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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은 하나의 사건이다. 한 권의 책에 담긴 지은이, 만든이, 읽는이의 고뇌와 정성을 기억한다.



Title≪사기, 2천 년의 비밀≫-사마천이 만든 중국사, 이덕일2022-05-07 07:46
Writer

사기, 2천 년의 비밀

- 머리말

□ ≪사기사마천이 쓴 본문도 중요하지만 삼가주석(三家注釋)’으로 대표되는 주석도 본문 못지않게 중요하다.
• ≪사기가 나온 이래 수많은 학자들이 그 의미와 음운, 지명에 대해 여러 주석을 달았는데, 주석들을 집대성한 것이 삼가주석이다.
삼가(三家)사기에 배인(裴駰)이 주석을 단 집해(集解)와 사마정(司馬貞)이 주석을 단 색은(索隱)그리고 장수절이 주석을 단 정의(正義)를 뜻한다.
중국 남북조시대 남조 송(, 420~479)의 학자 배인은 삼국지에 주석을 단 부친 배송지(裴松之)와 손자 배자야(裴子野)와 함께 사학3(史學三裴)라고 불리는 저명한 학자 집안 출신으로 방대한 사기집해를 지었다.
• ≪사기색은의 편찬자 사마정과 사기정의의 편찬자 장수절은 모두 당나라 때 학자였으니 사기에 대한 주석의 집대성이 당나라 때 완성되었음을 뜻한다.이 또한 세계 제국 당나라의 융성함을 보여주는 지표의 하나다.

사마정은 사마천이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삼황(三皇)의 사적을 일부러 삭제했음은 알지 못했다.
삼황 또한 소호(少昊)의 경우처럼 동이족이 아주 명백했기에 사마천이 일부러 삭제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삼황의 세 번째였던 황제(黃帝)를 떼어내 <오제본기>의 첫머리로 삼았다.
황제와 치우(蚩尤)의 싸움은 동이족 내부의 다툼이었지만 동이족임이 널리 알려진 치우와 싸운 황제를 하화족(夏華族)의 시조로 만들어 하화족의 천하사인 사기를 저술한 것이었다.
이는 역사를 저술한 것이 아니라 역사를 만든 것, 즉 저사(著史)가 아니라 작사(作史)의 한 형태였다.

사마천의 이 의도는 그 자신도 예상치 못했을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다.
반고(班固)한서(漢書)가 한나라의 역사만을 서술한 단대사(斷代史)라면 사마천의 사기는 중국사의 시작부터 자신이 살던 한나라 때까지를 서술한 천하사였다.
따라서 중국사의 시작부터 이해하려면 최초의 천하사인 사기를 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2천 년의 세월이 흘렀다.
나도 삼가주석까지 포함한 사기원전 강독을 하지 않았다면 사마천의 특정한 의도를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사마천의 특정한 의도를 설정하고 꼼꼼하게 들여다본 사기의 세계는 동이족의 역사를 하화족의 역사로 바꾸어 놓은 것이었다.
오제(五帝)가 모두 동이족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夏殷周) 삼대도 모두 동이족의 역사였다. 뿐만 아니라 <세가>도 대부분 동이족의 역사였다.
• ≪사기를 강독하고 여러 연구자들과 신주 사기를 연구하면 연수할수록 과연 하화족(夏華族)의 역사는 존재하는가에 대해 깊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하화족의 역사란 사마천이 창작해 낸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동이족의 관점으로 사기를 바라본 사기 2천 년의 비밀은 시작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은 앞선 세대의 노력 덕분에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지만 그 정신세계까지 성장했는지는 의문이다.
아직도 일본 제국주의 시절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 만든 식민사학의 미망에 빠져 헤매다 보니 정신세계는 오히려 후퇴한 듯한 느낌이 든다.
이제 우리 사회는 급속도로 성장한 외형 못지않게 내면세계를 풍부하게 해야 할 때다.
그 시작은 우리의 원뿌리를 찾는 것, 곧 우리 선조들의 역사를 찾는 데서 시작해야 함은 물론이다.

 

한족의 정통 계보를 스스로만든 사마천!

역사서는 사실의 기록인가, 창조인가?”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 소장은 사료에 대한 철저하고 세심한 고증, 대중과 호흡하는 집필가로서 본능적인 감각과 날카로운 문체로 한국사에서 숨겨져 있고 뒤틀려 있는 가장 비밀스러운 부분을 건드려 왔다. 언제나 발표하는 저술마다 논쟁의 중심에 섰으며 역사 인식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해 왔다. 사기, 2천 년의 비밀또한 그동안 중국 최고의 역사서로 인정받아 온 사기에서 한족의 정통 계보가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 살피고, 그 과정에서 사마천의 숨은 의도를 파헤치고 있다.

현재 중국은 중국공산당이 직접 주도하는 국가 차원의 여러 역사공정을 진행하고 있다. 그 핵심은 현재 중화인민공화국 내에서 발생했던 모든 역사는 하화족의 역사라는 것이다. 하화족은 곧 한족을 가리키는데, 사실 한족은 실체가 없던 것을 사마천이 조물주처럼 창조해 낸 것이다. 그리고 이전의 동이문화를 하화문화로 편입시키는 역사공정을 국가 주도로 펼치고 있다. 중국은 이러한 논리에 따라서 자신의 선조들이 쓴 사기, 한서, 후한서, 삼국지등의 고대 사사(四史)는 물론 이후의 모든 정사에서 외국 열전에 서술된 고조선, 고구려, 발해 등의 역사를 중국사라고 우기고 있고, 심지어 만주족이 세운 금(), ()의 역사까지도 중국사라고 강변하고 있다. 중국의 역사공정은 실존했던 국가뿐만 아니라 국가가 수립되기 이전에 존재했던 고대 문명, 문화까지도 하화족의 문화라고 우기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현재의 역사공정은 사마천에서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2천 년 전 사마천은 중국의 시작부터 한대에 이르는 천하사를 서술하기 위해 편년체가 아닌 기년체라는 역사 서술 체계를 만들었다. 그리고 동이족임이 명백한 삼황을 지우고 황제(黃帝)를 중국 역사의 시작으로 삼았다. 특정한 의도를 담아 저사(著史)가 아니라 작사(作史)를 한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중국 최고의 역사서라 불리는 사기의 실체였다.

- 본문에서

양계초는 사마천을 사학계의 조물주라고 불렀다. 이 말은 과장이 아니다. 사마천은 황제가 아니었던 항우(項羽)의 사적을 <항우본기>로 편성해 황제의 반열에 올려놓았고, 제후가 아니었던 공자를 <공자세가>로 편성해 제후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반면 반고는 한서에서 항우를 본기는커녕 일종의 반란자들의 사적인 <진승 항적열전(陳勝項籍傳第)>[항우의 이름이 적(), 자가 우()]에 수록했다. 반고로서는 항우를 본기에 상재하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든 파격이었다. - 1장 기전체 역사서의 탄생

모계사회가 부계사회로 전환되면서 성()이 나뉘어져 씨()가 다시 나타나는데, 하상주(夏商周) 3대 때 ()는 귀족 종족제도의 대표적 칭호가 되었다. 그러나 하상주 3대 때에도 여자는 성()을 칭했고, 남자는 씨()를 청했다. 이후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나아가면서 성도 아버지의 것을 따르게 되었고, 같은 성을 가진 가족구성원들이 각지에 퍼져 살게 되면서 성() 외에 씨()를 갖게 되었다. ()이 한 가족이 후대에 공동으로 사용하는 칭호라면 씨()는 성() 중에서 갈라져 나간 일부가 사용하는 것으로 나누어졌다. - 2장 중국 고대사는 동이족의 역사

사마천은 앞서 임금을 소호의 손자인 제곡의 아들로 설정했다. 그리고 오제의 마지막으로 설정한 인물이 제순인데, 제요로부터 선양을 받는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선양 장면을 자세하게 묘사했다. 제왕은 천하의 인재를 두루 수소문해 발탁해야 하며, 또한 제위를 자식이 아니라 이렇게 발탁한 인재 중에서 가장 어질고 능력이 있는 현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선양의 이상을 설파하기 위해서였다. - 3장 오제를 찾아서

현재 중국학자들은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래된 하왕조(夏王朝)는 황토 고원상에 건립되었는데, 이들이 스스로 중앙의 대국으로 인식하면서 ()’ 자를 중국(中國)’의 의미로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중국이라는 의미는 자신들을 천하의 중심으로 생각하고 나머지 민족이나 나라들을 이()로 생각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하나라가 자신들을 중국으로 여겼다는 사료적 근거는 찾기 힘들다. - 4장 하··주 삼대의 시조들

천하를 주유하며 주나라의 왕천하(王天下)를 설파했던 공자는 자신이 추구하던 도가 세상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은나라 후예가 주나라 천하를 설파했음에도 무위에 그친 것이다. 공자는 자공에게 자신의 꿈 이야기를 전했다.
하나라 사람들은 동쪽 계단에 빈소를 차리고, 주나라 사람들은 서쪽 계단에 빈소를 차리고, 은나라 사람들은 두 기둥 사이에 빈소를 차리는데, 공자가 지난 밤 꿈에 양 기둥 사이에서 좌전, 즉 제사를 받는 꿈을 꾸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은나라 사람의 후예라고 덧붙인 것이다. 자신은 동이족 국가 상왕조의 후예라는 것이 공자의 마지막 말이었다.

나는 은나라 사람인데, 지난밤에 두 기둥 사이에 제사 받는 꿈을 꾸었다. 밝은 임금이 나오지 않았는데, 천하에서 누가 나를 종주로 삼겠는가? 아마 곧 죽으려나 보다.” 예기<단궁>

공자는 자신이 은나라 사람의 후예라는 사실
, 곧 동이족이라는 사실을 마지막 말로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춘추필법으로 화이관(華夷觀)을 만든 공자 자신이 이() 라는 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 5사기<세가>의 세계

- 나가는 글

역사를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관점의 문제다. 누구의 눈으로 역사를 보는가의 문제다.
우리는 지끔껏 남의 눈으로 우리를 보았다.
남의 눈이란 크게 둘인데 하나는 조선조 주자학자들의 중화 사대주의 사관이고, 다른 하나는 일제 식민사학들의 친일 식민사관이다.

조선의 주자학자들, 특히 주자학의 도그마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실학자들까지 끝내 중화 사대주의 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조선의 실학자들마저 주자학의 미몽(迷夢)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보면 구각(舊殼)을 깨고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조선조 유학자들이 끝내 깨지 못한 주자학의 도그마는 국망(國亡) 직전의 충격 속에서 나철, 김교헌, 신채호 같은 유학자들이 국조(國祖) 단군을 재발견하면서 깰 수 있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이었던 백암 박은식 선생은 만주족의 역사까지도 우리 역사의 범주로 포괄시키는 역사관의 혁명을 주장했다.
이는 곧 동이족의 관점으로 우리 역사를 바라본 것으로 발해는 물론이고 금(, 1115~1234)과 청(, 1616~1911)까지도 우리 역사의 범주에 포함시킨 것이었다.
그래서 조선과 청의 멸망을 두고 우리 역사에서 남국과 북국이 동시에 망한 것은 처음이라고 갈파했다.
그러나 그의 방대한 역사관을 계승한 역사학자를 지금 이 땅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중국 전야(田野)고고학의 선구자 양사영(梁思永, 1904~1954)앙소(仰韶)문화와 용산(龍山)문화 그리고 상(, )문화가 서로 계승관계에 있다는 삼첩층(三疊層)문화이론을 내세웠는데, ()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동이족의 역사이니 양사영의 삼첩층문화이론은 중국상고사가 동이족의 역사라는 선언이었다.
양사영이 삼첩층 문화이론을 정립해 중국 상고사는 동이족의 역사임을 천명했지만 한국의 역사학계는 아지곧 반도사관의 틀에 빠져 동이족의 역사는 우리 역사가 아니다라고 부인하는 중이다.
 

중국에서 하··(夏商周) 단대공정(單大工程)이라는 역사공정을 수행한 근본 이유는 전설상의 하()를 실존왕조로 만들려는 것이었다.
그래야 동이족 국가임이 명백한 상(, )나라로부터 중국사가 시작하는 것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기 2천 년의 비밀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사마천의 사기에서 서술한 계보에 따라도 하()와 주()는 모두 이족(夷族)의 국가다.
남조(南朝) 유송(劉宋)의 유의경(劉義慶)5세기에 편찬한 세설신어(世說新語)에도 (, 하나라의 시조)는 동이족이고 주 문왕은 서강(西羌)족이다라는 구절이 있는 것처럼 하··(夏商周)는 모두 이족의 국가였다.
()나 주()가 하화족의 국가라는 개념이야말로 후대에 만들어진 개념이다.
• 이족의 실체는 중원에 널리 있지만 하족의 실체는 모호하다.

이덕일, 사기, 2천 년의 비밀, 만권당, 2022

이덕일 : 1차 사료를 바탕으로 조선 후기 노론사관과 일제 식민사관이 변형시킨 한국사의 원형을 현재에 되살리기 위해서 노력하는 우리 시대의 문제적역사학자. 방대한 문헌 사료를 치밀하게 분석해서 고대사부터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해방되지 못한한국사의 여러 문제를 지적하고 남의 눈이 아니라 나의 눈으로 역사와 사회를 보자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1997)를 필두로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이성계와 이방원, 정도전과 그의 시대,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1, 2, 조선 왕 독살 사건 1, 2, 이회영과 젊은 그들, 정조와 철인 정치의 시대 1, 2, 조선 왕을 말하다 1, 2, 윤휴와 침묵의 제국,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 잊혀진 근대, 다시 읽는 해방 전사, 근대를 말하다,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칼날 위의 역사, 우리 안의 식민사관,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 동아시아 고대사의 쟁점, 한국 독립전쟁사의 재조명, 조선왕조실록 1~4, 이덕일의 한국통사,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해역), 북한학자 조희승의 임나일본부 해부(주해) 등 치열한 역사의식으로 무장한 50여 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현재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으로 21세기 한국을 이끌어갈 새로운 역사관의 정립을 위해 한 손에는 사료를, 다른 손에는 펜을 들고 총성 없는 역사 독립 전쟁을 치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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