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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은 하나의 사건이다. 한 권의 책에 담긴 지은이, 만든이, 읽는이의 고뇌와 정성을 기억한다.



Title묵점 기세춘 선생과 함께하는 ≪장자≫-왜곡과 오역을 걷어낸 동양고전 재번역2022-08-02 19:23
Writer

묵점 기세춘 선생과 함께하는 장자

재번역에 대한 변명

옛사람들은 장자(莊子)를 문장의 귀재라고 말해 왔다.
조선의 문체혁명을 일으킨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서문에서 장자를 저술가의 영웅이라 칭하고 스스로를 그와 비교했다.
그는 글쓰기의 전범으로 주역(周易)춘추(春秋)를 꼽고, 주역으로부터 유행한 우언(寓言)은 은밀한 진리를 말하면서도 현저함을 지향하고, 춘추로부터 유행한 외전(外傳)은 현저한 사실을 말하면서도 은미함을 지향하는데, 장자의 경우 은미함과 현저함, 사실과 허구가 갈마들며 변화무쌍하여 저서의 압권이라 보았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 문인들은 모두가 장자를 열독하여 왔다.
그러나 번역본을 읽어야 하는 한글세대는 원문을 읽었던 연암이 느낀 감동을 공유할 수 없는 실정이다.
지금 서점에 나와 있는 장자번역서는 불행하게도 오역ㆍ왜곡ㆍ변질되어 흉물스런 허물로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왜곡과 변절의 주범은 종교권력과 정치권력이다.
권력에 의해 교조화되고 이념화된 사상은, 세상이 변하더라도 영원한 진리로 남기 위해 이 경전들을 변질시킨다.
또한 새로운 외래 사상이 유입될 때도 그것을 탄압하거나 융합하기 위해 경전을 변질시킨다.
특히 노장사상은 주술과 신선술의 도교가 일어나 황제와 노자를 교조로 삼으면서 신비학으로 왜곡되었고, 거기에 더하여 정치권력에 의해 체제에 순응하는 은둔과 청담(淸談)으로 변질되었다.

지금까지 출간된 노장 주석서는 모두 한결같이 이러한 왜곡을 답습한 것이다.
더구나 우리의 번역서는 이러한 왜곡에 더하여 온통 오역투성이라 폐기해야 마땅하다.
몇 군데의 간단한 오역이라면 수정하는 것으로 족하겠지만, 근본 취지를 그르친 악서들과 무슨 말인지조차 이해할 수 없는 저질 서적은 추방해야 한다.
번역자의 천박함으로 인해 은미하고 철학적인 담론이 원문과는 전혀 다른 치졸한 처세훈이 되고, 서사적인 우화는 그 핵심을 놓치고 초점을 그르쳐 다른 길로 빠져버린 엉뚱한 이야기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중국 고전의 경우 수천 년 묵은 고문자이므로 우리나라에서 오늘날 사용되는 뜻으로는 해석이 불가능하다.
당시는 글자 수가 지금처럼 수만 자에 이른 것이 아니라 수천 자에 불과하여 빌려 쓰는 경우가 많았고,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그 뜻이 변했기 때문이다.
또한 고전은 내용이 포괄적이므로 신학, 철학, 정치, 경제, 사회 등 광범위한 소양이 요구되는 까닭도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당부드린다.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주시라!
노장은 무지하라고, 어린아이가 되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무지에 내려놓지 못하면 이 책은 무용지물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과 아테네의 지자(知者)들에게 대화를 통해 스스로 무지를 고백하도록 반어(irony)로 말했기 때문에 사형을 당했다.
나는 지자는 못 되지만, 노장에 영향을 받은 교산 허균, 담헌 홍대용, 연암 박지원 등의 실학자들이 새로운 창조를 위해 동심론(童心論)을 말한 것에는 공감한다.

해설

1. 장자 읽기

노장사상의 왜곡

우리는 제자백가(諸子百家) 중 노자(老子)와 장자(莊子)의 사상을 묶어 노장사상이라고 말한다.
이는 노자와 장자가 한 가문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자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이하 노자)과 함께 읽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노자2,400년 전 본래의 노자가 아니다.
• ≪노자는 후한(後漢) 말에 일어난 황건(黃巾)의 난(2세기 말) 이후 반란의 중심이었던 도교 세력이 체제 내로 편입되면서 정치적 필요에 따라 왜곡되고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종교적으로는 도교의 노자상이주(老子想爾注), 갈홍(葛洪, 283~343?)포박자(抱朴子), 학문적으로는 왕필(王弼, 226~249)노자주(老子註)등 봉건시대의 노자해설서들이 노자의 저항적 민중성을 탈색시켜 버렸다.
그래서 일찍이 주자(朱子, 1130~1200)는 도사(道士)들이 자기네 노장은 이해하지 못하고 불가의 껍질을 주워 모았다고 비웃었고,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은 이른바 도사들은 노장의 제자가 아니라 석가의 서자들라고 비웃었다.

특히 노자를 지배계급에게 복무하도록 결정적으로 왜곡한 것은 왕필이었다.
왕필은 20대의 젊은 나이에 위진(魏晉)시대 천하제일의 유명한 학자요 명망가인 하안(何晏, 190~240)의 귀여움을 받아 그의 천거로 관직도 얻고 세상에 이름을 알린 사람이다.
하안은 위왕(魏王) 조조(曹操, 155~220)가 양자로 삼아 키웠으며 훗날 사위로 삼은 사람이며, 조조의 총신이요 탁월한 학자였다.

조조는 후한 말(184) 도교 세력이 주축이 된 농민 반란군인 황건적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천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는 황건적의 일파로 한중(漢中) 지방에 정권을 세운 천사도(天師道, 속칭 오두미도五斗米道) 2주교인 장로(張魯)를 높은 관직을 주는 조건으로 투항시켜, 정권 쟁탈 과정에서 그의 지원을 받은 바 있었다.
그러므로 도교 세력의 위력을 잘 아는 조조는 정권을 잡은 이후 노장의 반체제적 민중성과 반문명적 저항성을 제거하려고 했다.
또한 도교의 지도자들도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었으므로 조조와 이해관계가 일치했다.

그러므로 노자를 학문적으로 왜곡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노자의 정통을 잇고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장자를 능가할 만한 인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때 이 임무를 맡은 사람이 하안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신분과 능력만으로는 역부족임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새로운 천재의 발굴이 필요했다.
이에 선택된 사람이 왕필이었다.
20세의 천재 왕필은 이에 고무되어, 저항적이고 민중적인 노자를 권력 친화적인 내용으로 왜곡하는 데 앞장서게 된 것이다.
지금 시중에 나와 있는 노자의 번역서들은 모두 왕필의 왜곡된 주해를 따른 것이다.

조선의 허균(許筠, 1569~1618)은 다음과 같이 개탄하였다.

노자를 장으로 나눈 것은
누구에게서 나왔는지 모르지만
글의 뜻이 본래 끊어지지 않았는데
억지로 끊은 곳이 있어 대단히 잘못되었다.
다만 마땅히 전체를 연결하여 읽어야만
비로소 통할 수 있게 되었다.
후세에 그들을 따르는 무리들이
노자의 학술을 신비학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것이 유행하여 선약(仙藥), 양생술,
부적, 푸닥거리 등 신선술과 미신의 법으로 만들어
괴이하고 황당하여 바르지 못하게 됨으로써
세상을 현혹시키고 사람을 속이는 일이 많게 되었다.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13 <독노자(讀老子)>

청대의 유명한 고염무(顧炎武, 1569~1618)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위진시대에 범무자(范武子)
하안과 왕필에 대해 논평하기를
두 사람의 죄가 폭군 걸주보다 심하다고 말했다.
일세에 끼친 해악은 가벼웠으나
후대에 끼친 재해는 무거우며
자기를 해친 악은 작으나 대중을 미혹한 죄는 크다.
-日知錄18 <주자만년정론조(朱子晩年定論條)>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학자들은 왕필의 현학적 왜곡을 답습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성리학에 복무하던 노장을 본래대로 복원하기는커녕 일제의 천황폐하에 복무시키더니 지금은 자본주의에 복무시키는 왜곡과 오역을 덧씌우고 있다.

우리 선비들의 장자읽기

후세 유사들은 오직 경학밖에 없는 유교의 미비한 철학적 사유를 보충하여 불교에 대항하기 위해 노장이 필요했다.
특히 당나라 때는 노자도덕진경(道德眞經)’으로 높여 부르고 가정마다 비치하도록 강제했으며, 노자를 계승한 장자도 추앙되어 장자남화진경(南華眞經)’으로 높여 부르도록 했다.

이처럼 유가와 도가는 결합되고 닮아갔던 것이다.
특히 장자는 경()으로서보다 문()으로서 널리 널리 읽혔다.
장자는 저술의 귀재로 칭송받았고, 장자의 역설적이고 패러디적인 우언(寓言)은 문사들의 글쓰기 전범으로 아낌을 받아 조선의 선비들에게 널리 읽혔다.

 

2. 노자를 계승한 민중적 이방인

민중의 절망적 외침
무신론과 자연주의
불가지론
반공자ㆍ반성인ㆍ반인예ㆍ반명분
반문명 무정부주의
무지와 동심

3. 천의무봉의 혁명적 자유인

절대 자유의 자연인
가치상대주의
종합주의
도인의 민중하방
자주적 생명
신농시대의 원시공산사회 지향-요순 성인 시대 부정
역설과 반어의 우언

 

내편(內篇)

1장 소요유(逍遙遊)

1-2
매미와 텃새가 대붕을 비웃었다.
무엇 때문에 구만리 창공을 날아 남쪽으로 간단 말인가?”
아침에 돋아나는 버섯은 그믐 초하루를 모르고 매미는 봄가을을 모른다.
옛날의 큰 참죽나무는 팔천 년을 봄가을로 삼았다.

 

2장 제물론(齊物論)

2-7
신명을 수고롭게 하며 한쪽을 좋다고 하면 그것이 크게는 같다는 것(大同)을 모른다.
이것을 조삼(朝三)’이라 한다.
무엇을 조삼이라고 하는가?
원숭이 주인이 아침 먹이로 알밤을 주면서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를 주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원숭이들은 모두 성을 냈다.
이에 주인은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겠다고 말했다.
원숭이들은 모두 좋다고 했다.
()도 실()도 덜어낸 것이 없는데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을 만들어낸 것이니 이것은 기호(嗜好) 때문이다.

2-17
어느날 장주(莊周)는 꿈에 나비가 되었다.
훨훨 나는 나비가 된 것이 기뻤고 흔쾌히 스스로 나비라고 생각했으며 자기가 장주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금방 깨어나자 틀림없이 다시 장주였다.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는지 나비가 장주가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장주와 나비는 분별이 있는 것이니 이와 같은 것을사물의 탈바꿈(物化)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3장 양생주(養生主)

3-1
유한한 인생으로 무한한 지혜를 따르면 위태로울 뿐이다.

4장 인간세(人間世)

4-2
덕은 명성에서 무너지고, 지혜는 경쟁에서 나타난다.
명성은 서로 헐뜯게 하고, 지혜란 경쟁의 도구다.

5장 덕충부(德充符)

5-7
사람은 천품인 형기는 있으나 시비의 감정은 없다.
사람은 형기가 있으므로 남들과 무리짓고 감정이 없으므로 몸에 시비가 붙지 않는다.
작은 눈으로 보면 작구나!
사람들과 속해 있기 때문이요.
호방한 것으로 보면 크구나!
홀로 하늘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6장 대종사(大宗師)

6-1
마음으로 도를 버리지 않고, 인위(人爲)로 하늘을 돕지 않는다.

6-5
무릇 도()는 정()이 있고 믿음이 있으나 다스림도 없고 형체도 없어 전할 수는 있으나 받을 수는 없으며 체득할 수는 있으나 볼 수 없는 스스로 근본이요, 스스로 뿌리다.
천지가 있기 전에 옛날부터 이미 존재하여 귀신과 천제(天帝)를 신령스럽게 하고 천지를 낳았다.
태극보다 먼저 있었으나 높다고 하지 않고 육극(육합, 사방 상하)의 아래에 있으나 깊다고 하지 않으며 천지보다 먼저 살았으나 장구하다고 하지 않으며 상고(上古)보다도 오래되었지만 늙었다고 하지 않는다.

외편(外篇)

22장 지북유(知北遊)

22-10
사람이 천지 사이에 살아 있는 것은 날랜 백마가 문틈을 지나는 것처럼 홀연히 끝난다.
물이 흘러 갑자기 불어나듯 나타났다가 구름이 흩어지듯 소리 없이 돌아가지 않는 것이 없다.
이러한 변화를 삶이라고도 하고 또는 죽음이라고도 하면서 동물은 이것을 애통해하고 인간은 이것을 슬퍼한다.

잡편(雜編)

29장 도척(盜跖)

29-9
자장이 말했다.
옛 걸주(桀紂)는 귀하기로는 천자요, 부하기로는 천하를 소유했다.
지금 종들을 불러 이르기를 너희들의 행실응 걸주와 같다고 한다면 부끄러운 얼굴을 하고 마음으로 승복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들 소인을 천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자와 묵자는 궁하기로는 필부(匹夫, 공자는 사민士民이고 묵자는 공민工民이었다)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어느 재상에게 이르기를 그대의 행실은 공자와 묵자 같다고 한다면 정색을 하며 그런 칭찬을 받기에는 부족하다고 말할 것이다.
선비는 참으로 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자의 지위도 반드시 귀한 것은 아니며 궁한 필부라도 반드시 천한 것은 아니다.
귀천의 분별은 행실의 아름다운 덕에 있는 것이다.”

32장 열어구(列禦寇)

32-10
장자가 장차 죽으려 하자 제자들이 후한 장례를 치르려 했다.
장자가 말했다.
나는 천지로 관곽을 삼고 일월로 구슬을 두르고 별들로 거울을 삼았고 만물로 제물로 삼았으니 이미 장례를 다 준비했거늘 어찌 부족하다 하며 무엇을 더하려 하느냐?”
제자가 말했다.
까마귀와 솔개가 선생을 뜯어 먹을까 염려됩니다.”
장자가 말했다.
위에 있으면 까마귀와 솔개의 밥이 되고 아래에 있으면 땅강아지와 개미의 밥이 되어야 하거늘 이들에게서 빼앗아 저들에게 주려 하니 어찌 편벽됨이 아니겠느냐?”

33장 천하(天下)

33-1
천지(天地)자연의 도에서 이탈하지 않은 사람을 천인(天人)’이라 하고 진실(眞實)에서 이탈하지 않은 사람을 지인(至人)’이라 하고 하늘을 머리로 삼고 덕은 근본으로 삼고 도를 문으로 삼아 변화를 점치는 사람을 성인(聖人)’이라 하며 인()으로 은혜를 베풀고 의()로 도리를 행하고 예()로 행동하고 악()으로 화목을 이루어 훈훈하고 자애로운 사람을 군자(君子)’라고 한다.

33-8
막막하여 형체가 없고 변화무상하니 죽음도 삶도 더불어 하고 천지의 아우름과 더불어 하고 신명의 운행과 더불어 한다.
망망한데 어디로 갈 것이며 순간인데 어디까지 갈까?
만물이 모두 그물인데 근원으로 돌아감만 못하리라! 

기세춘 역, 장자, 바이북스, 2007

 

기 선생은 동양고전에 대한 선인들의 주해가 오랜 세월 동안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에 의해 변질ㆍ왜곡된 것이 태반이어서, 이를 고증하여 본래의 모습을 복원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대만 유학파들이 장악하고 있는 강단학계로부터 외면당하면서도 홀로 고독하게 인적ㆍ물적 지원도 없이 20여 년을 이 길에 투신해 왔다.” -김규동 시인 <발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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