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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은 하나의 사건이다. 한 권의 책에 담긴 지은이, 만든이, 읽는이의 고뇌와 정성을 기억한다.



Title-세종이 애독한 책-≪구소수간≫ 구양수ㆍ소동파 저, 유미정 역주2021-11-02 22:37
Writer

구소수간≫ 

 ​- 천년의 정이 넘쳐나는 편지

구소수간, 책 제목으로만 보면 생소한 말이다. 하지만 구양수와 소동파의 편지 모음집이라고 보면 고루하고 쉽지만은 않은 내용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하지만 짧은 편지글이라 읽기에 부담이 없고 주석 처리가 잘 되어 있어 내용의 이해가 바로 되었다. 특히 역자 특유의 번역미가 물씬 느껴져 구소(구양수와 소동파) 양인의 문장의 아름다움을 직접 체험하는 듯하였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구양수와 소동파는 북송시대의 대문호이다. 북송의 시기는 중국 역사에서 문화의 황금시대로 알려진 시기이다. 북쪽 거란의 요나라와 서쪽 탕구트족의 서하의 위협 속에서 화의와 평화 정책을 배경으로 문화의 꽃을 피웠다. 평화 속에서 높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회화도자기한시 등 여러 분야에서 중국 역대 최고의 작품이 쏟아졌다. 여기에 구양수와 소동파가 있었다.

소동파는 시화에 있어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문장가의 하나로 손꼽힌다. 이런 그를 발탁한 사람이 당시 문단의 영수 구양수이다.(“가우 1(1056), 소동파는 동생 소철과 함께 개봉부시에 합격하였다. 이때 지은 성시형상충후지지론(省試刑賞忠厚之至論)에서 소동파는 ()은 지나쳐도 군자 됨을 잃지 않지만 의()가 지나치면 그것이 흘러들어 잔인한 사람이 된다. 그러므로 인은 지나쳐도 되지만 의는 지나치면 안 된다.’라는 논리를 펼쳐 구양수의 칭찬을 받았다.”<해제>에서) 구양수는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4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으며, 문구(文具)를 살 돈이 없어서 어머니가 모래 위에 갈대로 글씨를 써서 가르쳤다고 한다. 나중에 청천 판관으로 유명한 포증의 뒤를 이어 당시 세계 제일의 도시 개봉 시장(부윤)을 맡은 개혁 정치인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구양수와 소동파 두 사람 모두 당파싸움에 휩싸여 세 번 폄적되는 공통점이 있다. 구양수는 폄적 후 다시 조정으로 복귀하고 퇴임 후 고향에서 죽었으나(“희녕 2(1069), 왕안석이 신법을 추진할 때 구양수는 시행과정의 폐단을 지적하며 청묘법에 이의를 제기하였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 관직에서 물러났다. 만년에 육일거사를 자호로 삼으며 채주(蔡州)에서 지내다 영주의 서호(西湖)로 돌아왔다. 희녕 5(1072) 7월 나이 66세로 세상을 떠났다.”-<해제>에서), 소동파는 귀양지에서 복귀하는 도중 죽었다(“그가 간절히 바랐던 귀환의 꿈은 원부 3(1100), 철종이 죽고 구법당이 다시 집권하면서 찾아왔다. 그러나 오랜 숙원도 잠시, 사면되어 북쪽으로 가던 중 예순여섯의 나이로 소동파는 세상을 떠났다.”-<해제>에서).

당시 사람들은 이 두 사람을 구소(歐蘇)’라 하고, 편지를 수간(手簡)’이라 하였으니, 장춘석 교수의 추천사에서 밝힌 바와 같이 구소수간은 중국 송나라의 대문호인 구양수와 소동파, 양인의 편지글 중 우수한 것들을 선별하여 모은 책으로 동아시아 서간문의 정수이다.”
구소수간에 대해서는 역주자가 <해제> 부분에서 자세히 설명했기에 더 이상 말할 거리가 없다. 그럼에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구소수간이 갖는 전통적인 서간문학에서 차지하는 위치이다. 물론 우리나라 고전 서간문학은 고작해서 얼마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며, 문학적인 부분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크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구소수간을 읽고 나서는 그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는 어느 한 인물을 무엇을 통해서 알 수 있는가? 그 사람 됨됨이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그 내면의 세계는? 과연 그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물론 우리는 한 사람의 행동을 통하여 그 사람을 알 수 있으며 평가할 수 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고 하는 옛말도 있다.

구양수와 소동파는 구소수간에서 편지를 통하여 자기의 일상의 생활과 느낀 바를 문우들과 친척에게 자세히 전하면서 자신의 세계관과 학문적 열정을 드러내었다.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희망에 찬 내일을 구상하며 슬퍼하며, 껄껄거리는 모습을 상상할 때, 나는 과거의 위대한 인물이 지금 내 곁에서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느껴졌다.

고문에서 특히나 개인의 사적 편지글은 어렵고 흥미 없는 분야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과연 그렇다고만 치부할 수 있는가? ‘전자편지글에 익숙해 있는 현대인이 편지글을 잘 쓸 수 있을까? 과연 우리는 지금 우리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가? 상업적 경쟁과 물질의 홍수에 휩쓸린 우리는 누구에게, 어떻게 우리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물론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펜팔이라든지 연애편지를 쓰곤 했다. 하지만 물질만능주의 학력사회에서 우리의 지적 수준은 높아졌지만 풍부한 감성과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은 더 낮아졌을지 모른다. 낮아지진 않았지만, 표현에 있어 더 서툴러진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구소수간을 보면서 천년의 세월을 넘어 인간의 정과 자연의 흥취를 만끽할 수 있다.

어제 뵙고 난 후 북쪽 이원지(李園池)에 이르니 나무들이 울창한 게 푸르게 그늘져 있고, 계절의 풍경은 이미 바뀌어 있었지요. 이러한데 그대 원보가 유독 곁에 있지 않으니 다만 모임을 마칠 때까지 그리웠습니다. 바람결에 흙먼지가 날아와 자리가 더욱 불편하였습니다. _구양수, <유원보에게 보내는 편지>

집사람 말로는 열네 번째 자매가 어제 저녁에 아팠다가 다행히 이미 나아졌다고 하니 마음이 놓입니다. 공기(公期)는 여기에서 부모님 안부를 살피러 떠났습니다. 제 마음이 간절하니 한번 말씀드려 물을 수 있겠지요. 무릇 여러 가지 사소하고 잡다한 일들을 아뢰기는 번거로울 뿐이니 반복하여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한 해가 저물어가니 쓸쓸하고 스산합니다. _구양수, <왕선휘 태위에게 보내는 편지>

우리 형제도 함께 늙는구나. 그러니 의당 때때로 스스로 즐겨야 하는 법, 이 밖의 만사는 일절 개의할 만한 게 못 되지. 소위 스스로 즐긴다고 하는 것은 세속의 즐거움을 쫓는 것이 아니고, 가슴속이 넓고 거리낌이 없어 한 가지 일도 없는 것을 말하지. 천지 가운데 있는 산천과 초목, 벌레와 물고기와 같은 것들도 모두 우리가 만드는 즐거운 일이야. _소식, <자유에게 보내는 편지>

저는 강호(江湖)를 떠도는 사람인데, 오랫동안 연하(輦下)에 머무르니, 마치 새장 속에 갇혀 있는 것 같습니다. 어찌 다시 아름다운 생각을 갖겠는지요. 세상의 인심은 백 가지로 트집을 잡고 책망합니다. 노쇠하고 병이 많은 저는 일일이 부응할 수 없고, 걸핏하면 죄를 입습니다. 친구인 그대는 저를 알아주시니 생각건대 거듭 가련히 여기시겠지요? 훗날을 기약하여 만날 수 없군요. 편지를 대하니 서글픈 마음뿐입니다._소식, <유공보에게 보내는 편지>

 

자연에 대한 관찰, 인간에 대한 희로애락, 현실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이 정확하다. 이러한 표현은 이들이 뛰어난 인물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고 사람의 본성은 모두 같을 것이다. 다만 어떻게 보고 어떻게 해석하느냐, 어떻게 느끼고 표현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본질은 같을 것이다.

구소수간은 구양수와 소동파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구소(歐蘇) 두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정()을 문장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여기에 서간문이 갖는 간결하고 내밀한 표현이 주는 독특한 특징이 더해졌다. 구양수와 소동파는 자신들이 갖는 문학적 소양과 내밀한 정을 서간문의 간결성에 집약시켜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역자가 주장하는 진솔간이한 정회간결생동의 문체”, “역설적 표현구소수간에 나타난 것은, 바로 구양수와 소동파 양인의 뛰어난 점이자 위대한 문장가라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구소수간은 세종이 항상 옆에 두고 읽었던 것처럼 애독할 필요가 있는 생활 속의 책이다.

구양수ㆍ소동파 저, 유미정 역주, 구소수간, 글통, 2021.

세종은 젊은 시절 공부를 좋아하여, 병중에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세종실록, 14231223기록에는 태종이 모든 서책을 치우도록 명하였으나, 세종은 구소수간만은 곁에 두고 읽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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