것이며, 다만 그때그때의 형세를 보아서 운신을 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매월당은 걷고 걸었다. 옛 친구에게 잡히거나 풍광에 반하여 부득이 걸음을 늦춘 다음에는 반드시 밤길을 걸어서라도 늦은 것을 채웠다.
밤길은 흔히 달과 동행이었다.
달은 늘 둘이었다. 하늘에는 떠오른 달이 있고 물에는 떨어진 달이 떠 있었다.
하늘에는 두 해가 없는데, 달은 누가 나누었기에 밤마다 두 달이 뜨더란 말인가.
밤길을 울어 가는 것은 기러기만이 아니었다.
기러기는 떠오른 달을 보며 울고, 사람은 떨어진 달을 보며 울었던 것이다.

 

혼이여, 돌아가자

일이 난 것은 지난 초이튿날이라고 하였다. 김질이 제 장인인 정창손에게 고자질을 한 것이 시작이었다. 정창손은 그 자리에서 김질을 데리고 사정전(思政殿)에 나아가 고변을 하고, 대궐(세조)은 즉시 승지들을 불러들이고, 매죽헌을 선두로 도승지 박원형, 우부승지 조석문, 동부승지 윤자운이 들어오니 내금위 당상 조방림(趙邦霖)으로 매죽헌을 끌어내게 하여 물었으며, 매죽헌은 먼저 김질과 대질을 청하여 김질의 입으로 물거품이 된 것을 알자 어자피 죽음을 함께할 수밖에 없는 취금헌(박팽년)ㆍ백옥현(이개)ㆍ단계)하위지)ㆍ낭간(유성원)ㆍ벽랑(유응부)ㆍ별운검(박쟁)을 대기에 이르렀다.

대궐의 고문은 삼경이 지나도록 그치지 않았다.

악형은 밤낮 사흘 동안이나 쉬지 않더니, 초닷샛날 아침에는 의금부의 윤암과 김명중(金明重)대명률의 모반 대역조와 모반조에 모반과 대역은 수범과 종범을 가릴 것 없이 공모자는 모두 능지처사할 것, 그 아버지와 아들 가운데 열여섯 살이 넘은 이는 모두 몰 졸라 죽이며, 아들 가운데 열여섯 살이 안 된 이와 그 어머니ㆍ딸ㆍ아내ㆍ첩ㆍ할아버지ㆍ손자ㆍ자매, 그리고 아들의 아내와 딸은 모두 공신의 집에 주어서 종으로 삼게 할 것, 재산은 있는 대로 몰수할 것, 여든 살이 넘은 노인과 앓아서 곧 죽게 된 이와 여자로서 예순이 넘은 노파와 앓아서 사람 구실을 못 하게 된 이는 연좌제를 면제할 것, 또 백부 숙부와 형제의 아들들은 삼천리 밖으로 귀양보내어 안치시킬 것, 연좌된 이로서 동거하지 않은 이의 재산은 그대로 둘 것, 딸 가운데 이미 혼처가 정해졌거나, 자식이 없는 겨레붙이에 양자로 들어갔거나, 남의 집 딸로서 시집을 오기로 되어 있으나 아직 성례를 하지 않은 이는 덤으로 연좌시키지 말 것을 대궐에게 말하였다.

아아, 그로부터 세월은 또 얼마를 더해왔던가.
세월은 가는 것이 아니었다. 세월은 오는 것이었다. 생각이 가벼워진 것으로써, 그동안 세월을 흘려보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월에 매달려서 온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렇다. 매월당 자신이 오고 와서 이만큼 늙어버린 것이었고, 세월이 스스로 오고 와서 이만큼 낡아버린 것이었다.

건성으로 한세월 보내노라니
중들이 나더러 스승이라 하네
소싯적엔 선비 노릇도 할 만하더니
늘그막엔 묵자가 더 마음에 들어
가을엔 달빛에 술타령이고
봄에는 봄바람에 시 타령인데
쓸 만한 사람 부를 수 없으니
누가 있어야 흥이 나지

부들이 자라는 못에 봄이 오니
떠도는 미물에게 배우는구나
처마 끝이 짧은 게 다행이라
다사로운 볕도 서로 좋은데
시냇가에 나가 매화도 찾고
술 한 잔 앞에 놓고 풍월도 하네
그대와 마주 앉아 얘기 나누면
난 또 어느새 내 멋대로라

매월당은 해가 두 장대나 오른 뒤에야 지팡이를 집어들 수가 있었다.
뜰에 나와서 하늘을 쳐다보니 우주의 모든 것이 다 저러려니 싶을 정도로 맑게 개어 있었다. 그러나 뜰아래를 굽어보니 그 두께가 몇 길인지 알 수 없는 흰 구름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작가의 말

내가 매월당에 대해서 언젠가는 한번 써보리라는 생각을 그저 생각만으로 그치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무량사에 다녀올 일이 있어서 혼자 갔다가, 매월당이 몸을 마친 곳이며 자화상이 봉안되어 있는 절이라는 생각을 하고, 이왕 왔으니 온 김에참배나 하고 가기로 하였다.
어떤 사람더러 화상을 모신 곳을 물으니 아무것도 안 보이는 산기슭을 가리키며 거기 어디에 있는 산신각이라고 일러주었다. 산신각은 나무 같지 않은 나무와 억새가 자유롭게 우거진 억새밭을 한참이나 더듬은 끝에 기중 후미지고 안침한 곳에 외따로 있었다.
나는 후생의 문학도 된 태도로, 선생의 독자 된 태도로, 공손히 문을 열었다. 신단의 중앙에 산신상이 있고, 그 왼쪽에 책에서 보아 눈에 익은 선생의 자화상 복제본이 모시어 있었다. 벼르다가 날을 잡아서 일삼아 찾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감개가 없을 수 없었다. 나는 우선 선생이 산신과 나란히 앉아서 중생들에게 산신과 동격의 예를 받고 있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선생께서 이 소설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느낌은 다 쓰고 난 지금도 변함이 없다. 재주도 능력도 없는 자가 분수도 모르고 시도한 것을 마땅치 않게 여기시는 것 같다. 그러나 앞으로 선생을 알고 싶어하고 선생을 소설화하고 싶러할 사람이 적지 않으리라는 생각으로써 스스로 위안을 삼고자 한다.

 

이문구, 매월당 김시습, 창비, 2013

 

이문구 : 1941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났다. 6·25 전쟁으로 아버지와 형들을 잃고, 이어 어머니가 사망해 15세 때 가장이 되었다. 1961년도에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해 김동리 소설가, 서정주 시인, 등에게 수학하였다. 단편 소설 다갈라 불망비(1963)백결(1966)이 김동리 소설가에 의해 현대문학에 추천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우리말의 참맛을 알게 하는 어휘와 문장으로 자신이 경험한 농촌의 현실과 농민의 문제를 그려내어 농민 소설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또한 계간 실천문학을 창간하고,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기여하였다. 대표 저서로는 장편소설 장한몽, 연작 소설 관촌수필, 우리동네, 유자소전, 소설집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등이 있으며, 산문집 지금은 꽃이 아니어도 좋아라, 까치둥지가 보이는 동네등이 있다. 1974~198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간사와 이어 1989년까지 <실천문학> 대표로 일하며 민주화 운동에 사생활을 접어두다시피 함. 2000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이 되나 이듬해 발병으로 중도하차하고 2003225일 타계. 문학동네 촌장으로서의 문단 통합적 활동과 민주화운동, 그리고 문학적 성가를 모두 인정해 문인협회, 작가회의, 펜클럽 등 문단 3단체가 문단사상 초유로 합동 장례식을 올렸으며 정부에서도 은관문화훈장을 수여함.

김시습 :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ㆍ청한자(淸寒子)ㆍ동봉(東峰)ㆍ벽산청은(碧山淸隱)ㆍ췌세옹(贅世翁), 법호는 설잠(雪岑). 서울 출생. 생육신의 한 사람.
조선전기 매월당집금오신화만복사저포기등을 저술한 학자이자 문인이다. 1435(세종 17)에 태어나 1493(성종 24)에 사망했다. 5세 신동이라 불릴 정도로 어릴 때부터 글재주가 뛰어났다. 21세 때 수양대군의 왕위찬탈 소식을 듣고 3일간 통곡하다 보던 책을 불사른 뒤 승려가 되었다. 생육신으로서 단종에 대한 절개를 끝까지 지키며 유랑인의 삶을 살다 충남 부여의 무량사에서 생을 마쳤다. 그는 근본사상은 유교에 두고 불교적 사색을 병행했으며, 선가의 교리까지 포괄하려고 시도하는 등 다채로운 면모를 보였다.
그의 시 가운데서 역대 시선집에 뽑히고 있는 것은 20여 수에 이른다. 그의 뛰어난 대표작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산행즉사(山行卽事)>(7)<위천어조도(渭川漁釣圖)>(7)<도중(途中)>(5)<등루(登樓)>(5)<소양정(昭陽亭)>(5)<하처추심호(何處秋深好)>(5)<고목(古木)>(7)<사청사우(乍晴乍雨)>(7)<독목교(獨木橋)>(7)<무제(無題)>(7)<유객(有客)>(5) 등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서도 <도중><등루><독목교><유객> 등은 모두 관동일록에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그가 마지막으로 관동지방으로 떠났을 때의 작품이며, 대체로 만년의 작품 가운데에서 수작(秀作)이 많다. 금오신화는 현재까지 알려져 있는 것으로는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5편이 전부이며, 이것들은 김시습의 사상을 검증하는 호재(好材)로 제공되어왔다. 그러나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를 제외한 그 밖의 것들은 모두 감미로운 시적 분위기로 엮어진 괴기담(怪奇譚)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김시습(金時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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