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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은 하나의 사건이다. 한 권의 책에 담긴 지은이, 만든이, 읽는이의 고뇌와 정성을 기억한다.



Title국가 이전부터 열국시대까지-≪한국 고대사≫-윤내현의 역사 새로 읽기2022-05-09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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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대사

-한국 고대사 연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윤내현 교수의 쉽게 읽는 한국 고대사-

- 머리말

일찍이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1880~1936) 선생은 어디 조선다운 역사가 있단 말인가하시면서 교과서를 비판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의 일로, 당시 우리나라에는 진정한 사학계라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우리나라에 근대 사학계가 생긴 것은 나라가 망한 뒤인 일제 시기였다.
일제하의 국사학계는 당연히 일본 중심일 수밖에 없고 그 때문에 일제 식민사학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역사는 늘 새롭게 조명되고 기술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일제 때 받은 상처 때문이라도 우리의 역사는 늘 올바른 역사정신을 바탕으로 서술되어야 한다.
예관(睨觀) 신규식(申圭植, 1879~1922) 선생은 한국사에는 한국 혼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갈파했고, 단재 신채호 선생은 혼이 담긴 역사를 새로운 역사, 신사(新史)’라 하고 낡은 역사, 구사(舊史)를 통렬히 비난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 역사에 대해서는 비판정신이 필요하다.
감히 이 책을 새로운 고대사라 칭하고자 하는 것은 예관이나 단재 선생의 그 같은 뜻에 부응했다고 자부해서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부응했으면 하는 소망에서이다.
따라서 새롭고 새롭지 않은 것은 독자의 판단에 달려 있다 할 것이다.

- 1부 국가이전시대

국가이전시대란 국가가 출현하기 이전의 사회단계를 말한다.
이 시대를 흔히 선사시대나 원시시대라 말하는데 그것은 적합하지 않다.
선사시대란 말은 당시의 사회 수준이나 문화 수준을 기준으로 시대를 구분한 용어가 아니다. 당시의 기록이 남아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기준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선사시대나 역사시대라는 말은 시대를 구분하는 보편성을 지닌 용어로는 적합하지 않다.
원시시대라는 용어는 미개한 시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인류의 초기 사회에 대해 그 시대 나름의 사회적 문화적 특성이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미개하다고 평가해버려도 좋을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원시시대라는 용어도 적합하지 않다.

국가이전사회는 무리사회, 마을사회, 마을연맹체사회 세 단계로 나뉜다.
첫째, 국가이전시대는 국가가 출현한 시대보다 훨씬 길다.
국가가 출현한 것은 불과 4~5천 년 전인데, 인류가 한민족의 활동 지역인 한반도와 만주 지역에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70만 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둘째, 이 기간에 인류사회의 기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인류사회는 마을연맹체사회 단계에 들어서면서 재산 사유제가 출현하고 추장을 중심으로 한 정치 권력이 등장해 빈부의 차이와 사회 신분의 분화가 일어나 이전의 평등사회로부터 불평등사회로 변하게 되었다.
셋째, 국가이전시대는 한반도와 만주 지역 거주민들이 한민족을 형성하기 이전에 겪었던 역사적 체험으로써 한민족 사회와 문화의 기초가 되었다.

1장 무리사회

무리사회[()사회 또는 군집(群集)사회]란 인류사회의 최초 단계로, 사람들이 아직 정착 생활에 들어가지 못하고 이동생활을 하던 시기를 말한다.
무리사회는 사회 성격 면에서 볼 때 완전한 평등사회로, 구성원들 사이에 정치적인 신분이나 경제적인 빈부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았다.
한반도와 만주에는 무리사회의 유적이 곧선사람 단계로부터 그 말기인 슬기슬기사람 단계에 이르기까지 시기별로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2장 마을사회

마을사회란 사람들이 정착 생활에 들어가 마을을 이룬 단계를 말한다.
마을을 이룬 집단은 하나의 씨족 또는 통혼 관계 등으로 결합된 몇 개의 씨족으로 구성되었는데, 그 기초 단위는 씨족이었다.
마을사회는 구성원이 혈연 집단이라는 점과 같은 지역에 거주한다는 두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한반도와 만주의 무리사회 말기 사람들과 마을사회 사람들은 같은 계통임을 보여준다.
유전자 분석에 의해서도 한반도와 만주 지역의 슬기슬기사람의 체질 요소가 현대 한국인들의 체질로 남아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와 같은 사실로 볼 때, 한반도와 만주의 마을 사회 사람들은 같은 지역의 무리사회 말기 사람들의 후손들이 주류를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이 바로 한민족의 뿌리인 것이다. 이들을 원형 한국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3장 마을연맹체사회

마을연맹체사회는 추방사회(酋邦社會, Chiefdom society)라고도 부르는 사회단계이다.
이 단계는 사회 발전 과정에서 마을사회 단계와 국가사회 단계 사이에 위치한다. 한국어에서 여러 마을이 모인 일정한 지역을 고을이라고 하므로 이 단계의 사회를 고을사회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마을사회로부터 마을연맹체 사회의 변화는 한국과 중국의 경우 지역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서기전 4000년경부터 서기전 2500년경 사이에 일어났다.
마을사회로부터 마을연맹체사회로의 변화하면서 첫째, 평등사회가 불평등사회로 변화되었다. 둘째, 마을연맹체사회에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마을연맹체사회에서는 농경이 경제생활에서 이전 시대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 2부 고조선시대
1장 고대국가의 출현
2장 고조선의 정치
3장 고조선의 경제와 사회
4장 고조선의 문화
5장 고조선의 대외 관계

- 3부 열국시대
1장 열국시대의 개시와 변천
2장 동부여의 정치와 대외 관계
3장 고구려의 세력 확장
4장 읍루, 동옥저, 동예, 최씨낙랑국, 대방국, 말갈
5장 한의 정치와 사회 변화
6장 백제 초기의 세력 확장
7장 신라 초기의 세력 확장
8장 가야의 정치와 흥망
9장 열국시대의 정국 변화
10장 열국시대의 경제와 사회
11장 열국시대의 문화
12장 열국시대의 대외 관계

- 해제: 21세기 겨레가 나아갈 길을 밝히는 책-이덕일

한국 사회에는 이른바 강단이라고 불리는 역사 전문가 집단이 있다.
대부분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사람들을 일컫는 용어로써 대학의 사학과와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 동북아역사재단 등 역사 관련 국가기구를 독차지하고 있는 집단이다.
이들은 중화 사대주의 사관과 일본 제국주의의 황국사관(皇國史觀)-고대 야마토왜(大和倭)의 왜왕이 일본뿐만 아니라 고대 한국도 지배했다는 관점-으로 한국을 바라보는 식민사관의 노예가 된 집단이다.
이 분야에 관한 한 한국 사회는 1945814일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해방공간의 역사학자들은 대략 셋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하나는 독립운동가들의 역사학을 계승한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일제강점기 사회주의를 추구했던 사회주의 역사학자들인데, 주로 경제사적 관점에서 역사를 연구했기에 사회경제사학자들이라고도 불렀다.
마지막이 조선총독부 직속의 조선사편수회에서 일본인들의 지도를 받으며 한국사를 난도질했던 식민사학자들이었다.

친일 세력의 재집권과 남북분단으로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모두 역사학계에서 제거되었다.
사회주의 계열의 역사학자들은 대거 월북해 북한 역사학계를 형성했다.
남은 것은 조선총독부의 녹을 먹으며 한국사를 난도질했던 이병도, 신석호 등의 식민사학자들이었는데, 이들은 친일 세력의 재집권과 남북분단 상황을 악용해 남한의 역사학계를 완전히 장악하였다.
그 결과, 아직도 남의 눈, 그것도 일본 제국주의의 눈으로 우리를 보는 역사관이 남한 역사학계를 독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근래에 이들은 중화 패권주의 사관을 추종하고 있는데, 이는 남한 강단사학계가 갖고 있는 이념과 인물 구조상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식민사학은 이기백에 의해-한국사신론- 실증사학이라는 새로운 이름표를 달고 남한 역사학계를 장악, 막강한 카르텔을 구축했다.
• 이들은 정치 관료계는 물론 언론계까지 장악하고 자신들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역사학자들을 배척하고 제거해왔다.
이 카르텔은 남북분단이라는 숙주를 먹고 기생한다는 특징도 있다.
비단 현대사만이 아니라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전 시기에서 남한의 역사학과 북한의 역사학이 크게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단사학자들은 윤내현 교수를 간첩 혐의로 신고했다.
윤내현 교수가 하버드대학교를 수학하고 귀국 후 그간의 연구결과인 고조선 연구를 간행했는데 여기서 북한학자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를 보았다는 이유였다.
언필칭 실증사학을 입에 달고 살던 전문가 집단이 고조선 연구를 실증적으로 반박하는 대신 안기부에 신고하는 길을 선택했다는 것은 실증운운하는 이들의 주장이 모두 허구이자 일제강점기 밀정과 다를 바 없는 존재임을 스스로 말해주는 것이다.
더구나 윤내현의 고조선 연구리지린의 고조선 연구는 그 내용에 있어, 고조선이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주장대로 평안남도 일대의 작은 소국이 아니라 거대한 대륙국가였다는 사실만 같을 뿐 고조선의 서쪽 강역이나 한사군의 위치 등에 대해서는 다른 내용이 많은 데도, 조선총독부의 교시인 반도사관을 벗어나는 역사관은 용납할 수 없다는 굳은 의지로 안기부에 신고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 ≪한국고대사는 윤내현 교수가 학자로서 평생 공부했던 정수를 한 권에 요약한 책이다.
이 책의 특성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길고 복잡하고, 수수께끼도 많은 한국 고대사의 계통을 잡은 책이라는 점이다.

일제 강점기는 빼앗긴 영토를 되찾기 위해 싸웠던 영토전쟁의 시기이자 역사 해석을 두고 다투었던 역사전쟁의 시기이기도 했다.
그 역사전쟁에서 우리가 패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백암 박은식, 단재 신채호 선생 같은 학자 겸 독립운동가들이 전면에서 싸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백암 박은식 선생과 단재 신채호 선생 등 역사전쟁의 선봉에 섰던 선열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윤내현 교수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우리 역사는 바로 설 것이다.
그런 인식의 확산에 한국고대사가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윤내현, 한국 고대사, 만권당, 2021

윤내현 : 1939년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났다. 단국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학교 대학원 동아시아역사언어학과에서 수학했다. 단국대학교 사학과 교수와 박물관장·부총장·대학원장 등을 지냈으며 문화관광부 문화재위원, 단군학회 회장, 남북역사학자 공동학술회의 남측단장 등을 역임했다. ‘오늘의 책, 일석학술상, 금호학술상, 국무총리상 등을 수상했다. 고조선에 대한 연구로 한국 고대사 연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으며, 중국의 원시시대, 상주사(商周史), 중국사(3), 고조선 연구(·), 한국 열국사 연구, 한국 고대사 신론, 고조선, 우리 역사의 탄생, 우리 고대사: 상상에서 현실로, 사료로 보는 우리 고대사등 많은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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