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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은 하나의 사건이다. 한 권의 책에 담긴 지은이, 만든이, 읽는이의 고뇌와 정성을 기억한다.



Title완역 제갈량문집-≪와룡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제갈량2022-06-1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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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역 제갈량문집-와룡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제갈량

 

이 책을 읽기 전에 _방가상

제갈량(諸葛亮)은 중국뿐 아니라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역사적 인물로, 제갈공명하면 삼고초려적벽대전을 떠올리게 된다.
중국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승상이었던 제갈량은 17백여 년이 지나도록 지혜의 화신, 정의의 대표로 칭송받고 있다.
봉건 통치자들은 그의 충성심과 성실함’, ‘몸을 돌보지 않고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점을 높이 샀고, 백성들은 현명함과 지략, 청렴함과 공정함을 좋아했다.

그러므로 오늘날 제갈량의 글을 읽으면서 그의 정치, 군사, 외교, 민족 등에 대한 사상 및 인품과 덕성, 업적을 이해하여 그 안에서 교훈을 얻는 것은 유익한 일일 것이다.

제갈량은 자가 공명(孔明)이며 서주 낭야군(琅琊郡) 양도현(陽都縣) (산동성 기남현) 사람이다.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일곱 살 때 아버지마저 잃게 되자 숙부 제갈현을 따라 양양(襄陽)으로 갔다.
열일곱 살 때 숙부마저 병으로 사망하자 양양의 서쪽 교외에 있는 융중(隆中)에서 농사를 짓고 책을 읽었다.
그러던 중에 사마휘(司馬徽), 서서(徐庶)의 권고를 받은 유비(劉備)의 삼고초려에 제갈량은 그 시기의 형세를 깊이 분석한 후 유비를 좇아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위대한 정치가인 제갈량은 머리가 명석했고 원대한 식견이 있었다.

정치적인 면에서, 제갈량은 유씨의 촉한에 충성하고 성실했으며, ‘몸을 돌보지 않고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했다.
솔선수범하여 모든 일을 몸소 직접 행했고, 직언을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였으며 부하들에게 부지런히 나의 결함을 치라고 명령했다.
능력에 따라 사람을 임용했으며 자격과 경력, 문벌에 구애받지 않았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농사에 힘써 양곡을 많이 생산하도록 하고’ ‘농번기를 놓치지 않게 하고 부세를 줄이는정책을 실시했으며 언관(堰官)을 두어 언제를 쌓고 관개사업을 주관하게 했다.
사금중랑장(司金中郞將)이라는 부서를 두어 농기구와 병기 제작을 주관하게 했으며, 사염교위(司鹽校尉)를 두어 소금 생산을 관리하게 했다.
또한 양잠과 비단 짜기를 권장하여 재정수입을 늘렸고 화폐를 주조하여 물가를 안정시켰다.

군사적인 면에서는 법으로 군사를 다스려 군사 규율을 엄히 했다.
평상시에도 군사 훈련이 잘되어 있었고 무예가 숙련되어 있었으며 대오가 정연했다
오기(吳起)와 손무(孫武)의 병법을 발전시켜, 거안사위(居安思危), 유비무환(有備無患),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기정상생(奇正相生), 공기불비 출기불의(攻其不備 出其不意) 등의 전략과 전술을 강조했다.
또한 팔진도(八陳圖)를 만들어 행군하거나 주둔할 때 수시로 공격과 방어를 할 수 있게 했다.
둔전(屯田)을 실시하고 원융(元戎, 연발식 노)을 개조했으며 목우(木牛)와 유마(流馬)를 발명하여 물자 수송의 어려움을 해결했다.

외교적인 면에서, ()나라와 연합하여 조씨(曹氏)의 위()나라와 맞섰으며, 시상(柴桑)에서 동맹을 체결하고 적벽을 불살라서 유비를 위험한 상태에서 벗어나 안전하게 만들어주었으며 이후 삼국 정립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그는 등지(鄧芝)를 세 번이나 오나라로 보내어 우호를 다졌으며 형주와 이릉의 패전에서 원기가 꺾였던 촉한의 형세를 안정시키고 변방을 굳게 지켜 백성들을 편안하게 살게 했으며 남중(南中)의 난을 평정했다.
또한 비위(費褘)를 여러 차례 오나라로 보내어 손권과 연합하여 조조와 맞서게 함으로써 북벌을 감행할 수 있었다.

민족의 문제에서는, 남중 상류층의 반란을 평정한 후에 화친하고 안무하는수단을 썼다.
소수민족 상류층 중에서 촉한에 귀순하려는 자들을 지방관리로 등용했으며 민족의 관습을 존중하고 도움을 주어 소수민족과 촉한이 서로 편안하게 지내게함으로써 그 지방의 사람과 물자를 나라와 군대에서 쓸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사람인 이상 그 누가 잘못이 없을 수 있겠는가?
제갈량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을 잘못 처리한 적도 있었고 싸움에서 패한 적도 있었으며 사람을 잘못 쓴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일을 자신의 잘못으로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책망했으며 그 가운데서 교훈을 얻었다.

중국의 역사학자 범문란(笵文瀾)중국통사간편(中國通史簡編)에서 그에게 남은 것은 다만 주관적 노력의 한 방면이었다. 이 방면에서 그의 노력은 그 이상 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라고 했다.

문집 권1

초려대(草廬對)

동탁이 나라를 어지럽힌 뒤로 호걸들이 일제히 일어나니 주와 군을 넘고 이은 자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조조가 원소에 비해 명성과 군사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원소를 물리치고 약자에서 강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천시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모략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조조는 이미 백만 군사로 천자를 끼고 제후들을 호령하고 있으니 그와는 다툴 수 없는 상황입니다. 손권은 강동을 점령한 지 벌써 삼대가 지났으며, 나라의 지세가 험하고 백성들은 잘 따르며 현명한 자들을 임용하고 있으니, 그를 밖에서 원조할 수 있을지언정 도모할 수는 없습니다. 형주는 북쪽으로 한수와 면수가 있어 이득이 남해에 이르고, 동쪽으로는 오회에 잇닿아 있고, 서쪽으로는 파촉과 통해 있으니 이는 반드시 차지해야 할 땅이지만 그 주인은 지킬 수가 없습니다. 이는 하늘이 장군(유비劉備)을 돕는 것이니 장군께서는 취할 뜻이 있으십니까? 익주는 험요한 요새이자 옥토가 천 리나 되는 천부의 땅으로, 고조(한 고조 유방劉邦)께서는 이곳에 의지하여 제업을 이룩하셨습니다. 그곳의 주인인 유장은 어리석고 유약하며 또한 장로가 북쪽에 있는데도 그 많은 백성과 부를 돌보고 아낄 줄 모르니 지혜와 재능이 있는 인사들은 모두 현명한 군주를 바라고 있습니다. 장군께서는 황실의 후예이며, 신의가 사해에 알려져 있고, 영웅을 널리 사귀며, 목마른 사람처럼 어진 이를 찾고 있습니다. 만약 이 험요한 고장을 지켜내어 서쪽으로 여러 융족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남쪽으로는 이월(夷越)을 어루만지며, 밖으로는 손권과 동맹을 맺고, 안으로는 정사를 잘 다스려 천하에 변화가 생긴다면 훌륭한 장수에게 명해 형주의 군사를 완락으로 진군하게 하고, 장군께서는 몸소 익주의 군사를 통솔하여 진천으로 나아가신다면 백성들이 어찌 단사호장(簞食壺漿)으로 장군을 기꺼이 맞이하지 않겠습니까? 진실로 이렇게 된다면 패업은 이루어질 것이며 한나라 왕실은 부흥할 것입니다.

()’물음에 답한다는 뜻이다. ‘초려대는 제갈량이 자신의 거처인 초려에서 군사와 정치에 관한 유비의 물음에 답한 것이다. 그의 거처가 융중에 있었던 까닭에 융중대라고도 한다. 이 글은 삼국지<촉서> ‘제갈량전35에서 발췌했다.

전출사표(前出師表)

선제께서 창업하신 후 대업을 반도 이루기 전에 붕어하셨습니다. 지금 천하는 셋으로 나뉘어져 있고 익주는 피폐하오니, 실로 존망이 걸린 위급한 시기입니다.
그러나 안으로 황상을 받들어 모시고 호위하는 대신들이 게으르지 않고, 밖으로 충절을 지키는 장수들이 자기 한 몸을 잊고 싸우고 있으니 이는 선제의 후은을 잊지 못해 보답하려는 것일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마땅히 성총의 길을 넓게 여시어 선제께서 남기신 덕을 빛내시고 뜻 있는 인사의 기개를 떨치셔야 합니다. 공연히 자신을 낮추거나 대의에 어긋난 말로 충심의 간언을 막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궁정과 관부(官府)는 한 몸이어야 하니 벌을 주고 상을 줌에 있어 다름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간악하고 죄를 범한 자와 충성스럽고 선한 자가 있다면 관가에 넘겨 그들의 상벌을 논하게 하여 공평함과 엄명함을 보여주어야 하지, 두둔하거나 사사로운 정을 두어서 궁정과 관부의 법도가 달라지게 하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현명한 신하를 가까이하고 소인을 멀리한 것이 전한이 흥성한 원인이며, 소인을 가까이하고 현명한 신하를 멀리한 것이 후한이 무너진 연고입니다. 선제께서는 생전에 신과 이 일을 논하실 때마다 환제와 영제에 대해 통탄의 한숨을 짓지 않으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시중, 상서, 장사, 참군들은 모두 충성스럽고 믿음직하며 죽음으로 절개를 지킬 신하들입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 그들을 가까이하고 믿으신다면 한실의 부흥은 날을 헤아려 기다릴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신은 본래 남양에서 밭을 갈던 평민으로서 난세에 그럭저럭 목숨이나 부지하려고 했을 뿐 제후들에게 빌붙어 현달하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뜻밖에 선제께서는 신의 비천함을 꺼리지 않으시고 몸소 귀하신 지체를 낮추시고 세 번이나 신의 초려에 왕림하셔서 오늘의 천하 대사를 물으셨습니다. 신은 이에 감격하여 선제께 힘을 다하여 노력할 것을 약속드렸습니다. 그 후 장판교에서 참패를 당했을 때에 실로 중임을 맡았고, 그때로부터 위급하고 재난이 많은 와중에 벌써 스무한 해가 지났습니다. 선제께서는 신이 신중하다고 생각하시어 붕어하시기 직전에 국가의 대사를 신에게 부탁하셨습니다.
명을 받은 이래로 밤낮으로 근심하고 탄식하면서 맡기신 일을 처리하지 못하여 선제의 성명을 손상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리하여 5월에 노수를 건너 불모의 땅에 깊이 들어간 것입니다. 이제 남쪽은 평정되었고 병장기와 갑옷도 충분히 마련되었으니 마땅히 삼군을 거느리고 북벌하여 중원을 평정해야 할 것입니다. 신은 용렬한 재간이나마 힘을 다해 간흉을 물리치고 한실을 부흥시켜 옛 도읍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이것이 선제께 보답하고 폐하께 충성하는 신의 본분이기 때문입니다. 정황과 도리를 짐작하여 충언을 드리는 것은 곽유지, 비위, 동윤의 책임입니다. 바라옵건대 신에게 조적(曹賊)을 토벌하고 한실을 부흥시키는 성과를 거두게 하여주십시오. 만약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신의 죄를 다스려 선제의 영전에 아뢰어주십시오. 마약 성덕(聖德)을 흥성시키는 충언이 없으면 곽유지, 비위, 동윤 등을 처벌해 태만함을 밝히십시오.
폐하께서도 스스로 깊이 생각하시고 치국의 좋은 방도를 신하들에게 물으시며 좋은 말을 살펴서 받아들이시고 선제의 유조를 잊지 않고 깊이 되새기신다면 신은 황은에 감읍하여 마지않겠습니다.
이제 곧 먼 길을 떠나며 표문을 올리니 눈물이 앞을 가려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출사표는 국궁진력(鞠躬盡力,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한다)의 뜻을 남김없이 보여주고 있으며, 유협(劉勰)문심조롱(文心雕龍)에서 뛰어난 표문 중의 하나라고 격찬했다.

관우(關羽)에게 답하는 글

맹기(猛起, 마초)는 문무를 겸비하고 위무와 용맹이 남달라 당대의 호걸이며, 경포와 팽월 같은 사람입니다. 장비와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달리면서 선두를 다툴 수 있지만, 미염공(美髥公, 관우)의 출중함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건안 19(214), 마초가 유비에게 투항해오자 관우는 형주에서 이 소식을 듣고 제갈량에게 서한을 보내 그의 사람됨을 물었다. 관우의 고고한 성격을 잘 아는 제갈량은 그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글을 써서 보냈다. 관우는 이 글을 보고 기뻐했으며 사람들에게 보이기까지 했다.

문집 권2

장완에게 답하는 교()

친근한 사람이라 하여 회피하고 현명한 사람을 버린다면 백성들이 그 해를 입을 것이고 사람들은 불안해할 것입니다. 또한 조정 내외의 사람들이 그 진의를 모르게 될 것입니다. 이런 연고로 군은 자신의 공적과 덕행을 드러내어 이번 천거의 공정함과 중요함을 표명해야 할 것입니다.

병요(兵要)

언행이 일치하지 않고 사사로이 무리를 지으며 나라의 법규를 위반하고 밖으로 서로 내통하여 모함하고 안에서 서로 비방하는 악습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실패와 재난을 초래할 것이다.

목우(木牛)와 유마(流馬)를 만드는 방법

목우의 차체는 사각이고 머리 부분은 구부정하며 바퀴 하나에 네 개의 받침기둥이 있고 앞머리는 멍에 아래에 있으며 제동장치는 차체에 바싹 붙어 있다. 많이 실으면 천천히 가므로 큰 짐을 싣기에 적합하고 적은 짐을 싣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혼자서 가면 하루에 수십 리를 가지만 떼를 지어 가면 하루에 20리를 간다. 굽은 것은 소의 머리라 하고 받침기둥은 소의 다리라 한다. 멍에는 소의 목이라 하고 굴러가는 바퀴는 소의 발이라 한다. 덮은 것은 소의 등이라 하고 모난 것은 소의 배라 한다. 차체 옆에 드리워진 것은 소의 혀라 하고 차체 밖의 굽은 것은 소의 옆구리라 한다. 손잡이에 홈을 판 것은 소의 이빨이라 하고 곧은 막대기는 소의 뿔이라 한다. 가는 띠는 소의 가슴걸이라 하고 수레를 끄는 밧줄은 소의 후걸이라 한다. 수레를 모는 사람은 두 개의 끌채를 손잡이로 삼는데 사람이 여섯 걸음을 나가면 목우의 바퀴는 네 번 돈다. 한 사람의 1년 식량을 싣고 하루에 20리를 가도 사람이 지칠 줄 모른다.

잡언(雜言)

나의 마음은 저울과 같아서 다른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문집 권3

사려(思慮) 15

올바른 사려(思慮)란 먼저 눈앞의 일을 생각하면서도 멀리 내다볼 줄을 아는 것이다. 멀리 내다보지 못하면 필연코 눈앞의 근심을 초래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문제를 사고할 때 자신의 지위를 넘어서지 않는다. ()란 일을 추진하는 것이고 여()란 계략을 생각하는 것이다. 알맞은 지위가 아니면 일을 추진하지 말아야 하며, 올바른 일이 아니면 계략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큰일은 시작이 어렵고 작은 일은 시작이 쉽다. 그러므로 일의 유리한 면도 고려해야 하지만 반드시 그 폐해도 고려해야 한다. 높은 대도 아주 높아지면 무너질 수 있다. 그러므로 높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은 발밑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하며, 앞을 내다보는 사람은 뒤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진 목공이 정나라를 칠 때 건숙, 백리해는 그 폐해를 알았으며 오왕 부차가 월나라의 미녀를 받아들일 때 오자서는 그가 실패하리라는 것을 알았으며 우군이 진의 좋은 말과 보옥을 받을 때 궁지기는 그 폐해를 알았으며 송 양공이 병마를 조련할 때 목이는 그가 반드시 패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무릇 총명한 사람들은 문제를 사려함에서 높은 경지에 이르렀으니 진정 고명하다고 할 수 있다. 전철을 밟으며 익사자를 따라 다시 그 같은 일을 중복한다면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진나라는 패업을 얻었지만 요순의 치국지도(治國之道)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위태로움은 안일에서도 생기고 명망은 생존에서도 생기며 화란은 태평에서도 생긴다. 군자는 작은 일에서 큰일을 보고 시작에서 결과를 보기 때문에 사전에 화란이 생기지 않도록 한다. 이것이 올바른 사려이다.

문집 권4

장계(將誡)

상서에서는 군자를 경시하면 마음을 다 바쳐 일하지 않으며, 소인을 경시하면 힘을 다 바쳐 일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군사를 거느리고 싸우는 관건은 반드시 병사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상벌을 공정하게 집행하며 문무의 도를 결합시키고 강유(剛柔)의 전술을 장악하며 의례(儀禮)악경(樂經)을 좋아하고 시경상서를 가까이하며 인의를 앞세우고 지용(智勇)을 뒤에 쓰는 것이다.

여사(勵士)

용병의 근본은 이러하다. 작위로 현귀하게 해주고 재물로 부유하게 해준다면 인재가 저절로 찾아올 것이며, 예의로 대하고 신의로 격려한다면 필사적으로 싸울 것이다. 꾸준히 은혜를 베풀며 법령을 한결같이 집행한다면 진심으로 복종할 것이며, 먼저 솔선수범한다면 용감하게 싸울 것이다. 선한 일은 아무리 작다 해도 기록해주고 작은 공에도 상을 내린다면 스스로 알아서 행할 것이다.

동이(東夷)

동이는 예의가 없고 성격이 급하며 싸우기를 좋아한다. 산을 의지하고 바다를 끼고 살아 천험(天險)에 의거하여 굳게 지키며, 상하가 화목하여 백성들이 안락하니 감히 공격할 수가 없다. 만약 상하의 질서가 깨진다면 이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간시켜 분열이 생기면 은혜를 베풀어 귀순시키거나 공격할 수가 있다. 그러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남만(南蠻)

남만은 종족이 많아 교화시키기가 쉽지 않다. 이득이 있으면 연합하여 작당하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서로 공격한다. 동굴에서 살며 산에 의지한다. 서쪽으로는 곤륜, 동쪽으로는 바다에 이르며 진귀한 물건들이 생산되어 사람들이 이득을 탐하고 싸움에서는 용맹하다. 봄과 여름에는 전염병이 도니 속전속결이 이로우며 군사를 오랫동안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

서융(西戎)

서융은 용감하며 이익을 좋아한다. 성안에서 살기도 하고 들판에서 살기도 한다. 곡식은 적지만 돈이 많으며, 용감하게 싸우므로 싸워 이기기 어렵다. 적석산 서쪽에는 융족이 많이 사는데 땅이 넓고 지형이 험해서, 쉽게 굴복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외부의 마찰과 내부의 난이 일어나기를 기다린다면 격파할 수 있다.

북적(北狄)

북적은 성을 쌓지 않고 살며 물과 풀밭을 따라 이동하다가 형세가 유리하면 남쪽을 침략하고 형세가 불리하면 북쪽으로 달아난다. 연연히 이어진 산맥과 광활한 사막은 그들을 보호해주는 천연 요새이다. 배가 고프면 짐승을 잡아 젖을 마시며, 가죽을 덮고 자고 가죽옷을 입고 사냥을 하고 전투를 하니, 도리나 은혜로 안무할 수도 없고 무력으로 정복할 수도 없다. 한족은 그들과 전투를 벌이지 않으니 그 이유는 대개 세 가지이다. 한나라군은 농사도 짓고 전투도 하니 지치기 쉽고 투지가 없다. 그러나 북적은 사냥과 수렵을 하니 유유자적하며 투지가 높다. 지친 사람들로 유유자적한 사람들과 싸우고 투지가 없는 사람들로 투지가 높은 사람들과 싸우려 하니 당해낼 수 없었다. 이것이 전쟁을 벌일 수 없는 첫 번째 이유이다. 한나라군은 걸어서 하루에 백 리를 행군할 수 있으나 북적은 말을 타고 하루에 그 배가 되는 거리를 달린다. 한나라군이 북적을 추격할 때는 식량을 싣고 갑옷을 입고 뒤를 쫓는다. 그러나 북적은 한나라군을 추격할 때 말을 타고 뒤를 쫓는다. 말에 싣는 것과 등에 지는 것은 우열이 현저하며, 사람이 두 다리로 달리는 것과 말을 타고 달리는 것은 그 형태가 다르다. 이것이 전쟁을 벌일 수 없는 두 번째 이유이다. 한나라군은 보병이 많고 북적은 기병이 많다. 유리한 지형을 쟁탈함에 있어 기병은 보병보다 훨씬 빠르며 그 속도 차이는 현저했다. 이것이 전쟁을 벌일 수 없는 세 번째 이유이다. 공격할 수 없다면 변방을 굳게 지킬 수밖에 없다. 변방을 굳게 지키는 방법은 우수한 장수를 골라서 중임을 맡기고 정예병을 훈련시켜 방어를 강화하는 것이다. 공전을 넓혀 견실하게 하고 봉화대와 초소를 설치하여 경계하면서 그들의 허를 기다려 공격하고 그들이 쇠약해졌을 때 공격한다. 이러면 물자를 허비하지 않고도 적은 스스로 물러서고, 아군이 지치지 않고도 적은 스스로 사라진다.

문집 일문

작전에서는 기병으로 승전하고 지혜에 의거하여 적을 억제해야 한다.

제갈량 지음, 장주 엮음, 신원영 옮김, 와룡의 눈으로 세상을 읽다, 신원문화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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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고초려로 천하삼분의 계책을 내놓더니
두 대에 걸쳐 늙은 신하의 일편단심을 바쳤다.
출병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먼저 죽었으니
길이 영웅들로 하여금 눈물로 옷깃을 적시게 하는구나 _두보당나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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