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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은 하나의 사건이다. 한 권의 책에 담긴 지은이, 만든이, 읽는이의 고뇌와 정성을 기억한다.



Title‘동정호의 가을 달洞庭秋月’ 외 ≪낚시를 읊은 우리 옛 시≫-漁情古韻- 이하상 엮음2022-10-08 09:00
Writer

-漁情古韻-낚시를 읊은 우리 옛 시

 

머리말

어린 시절부터 낚시를 좋아했고, 당시를 즐겨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낚시를 읊은 한시[釣詩]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우리 옛 분들이 쓴 좋은 낚시는 어떤 것이 있고, 어떤 내용을 읊었을까?
옛 분들은 낚시를 어떻게 보았고, 어떤 방법으로 낚시를 했을까?
이러한 관심이 쌓여서 2008년에는 한시와 낚시라는 옛 낚시 시 모음집을 발간했었지만 부족한 점이 너무나 많았다.

10여 년이 지나서 낚시 시 초고를 다시 살펴보았다.
낚시를 읊은 우리 한시는 낚시의 멋과 즐거움, 그리고 고기잡이의 애환을 그린 시도 많았지만, 은거ㆍ은일을 상징하는 어부사 계열의 시도 있고, 불교ㆍ도교를 상징하는 선시(禪詩)도 있었다.

이 책에 담은 낚시 시는 낚시라는 행위를 그린 서정적인 시에 중점을 두어 선정되었고, 낚시터의 물 냄새와 고기잡이의 비린내가 풍기는 시를 우선하였다.
260수의 우리 조시를 추리고 새겼지만, 시 선택에 있어 학술적인 기준이 있었기보다는 역자의 주관적인 취향이 우선되었음을 밝혀 둔다.

 

동정호의 가을 달 (宋迪八景圖 洞庭秋月) 이인로(李仁老)

구름 위로 넘실넘실 떠오르는 둥근달,
서리 내려 질펀하게 출렁이는 푸른 물결.
밤 깊도록 바람 이슬을 맞는 어려움을 알고 싶은데,
배에 의지한 어부는 낚싯대를 들고 있네.

雲端瀲瀲黃金餠, 운단렴렴황금병
霜後溶溶碧玉濤. 상후용용벽옥도
欲識夜深風露重, 욕식야심풍로중
倚船漁父一肩高. 의선어부일견고

이 시는 잘 알려진 낚시 시로 의선어부일견고(倚船漁父一肩高)’ 구절은 이현보의 <어부장가>를 비롯한 여러 시에서 인용되고 있다. 흔히 배에 기댄 어부의 한쪽 어깨 높구나.로 새겨진다. 이에 일견고(一肩高)’어부(漁夫)’의 대명사로 쓰인다.
그렇다면 높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규보의 <江村路中> 시에 한 어깨에 쟁기 메고 산전 갈기 힘쓰네(一肩高耒勉耕山)’란 구절이 있다. 이 경우 한 어깨가 높은 것은 농기구를 메었기 때문이다.
동정추월(洞庭秋月) 이 시에서 일견고는 어부가 낚싯대를 어깨에 메었거나, 들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시인은 호수에 뜬 달과 낚시 모습을 서정적으로 그렸을 뿐 아니라, 어부가 낚시하며 살면서 겪는 어려움이 어떤가도 생각해 보고 있다.

|주석|

宋迪八景圖(송적팔경도): 송나라 화가 송적(宋迪)이 그린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를 말한다.
金餠(금병): 고대 중국의 둥글넓적한 떡 모양의 금화.

 

어부(漁父) 이규보(李奎報)

낚싯바늘 하나가 쟁기와 호미에 맞먹으니,
풍년은 헤아릴 정도인데 바다에는 물고기가 많다네.
천 마지기 농사도 먹고 살기 어려운데,
어가의 살림에는 언제나 묵은 곡식 있구나.

한평생을 낚시터에 의지하고,
강마을에 해지면 술 취해 부축받고 돌아온다.
술 있음에 안주는 왜 걱정하느냐 말하더니,
여울 아래 고기를 회쳐 가지고 오는구나.

갈대밭에 바람 어지럽고 저무는 강 차가운데,
부슬비에 도롱이 입고 얕은 여울에서 잠잔다.
인생 물결에 시달린 몸 한가한 모습 적어라,
귀인 집 병풍에서 본 그림과 같네.

강호에 방랑하는 한가한 몸 되었으니,
높은 벼슬 부귀한 사람들 오히려 우습네.
너는 세상 사람들 비웃고 사람들 너를 웃으니,
그래서 위수에 주 문왕을 낚은 사람 있었구나.

옛 시문에서 낚시하는 사람은 고기잡이 어부(漁夫)가 아니라 어부(漁父)라 하며, 어보(漁甫)라는 존칭으로 표현된다. 심상한 고기 잡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며, 이때 어부는 어보(漁父)라고 발음된다.

 

낚시터의 눈() 홍간(洪侃)

저물어 가는 강에 산봉우리들 차갑고,
펄펄 눈이 흩날리나 마음은 한가로워.
흰머리 어옹은 푸른 삿갓을 쓰고,
자기가 화폭 중에 있음을 모르고 있네.

 

낚시터에서 늦게까지 낚시를(和季明叔雲錦樓四詠 漁磯晩釣) 이제현(李齊賢)

작은 물고기 잔물결 일으키는데,
한가로이 버들 그림자 사이로 낚싯대를 드리우네.
해 저물어 집에 가려니 옷은 반나마 젖었고,
짙은 안개가 비에 어우러져 앞산은 어둡구나.

 

앞 내에서 낚시하다(嶺家八詠 前溪釣魚) 소세양(蘇世讓)

한 줄기 내가 마을 복판을 지나고,
고기 떼 멋대로 노닐고 있다.
낚싯대에 빗방울 부딪치는 여울머리 가이고,
붉은 여뀌가 강에 가득한 가을이다.
여울이 급해 미끼를 자주 던지지만,
물결이 차서인지 뜨문뜨문 낚인다.
끓이고 회쳐서 흥은 유유한데,
모래사장 갈매기와도 친구가 되었네.

 

물고기를 놓아주며(野池雨潰, 遺吏捕魚, 金鯽皆尺. 見其生, 不忍膾, 放北溪) 임억령(林億齡)

고기잡이가 싯누런 붕어를 보냈는데,
지느러미를 세우고 펄쩍펄쩍 뛰네.
물고기가 비록 말은 못 하지만,
그 모습이 마치 굽고 삶아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
내 마음에 가엾고 슬퍼 보여,
아이놈 시켜 북쪽 내에 놓아 주었다.
그 많은 놈들 중 너는 생명을 구했다만,
내가 힘이 없어 널리 구해 주기는 어렵구나.

시 제목이 길어 <들판의 못이 무너져서 아전을 보내 고기를 잡았는데, 붕어가 모두 자짜리다. 그 살아 있는 것을 보니 차마 회를 칠 수 없어 북쪽 내에 놓아주었>(野池雨潰, 遺吏捕魚, 金鯽皆尺. 見其生, 不忍膾, 放北溪)이다.

 

친구에게(奇李景鎭 名士岳) 이우(李瑀)

남쪽에 있는 친구와 헤어진 지 오래인데,
예전에 같이 놀던 곳 볼 때마다 그리워.
하늘 아래 맑은 내에는 가을 햇빛 이르고,
달수(獺水) 금대(琴臺)에는 달그림자 늦다.
나란히 말 타고 산 찾은 것이 어제 같은데,
나란히 바위 위에 앉을 때는 그 언제일까.
강에 가니 그날이 그립기만 한데,
홀로 이끼 낀 물가에서 낚시줄 놀리네.

시인은 율곡 이이의 동생으로 괴산군수를 지내기도 했다. 시에 나오는 달수(獺水)는 지금의 달천(達川)이고, 금대(琴臺)는 지금의 탄금대(彈琴臺)이다.

 

시로 뜻을 드러내다(作詩見志) 김덕령(金德齡)

거문고 타고 노래하는 것이 영웅의 일이 아니니,
칼춤을 추면서 모름지기 장수의 장막에서 노닐 것이다.
훗날 싸움 끝나 칼을 씻고 돌아온 뒤에,
강호에 낚시질하는 외에 더 무엇을 구하랴.

絃歌不是英雄事, 현가불시영웅사
劒舞要須玉帳遊. 검무요수옥장유
他日洗兵歸去後, 타일세병귀거후
江湖漁釣更何求. 강호어조경하구

 

낚싯배(釣舟) 윤선도(尹善道)

긴 도롱이 짧은 삿갓에 푸른 소를 타고,
옷소매로 안개노을을 떨치고 고요한 마을 나섰다.
저녁 가고 아침 오면 무슨 일을 할까.
푸른 물에 배 띄우고 한가로이 낚시하네.

 

낚시질(釣魚) 조석윤(趙錫胤)

이끼 낀 강가에서 진종일 낚시 드리우다,
겨우 피라미 한 마리 잡고 낚싯줄 거두었네.
마음은 쓰리지만 웃어 버려야지,
대물은 원래 입질이 늦으니까.

 

갈대 여울에서 낚시하다(蘆灘釣魚) 이면하(李冕夏)

물고기 떼가 여울 아래에서 모여서 놀다가,
해가 기우니 물위로 올라와서 먹이를 찾네.
거룻배에 두 사람이 타고,
마음 가는 대로 저어 나간다.
돌을 묶어서 닻으로 삼고,
급류 한가운데 머물렀다.
낚싯대[竿竹] 하나 손에 들고 있으니,
산들바람에 낚싯줄이 하늘거리네.
물고기 꼬이노라 줄을 감았다가 풀었다가,
다른 생각 않고 오로지 낚시에 골몰한다.
갑자기 물리는 게 있어서,
거둬들이려니 은빛 옥 같은 자치로구나.
이리저리 뛰어올라 물결을 일으키니,
너의 생사가 경각에 달렸구나.
참으로 차분하게 삼가지 않으면,
해지도록 헛수고하기 마련이지.
이 낚시가 참으로 재미있고,
낚시 방법이 비길 데 없이 묘하구나.
자주자주 쉬지 않고 손을 놀리면,
가득히 잡으니 만족스러워.
밝은 달 아래에서 돌아오며,
어부가를 주고받는다.
세상 사람들에게 말하노니,
강호의 즐거움을 그 누가 알랴.

이 시는 배 견지낚시를 읊고 있다. 시에서는 낚싯대를 竿竹(간죽)이라고 하였다. 시인이 순우리말인 견지를 간죽이라고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여울 견지낚시의 현장과 상세한 낚시기법을 읊은 보기 드문 시이다.

 

낚시터에서 낚시 드리우고(七灘亭十六景 釣磯垂竿) 이익(李瀷)

물가의 버드나무 푸르게 하늘대고,
물 흐르는 후미진 곳에는 낚싯대 하나 있다.
가리고 가려 얻은 푸르고 낭창한 낚싯대,
한 손에 들고 돌아가는 걸 잊었다.

 

서천(西泉)의 낚시질(贈人郊墅四景 西泉魚釣) 정조(正祖)

가늘고 가는 낚싯대 냇가에 드리우니,
기울어 가는 햇빛이 도롱이에 비친다.
이 늙은이 호량(濠梁)의 객에 부끄럽게도,
잡은 물고기 버들가지에 꿰어 돌아오네.

籊籊釣竿溪上磯, 적적조간계상기
斜陽一面照蓑衣. 사양일면조사의
斯翁少媿濠梁客, 사옹소괴호량객
奈把遊魚貫柳歸. 내파유어관류귀

정조왕은 낚시를 제일 좋아한 분이었다. 정조는 매년 궁궐 못에서 신하들과 함께 꽃을 흔상(欣賞)하고 낚시를 하는 상화조어연(賞花釣魚宴)’이란 낚시모임을 가졌다. 왕과 신하들이 못에 둘러서서 낚시를 하였고, 한 마리를 낚아 올릴 때마다 풍악을 연주하였다. 모임이 끝나고 나서는 다시 못에 놓아 주었다. 이때 낚지 못한 자는 술 마시는 것으로 벌을 받았다고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상화조어연은 궁궐에서 이루어진 초유의 집단 낚시였다. 정조는 낚시로 물고기 몇 마리를 잡았다는 어획 기록을 남겼으며, 행사가 끝난 후 물고기는 모두 못에 풀어 주어 ‘catch and reliese’의 효시이기도 하다.

 

가을 회포(秋懷八首) 정약용(丁若鏞)

석양에 부는 바람에 푸르게 잔물결 일고,
선명한 들국화는 풀숲에 숨어 있다.
귀뚜라미 잡는 애들을 이상타 생각 말게나,
고기 잡는 영감이 시켜서 한 일이라네.

 

낚시의 즐거움(釣魚樂) 심상규(沈象奎)

예전에 강태공이 위수에서 낚시를 하니,
한때는 고기와 새가 풍진을 겪었다지.
그때부터 혹 낚시하는 사람을 보면,
모두들 한가한 사람이 아니냐고 의심했지.
내 지금 낚싯대 지니고 맑은 물 굽어보니,
백발이 물에 비치는 게 외려 부끄럽구나.
고요함 취한다 말하는데 낚시는 무엇을 취하는 걸까,
이 낚시는 바로 고기를 잡기 위함이로세.
잡지만 팔지 않으니 속되지 아니한데,
회 있고 새로 거른 탁주 있으니 어찌 이를 싫다 하랴.
연파지도(煙波之徒)란 말이 오히려 마음에 드나,
미끼 없는 낚시의 뜻 내 배우지 못하였네.
늙은이의 뜻 어디에 있는지 묻지 마시라,
지금 그 뜻이 어부와 나무꾼 사이에 가까이 있구나.
가는 낚싯줄을 때맞추어 당기면 월척이 나오나니,
배를 채우는 그 모습 즐거운 일 아니겠나.
낚시를 하면 고기를 낚지 무엇을 낚는 건가,
천년을 두고 명예를 낚았단 말 듣고 있구나.
낚시 명성은 엄자릉(嚴子陵)이 더 높다는 걸,
동강의 물고기와 새들은 의심치 않는다네.

|주석|

연파지도(煙波之徒) : 연파조도(煙波釣徒). 중국 당나라의 장지화(張志和)는 벼슬을 버리고 배를 집 삼아 살면서 연파조도(煙波釣徒)를 자처하며 낚시하는 생활을 즐겼던 고사가 있다.
엄자릉(嚴子陵) : 중국 한()나라 광무제(光武帝) 때 은자(隱者). 이름은 엄광(嚴光)이다. 엄자릉은 본래 성이 장() 씨인데, 한나라 명제(明帝)의 이름을 피하여 엄()으로 바꾸었다. 엄자릉(嚴子陵)은 어릴 적 후한의 광무제 유수(劉秀) - 유문숙(劉文叔) - 와 함께 뛰어놀며 공부한 사이였다. 광무제가 왕망(王莽)을 제압하고 제위에 오르자 모습을 감추었다. 광무제가 사람을 보내 찾아보게 했더니 양가죽 옷을 입고 못에서 낚시하고 있다(披羊裘 釣澤中)’라고 하였다. 광무제는 세 번이나 사람을 보내 그를 조정으로 불러들였다. 광무제가 그에게 벼슬을 내리자 엄자릉은 벼슬을 받지 않고 부춘산(富春山)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엄자릉이 은둔한 곳을 엄릉산(嚴陵山) 또는 엄릉뢰(嚴陵瀨)라 하며, 낚시하던 곳을 엄릉조대(嚴陵釣臺)라 부르기도 한다. 절강성(浙江省) 동려현(桐廬縣)의 서쪽 부춘산에 엄자릉조대(嚴子陵釣臺)가 있다.

 

이하상 엮음, 낚시를 읊은 우리 옛 시, 도서출판목근통, 2020

 

하상(夏祥) 이두순(李斗淳) : 1944년생.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교토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2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선임연구언으로 퇴직한 후 개인 취향의 글을 쓰고 있다.
농업관련 연구서 외에 호박씨와 적비(2002), 한시와 낚시(2008), 기후에 대한 조선의 도전, 측우기(2012), 수변의 단상(2013), 고전과 설화 속의 우리 물고기(2013), 은어(2014), 농업과 측우기(2015), 평역 난호어명고(2015), 신역 자산어보(2016), 우해이어보와 다른 어보들(2017), 연꽃의 여인, 연희(2017), 문틈으로 본 조선의 농업과 사회상(2018), 초부유고, 늙은 나뭇꾼의 노래(2019), 견지낚시의 역사와 고증(2019)과 같은 책을 썼다.
본명과 이하상이란 필명으로 책을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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