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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은 하나의 사건이다. 한 권의 책에 담긴 지은이, 만든이, 읽는이의 고뇌와 정성을 기억한다.



Title≪역사와 문화로 읽는 나무사전≫강판권2022-01-13 08:07
Writer

역사와 문화로 읽는 나무사전

머리말

나무라는 말이 좋다. 받침도 없고 격음도 없이 단아하게 열려 있는 이 단어에 사실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이야기가 담겨 있는가. 겉씨식물인 은행나무와 소철이 지구상에 나타난 것은 대략 35천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 유인원의 역사가 기껏 35천 년 전이니, 인류는 나무가 나고 죽고를 거듭해 지하에 수십 킬로미터의 석탄으로 쌓인 뒤에야 나타난 셈이다. 수렵에서 농경으로, 석기에서 철기로, 지금의 최첨단 과학시대로 접어든 뒤에도 나무는 3억 년 전의 표정을 간직하고 있다. 나무의 존재감도 약해지지 않는다.
마치 물과 공기가 없으면 살지 못하는 것처럼 나무는 정원수와 가로수로 인간들 곁에 머물고 있다. 때론 그 모습이 가냘파 보이기도 한다.

나무는 아주 오랫동안 자연과학의 영역에 머물러왔다. 문명의 반대편인 자연의 대표자로서, 집을 짓는 목재와 몸에 좋은 약재를 연구하는 토목학과 약초학의 대상으로서 의미를 부여받았다. 도구적 상상력이 나무에서 신화적인 생명력과 인간과 관계 맺으면서 살아온 나무의 역사성을 배제하고 제거해왔다.
하지만 인류가 나무를 이처럼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은 100~200년에 지나지 않는다. 그보다 훨씬 긴 세월 동안 인간은 나무를 두려움과 정의의 존재로 여겨왔다.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을 사는 생명에 대한 예의를 지켰다.
당목과 신수는 마을마다 넘쳐났다. 나무로 만든 생활도구들은 정신을 맑게 해준다고 믿었고, 머리맡에 심고 평생의 친구로 삼을 줄도 알았다. 나무에 대한 고마움과 애정이 글과 그림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그것들이 쌓여 정신문화의 축을 이루었다.
나무를 제대로 알고자 하는 사람은 나무에 얽혀있는 이러한 다양한 문화적 표식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어느새 나무의 고고학과 계보학에 빠져들었다.

이 책, 역사와 문화로 읽는 나무사전은 그러한 공부의 흔적을 담고 있다.
나는 나무를 스승으로 모시는 데 40여 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 세월 동안 고향 창녕과 계명대학교에서 수없이 많은 나무를 봤지만, 마음이 없었던 탓에 나무는 내 존재와 별 관계 없는 그저 하나의 식물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나무를 스승으로 삼기 시작한 것은 나무를 하나의 생명체로 인식하면서부터다.
그러면서 주위에 있는 나무를 한 그루 한 그루 세기 시작했다. 나무를 세면서 각각의 나무가 살아 있는 존재이자 개별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나무에 대한 이러한 발견은 다른 사람들이 벌써 알고 있는 사실이 있더라도 나에겐 하나의 혁명이었다.

나는 그간 나무 공부하면서 한국의 식물학과 관련된 기초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래서 다짐한 것이 탓하지 말고 직접하자는 것이었다.
이번 책도 내가 나무 공부하면서 만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책은 단순히 나무 이름의 유래에 관한 내용이 아니다. 그동안 확인할 수 있었던 각종 자료를 통해 나무 이름은 물론 학명 분석, 관련 인문학 지식 등을 함께 정리했다.

20101
궁산자락에서
쥐똥나무

소철과
소철(Cycas revoluta Thunberg) 살아 있는 화석

소철은 아열대 지방의 나무이다. 더워야 잘 자라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살 수 없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이 거실 화분에 키울 만큼 인기가 있다.
소철과에 하나밖에 없는 외로운 존재인 소철은 천 년 이상 생존하는 살아 있는 화석이다.
겉씨식물에 속하는 소철(蘇鐵)은 여느 나무와 달리 가지가 없다. 그런 까닭에 나무이면서도 목재 가치는 없다.
이처럼 독특한 모습을 지닌 소철의 장점은 사철 푸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강인함이 특징이다. 암수가 따로 있는 이 나무는 이름부터 강한 느낌을 준다.
중국 명대 왕기(王圻)가 편찬한 삼재도회(三才圖繪)에 따르면 한자 이름인 소철은 못질해도 살아난다는 뜻이다.
소철의 이름은 일본 사람들이 붙인 것으로 중국 동남부와 일본 남부가 소철의 원산지 중 하나이니 근거가 있는 소리다.
이수광(李睟光, 1563~1628)지봉유설(芝峯類說)에도 같은 내용이 언급된다.

왜국에 사는 이 나무는 소철이다. 줄기가 곧고 곁가지가 없으며 잎은 끝에서 자라 우산처럼 사방으로 펼쳐진다. 나무가 불에 그을려 바싹 말라도, 뿌리째 뽑혀 3~4일 볕을 쬐어도, 나무 전체에 못을 쳐도 땅에 심기만 하면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다. 고로 소생한다고 이름했다라고 하는 대목이다.

소철나무가 쇠약할 때 철분을 주면 다시 살아난다는 전설은 이런 이야기의 변형인 셈이다. 전해오는 이야기는 과장되기 마련이지만 소철나무가 철분이 풍부한 땅에서 잘 자란다는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녹슨 못이나 고철 등을 관상용 소철 화분에 묻어두면 나무가 잘 자란다.

오석(吳石)의 시에서 소철의 특징을 간파할 수 있다.

천 년의 나무 꽃이 피길 바라고
백 년의 벙어리 말하길 비네
만약 이 말이 어떤 나무와 관계 있는가를 묻는다면
힘센 줄기 비취 잎이 수많은 가정에 가득하네

 

소나뭇과
소나무(Pinus densiflora Siebold et Zuccarini) 어머니와 같은 존재

소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설화가 남겨진 나무다. 그만큼 우리에겐 각별한 존재다.

성주대신아 지신오 / 성주 고향이 어디메냐 / 경상도 안동 땅에 / 제비원에 솔 씨 받아 / 소평 대평 던져 떠니 / 그 솔 씨가 자라나서 / 밤이 되면 이실 맞고 / 낮이 되면 태양 맞아 / 그 솔 씨가 자라나서 / 소보동이 되었구나 / 소보동이 자라나서 / 대보동이 되었구나 / 그 재목을 / 왕장목이 되었구나 / 그 재목을 내루갈 제 / 서른서이 역군들아 / 옥똑끼를 울러 미고 / 서산에 오라 서목 메고 / 대산에 올라 대목 메고 / 이 집 돌 안에 재여놓고 / 일자대목 다 모아서 / 굽은 놈은 등을 치고 / 곧은 놈은 사모 맞차 / 하개 서개 터를 닦아 / 초가삼간 집을 짓고 / 사모에 핑걸 달고 / 동남풍이 디리 불며 / 핑경 소리 요란하다 / 아따 그 집 잘 지었다 / 그것 모도 거기 두고 / 시간 살이 / 논도 만 석 밭도 만 석 / 해마다 춘추로 부라 주라 / 묵고 씨고 남는 것은 / 없는 사람 객을 주자

 

소나무의 줄임말은 로 뜻은 으뜸이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나무 중에서 소나무를 으뜸으로 여겼음을 말해준다.
한자는 송()이다. 송은 목()과 공()을 합한 형성문자로, 중국 진()나라 때에 만들어졌다. 특히 중국 최초의 황제 진시황제는 소나무를 아주 좋아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소나무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시황제본기(始皇帝本記)ㆍ봉선서(封禪書)>에 따르면, 그는 태산(泰山)에 올랐다가 소나기를 만났다. 갑자기 내린 비라 피할 곳이 마땅치 않던 터에 인근의 나무에 들어가 비를 피했다. 소나기가 그치자 진시황제는 그 나무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오대부(五大夫)’ 벼슬을 내렸는데 이 나무가 바로 소나무다. 이런 이야기는 세조와 관련한 속리산의 정이품송(正二品松, 천연기념물 제103)과도 비슷하다.

진시황제는 소나무를 사랑했지만 대규모 토목공사에 엄청난 소나무를 남벌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 ≪사기에 진나라 시대 산에는 나무가 없었다는 기록이 남겨진 것만 봐도 공사에 들어간 나무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만하다.
병마용 건설에도 엄청난 양의 소나무가 사용되었다.
진시황제의 소나무 사랑은 진나라의 수도 함양의 가로수가 소나무였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소나무를 가로수로 심은 것은 늘 푸른 소나무의 기상과 자신의 모습을 견주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시황제는 소나무에 금과 옥을 입혀서 서안(西安)에 저 유명한 아방궁(阿房宮)을 짓기도 했다. 동서로 약 700미터, 남북으로 120미터에 이르는 2층 건물로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기원전 207년 항우가 진나라를 멸망시켰을 때 불에 타버렸는데, 그 불길이 3개월 동안 계속되었다 한다.

학명에는 소나무의 원산지가 한국임을 알려주는 기록은 없다.
네덜란드 식물학자 지볼트(Siebold, 1796~1866)와 독일 식물학자 주카리니(Zuccarini, 1797~1848)가 붙인 소나무의 학명 중 피누스(Pinus)는 캘트어로 을 의미하고, 덴시플로라(densiflora)빽빽하게 돋아나는 꽃이라는 뜻이다.
소나무의 다른 이름도 적지 않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춘양목(春陽木)’으로, 경상북도 춘양에서 빌린 이름이다. 이는 춘양과 가까운 울진이나 봉화 등지에서 생산된 소나무를 철도가 있는 춘양에서 모아 다른 곳으로 보냈기 때문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소나무는 주로 울진 등지에서 자라는 금강송(金剛松)’이다. 금강송은 금강석처럼 아주 단단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금강송이나 춘양목은 곧게 자라면서도 껍질 색깔이 붉다. 그런 까닭에 춘양목을 비롯한 한국의 소나무를 적송(赤松)’이라 부른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적송을 일본에서 부르는 이름으로 알고 있지만, 중국에서도 그렇게 불렀다. 소나무 중에는 안강형처럼 껍질이 붉지 않은 것도 있다.
우리나라 소나무는 육지에서 자라서 육송(陸松), 잘 빠진 여자의 몸매와 닮아 여송(女松)이라고도 한다.
소나무를 구분하는 방법 중 하나로 껍질 말고도 잎을 보면 알 수 있다. 한국의 소나무는 한 묶음의 잎이 두 개다.

한국인에게 소나무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다.
솔바람은 보통 사람에게는 여름에 땀을 식혀주는 존재인 반면, 시인에게는 번뇌를 씻어주는 해탈의 바람이자 가락이다.
눈 내린 소나무에서 나는 소리는 어떨까? 이황(李滉, 1501~1570)은 다음과 같이 읊었다.

눈 쌓인 땅에 바람이 일어 밤기운 차가운데
빈 골짜기 솔숲 사이로 음악 가락 들려오네
주인은 분명 모산의 은사로
문 닫고 누워 즐거이 들으리라

장미과
해당화(Rosa rugosa Thunberg) 모든 꽃의 기준

이미자의 노래 <섬마을 선생님>은 해당화가 주로 어디에 사는지 알려준다.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
열아홉 살 섬 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 선생님
서울에는 가지를 마오 가지를 마오

해당화(海棠花)는 이름에서 이 꽃이 바닷가에 산다는 것을 알려준다.
갈잎떨기나무인 해당화는 장미를 닮았다. 줄기에 가시가 있는 것도 그렇고, 꽃도 장미와 비슷하다.
툰베르크가 붙인 학명 중 로사(Rosa)장미를 의미하는 로돈(rhodon)붉음을 뜻하는 켈트어 로드(rhodd)에서 유래했다. 또 다른 학명 루고사(rugosa)주름이 있다는 뜻이다. 이는 잎 모습을 두고 붙인 이름이다.
강희안의 양화소록에는 사계화(四季花)’라는 이름으로 나오는데, 즉 꽃이 사계절 동안 피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해당화의 다른 한자 이름도 많지만 그중 붉은 옥을 뜻하는 매괴화(玫瑰花)도 있다.
강희안은 꽃 키우는 방법을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해당화를 기를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 이유는 해당화가 모든 꽃의 기준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어권에서는 해당화의 원산지를 터키와 일본으로 보고 있다.
현재 노란해당화(Rosa xanthina Lindley)는 중국 원산으로 보나, 송대 진사가 편찬한 해당보(海棠譜)에는 해당화를 외국에서 들여온 나무로 적고 있다.
당나라 단성식이 지은 유양잡조(酉陽雜俎)에 따르면 나무 이름에 해류(海柳), 해석류(海石榴)처럼 해()자가 들어갈 경우 수입한 것으로 여긴다.
해당화는 이전까지 촉나라에서 아주 많이 심었지만, 송대에는 북쪽의 주요 수도는 물론 강남지역에서 앞다투어 심었다. 당시 해당화 한 그루의 값은 수십 금에 달했다.

당나라의 시성(詩聖) 두보는 해당화가 많았던 촉 땅에 오랫동안 머물렀지만 해당화에 대한 시를 한 편도 짓지 않았다. 사람들은 두보를 무정하다고 평가했지만 그가 해당화 관련 시를 짓지 않은 것은 어머니의 이름이 해당 부인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일반 지식인들은 해당화를 뜰에 심어 즐겼다. 당나라 시인 한악(韓渥, 844~923)도 그중 한 명이다.

많은 달이 뜰 안을 비추는데
해당화 꽃은 저절로 떨어지네
홀로 서서 한가한 계단을 굽어보니
바람 따라 그네 끈이 움직였네

해당화의 다른 이름은 수화(睡花), 잠자는 꽃이다.
잠자는 꽃은 다름 아닌 양귀비를 말한다.
당나라의 현종은 어느 날 침향정(沈香亭)에서 양귀비를 불렀다. 그러나 양귀비는 지난 밤 마신 술에 취해 일어날 수 없었고, 힘센 사람을 불러 부축받고서야 겨우 침향정에 도착했다. 현종 앞에 도착한 양귀비는 여전히 술기운과 분 냄새를 풍겼으며, 머리카락도 헝클어지고 비녀도 제자리에 꽃혀 있지 않았다. 그녀는 도저히 인사를 올릴 수 없었다. 그러나 황제는 그런 양귀비의 모습을 보면서 화를 내기는커녕 웃으면서 그대는 아직도 술에 취해 있느냐라고 묻자, 양귀비는 해당은 잠이 부족할 따름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양귀비는 스스로를 해당화에 비유한 것으로 이는 냉재야화(冷齋夜話)에 나온다.
현종은 양귀비를 말을 알아듣는 꽃’, 해어화(解語花)’라 불렀다. 이에 해어화는 미인을 일컫는 대명사로 사용되었다.

붉게 익는 해당화 열매는 크기가 앵두만 하다.
중국 송나라 소식, 즉 소동파도 해당화를 무척 좋아했다.
그는 황주에 귀양 가서 정혜원(定慧院)의 동쪽에 살았다. 그곳에서 그는 많은 꽃 가운데 해당화를 발견했다. 애초에 그곳 사람들은 해당화를 귀히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소동파가 해당화와 관련해 장편의 글을 짓자 이때부터 사람들은 돌에 새길 만큼 해당화를 좋아했다.
소동파 역시 다른 어떤 글보다 해당화를 읊은 글을 좋아했다. 그는 강소성 의흥에서 직접 해당화를 심고 즐겼다.
중국 공산당 지도자였던 주은래도 남쪽에서 중요한 회의를 할 때 해당화를 보면서 긴장을 풀었다.

당나라 시인 설도(薛濤, 768~831?)<해당화 계곡>도 그 꽃의 아름다움을 잘 전하고 있다.

봄은 여기 해당화 꽃노을을 드리워놓았나니
맑은 물에 헤엄치는 물고기도 꽃빛이 물들어 있다
인간세상 사람들은 꽃의 영묘한 아름다움을 몰라
모래 위에 붉게 염색한 비단을 펴 말려 꽃과 경쟁하고 있다

 

두릅나무과
송악(Hedera rhombea Bean) 소가 잘 먹는 소밥나무

송악은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없다. 더욱이 덩굴성이기 때문에 나무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다.
영어로 Ivy라 표기하듯이 담쟁이덩굴과 같은 성질을 지닌다. 그러나 담쟁이덩굴은 잎이 떨어지는 반면 송악은 늘 푸른 나무이다.
이 나무 이름은 송악(松岳)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주로 해안과 도서지방의 숲속에서 자라는 송악을 담장나무라 부른다. 이는 가지와 원줄기에서 기근이 자라면서 다른 물체에 붙어 올라가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남쪽 지방에서는 소가 잘 먹는다고 소밥나무라고도 한다.

영국 출신의 식물학자 빈(W. J. Bean, 1893~1947)이 붙인 학명 중 헤데라(Hedera)유럽산 송악을 뜻하고, 롬베(rhombe)능형(菱形)’을 의미한다. 능은 마름과에 속하는 마름으로, 송악의 생김새가 마름과 닮아서 붙인 이름이다.
송악을 뜻하는 한자 중 파산호(爬山虎)는 송악의 성질을 가장 잘 드러내는 말이다. 산에 오르는 호랑이라는 뜻으로 송악이 덩굴성이면서 늘 푸르기 때문에 호랑이에 비유한 것이다.
또다른 한자인 용린(龍鱗)’, 즉 용의 비늘은 절벽에 붙어 있는 이 나무의 겉모습이 마치 용트림하는 듯해서 빌린 이름이다.

열매는 다음해 6월에 검은색으로 익는다. 남쪽에 살지 않는다면 열매를 보기란 쉽지 않다. 송악 자체를 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이 나무가 사는 곳이 대부분 암벽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송악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송악 천연기념물(367)이 살고 있는 전북 고창 삼안리다. 이곳은 천연기념물 동백수림이 있는 선운사 동구(洞口)에 있다.

버드나뭇과
버드나무(Salix koreensis Andersson) 거꾸로 꽂아도 산다

갈잎 큰 키 버드나무의 학명은 크게 버드나무 속()의 살릭스(salix)와 사시나무 속의 포푸루스로 나뉜다. 전자는 주로 북반구 온대에 살며 우리나라에는 300여 종이 있다. 후자도 주로 북반구 온대에 살며 우리나라에는 40여 종이 있다.
버드나무는 버들로 줄여 부른다. 한자는 크게 두 가지로 류()와 양()이다. 때로는 양은 능수버들을, 류는 능수버들을 제외한 버드나무를 의미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류가 능수버들을 의미할 때도 있으며 둘을 동시에 사용한 예가 적지 않다.
우리나라의 버드나무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백제 무왕 35(634) 춘삼월 궁궐의 남쪽에 못을 파고 20여 리 물을 끌어 사방의 언덕에 버드나무를 심었다는 내용이다.

스웨덴의 식물학자 안데르손(Andersson, 1821~1880)이 붙인 학명에서 버드나무의 특성을 알 수 있다. 그중 살릭스(salix)가깝다를 뜻하는 켈트어 (sal)’과 물을 뜻하는 리스(lis)’의 합성어다. 이는 이 나무가 물가에서 잘 자람을 알려준다.
또 코레엔시스(Koreensis)는 원산지가 한국이라는 뜻이다.
버드나무의 또다른 특징은 강인한 생명력에 있는데 이를 상징하는 말이 본초강목의 구절 양류는 세로로 두든 가로로 두든 거꾸로 꽂든 바로 꽂든 모두 산다이다.
이 말은 원래 전국시대 장자와 같은 철학자였던 혜자(惠子)가 했던 말인데 원문에서는 분질러도 심어도 또한 살아난다는 구절과 함께 훨씬 뉘앙스가 강하다. 혜자의 말은 전국책에 실려 있다.
아무튼 이와 관련하여 거꾸로 심은 것은 수양버들이 되었고, 모로 심은 것은 와류(臥柳)가 되었으며, 똑바로 심은 것은 직류(直柳)가 되었다는 말도 전해온다.
• ≪삼국사기에는 나해왕 3(198)에 시조묘 앞에 엎드려 있던 와류가 스스로 일어나고, 첨해왕 7(252)에는 금성 남쪽에 있던 와류가 스스로 일어나 상서롭게 보았다는 기록이 있다.

옛날에 이별할 때 버드나무를 꺾어주었던 것도 강인한 생명력 때문이었다. 최경창(崔慶昌, 1539~1583)<절양류(折楊柳)>와 이제현의 <제위보(濟危寶)>, 이백(李白, 701~762)<춘야낙성문적(春夜洛城聞笛)>, 왕유의 <맹성요(孟城坳)>, 구양수(歐陽修)<별저(別滁)>에서도 버드나무의 운치를 엿볼 수 있다.

<절양류(折楊柳)> 최경창

버들가지를 꺾어서 천 리 머나먼 님에게 부치오니
뜰 앞에다 심어두고서 나인가 여기소서
하룻밤 지나면 새잎 모름지기 돋아나리니
초췌한 얼굴 시름 쌓인 눈썹은 이내 몸인가 알아주소서

<별저(別滁)> 구양수

꽃빛 짙게 무르익고 버드나무 가벼운데
꽃 앞에서 술을 따르며 나의 떠나는 길 송별하도다.
나는 또 잠시 평시처럼 취할 테니
관현악기로 이별 노래 연주하지 말도록 하라

강판권 저, 역사와 문화로 읽는 나무사전, 글항아리, 2010

나무와 관련된 고문헌(머리말에서)

사전류
이아(爾雅)-나무의 어원. 인류 최초의 낱말풀이사전

농서(農書)
범승지서(氾勝之書)-인류 최초의 농서
제민요술(齊民要術)-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종합 농서
사시찬요(四時纂要)≫ ≪농상집요(農桑輯要)-조선 전기의 농서
산림경제(山林經濟)≫ ≪임원경제지-조선 후기의 농서

백과전서류
성호사설(星湖僿說)-이익 저. 나무와 관련된 신화와 전설, 문학, 고사성어 서술.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송남잡지(松南雜識)-초목편에 나무 서술

문집
시명다식(詩名多識)-정학유 저. 동양고전류에 나온 식물들을 추려내 그 섭생을 고증.
백운필(白雲筆)-이옥 저. 근접한 거리에서 오랫동안 나무를 직접 관찰한 바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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