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보세

한 권의 책은 하나의 사건이다. 한 권의 책에 담긴 지은이, 만든이, 읽는이의 고뇌와 정성을 기억한다.



Title선비의 예술과 선비취미-≪遊戱三昧유희삼매≫ 유홍준·이태호 편2022-06-15 22:28
Writer
Attachment유희삼매 -작품.hwp (977.5KB)

선비의 예술과 선비취미-遊戱三昧유희삼매≫ 


책을 펴내며

선비는 조선시대 5백 년의 역사가 낳은 가장 자랑스럽고 뿌리 깊은 가치개념이 아닌가 생각된다.
오늘날로 치면 지식인에 해당될 이 선비라는 지칭에는 문인, 학자들이 지녀야만 할 숭고한 도덕과 올바른 처신 그리고 자기 도야의 가치가 내포되어 있다.

선비가 어떤 자세로 살았는가는 이번에 출품된 송문흠(宋文欽)의 글씨 행불괴영(行弗愧影) 침불괴금(寢不愧衾)” 행동할 때는 그림자에 부끄럽지 않게 하고, 잠잘 때는 이부자리에 부끄럽지 않게 한다라는 결구에서 남김없이 엿볼 수 있다.

그렇다고 선비가 항시 그렇게 엄격한 기강 속에서 강직하게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항시 공자님 말씀대로 ()를 목표로 하고 덕()에 근거하여, ()에 의거하는(志於道 據於德 依於仁)” 한편으로 예()에서 노니는 것, 유어예(遊於藝)” 할 줄 아는 여백이 있었다.
그것은 조윤형의 유희삼매(遊戱三昧)”라는 네 글자 속에 압축된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 강진 유배 시절에 자신이 입던 낡은 옷에 풀을 먹이고 다리미로 다려서 첩()을 만들어 고향 친구를 생각하며 적은 시 중에 심씨 집에서는 꽃을 기르고 있는데, 특히 국화가 48종이나 되었다.”라는 구절에서 자연과 벗하며 살아간 선비의 멋을 다시 한번 보게 된다.

그리하여 선비의 멋과 선비의 예술은 곧 선비취미라는 가치개념으로 선비가 아닌 환쟁이내지는 일반 서민에게까지 펴져나갔다.
선비정신과 선비취미가 계급적 관념에서 벗어나 지고한 정신가치로 발전한 것이다.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는 비록 양반 출신이 아닌 화원에 불과했지만 스스로의 희망을 그린 <포의풍류도(布衣風流圖)>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흙벽에 종이창을 내고 紙窓土壁
종신토록 벼슬하지 않으며 終身布衣
시가나 읊으며 살아가리 嘯詠其中

 

 

1. 퇴계 이황, <학고재명(學古齋銘)>
16세기. 종이에 먹. 34.0×44.6
이 글은 송나라 주휘유(周徽猷)의 서재 이름인 학고재(學古齋)’에 대해 주희(朱熹)가 지은 명()을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이 옮겨쓴 것이다. 옛것을 배운다는 의미를 풀이한 글로서, 본래 퇴계진적첩(退溪眞籍帖)에 들어 있었다. 청명(靑溟) 임창순(任昌淳, 1914~1999)이 이 글을 고증한 것이 별지로 붙어 있다.

20. 능호관 이인상, <선면산음도상(扇面山陰道上)>
18세기. 종이에 수묵담채. 23.6×60.0
능호관 이인상은 부채에 그린 그림이 상당히 많다. 이제까지 알려진 작품의 반이 선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선면 작품에는 거의 반드시 작품의 내력이 쓰여 있고, 대개는 누구를 위해 그려준 것이다. 이 작품 역시 오른쪽에 산음도상에 있는 것만 같네. 겨울날 연소를 위해 원령 그리다(如在山陰道上 冬日爲淵昭作 元靈)”라고 쓰여 있다.
연소는 누구의 호인지 확인하지 못했다. 산음도상(山陰道上)세설신어에 나오는 산음의 길을 가노라면 (경치가 하도 좋아서) 응접할 여가가 없다(山陰道山應接不暇)”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눈부신 승경을 말하는 것이다.

36. 다산 정약용, <행서>
19세기 초반. 종이에 먹. 24.5×27.0
강진에 유배중인 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쓸쓸한 심정이 애절하게 나타나 있는 소품이다. 깔끔한 다산 특유의 필치에 강약의 리듬이 더해져 글의 내용이 더욱 심금을 울린다.

912일 밤, 나는 다산의 동암에 있었다. 우러러 하늘을 보니 하늘은 적막하고 드넓으며, 조각달이 외롭고 맑았다. 떠 있는 별은 여덟아홉에 지나지 않고, 앞뜰엔 나무 그림자가 하늘하늘 춤을 추고 있었다. 옷을 주워 입고 일어나 걸으며 동자로 하여금 퉁소를 불게 하니, 그 음향이 구름 끝까지 뚫고 나갔다. 이때 더러운 세상에서 찌든 창자를 말끔히 씻어버리니, 더 이상 인간 세상의 광경이 아니었다.

45-3. 초정 박제가, 화첩 가운데 <어락도(漁樂道)>
18세기 후반. 종이에 수묵담채. 27.0×33.5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 1750~1805)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북학파(北學派) 실학자이다. 청조(淸朝)의 신문물을 수용하여 부국(富國)과 백성들의 생활 향상을 꾀하자는 이용후생론(利用厚生論)을 주장했다.

69. 근원 김용준 <목란도>
1945. 종이에 수묵. 23.0×36.0
근원의 난초 그림 중 필운(筆韻)이 멋들어지게 구사된 작품이다. 난초의 뿌리를 그렸으면서 땅을 나타내지 않은 것은 원나라 시대 정사초가 고국이 몽고족에게 지배당한 것을 항의하는 것으로 그린 노근란의 전통이다. 그래서 땅에 떨어진 난초 꽃송이가 마치 허공에 흩날리는 것처럼 보인다. 화제를 보면 이와 같은 뜻이 모두 담겨 있다.

정 소남의 난초 그림에는 땅과 언덕이 그려져 있지 않고, 예운림의 산수화에는 인물이 그려져 있지 않다.대개 고고한 사람의 의견이 우연히 감성적으로 발휘한 바가 있는 것이지, 이치의 필연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책을 펴내며
작품 목록
작품(102)
논문
겸재 정선의 구학첩과 그 발문(유홍준)
석농 김광국 구장 유럽의 동판화를 통해서 본 18세기 지식인들의 이국취미(이태호)
김광국의 석농화원18세기 후반 조선 화단(박효은)
작품 해설


유홍준 이태호 편, 遊戱三昧, 학고재 , 2003

이 책은 학고재에서 기획전으로 마련한 遊戱三昧-선비의 예술과 선비취미의 도록입니다. 

mb-file.php?path=2022%2F06%2F15%2FF324_image06.png

Comment
Captcha Code
(Enter the auto register prevention c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