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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은 하나의 사건이다. 한 권의 책에 담긴 지은이, 만든이, 읽는이의 고뇌와 정성을 기억한다.



Title바둑의 3대 고전 ≪현현기경≫ㆍ≪관자보≫ㆍ≪기경중묘≫2022-08-11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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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의 3대 고전 현현기경관자보기경중묘

≪신현현기경(新玄玄碁經) 오청원 해설 백재욱 역

머리말 오청원
• ≪현현기경집(玄玄碁經集)은 중국 송나라 때 안천장(晏天章)의 찬(), 원나라 우집(虞集)이 편()한 바둑계 굴지의 명저이다.
그 내용은 서문(序文), 사론(史論), 위기부(圍碁賦), 기경십삼편(碁經十三篇), 사법십결(四法十訣), 술어(述語) 삼십이자 등에 이어 정석, 대국보, 그리고 진롱 376제를 수록하고 있는데, 특히 진롱의 부가 이름 높다.

진롱(珍瓏)이란 바둑의 기수나 묘수라는 뜻으로 진()은 귀중하다는 것을 나타내며 농()은 옥이 서로 닿아서 나는 소리로, 합쳐서 반상(盤上)의 절묘수라는 것, 바꿔 말해 묘수풀이를 표현하는 말인 것이다.

현현기경집(玄玄碁經集)에 관해서는 일본에서도 오랫동안 연구되고 있었다.
특히 예형(藝兄) 하시모토 우타로(橋本宇太郞) 씨는 전전(戰前)부터 이 진롱에 공을 들여 240여 제를 수정하고 있다.
그러나 원래 현현기경(玄玄碁經)은 원본이라고 생각되는 것도 없어 복사본으로 추리할 수밖에 없지만, 이번 나의 해설은 내각문고 소장의 현현기경집(玄玄碁經集)(원나라 때의 것)을 위주로, 관영본(寬永本)과 보력(寶曆) 3년 간행된 현현기경 이언초(玄玄碁經 俚諺鈔)를 모두 참고했다.

 

현현기경(玄玄碁經) () 우집(虞集)

옛날, 요순(堯舜)이 바둑을 만들어 그의 자식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혹자(이 글에서 혹자는 피일휴皮日休, 833~883-를 가리킨다.)는 그것을 우려하여 생각하기를, 단주(丹朱)와 상균(商均)의 우매함에 대해서 성인은 인의예지(仁義禮智)의 길로써 이것을 교화해야 하거늘, 어찌 심심풀이 놀이 도구로 사람을 기만하고 속이는 기술을 만들어 그 어리석음을 더하게 하려 하는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내심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원래 바둑에는 천지 방원(方圓)의 상징이 있고, 음양의 정()과 동()의 도리(道理)가 감추어져 있으며, 성신(星辰) 집산의 질서가 담겨 있다. 또한 비와 구름의 변화의 기미가 숨어 있고, 춘추(春秋)가 번성하고 쇄락하는 의의가 포함되고, 산하(山河) 기복(起伏)의 형세가 표현되며, 세상사의 흥망, 일신의 성쇠 등 무릇 그 속에 비유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리고 단지 바둑을 잘 두는 사람만이 그 몫을 지키는데 인()으로써 하고, 싸움을 행함에 있어 의()로써 하고, 국면을 정리함에 있어 예()로써 하며, 형세를 하는 데 있어 지()로써 한다. 어찌하여 범백(凡百)의 다른 기예로 이것을 경시할 수 있겠는가?
나는 천력년간(天曆年間, 1328~1329) 규정각에서 상시한림시독(常侍翰林侍讀)을 할 것을 삼가 명령받고 있었는데, 전 황제(원의 문종)는 중요한 정무를 담당한 중에도 다양한 기예를 즐기시니, 중신에게 명하여 바둑의 명수를 좌우에 모셔서 관심을 두고 귀히 여기셨다.어느날 신하 집(, 필자 우집)을 돌아보시며 옛날 경의 집안의 우원(虞愿)은 송의 명제(明帝)에게 말씀 올릴 때 바둑은 군주가 즐겨야 할 것이 아닙니다라고 했다는데, 진실로 그러한가라고 물으셨다. 나는 삼가 사례하며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옛날부터 성인이 기물(器物)을 만드신 데는 그 정묘한 의의(意義)가 신비의 영역에 들어있어 무익한 배움 따위는 없습니다. 때문에 공자(孔子)도 바둑을 가리켜 그것을 하는 편이 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하시고, 맹자(孟子)도 기예로써 바둑을 마음을 전심하여 뜻을 기울이지 않으면 터득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더욱이 국면을 경영하는 배치의 법과 공수를 결정짓는 길은 법과 명령에 있어서 출입(出入)의 결정, 군대의 군사행동의 법칙과 닮아있습니다. 바둑을 습득하는 것이야말로 통치에 있어 유의하여 난()을 잊지 않는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그 말을 깊이 칭송하시어, 신하 집()에게 황제의 바둑돌을 넣는 그릇에 훈계하는 말을 새겨넣도록 하명하셨다.
나는 ‘[둥근 것은] 하늘 전체에 이르고 [네모난 것은] 땅을 그리고, [()] 승리를 획득하며, [()] 덕을 지닌다라는 비유의 말을 기록하였다.
내가 스스로 관직 사임을 간청하여 강남(江南)으로 물러나 임천(臨川) 부근에서 은거하기를 이제 10여 년이 되었지만, 그동안 바둑에 조예가 깊은 선비 가운데 내 집을 방문해서 그러한 옛일을 추억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금년 가을, 노릉(盧陵)에서 온 손님이 말하길, 송의 옛 승상이자 원헌공(元獻公, 안수晏殊, 991~1055)의 자손인 안천장(晏天章) 씨와 동향인 엄덕보(嚴德甫) 씨는 함께 바둑을 잘 두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그들은 대국을 하면서 자신들의 집에서 보관하던 비보(秘譜)를 꺼내, 보고 들은 것들로 본받고 모방하여 깊이 궁리하여 얻은 바, 새로운 견문, 뛰어난 의견, 기모신략(奇謀神略) 중에서 사활로써 한 국면의 승패를 결정하는 것과 아울러, 이것을 그림으로 표시하고 돌의 형상으로 분류하여 각각 다른 이름을 기록, 그 수법의 묘체(妙諦, 뛰어난 진리)를 순서대로 서술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바둑의 비결을 서술하여상세하게 완비해, 실로 바둑의 경전을 대성한 것으로, 오늘날 출판되어 세상에 전하여 현현경(玄玄經)이라고 붙여졌다고 한다.
생각하건대 바둑은 그 이론이 헤아릴 수 없이 깊고 오묘한 것과 통해 있는 점과 노자(老子)의 중묘(衆妙)의 문, 양웅(揚雄)의 대역(大易)의 준()에도 비견할 만한 것으로, 또한 기예로써의 바둑은 그 출몰(出沒) 변화(變化)의 깊이를 헤아릴 수도 없어, 신선이나 호걸, 통환(通幻), 연지(練知)의 선비가 왕왕 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묘체를 말하는 자는 극히 드물어, 다만 한()의 반고(班固, 32~92), 마융(馬融, 79~166)이 자주 시를 읊고, ()의 장설(張說, 667~730), 이비(李泌, 722~789)가 자주 그 이()를 논하고 있어 다른 이들이 미칠 바가 못 되었다. 근래에 기경(碁經)이 그 묘미를 이룬 저서는 극히 적었다.
오늘날 안()ㆍ엄() 두 군자는 자주 제가(諸家)의 것을 회득(會得, 요해)하여 여기에 한 시대의 책을 완성시켰다. 때문에 성인(聖人)이 바둑을 창조한 본래의 뜻을 깊이 구하여 얻은 것이어서, 각양 각색의 기교에 얽매여 있는 것은 아니다. 일찍이 능상산(陵象山) 선생도 바둑을 보고 하도(河圖, 중국 복희씨伏羲氏 때에, 황허강黃河江에서 용마龍馬가 지고 나왔다는 쉰다섯 점으로 된 그림. 동서남북 중앙으로 일정한 수로 나뉘어 배열되어 있으며, 낙서洛書와 함께 주역周易의 기본 이치가 되었다.) 낙서(洛書, 중국 하나라의 우왕禹王이 홍수를 다스릴 때에, 뤄수이강洛水江에서 나온 거북의 등에 씌어 있었다는 마흔다섯 개의 점으로 된 아홉 개의 무늬. 팔괘와 홍범구주가 여기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한다.)는 실로 이 속에 있다고 말씀하시지 아니하였는가! 바둑이 요순(堯舜) 임금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혹자는 또 바둑을 종과 횡의 기술에 지나지 기술에 지나지 않는다지만, 그 도()를 아는 것은 아니다. 즉 음양동정(陰陽動靜), 천지방원(天地方圓)의 묘는 바둑에 의해 깨달을 수 있고, 신비의 성에 들어간 정묘(精妙)한 의의도 바둑을 보는 자들 속에 속한다. 이 책이 세상에 전해지는 것이 도움이 될 터인데, 어찌 사소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지정(至正) 7(1347) 정해(丁亥) 가을 91
소암노인(邵菴老人) 우집(虞集)

우집(虞集, 1272~1348): 원대(元代)를 대표하는 학자. 문인. 강남성 숭인(崇仁)의 사람으로 자()는 백생(伯生), ()는 도원(道園). 이 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문종을 섬기면서 그 학식과 인덕을 인정받아 만사에 문종의 자문을 맡았다고 한다. 원사(元史)18권에 기록이 있다. 그가 만든 방대한 시문은 도원학고록(道園學古錄)에 수록되어 있지만, 이 글은 수록되어 있지 않다.

 

위기부(圍棋賦) 마융(馬融)

위기(圍碁)를 대관(大觀)할 때 용병에 규범으로 삼고, 삼척(三尺)의 바둑(棋局)을 전쟁의 장으로 삼는다. 졸병을 배열하여 양군이 서로 만나지만, 겁을 내는 자는 공격하지 못하고, 탐욕스런 자는 우성 망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스스로 중용의 도가 있으니, 잠시 여기에 그 계략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사도(四道)를 점하고 구석을 확보하고 옆으로 의지한다. 변을 따라 가로막고 지키며, 서로 노린다. 말이 눈처럼 멀리 떨어지고, 갈매기의 행렬처럼 나란히 늘어서며, 높고 낮음의 사이를 열어 배치하고, 중앙으로 진출한다. 지나치고 겹치고 날개를 좌우로 펴서 난다. 길이 좁고 적이 많으면, 멀리 돌아갈 도리도 없고, 바둑돌이 많아도 책략이 없으면 양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으면서 스스로 지키고, 전후로 돌아가고, 분한 마음에 함정을 공격하면, 본진을 공격당한다. 이득을 얻을 수 있으면 싸워야 하고, 살아가고자 한다면 강하게 나간다, 포식하는 것에 안주하면, 울타리는 무너지고, 제방의 틈을 막지 않으면 크게 범람한다. 횡행(橫行)하여 진을 혼란시키면, 적은 놀라고 두려워하며, 기세가 절박해지면, 무거운 짐은 버린다. 호랑이 굴에서 도망간 다음에 이쪽에 함정을 설치하여 가운데로 몰면, 쥐를 자루 속에 넣는 것같이 쉬워진다. 죽은 돌을 살리려고 나가지 않고, 얻을 수 있을 때 얻지 못하면 오히려 뒤에 재안이 된다.
승부의 짜임새는 머릿결처럼 하는 것이어서, 때로는 원만하게 때로는 급하게 한다. 흑백의 혼전은 엉겨 붙은 등나무와 같아서 쓸데없이 교착해서는 서로 피해를 입는다. 견실하게 지키지 않으면 불의의 사태에 직면하게 되고, 깊이 들어가 땅을 탐하면 병졸을 잃는다. 무리하게 구하려 하면, 그 이후에도 패하게 되는 것으로, 결국 상하가 가로막히고 사면이 포위되어 이합집산 끝에 상대에게 지게 된다.
한신(韓信, ?~기원전 196)은 길을 지나가기 어렵게 되자 병사를 이끌고 스스로 사지(死地)에 몸을 던져, 계략에 걸리도록 한다. 앞서서 적을 유인해서는 적의 작은 성에 들어가 군사를 버리고 적에게 그들을 맡기어, ()을 남기고, ()을 인솔하였다.
늘어선 집은 반상에 만연하여 마치 불꽃과 같고, 자라나는 가지의 포진은 좌우로 넘쳐 뻗어간다. 침략을 피하면 적은 떨게 될 것이고, 공격하여 꼼짝 못 하게 하면, 희망을 잃고 스스로 포기한다.
공죄(功罪)를 논하는 것은 때에 따라 행한다. 변수가 생기면 조용히 수습한다. 혹여 곤궁해지면 묘수를 내어야 하고, 깊이 생각하여 근심거리를 경계하면 승리는 필연이 된다.

마융(馬融, 79~166): 후한의 학자. 경학(經學)에 조예가 깊고, 많은 주석을 저술하였다. 정현(鄭弦)은 그의 제자이다.

 

관자보(官子譜) 원저 미상, 역자 박재삼

머리말 박재삼

관자보는 중국 명()나라 때의 국수(國手) 과백령(過白齡)에 의해 수집된 바둑의 맥(정수)의 수백 종을 청()의 강희(康熙) 39(1690) 도식옥(陶式玉)에 의해 편집되고 완성된 것이다.
• ≪현현기경(玄玄碁經)과 더불어 중국의 2대 바둑책이라고 하겠다.
관자보의 특징은 총수1478문제에 이르는 방대한 수량이다.
이 책은 그중에서 보다 실전적인 것, 선명한 맥을 포함한 것을 엄선하여 164문제에 상세한 해설을 붙였다.
본래 관자란 뜻은 부분적인 바둑의 완성을 가리키며, 돌의 사활, 수싸움, 끝내기 등 맥의 집대성을 뜻한다.
최초의 바둑책을 보면 포석ㆍ정석 등의 연구에 치중하고 부분적으로 해결하는 이른바 관자적인 요소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바둑의 실력이란 전체적 감각의 판단과 부분적인 정확한 수읽기의 두 가지에 의해 향상하느 것이며, 맥을 알고 읽기의 근력(筋力)을 양성코자 하면 이런 유의 문제에 도전하는 것도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거의 원본 그대로 배열했고, 그 문제가 사활에 관한 것인지 끝내기의 이익을 꾀하는 것인지 혹은 집안에서 수단을 구하는 것인지는 문제도의 설명 및 힌트란에 명기해 두었다.
한 가지 문제에 소요한 시간, 그 이해 정도가 곧 기력(棋力)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일러두기
1. 이 책은 중국 청나라의 강희 29(1690)에 편찬한 관자보를 저본으로 삼았다.
2. 이 책을 수록함에 있어 작의적인 문제는 제외하고 실전형의 164문제를 정선하여 수록했다.

1장 사활의 맥 60
2장 귀수의 맥 50
3장 귀ㆍ변의 사활 54

 

기경중묘(碁經衆妙) 원저 임원미(林元美), 역자 박재삼

머리말 박재삼

일본은 바둑의 역사가 한국ㆍ중국에 비해 짧지만 근대 바둑에선 바둑의 연구 발전이 앞섰다는데 이론(異論)이 없다.
특히 우리의 바둑은 한말(韓末)에 이르기까지 순장바둑이라고 하여 미리 놓고서 두는 바둑이었기 때문에 이른바 포석이라는 게 없었고 따라서 곧바로 싸움에 들어가는 바둑이었다.
일본의 위기사(圍碁史)를 보면, 바둑을 분석하고 이른바 정석이라는 게 고안된 것은 17세기 이후라고 설명된다.
처음에는 중국 고래의 관자보(官子譜)≫ ≪현현기경(玄玄碁經)과 같은 바둑문제집(묘수풀이집)을 저본으로 하여 연구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바둑이 일본 전국 시대의 전력자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ㆍ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ㆍ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비호 아래 관인(官認) 바둑으로서 발전한다.
158261일 노부나가는 진중(陣中)의 파적(破寂)으로서 당시의 승려 고수 닛가이(日海)와 리겐(利玄)을 혼노지(本能寺)라는 절에 불러 공식 대국을 명했다는 게 근대 바둑의 시초였다.
닛가이(1559년생)는 교토(京都)의 홍잉보(本因坊)라는 작은 절에 거주했고 명인이라는 호칭을 들으면서 쇼군(將軍)이 홍잉보 상사(本因坊 算砂)라는 이름을 내려준 것이다.
이윽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권을 잡으면서 매년 한 번씩 쇼군 앞에서 상례의 어전(御前) 시합(試合)을 하게 된다.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德川幕府, 1603~1868)라는 무인 정권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엄격한 신분 제도가 있었지만, 특별히 이에모토(家元=문중이나 같음)라는 바둑의 명인 네 사람에게 성씨(姓氏)를 주었다.
이에모토는 사족(士族)에 준하는 신분을 보장하고 (사족-사무라이 이외에는 성씨가 없었음) 각각 홍잉보ㆍ이노우에(井上)ㆍ야스이(安井)ㆍ하야시()의 네 집을 관인 바둑 명문으로 지정한 셈이다.
사농공상이라는 계급은 세습제이므로 상기의 네 이에모토 역시 세습하여 제자를 두고 1년에 한 번인 어전시합을 위해 필사적으로 기량을 닦았던 것이다.

• ≪기경중묘는 그런 이에모토의 하나인 하야시 겐비(林元美, 1778~1861)가 편찬한 것이며 바둑 묘수풀이로써 가장 유명한 것의 하나이다.
이전에 편찬된 이노우에 인세키(井上因碩) 명인의 위기발양론(圍碁發陽論)(1713년 간행)에 비하여 보다 쉬운 문제가 많아 바둑인에게 애호되었다.
본래 기경중묘4권으로 되어 있으며 초판은 1811년에 발행되었다.
이 책은 원서의 약 500문제 가운데 기경중묘특징이 잘 나타난 것 및 편집자의 취향에 따라 대충 150 문제를 골라냈고 해답ㆍ해설을 덧붙였다.
바둑의 실력도 향상되고 수읽기와 감각도 연마된다고 하면 일거양득, 아니 일거삼득이 되리라고 믿는다.

1장 삶
2장 죽음
3장 패
4장 수 싸움
5장 넘어 감
6장 몰아 떨기
7장 협공ㆍ이음ㆍ치중 사

 

오청원 해설, 백재욱 역, 新玄玄碁經, 서림문화사, 2020
저자 미상, 박재삼 역, 官子譜, 서림문화사, 2018
林元美 , 박재삼 역, 碁經衆妙, 서림문화사, 2022

 

바둑은 사고와 기예를 연마하는 기예로서 가치와 품위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간단한 원리만 알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자유스럽고 합리적인 대중 오락성도 지니고 있다는 점이 매력적일 것이다. 바둑의 오랜 역사를 통하여 생활문화로서 독특한 생명력을 유지하여 온 까닭도 그러한 특성에 있다고 보겠다.” -조남철

바둑판의 선이 서로 만나는 지점은 361 곳이나 고금을 통해 똑같은 바둑이 두어진 예는 없다.”-<기경중묘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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