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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은 하나의 사건이다. 한 권의 책에 담긴 지은이, 만든이, 읽는이의 고뇌와 정성을 기억한다.



Title≪혁명의 세계 반란의 역사≫-“‘앎’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원천이다.”2022-05-20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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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세계 반란의 역사

책머리에
혁명이란 무엇인가

인류 역사는 혁명과 반란의 역사다.
반란과 혁명이 반복되는 이유는 인류 사회가 수탈과 지배의 모순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류 역사는 모순을 근절하기 위한 계급투쟁의 역사였다.
그렇게 인류 역사는 변증법적인 과정을 거치며 보편타당하게 진전해 왔다.
민중은 늘 혁명을 꿈꾸며 반란을 시도했다. 그것이 일부 저항세력의 음모로 끝나거나 그저 반란에 그치기도 했지만 혁명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모색했던 수많은 혁명가의 열정과 희생 위에 형성됐다.

마르크스가 사회주의 사회를 성취할 하나의 방법이 혁명이라고 예측한 것은 대단한 발견이었다.
그는 세계 동시 혁명이 아니면 사회주의 혁명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자본주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린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선도적으로 스스로의 헤게모니를 포기하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마르크스가 탁월한 이유는 혁명을 바라보는 관점뿐 아니라, 그 결론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 역사의 주요한 행위자는 계급이며, 혁명의 주체는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이다.
봉건제가 붕괴한 것은 생산 능력을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자본주의 역시 최종적으로 생산 능력이 소진되면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지를 타도할 것이라고 했다.
역사적으로 부르주아 정치는 사회주의 정치로 이행하는 경로로 인식됐고, 그 결과가 올바름은 아닐지라도 최근까지 하나의 방정식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의도대로 혁명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그의 공산당 선언인터내셔널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무력화됐으며, 사회주의가 분열되어 버렸다.
레닌과 볼셰비키에 의해 성공한 러시아 혁명은 마르크스의 정식화에서 벗어나 러시아 조건에 맞게 재구성되어 등장했다.
대중의 급진적 분출과 볼셰비키의 탁월한 정세 분석, 그리고 기민한 실천의 결합이었다.
70여 년 후 러시아가 붕괴했지만, 레닌의 혁명 정의는 교훈적이다.
레닌은 혁명은 하층계급이 과거의 방식으로 살기를 원치 않는 것만으로는 어렵다. 상층계급도 과거 방식으로 통치할 수 없는 상태여야 한다고 했다.

지난 20세기를 혁명의 시대라고 하지만, 어떤 세기와 관계없이 항상 혁명의 시대다.
누구나 혁명을 말하는 시대가 됐지만, 과연 혁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필요한 시대다.
21세기는 절망과 비관의 시대가 되고 말 것인가?

이 책은 크게 고대와 중세의 혁명, 근대의 혁명, 현대의 혁명 322장으로 구성됐다.

모든 혁명 뒤에는 반드시 교양의 혁명이 있다고 한다.
혁명의 원인은 다양하다. 주로 경제적 이유가 원인을 제공하지만, 정치·사회적 이유에서도 혁명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혁명의 시작은 학습을 하고 무언가를 알게 되면서부터다.
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원천이다. 그리고 그것이 혁명으로 외화된 것이다.

1부 고대와 중세의 혁명

스파르타쿠스의 반란: 혁명의 아이콘

스파르타쿠스(Spartacus, 기원전 111?~기원전 71)는 기원전 73년부터 71년까지 노예들을 이끌고 로마제국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킨 로마 최고의 검투사 영웅이다.
스파르타쿠스가 속한 바티아투스 검투사 양성소에서도 각 나라에서 온 검투사들이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이들은 노예 검투사라는 공통점을 제외하고는 서로에게 매우 배타적이었다.
검투 시합에서 소속과 관계없이 늘 적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검투사들은 고통을 참는 인내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자신보다 약한 상대와의 시합 거부, 부와 사치에 대한 욕망 억제 등 훌륭한 덕목을 갖추고 있었다.

스파르타쿠스는 부룬디시움의 페텔리아 서쪽 산악 지역에서 크라수스와 마지막 전투를 벌였다.
전투에 앞서 부하들이 스파르타쿠스에게 군마를 대령하자, 그는 전투에서 이기면 적의 훌륭한 군마를 얻는다. 패배하면 말 따위는 필요 없다라고 장엄하게 단언했다.
그리고 말의 목을 벤 후 맹렬하게 싸웠다고 전해진다.

황소의 난: 당나라 최대의 민중 반란

인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며, 변증법적으로 진보한다.
중국 역사에서 황금기를 이룬 당나라 붕괴 과정을 보면, 역사에 대한 인식과 교훈이 매우 중요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오늘날 일대일로(一帶一路)’라 불리는 세계화 시대를 적극적으로 열어젖혔고, ‘중국몽(中國夢)’의 상징이었던 당나라의 몰락은 그야말로 한순간이었다.

황소(黃巢)는 양자강(揚子江) 하류인 산동성(山東省) 일대에서 대대로 소금 밀매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집안 출신으로, 그의 염적단은 상당한 재정과 규모가 있는 조직이었다.
당나라를 멸망으로 몰아넣은 풍운아 황소는 의협심과 정의감이 강해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다.
사회에 대한 불평과 불만이 많은 반체제 인사였고, 무예에 능해 승마와 활 솜씨가 뛰어났다.
낙방하긴 했으나 여러 번 과거에 응시할 정도로 학문적 역량이 있는 지식인이기도 했다.
다섯 살에 이미 시를 지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문학적 재능도 뛰어났다.

과거 낙방 후 수도 장안(長安)을 떠나며 지은 시 한 편을 보자.

과거에 떨어진 뒤 국화를 노래하다(不第後賦菊)

기다리던 가을이 와서 98(중양절)이 되면
내 꽃이 핀 뒤에 온갖 꽃이 시드네
하늘을 찌르는 향기가 장안에 가득하고
성안 모두가 황금 갑옷으로 가득하리라
待到秋來九月八
我花開後白花殺
衝天香陳透長安
滿成盡帶黃金甲

백성의 눈에 비친 반란군의 모습은 해방군이었다.
백성은 그들이 당나라 조정의 탄압과 수탈에서 자신들을 해방시켜줄 것이라 믿었다.
반란군은 백성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했고, 왕실 창고를 열어 의복과 식량을 나눠줬다.
이날 하루는 장안 민중에게 더없이 흥겨운 축제였다.
며칠 후 황소가 황제가 되어 국호를 대제(大齊), 연호를 금통(金統)으로 정했다.
변방의 소금 밀매상이 천자에 오르고, 농민이 천하를 거머쥔 순간이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신라의 최치원이다.
종사관이던 최치원은 당나라 절도사 고병에게 손자병법의 겁박 전술을 건의했다.
고병이 최치원에게 항복의 격문을 짓게 했는데, 그것이 바로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으로 알려진 격황소서(檄黃巢書).
격황소서는 도덕경춘추전(春秋傳)의 글귀를 인용해 황소를 달래고 꾸짖으면서 압박하는 내용의 격문이다.
이 격문이 과연 효과가 있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반란이 진압된 뒤 최치원은 황제에게 큰 상을 받았다.
그럼에도 최치원의 토황소격문은 지나치게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
황소는 그런 격문이 있는지조차도 몰랐을 것이다. 고병이 전쟁터 후방에 그냥 붙여놓았기 때문이다.
민중의 시각에서 보면, 최치원은 반민중적 인물로서 그리 반갑지는 않다.

2부 근대의 혁명

아이티혁명: 노예반란에 성공한 최초의 흑인공화국

백인의 인종차별이 구조화된 것은 인류 역사의 기본 모순인 계급 문제 때문이다.
이들은 고대와 중세에도 주종관계로 생산관계를 유지했고, 식민지를 침탈하며 노예제도를 확대, 재생산했다.
이들에게는 노예제도와 그로 인한 백인우월주의 그리고 서구중심주의가 깔려 있다.

흑인 노예가 인구 대다수를 차지한 아이티는 두말할 필요가 없고 아이티 원주민도 아메리카 대륙의 다른 나라들처럼 유럽인의 약탈과 학살, 그리고 질병에 의해 몰살했다.
아이티는 유럽인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자유로운 개인들이 소박하게 생활하는 공간이었고, 천연자원이 풍부한 축복의 땅이었다.
그런데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가 등장하면서 역사가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아이티 독립혁명의 마지막 전투인 베르티에르(Vertieres) 전투는 18031118일 카파이티앙 근처에서 일어났다.
아이티 반군은 데살린이, 프랑스 식민지군은 로샨보가 지휘했다.
180411일 고나이브에서 생도맹그의 독립을 선언하고, 토착민의 아라왁크(Arawak)족의 말을 따서 아이티라고 이름을 지었다. 아이티는 높은 산의 땅을 뜻한다.

아이티혁명은 식민지 해방과 시민혁명으로 오늘날 아프리카 대륙의 모양세를 만든 저항의 역사를 열었다.
노예제를 완전히 폐지한 아이티혁명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범아프리카주의와 탈식민지운동에서 주요한 키워드이다.
아이티보다 일찍 독립혁명에 성공한 미국에서는 20세기에도 노예제가 존재했고, 인종 분리 철폐와 흑인 공민권을 획득하기 위해 수많은 민중이 피를 흘려야 했다.

미국 노동자 투쟁과 메이데이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미국의 노동절은 9월 첫째 주 월요일이다.
미국인은 이 월요일을 여느 휴일과 다르지 않게 보낸다.
타국에서 51일을 노동절로 지정한 것은 미국에서 벌어진 어떤 역사를 기리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 역사를 만든 미국은 51일을 굳이 피하는 선택을 했다니, 의외가 아닐 수 없다.

1886년은 오늘날까지도 미국인들의 뇌리에 노동자 대반란의 해로 남아 있다.
18865135만여 명의 노동자가 전국적 규모의 총파업으로 불타올랐다.
가장 크게 뭉친 곳은 시카고다.
무려 4만여 명의 노동자가 어거스트 스파이스(August Spies)의 지도하에 파업에 동참했다.
농장주들의 대응은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의 자리에 일용직 노동자를 채우는 것이었다.
게다가 경찰은 가만히 지켜보는 대신 53일 총을 발포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경찰의 총구에 6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중 노동자가 4명이다.
아나키스트들과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경찰의 폭력 진압에 대항하기 위해 54일 다시금 헤이마켓 광장행을 기약한다.

당국의 우려와 달리 54일은 섬뜩하리만치 잠잠했다.
어거스트 스파이스는 비폭력주의 노동운동을 지향해야 한다고 외쳤다.
헤이마켓 광장 집회는 이대로 사상자 없이 해산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폭탄이 터지면서 이 흐름은 산산조각이 났다.
이후 스파이스와 7명의 아나키스트가 살인 조장 혐의로 붙잡히고, 모두 유죄판결(일부는 사형)을 받았다. (피고인들 중 스파이스, 파슨즈(Albrt Parsons), 피셔(Adolph Fisher), 엥겔(Georg Engel), 링그(Louis Lingg)5명은 18861111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출처-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 - 어거스트 스파이스(1855~1886)| https://blog.naver.com/hategi5/220698585195)

헤이마켓 사건으로 사형당한 이들은 현대까지도 노동운동의 순교자라 불린다.
1889년 유럽의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조합 결성자들은 사회주의 인터내셔널(2인터내셔널)’을 결성하고, 51일을 기계를 멈추자”,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투쟁을 조직하자”,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해 노동자 권리 쟁취를 위해 동맹파업을 행동하자라는 세 가지 연대 결의를 실천하는 날로 지정했다.

세계 여성의 날: 그녀에게 빵과 장미를

올랭프 드 구주는 당시 사회상과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결혼은 그녀에게 종속을 위한 제도적 장치에 불과했다. 그녀는 남편을 잃은 이후로 찾아오는 혼인 기회조차 거부했다.
그녀는 결혼을 신뢰와 사랑의 무덤이라 표현했다.
그녀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아낌없이 자신을 내던졌는데, 한편에서는 여성의 사회 참여 기회와 정치권을 요구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노예제 철폐를 부르짖었다.

여성 권리 신장을 위한 그녀의 행보는 사실상 인간해방을 위한 차원으로 봐도 무방하다.
정당한 권리 주장에 대한 대가는 참혹했다.
올랭프는 단두대에 오르면서도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남긴 말 중 오늘날까지도 전해지는 유명한 말이 있다.

여성은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 연단에 오를 권리도 가져야 한다.”

프랑스 남성 중심 사회는 그녀를 단두대에 올리고, 처형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그녀의 입을 막았노라 안심했다.
1896년 알렉산드라 콜론타이(Alexandra Kollantai) 는 견학차 방문한 직물 공장에서 어린아이가 죽어 나가는 상황이 그저 흔한 일에 불과한, 그야말로 악조건의 끝인 여성 노동자 숙소 현장을 목격했다.
이 경험으로 그녀는 스스로 운명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아마 이러한 경험이 없었더라면, 1910년 국제사회주의 여성 회의에서 그녀가 정한 38일을 국경일로 제안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콜론타이는 세계 여성의 날을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오늘날에는 세계 여성의 날이 콜론타이와 클라라 체트킨(Clara Zetkin)의 공통된 제안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시각이 대중적이다.
클라라 체트킨에 의해 촉발된 신호탄을 시작으로, 1911년부터 세계 각지에서 여성들이 참정권, 노동권, 차별 철폐를 부르짖기 위해 세계 여성의 날 집회를 개최했다.
1912년 여성 노동운동가 로츠 슈나이더만(Rose Schneiderman)은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노동자는 빵뿐 아니라, 장미도 가져야 합니다.”

2018년 국내에서 시작된 미투운동으로 직장 내 성폭력 문제가 공론화된 것은 눈부신 변화다.
하지만 남성 중심사회의 벽이 너무나 견고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조건이고 연대가 충분조건이라면, 실천은 이 모든 총합이다.

1부 고대와 중세의 혁명
스파르타쿠스 반란: 혁명의 아이콘
황건의 반란: 실패한 농민혁명
황소의 난: 당나라 최대의 민중 반란
망이·망소이의 저항: 새로운 세상을 꿈꾼 민중의 반란
만적의 난: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나!
프랑스 마르셀 반란과 자크리의 난: 중세 붕괴의 서막
영국 와트 타일러의 난: 중세 붕괴의 촉진
독일 농민전쟁: 종교·정치적 대립인가, 계급투쟁인가

2부 근대의 혁명
프랑스혁명: 봉건 질서 해체와 새로운 사회 건설
아이티혁명: 노예반란에 성공한 최초의 흑인공화국
7월 혁명에서 2월 혁명으로: 혁명은 계속된다
파리코뮌: 세계 최초의 노동자 국가
미국 노동자 투쟁과 메이데이
동학농민혁명: 반봉건적·반외세적 농민항쟁
세계 여성의 날: 그녀에게 빵과 장미를

3부 현대의 혁명
러시아 볼셰비키혁명: 불타는 혁명의 연대기
여성 참정권혁명: 너무나 혁명적인 서프러제트
중국혁명: 대장정, 혁명의 씨앗을 뿌리다
쿠바혁명: 카리브해의 외로운 섬
68혁명: 혁명은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칠레 선거혁명: 실패(?)한 정치실험
베트남혁명: 불가능을 가능케 하라

배성인 저, 전국금속노동조합 기획, 혁명의 세계 반란의 역사, 나름북스, 2020

이 책은 우리가 미래를 이해하기 위해 모두가 읽어야 할 우리의 이야기. 현재 우리가 누리는 다양한 자유와 권리들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 동서양의 역사상 주요 혁명과 반란들에 대한 포괄적이면서도 대중적인 역사 교과서다. -손호철(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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