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보세

한 권의 책은 하나의 사건이다. 한 권의 책에 담긴 지은이, 만든이, 읽는이의 고뇌와 정성을 기억한다.



Title ≪지봉유설 정선≫ 지봉 이수광2022-01-01 04:08
Writer

지봉유설 정선≫ 

책머리에

지봉(芝峯) 이수광(李睟光) 선생은 명종 18(1563) 경기도 장단(長湍) 관아에서 태종의 후예이며 병조판서를 지낸 이희검(李希儉)의 아들로 태어나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을 겪고, 16, 7세기의 동아시아 격동기를 몸으로 체험하면서 근대적인 세계 인식을 하기 시작한 사대부 지식인이다. 성호(星湖) 이익(李瀷)보다는 118년 전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보다는 199년 전에 태어나 문과에 급제하고 관료로 진출하여 당파에 휘둘리지 않고 청렴한 절조를 보전하면서 이조판서에까지 올랐다. 평생 동안 성실하게 관료로 봉사하고 검소하게 살면서 지봉집31권과 지봉유설20권을 저술했다.

□ ≪지봉유설2010책은 251823435항목으로, 광해군 5(1613)에 편찬 저술을 시작하여 이듬해인 16147월에 완성하고 자서(自序)를 썼다. 원전의 범례에 따르면, 참고 인용한 서적이 육경(六經) 이하 348()의 책에 이르며, 여기에 등장하는 인명은 중국 상고 시대부터 조선 중기까지 2265명이나 되고, 또 그 출처를 반드시 밝혔다고 한다.

한편 동시대의 뛰어난 선배 문인인 남창(南窓) 김현성(金玄成)의 독후감에 의하면 위로 천시(天時)를 관찰하고 아래로 인사(人事)를 바탕으로 삼아 뜻과 이치의 정미(精微)함과 문장의 좋고 나쁨을 드러내 보이고, 곤충이나 초목의 성장 발육에 이르기까지 빠뜨리지 않고 수집하여 남김없이 분석 고찰하였다. 따라서 우리들이 이 유설을 읽으면 총명을 개발하고 지혜가 더욱 진보하게 되니, 귀머거리도 세 개의 귀가 생기고, 장님도 네 개의 눈을 얻는 것과 같다.”고 감탄하며 격찬했다. 

이 책에서는 지봉유설20101823435항목에서 799항목을 추려내서 읽기 쉽게 다시 번역하는 한편 그 인명과 서명을 해설하고, 여기에 등장하는 인명의 자()ㆍ호()ㆍ시호(諡號)ㆍ군호(君號)ㆍ별명 등을 본명으로 안내해 놓은 색인150여 쪽에 걸쳐 만들었다.

799항목을 뽑아낸 것은 너무 많은 숫자인 감이 없지 않으나 역주자의 천박한 자의로 민족의 중요한 고전을 훼손시키지나 않을까 하는 조심성 때문이었음을 구차한 변명으로 늘어놓는다. _2000년 새해 벽두에 정해렴

서문

우리나라는 예절과 행동이 바른 나라라고 중국에도 알려졌고, 학식이 많고 올곧은 선비가 거의 뒤를 이어 나왔다. 그러나 전해 오는 기록이 많이 빠져서 문헌에도 찾아볼 것이 없으니 아깝지 않으리오.
대체로 역대의 소설(小說)이나 여러 가지 서적이 있는 것은 전거(典據)를 듣고 고증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자 하기 때문이며, 또한 그 쓸모가 적지 않은 것인데, 가령 고려 시대의 보한집(補閑集)≫ ≪역옹패설(櫟翁稗說)과 조선 시대의 필원잡기(筆苑雜記)≫ ≪용재총화(慵齋叢話)등 열두어 사람의 것이 있음에 그치고 그동안에 세상에 전해야 할 만한 사적(事績)들은 거의 없어져 버렸다.
내가 좁은 식견(識見)과 하찮은 지식으로 어찌 감히 쓸데없이 책을 저술하는 축에 끼어들 수 있겠는가. 다만 한두 가지씩 간략히 기록하여 잊지 않으려는 것이 나의 진정한 뜻이다. 사실이 이상하고 괴이한 것 같은 따위는 전혀 기록하지 않았으며, 옛사람의 시나 글에 대해서는 더러 나의 주관적인 판단을 적어 두었으나, 본디부터 매우 분수에 넘친 것임을 알겠다. 그러니 감히 나의 의견이 옳다고 하지는 않는다. 오직 안목과 식견을 갖춘 이가 가려 읽으면 될 것이다.

광해군 6(1614) 7월 중순에 이수광(李睟光)

 

1부 천문(天文) 1장 풍운(風雲)

계절풍
옛말에 이르기를 봄바람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고, 여름 바람은 공중에서 옆으로 불어 가고, 가을바람은 바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 불며, 겨울바람은 땅바닥에서 붙어서 간다.”고 했다. 내가 여러 뱃사람에게 들으니, 이 말이 참으로 옳다고 했다.

2부 시령(時令) 1장 절서(節序)

약밥의 유래
이제 우리 풍속에 정월 보름날 과일을 섞은 밥을 먹으며 이것을 약밥이라고 일컫는데, 중국 사람들은 이것을 매우 진귀하게 여겼다. 살펴보건대, 신라 때에는 정월 보름날에 까마귀가 글 쓴 종이를 물고 온 이상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매년 이날에는 찰밥을 지어 까마귀를 제사했으니, 대개 이것으로 말미암은 풍속인 것이다.

4부 지리(地理) 5장 도()

삼봉도(三峯島, 지금의 독도)
삼봉도(三峯島)도 또한 동해 가운데에 있다. 성종 때에 그 사실을 보고하는 자가 있으므로 박원종(朴元宗)을 보내 탐사(探査)하게 하니, 파도가 거세어서 배를 대지 못하고 돌아오다 울릉도를 지났다고 했다. 산해경(山海經)에 이른바 봉래산(蓬萊山)에 명해(溟海)가 있으니 바람이 없어도 큰 물결의 높이가 100길이나 되어 오직 날아다니는 신선만이 갈 수 있다고 했다. 대개 동북해(東北海)의 파도가 매우 험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5부 제국(諸國) 2장 외국(外國)

천황(天皇)과 관백(關白)
일본의 천황(天皇)은 주()나라 평왕(平王) 때에 처음으로 즉위하여 한 성()이 서로 전하여 끊어지지 않았다. 천황은 정치에는 참여하지 아니하고 오직 부귀를 누릴 뿐이다. 국왕의 칭호를 관백(關白)이라 하는데, 오로지 국가의 정치를 관리하며, 천황을 높이 섬기는 것은, 혹시나 주나라 때의 제후국의 유풍(遺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세상에서 일할 것이 없는 자를 왜황제(倭皇帝)라고 말한다. (하략)

7부 병정(兵正) 4장 구적(寇賊, 국토를 침범하는 외적)

코무덤
강항(姜沆, 1567~1618)간양록(看羊錄)에 이르기를, 정유년(1597)에 왜적이 다시 날뛸 때에 평수길(平秀吉)이 여러 왜장에게 코를 베어서 수급(首級)을 대신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므로 왜군의 군졸은 우리나라 사람을 만나면 곧 죽여서 코를 베어 소금에 절여서 평수길에 보내면, 평수길이 검열한 뒤에 모두 그 나라의 북쪽 교외에 있는 큰 절의 곁에 한 무덤을 만들고 거기에 보관해 두어서 그 나라 사람들에게 위엄을 보였다고 이른다. 우리 동포의 비참한 광경을 이것으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때에 우리나라 사람으로 코가 없어진 채 살아난 자도 또한 많았다.

11부 문자(文字) 2장 자의(字義)

죽간
옛날에는 서계(書契)에 대나무를 많이 사용했고, 더러는 비단이나 명주를 사용했다. 등우(鄧禹)공명을 죽백(竹帛)에 남긴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습유기(拾遺記)를 살펴보니 장의(張儀)와 소진(蘇秦)이 책 베끼기에 힘썼는데, 우연히 고서(古書)를 보게 되었으니 베껴 쓸 곳이 없었으므로 먹으로 손바닥과 다리 사이에 써 가지고 밤에 돌아와서 대나무를 베어서 만들어 베껴 썼다.”고 했다.
무릇 간()이니 책()이니 편()이니 적()이니 하는 글자는 모두 대죽 밑에 썼다. 독찰(牘札)이니 상소(緗素)니 하는 뜻은 또한 이것을 모방한 것이다.

12부 문장(文章) 9장 시평(詩評)

소식과 유우석(劉禹錫)
후산(後山) 진사도(陳師道)가 이르기를 소식(蘇軾)의 시는 유우석을 배웠다. 그리하여 뜻을 얻으면 그럴듯하나 뜻을 얻지 못하면 거칠다. 그것은 얻기가 쉽기 때문이다.”라 했다. 후산은 바로 소식의 문하 사람이다. 그러나 평론함이 이와 같다. 자기에게 좋아하는 사람에게 아첨하지 않는다고 이를 수 있다. 또 공풍(鞏豐)은 소식은 문인이다. 또한 말하기를 소식의 평생의 시는 유우석을 배웠다.”고 했다. 그 말에 믿음성이 있다.

17장 방류시(放流詩)

유희경(劉希慶)의 시
유희경은 미천한 신분에서 나왔으나, 소탈하고 고아하며, 착한 일을 좋아하고, 어머니를 지극한 효도로 섬기는 것으로 이름이 있었다. 스스로 호를 시은(市隱)이라 했다. 그가 지은 시는 맑고 뛰어났다.

댓잎은 아침에 이슬을 기울이고
소나무 가지에는 밤에 별이 걸리네.
돌은 이끼 무늬를 띠고 늙었으며
산은 비 기운을 머금고 푸르다.
竹葉朝傾露, 松梢夜掛星.
石帶苔紋老, 山含雨氣靑

라고 한 시구들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다. 내가 일찍이 그에게 시를 지어주기를,

오직 당나라의 이백(李白)ㆍ두보(杜甫)만을 따르고
송나라의 진사도ㆍ황정견(黃庭堅)은 배우지 않네.
눈 덮인 집에는 거문고와 책이 싸늘하고
매화 핀 창 앞에서 웃는 말이 향기롭네.

惟追唐李杜, 不學宋陳黃.
雪屋琴書冷, 梅窓笑語香

라고 했다.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13부 인물(人物) 1장 사우(師友)

친구간의 도리
착한 일을 권면하는 것은 곧 친구간의 도리이다. 선배들이 친구를 사귀는 데는 반드시 그 허물이 있는 것을 경계해 주고, 도의(道義)로 서로 권면해 주는 것을 나도 역시 보았다. 그러나 세상 습속이 한번 변한 뒤로부터는 말하는 것을 서로 꺼려서 친구 사이에도 역시 경계하고 충고하는 풍도가 없다. 아아! 옛날의 올바른 도를 다시 회복할 수 없구나.

16부 언어(言語) 5장 속언(俗言)

늙은이의 건강
구양수(歐陽修)가 이르기를 세상에서 하는 말에 봄 추위와 가을 더위와 늙은이의 건강, 이 세 가지는 끝내 오래 갈 수 없는 것이다.”라고 했다. 지금 속단에 즐겨 이 말을 쓰고 있는데 대체로 구양수의 말에 근본한 것이다.

19부 기예(技藝) 1장 서()

한글 글자 모양
우리나라 언문(諺文) 글자 모양은 모두 고대 인도의 글자를 모방한 것이다. 이것은 세종(世宗) 때 처음 국()을 설치하고 지어낸 것이다. 글자를 만든 교묘함은 실로 임금의 훌륭한 결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대체로 이 언문이 나오니 많은 나라의 말과 소리가 서로 통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른바 성인(聖人)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21부 궁실(宮室) 1장 궁전(宮殿)

기와집
사기(史記)에 이르기를 ()이 기와집을 지었다.”고 했다. 박물지(博物志)에도 역시 이르기를 걸이 기와집을 지었다.”고 했다. 이것으로 살펴본다면, ()나라 걸 이전의 궁실(宮室)은 모두 띠풀로 해 이었던 것이다. 오직 요()는 띠풀을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칭찬하였을 뿐이다.

22부 복용(服用) 2장 조장(朝章)

정몽주(鄭夢周)의 업적
살펴보건대, 고려 충렬왕 때에 비로소 원()나라 제조를 써서 재상으로부터 하급 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두 머리를 깎고 호복(胡服)을 입었다. ()나라 홍무(洪武) 초년에 비로소 중국의 제도를 본받았으니, 우리나라가 변한 것은 원나라부터 따지면 거의 100년이나 된다. 세상에 전하기를 포은(圃隱) 정몽주가 건의해서 명나라의 제도가 행해진 일이라 하니, 아아! 공이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오랑캐가 되었을 뻔했구나.

25부 금충(禽蟲) 2장 수()

오소리
오소리(:)를 세속에서는 토저(土猪)라고도 한다. 그 털은 습기를 가장 잘 없앤다. 어느 사람이 본래 습증(濕症)을 앓고 있었다. 임진년에 왜적을 피해서 오소리 굴로 들어갔다. 오소리 털이 수북이 쌓여서 자리를 깐 것 같았다. 오랫동안 그 속에 거처했더니 묵은 병이 나았다 한다.

 

芝峯 李睟光 지음, 丁海廉 역주, 지봉유설 精選, 현대실학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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