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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은 하나의 사건이다. 한 권의 책에 담긴 지은이, 만든이, 읽는이의 고뇌와 정성을 기억한다.



Title≪역주 소동파 산문선≫ 조규백 역주2022-06-23 18:23
Writer

역주 소동파 산문선조규백 역주

 

서문 _김철수

소동파는 중국이 낳은 문호로서 매력이 있는 문인이다.
그는 중앙의 정계에서 정치가로 활약하기도 했고, 유배지에서 고통과 궁핍을 맛보기도 했다.
사유가 넓고 스케일이 크며, 유불도(儒佛道)를 아우를 정도로 사상의 넓이와 깊이가 있다.
소동파의 원전은 분량이 방대하고 그만큼 난해하다. 고금과 삼라만상이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동파의 산문에는 도도한 문체에 독창적인 사상을 담고 있다.
흘러가는 구름과 흐르는 물 같아서, 처음에는 일정한 바탕이 없지만, 항상 마땅히 가야 될 때 가고, 항상 멈추지 않을 수 없을 때 멈춰서, 문리(文理)가 자연스러우며 자태가 끊임없이 나타난다.”
법도 가운데 새로운 뜻을 내고, 호방한 바깥에 묘한 이치를 부친다.”

그의 산문은 송대 문화 연구의 중요한 자료일 뿐 아니라, 우리 국학, 동양학, 인문학의 주요 자료이다.

. 編年

1. 성시형상충후지지론(省試刑賞忠厚之至論, 상벌은 충후한 마음이 지극해야 한다는 것을 논함)

요임금, 순임금, 우임금 탕임금, 그리고 문왕, 무왕, 성왕, 강왕의 시대에는, 얼마나 깊이 백성들을 사랑하며 얼마나 절실하게 백성들을 걱정하여, 군자와 장자(長者)의 도로서 천하를 대했는가! (……)
상을 줄 수도 있고 상을 주지 않을 수도 있는데 상을 주는 것은 인후함이 지나친 것이고, 벌을 줄 수도 있고 벌을 주지 않을 수도 있는데 벌을 주는 것은 의()에 지나친 것이다. ()은 지나쳐도 되지만 의()는 지나쳐서는 안 된다. 옛날에는 상벌을 주는데 작록(爵祿)으로써 하지 않았고, 형벌을 주는데 칼과 톱(도거刀鋸) 등의 형구로써 하지 않았다. 작록으로써 상을 내리면 이는 상의 역할이 작록을 더하는 범위 내에서만 시행하게 되고, 작록이 가()해지지 않는 경우에는 시행되지 않는다. 칼과 톱으로써 형벌을 주는 것은 형벌의 위엄이 칼과 톱(형구)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만 시행되지, 칼과 톱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는 시행되지 않는다.
고대의 훌륭한 제왕들은 천하의 선()에 대해 상을 일일이 다 줄 수는 없으며, 벼슬도 (선을) 권장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 또 천하사람들의 악()을 형벌로 이루 다 일일이 줄 수는 없으며, 칼과 톱도 죄를 제재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의심스러우면 모두 들어 인후함의 원칙으로 귀결시키었다. 군자(君子)와 장자(長者)의 도()로 천하사람을 대하여, 천하사람으로 하여금 서로 이끌어 군자니 장자의 도로 귀결시키게 하였다. 그러므로 충후(忠厚)한 마음이 지극하다라고 하는 것이다. (……)

<성시형상충후지지론(省試刑賞忠厚之至論)>은 동파가 22(1057)에 응시했던 예부의 진사시험(예부진사고시禮部進士考試) 출제문제에 대한 답안지이다. 이 제목으로 문장을 지음에 있어 동파는 사고의 방향이 활기를 띠어 한 가지 뜻을 몇 층으로 뒤집고 있다.
당시 과거시험 위원장인 구양수(歐陽修)와 시험관인 매요신(梅堯臣)은 모두 당시의 부미(浮靡)한 문장 기풍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는데, 동파의 이 문장을 읽고 찬사를 금하지 못하였다. 이는 산문에 있어 동파가 가장 일찍 창작한 명작이다.

8. 능허대기(凌虛臺記)

남산의 아래에 부()의 터를 잡아, 의당 기거하고 음식을 먹는 생활은 산과 연결되어 있다. 사방의 산들은 종남산(終南山)보다 더 높은 곳이 없고, 도읍이 산과 인접한 곳으로는 부풍(扶風)보다 가까운 곳이 없다. 지극히 가까운 데서 가장 높은 곳을 찾는다면 그 형세를 반드시 찾을 수 있다. 그런데 태수의 거처에서는 일찍이 산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였다. 비록 일에 손해나 이익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사물의 이치상 당연하지 않은 것이 있다. 이것이 능허대(凌虛臺)를 쌓은 까닭이다.
능허대 쌓기 이전에 태수 진공(陳公)은 지팡이를 짚고 짚신을 싣고서 그 아래를 소요하다가, 숲 위로 산이 솟아난 것을 보고 울멍줄멍하여 마치 담 밖으로 길가는 사람이 담 안에서는 하나하나 상투만 보이는 것과 같음을 발견하였다. “이는 반드시 기이한 경치이다라고 말씀하시고, 인부들을 시켜 그 앞을 파서 네모진 연못을 만들고, 그 파낸 흙으로 누대를 쌓게 했는데 높이가 집의 용마루보다 더 높은 데에서 멈추었다. 그 후에 사람이 누대 위에 오르면 황홀하게 누대가 높는 줄은 모르고, 산이 불쑥 솟아 나오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진공께서 이는 마땅히 능허대(凌虛臺)’라고 이름을 지어야겠다라고 하고는, 종사관 나(蘇軾: 저자)에게 말해 문장을 구하여 기문(記文)을 짓도록 하였다. 나는 공께 말씀드렸다.
사물의 흥망과 성쇠는 알 수가 없습니다. 옛날 (이곳은) 거친 풀이 우거진 들과 밭으로 서리와 이슬이 자욱이 덮여있었고, 여우와 살모사가 엎드려 숨어 살던 곳이었으나, 그때에 어찌 이 능허대가 생길 줄 알겠습니까? 흥망과 성쇠는 서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니, 능허대가 다시 거친 풀이 우거진 들과 밭으로 변하게 될는지는 모두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일찍이 시험 삼아 진공과 함께 능허대에 올라 바라본 적이 있는데, 동쪽은 진목공(秦穆公)의 기년궁(祈年宮)과 탁천궁(橐泉宮)이 있던 곳이요, 남쪽은 한무제(漢武帝)의 장양궁(長楊宮)과 오작궁(五柞宮)이 있던 곳이요, 북쪽은 수()나라의 인수궁(仁壽宮)과 당()나라의 구성궁(九成宮)이 있던 자리입니다.
한 시대의 흥성함을 헤아려보면, 이 궁전들이 웅장하고 진기하고 화려하며 견고하여 움직일 수 없는 것은, 어찌 다만 능허대의 백배에 그칠 뿐이겠습니까? 그러나 몇 조대(朝代)가 지난 후에 이 궁전들과 비슷한 것을 구하려고 해도 깨어진 기와와 어물어진 담조차도 다시 남아있는 것이 없습니다. 이미 벼와 기장밭과 가시덤불이 우거진 언덕에 빈터와 밭두렁으로 변하여 있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이 능허대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누대(樓臺) 하나도 오히려 오래 가리라는 것을 믿을 수 없는데, 하물며 사람 일의 성공과 실패처럼 홀연히 갔다가 홀연히 오는 것이랴?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과시하여 스스로 만족하기를 구하니, 이는 잘못된 일입니다. 대개 세상에 족히 믿을 수 있는 것은 따로 있으니, 누대가 있고 없고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윽고 진공에게 다 말씀드리고, 물러나 이 기문(記文)을 짓는다.

34. 書吳道子畫後(오도자의 그림 뒤에 쓰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물을 창조하고, 기능이 있는 사람은 선인의 창작을 다시 발휘하여 사물을 묘사하니, 이는 한 사람이 홀로 이루어 내는 것이 아니다.
군자는 학문 연구에서, 여러 분야의 기술자는 기술상의 경험과 축적에 있어서, 하은주(夏殷周) 삼대(三代)로부터 한()을 거쳐 당()에 이르기까지 다 완비되어 있다. 그러므로 시()는 두자미(杜子美: 杜甫)에 이르러, ()은 한퇴지(韓退之: 韓愈)에 이르러, ()는 안노공(顔魯公: 顏眞卿)에 이르러, 그림()은 오도자(吳道子: 吳道玄)에 이르러, 고금(古今)의 변화와 극치의 경지에 도달하였다.
오도자는 인물을 그림에 있어, 등불로 사람의 그림자를 취하는 것 같아, 역으로(그림자를) 취해도 좋고, 순하게 해도 좋다. 옆으로 출현해도 좋고 측면에서 드러나도 좋다. 횡으로 그림자를 취해도 좋고, 비끼어서 취해도 좋고, 평평하게 취해도 좋고 곧게 취해도 좋다. 각기 증감 변화시켜 인물의 자연의 수()를 얻음에 터럭 끝만 한 차이도 없게 하였다.
법도 가운데 새로운 뜻을 내고, 호방한 바깥에 묘한 이치를 부친다. 이른바 포정(庖丁)틈 가운데 칼을 노닐음에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있고’, 뛰어난 석수는 도끼를 빨리 휘두름에 바람이 인다라고 한다. 이런 그림을 그린 사람은 대개 고금에 오도자 한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
나는 다른 사람의 그림에 있어서는 간혹 그림을 그린 작자의 이름을 알아맞히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오도자의 그림에 이르러서는 바라보기만 하면 곧 그 진위(眞僞)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 전하는 오도자의 진품은 극히 드물다. 사전숙(史全叔)이 소장한 것 같은 진품은 내 평생에 한두 번 본 적이 있을 뿐이다. 원풍 8(1085) 117일 쓰다.

36. 書淵明歸去來序(도연명의 <귀거래사서歸去來辭序>에 쓰다-가난한 선비)

세간에 전해오는 말에, 한 가난한 서생(書生)이 관가의 금고에 들어가 돈을 보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를 못했다. 어떤 사람이 괴이하게 여겨 물었다. 서생이 말하길, “진실로 그것이 돈인 줄 알지만, 다만 그것이 종이에 싸여 있지 않음을 괴이하게 여길 뿐이다.”라고 하였다.
내가 우연히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읽었는데, 그 서문(序文)어린아이들이 방안에 가득한데, 쌀독에는 저장해놓은 양식이 없네,”라는 구절을 보고 세간에 전해오는 말이 확실히 근거가 있음을 알았다. 쌀독에 저장해놓은 곡식이 있더라도 또한 아주 적을 것이다. 이 노인은 평생 단지 쌀독 가운데서 곡식만 보았는가.
마후기(馬后記)에서, 궁인(宮人)들은 마황후가 입고 있던 거친 실로 짠 견직물을 보고서 도리어 기이한 물건이라고 여겼다. 또 진혜제(晉惠帝)는 기아(飢餓)에 허덕이는 백성에게, ‘어째서 고기죽을 먹지 않는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이런 일을 자세히 생각해보면 모두가 일리가 있는 말이다. 잠시 호사가(好事家)의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 未編年

55. 自評文(나의 문장을 논함-수물부형隨物賦形)

나의 문장은 만 섬이나 되는 샘의 원천과 같아서, 땅을 가리지 않고 용솟음쳐 나온다. 평지에서는 도도하게 콸콸 흘러 하루에 천 리를 가기에도 어렵지 않다. 그것은 산의 돌멩이들과 어울려 꾸불꾸불 흐를 때에는 사물에 따라 모양을 바꿔나가지만 (그 원리는) 알 수 없다. 알 수 있는 것은 항상 마땅히 가야 할 곳으로 가고 항상 멈추지 않으면 안 될 곳에서 멈춘다는 것이니, 이와 같을 따름이다. 그 외에는 비록 나도 알 수 없다.

 

조규백 역주, 譯註 蘇東坡 散文選, 白山出版社, 2011(수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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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파의 산문은 도도히 흘러가는 장강대하와도 같이 웅혼하고 자연분방하며, 순간적인 형상의 포착에 뛰어났다.”-조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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