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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은 하나의 사건이다. 한 권의 책에 담긴 지은이, 만든이, 읽는이의 고뇌와 정성을 기억한다.



Title≪축원祝願ㆍ평화平和ㆍ오유傲遊≫-김병기의 수필이 있는 서예, 김병기2021-09-16 21:27
Writer

축원祝願ㆍ평화平和ㆍ오유傲遊-김병기의 수필이 있는 서예

프롤로그

나는 글쓰기를 좋아했다.
특히, 나의 감성이 물씬 묻어나는 서정적인 글을 쓰기를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한다.
문학적인 글쓰기를 회복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나의 서예를 위해서라도 그 옛날 시도 짓고, 수필도 쓰고, 더러는 소설도 시도해봤던 문학에 대한 열정을 되살리고 싶어졌다.
단순히 서예작품만 발표할 게 아니라, 내가 써온 글씨, 내가 제작한 작품에 얽힌 사연을 글로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서예가 바로 문학이었다는 당연한 사실을 나는 그동안 잠시 잊고 살았다.
내 글로 인하여 사람들이 내 글씨를 향해 보다 친근하게 다가오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작품집 제목에 <수필이 있는>이라는 덧말을 붙인 첫 번째 이유이다.

생활과 작품 사이에 괴리가 크면 클수록 작가는 비웃음을 사고 작품은 외면당한다.
동방 한자문화권 문화예술에서는 작가의 인품 즉 생활과 작품의 일치를 무엇보다도 중시한다.
아무리 기능적으로 아름다운 글씨를 써도 사람의 인품에 결함이 있으면, 그 서예가의 작품은 냉대를 받고 그 서예가는 지탄을 받는다. 일제에 나라를 넘긴 이완용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글씨도 잘 썼고 한때는 서화가로 명성을 얻으며 활동도 했지만 오늘날 그의 작품을 중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반면에 백범 김구 선생이나 안중근 의사의 글씨는 비록 서예적 기법이 뛰어난 작품은 아니지만 사람마다 보배로 여기며 소장하기를 원한다.
한자문화권의 시인이나 서화가들은 고매한 인품으로 삶을 아름답게 영위할 때 그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서예는 더욱 그렇다.
나는 작가로서의 인품 즉 소박하고 진실한 삶의 태도를 끝까지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또 다짐한다.
평소에 해온 이런 노력과 다짐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나의 서예작품에 얽힌 내 생활과 사연을 글로 써서 밝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번에 <수필이 있는 서예>라는 이름의 작품집을 출간하게 된 두 번째 이유이다.

이 작품집의 제1부는 축원(祝願)의 마음을 담은 작품을 수록하였다.
서예는 어떤 예술보다도 간절한 축원을 담을 수 있는 예술이다. 문장을 쓰는 예술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뜻을 담을 수 있고, 뜻을 담을 수 있기 때문에 보다 더 절실하게 축원의 마음을 담을 수 있다.
출산, 결혼, 수연, 이사, 개업 등을 축원하는 동서고금의 명언을 쓴 서예작품은 어떤 선물보다도 의미는 분명하고 성의는 은은한 선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남이 잘 되기를 축원하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면 무엇이 행복이겠는가?

2부에서는 내 삶의 과정에서 서예를 통해 평화(平和)를 얻게 된 사연과 함께 창작했던 작품들을 수록하였다.
붓을 잡고 글씨를 쓰면 잡념이 다 사라진다.
서예는 연필이나 볼펜처럼 딱딱한 필기구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동물의 부드러운 털에 먹물을 묻혀서 글씨를 쓰기 때문에 필획의 굵기가 일정하지 않아 붓끝에 온정신을 집중해야만 글씨를 제대로 쓸 수 있다.
동서고금의 명언과 명시, 명문의 뜻을 새기면서 정신을 집중할 수 있는 예술이 서예인 것이다.
그러므로 서예를 하다 보면 모든 잡념과 분노와 원망 등이 봄볕에 눈 녹듯이 사라진다.
그리고 잡념과 분노와 원망이 사라진 자리에는 평화가 자리하게 된다. 나는 서예를 통해서 몸과 마음의 평화를 얻은 경우가 참 많다.

이 작품집 제3부는 오유(傲遊)라는 이름을 붙였다. 내가 오유하며 즐긴 작품, 독자들께서 오유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 작품들을 수록하였다.
오유는 직역하자면 오만하게 놀자라는 뜻이지만 내가 말하는 오유는 결코 무례하게 오만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할 말은 하고 살자는 뜻이다.
그러나 내가 할 말을 속 시원하게 하면서도 남을 다치지 않게 해야 진정한 오유이다.

나는 서예를 통하여 오유를 즐긴다.
오유를 즐기는 서예를 한다.
서예를 통해 나만이 느끼는 경지를 실컷 즐기며 세상에서 가장 청정한 사람인 듯이 그렇게 오유를 하는 것이다.
서예로 시를 쓰면서 세상을 향해 하고자 하는 말을 서예로 대신한다면 이보다 통쾌하고 행복한 오유는 없을 것이다.
내 작품에 담은 오유의 뜻이 이 책을 보는 독자들에게 전해지기를 기대한다.

1부 축원祝願
서예로 전하는 축하합니다
축원하면 보물이 됩니다.

서예는 축원이다
명구(名句)와 명문(名文)을 쓰는 글귀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을 수 있으므로 어떤 예술보다도 축하와 축원의 마음을 전하는데 적합한 예술이다.
부모님의 수연을 축하하고, 이웃과 친척과 친구의 결혼을 축하하고, 새집으로 이사하는 것을 축하하는 등 모든 축하하는 일에 서예처럼 축하의 마음을 전하기가 좋은 선물은 없을 것이다.
작품으로 쓴 글을 보면 축하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서예로 축하하고 기원하며 즐거움과 함께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아 볼 일이다. 

상간양불염 相看兩不厭 지유경정산 只有敬亭山
서로 마주 보고 있어도 싫증이라곤 없는 이!
단지 너 경정산뿐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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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보와 더불어 중국 역사상 양대 시인으로 평가받는 이백(李白: 이태백 701~762)은 간신들의 농간으로 인해 부정과 부패로 만연해 있던 암울한 현실을 떠나 유랑생활을 한 시인으로도 유명하다. 여행 중에 안휘성의 경정산(敬亭山)에 이르러 지은 시가 있다.

독좌경정산(獨坐敬亭山: 경정산에 홀로 앉아)

중조고비진 衆鳥高飛盡
고운독거한 孤雲獨去閒
상간양불염 相看兩不厭
지유경정산 只有敬亭山

뭇 새들은 높이 날아 다 가버리고
외로운 구름 또 한 한가하게 홀로 가는구나.
서로 마주 보고 있어도 싫증이라곤 없는 이!
단지 너 경정산뿐이로구나 

새들도 날아가 버리고 뜬구름도 떠나가는데 눈앞에 자리한 저 경정산만은 언제나 그 자리에 묵직하게 앉아서 떠날 줄도 모른다.
철따라 풍경이야 조금씩 바뀌기야 하겠지만 끝끝내 그 자리에 묵묵히 자리하고 있다. 신록이 있고, 새가 날고, 구름이 떠가는 그 산은 언제 봐도 아름답다.
안개가 끼기도 하고 비가 내리기도 하고 햇볕이 쨍쨍 내리쬐기도 하는 그 산은 언제 봐도 새로운 모습이다. 싫증이 날 리 없다.

부부는 이렇게 산처럼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싫증나지 않는 모습이어야 한다. 미소 하나만 있으면 부부 사이는 싫증이 날 리 없다.
언제나 서로 마주보고 있어도 싫증이라곤 없는 이! 바로 내 아내로구나, 내 남편이로구나!

2부 평화平和
서예, 쓰면 편해진다.

서예, 쓰면 편해진다. 붓을 잡고 서예를 하면 마음이 평화로울 수밖에 없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 최고의 서예가로 추앙받는 추사 김정희 선생도 억울한 삶을 살았다.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윤상도 옥사에다 자신을 꽁꽁 엮고 또 얽어매어 절해고도 제주도로 귀양을 보내 무려 9년 동안이나 귀양살이를 하게 하였는데, 그것도 모자라 만년에야 겨우 해배된 자신을 다시 함경도 북청으로 귀양을 보냈으니 그 억울함을 어디에 비하고 어디에 하소연하겠는가?
그러나 추사는 만년에 누구보다도 마음이 편했다. 평화로웠다.
작고하기 사흘 전에 쓴 걸로 알려진 봉은사에 걸려있는 판전(板殿)’이라는 현판 작품을 보면 그 안에 한없이 큰 평화가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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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함의 극을 넘어 다시 바보가 된 듯이 졸기가 넘치는 글씨, 어린아이처럼 천진스런 글씨, 무념무상의 경지에 든 글씨이다.
추사 또한 9년 동안의 억울한 제주도 유배생활을 결국은 서예를 통해 평화로운 생활로 바꾼 것이다.
서예를 통하여 평화를 얻어 마침내 본인도 모르는 우리나라 최고의 서예가가 된 것이다.

서예란 이런 것이다. 쓰면 편해진다.
모든 억울함과 분노와 슬픔을 다 내 마음 안에서 눈 녹이듯이 녹일 수 있는 것이 서예이다.
그래서 서예는 힐링이다.
집안에 갇혀 살아야 하는 날이 많은 요즈음, ‘집안에 갇혔다는 그 생각마저 녹여주는 게 바로 서예이다.
안중근 의사가 여순(旅順)의 감옥에서 그렇게 많은 붓글씨를 쓴 것도 갇힘을 오히려 절대자유로 치환할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쓰면 편해진다. 그래서 서예는 평화이다.

! 노무현 대통령
2006221, 노무현 대통령이 전주에 왔다.
나는 그날 권양숙 여사와 함께하는 동안 정말 뜻밖의 경험을 했다.
권양숙 여사를 안내하여 전주 공예품 전시관에 들렀을 때에 일어난 일이다. 그날 공예품 전시관에는 전주의 전통악기 명장들이 제작한 장고, , 가야금 등 전통악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공예품 전시관의 자동문이 열리고 맨 앞에 선 권양숙 여사가 함께 전시관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갑자기 권양숙 여사가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달려 나갔다. 경호원들이 놀라 뛰어나가 권양숙 여사를 에워쌌다. 나와 전주 시청에서 나온 공무원들도 깜짝 놀라 멈칫하고 있을 그때, 권양숙 여사가 진열되어 있던 장고를 들어 올리며 해맑은 웃음을 웃으며 말했다. 나 이거 살래요.” 그제야 수행했던 모든 사람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누군가가 아마 전주시 공무원이었을 것이다 조심스럽게 말했다. 말씀을 하시면 다 준비해 드릴 텐데 왜 달려나가셨어요? 우리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권양숙 여사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죄송해요를 연발했다. 공무원이 다시 말했다. 그런데 장고는 왜 사시려는 거예요?” 나는 이때에 나온 권양숙 여사의 답과, 답을 하면서 지은 표정을 아마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여사께서는 여전히 장고를 손에 든 채 말을 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때 권양숙 여사가 한 말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우리 집 양반이요, 상고 졸업하고 대학을 못 다녔다고 불필요한 핀잔과 억울한 말을 듣는 날이면청와대에 구석진 방이 하나 있거든요, 그 방에 들어가서 실컷 북을 두드리곤 한답니다. 그런데 그 북이 다 찢어져서 소리가 잘 나지 않아요그래서 이 장고를 사다 드리려고요.
권양숙 여사는 해맑게 웃으며 그 말을 했지만 동행했던 사람들은 모두 그만 숙연해지고 말았다. 나는 가슴에 무언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름을 느꼈다. 눈물이 핑 돌았다. !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분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노무현 대통령은 운명이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2009. 5. 23)
나는 분향소를 찾아 분향하며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했으면 그렇게 북을 쳐댔을까? 북을 치던 그 손에 붓을 잡혀 드렸다면 혹 마음의 평화를 찾는데 더 도움이 되지는 않았을까?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식을 치르던 날 오후 중계방송이 끝난 후, 나는 붓을 들어 한 폭을 썼다.
서예는 평화라고 주장하며 쓰면 편해진다고 말해왔지만 이날만은 마음의 평화가 쉽게 찾아들지 않았다.
그때 쓴 작품은 조선 시대의 큰 학자로서 평생을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후학을 가르치는 일에 몰두한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이 쓴 <우음(偶吟: 우연히 울음)>이라는 시이다.

우음(偶吟: 우연히 울음)

인지애정사 人之愛正士
호호피상사 好虎皮相似
생즉욕살지 生則欲殺之
사후방칭미 死後方稱美

사람들이 바른 선비를 아끼는 양이
마치 호랑이 가죽을 좋아하는 것과 흡사하구나.
살아있을 때에는 죽이려 들다가
죽은 후에야가죽은 호랑이 가죽이 최고라며 찬미하고 나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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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오유傲遊

서예와 음악과 무용
서예는 붓으로 글씨를 쓰는 행위를 통해 사람의 타고난 재능과 인품과 감정과 사상 등을 드러내는 예술임과 동시에 음악이자 무용이다.
서예는 구체적인 형을 표현하는 예술이 아니라, 추상적인 선(=)의 선율을 이용하여 작가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서예는 그림과 음악의 중간에 위치한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김병기의 필가묵무(筆歌墨舞)’ 서예
서예는 회화보다는 음악과 무용에 더 근접한 예술이라는 확신이 서면 설수록 나는 음악적 속성과 무용적 속성이 짙은 서예를 지향하게 되었다.
서예가 음악이 되고 무용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필획이 살아있어야 한다. 필획이 살아있으려면 금시벽해(金翅劈海)와 향상도하(香象渡河)의 필법 중 어느 하나만 제대로 구사할 수 있으면 된다.
* 금시벽해(金翅劈海)와 향상도하(香象渡河)의 필법: 추사 김정희 선생은 청나라 중기의 서예가인 성친왕(成親王)이 북경 법원사(法源寺) 내에 있는 찰나문(刹那門)이라는 현액을 쓴 것을 보고 금시조가 바다를 가르고 향상(코끼리)이 강을 건너는(金翅劈海 香象渡河) 기세가 있다라고 평하였다. 필획이 살아있음을 금시벽해와 향상도하라는 비유로 표현한 것이다. 추사 선생의 이 비유는 중국의 서예가 누구도 하지 못한 독창적이면서도 적확하고 절실한 비유이다.
금시벽해(金翅劈海)’, 전설상의 새인 금시조가 날개를 한번 치면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바닷물이 갈라지는데, 이렇게 바닷물이 갈라지는 것처럼 서예가의 붓이 마치 종이를 갈라놓은 듯이 깊게 꽂히는 느낌으로 붓을 운필하는 과정에서 붓이 종이의 저항을 거스르며 나아가는 느낌이 강하도록 필획을 구사하라는 뜻이다. 전통적으로 필법을 설명해온 말인 추획사(錐劃沙)’ 모래 위에 송곳으로 금을 긋듯이라는 비유와 같은 개념의 다른 표현이다.
향상도하(香象渡河)’라는 말은 우바새(優婆塞: 출가하지 않은 남자 불자)를 경계하는 말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불경인 <우바새계경(優婆塞戒經)>에 수록된 이야기에 근거해 나온 말이다. 항하(恒河, 갠지스 강)를 건너는 토끼와 말과 코끼리 가운데 토끼는 발이 강바닥에 닿지 않아서 물 위에 뜬 채로 둥둥 떠내려가고, 말은 더러 발이 강바닥에 닿고 더러는 닿지 않아 뒤뚱거리며 겨우 건넜지만, 코끼리는 완전히 발바닥이 강바닥에 닿은 채로 걸어서 강을 건넜다.’ 이에 추사 선생은 코끼리의 발이 강바닥에 밀착하듯이 붓이 종이에 무겁게 밀착하여 강한 마찰감을 형성하면서 그어지는 필획을 향상도하라고 표현한 것이다.
금시벽해나 향상도하를 구현할 의지가 없는 필획, 혹은 구현할 능력이 없는 필획으로 쓴 글씨는 필획이 살아있지 않기 때문에 결코 서예라 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고 주장이다.
살아있지 않은 필획으로 모양만 그린 서예는 당연히 음악과 무용을 품을 수 없다
음악과 무용 즉 필가묵무(筆歌墨舞: 붓의 노래 먹의 춤)를 품을 수 없는 서예는 결코 오유(傲遊)’의 서예가 될 수 없다.
나는 오유의 서예를 즐기기 위해 내가 구사하는 필획에 금시벽해와 향상도하의 비유가 구현될 수 있도록 적지 않은 노력을 했다.
어느 날 금시벽해와 향상도하가 구현되는 것 같은 느낌의 필획이 그어질 때면 밥 먹기를 잊을 정도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흥분을 맛보기도 하였다.

나는 과거의 명필들이 다 그랬듯이 격이 높은 서예를 지향한다.
서예는 곧 그 사람이다. 격이 높은 서예작품을 창작하기 위해서 독서는 필수이다.
스스로 오유의 서예를 즐기고, 또 창작한 서예작품을 통해 관상자(觀賞者)에게 오유의 맛을 전하기 위해서 작가는 금시벽해와 향상도하의 필법을 비롯하여 결구와 장법을 통해 격을 높이기 위한 독서 등 갖추어야 할 게 참 많다.

에필로그

- 내가 걸어왔고 또 걸어가고 싶은 서예의 길
서예는 곧 사람이다. 그런데 웰빙은 사람이 잘사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서예는 웰빙인 것이다.
서예를 잘한다는 것은 사람이 사람답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예는 사람이 사람답게 되도록 몸과 마음을 닦는 수신(修身)’의 예술이다.
서예는 호흡, 지압, 지체운동, 집중과 몰입 등 육신(肉身)과 정신 두 방면의 건강 증진에 절대적인 작용을 한다. 그래서 서예는 어떤 예술보다도 수신의 성격과 기능이 강한 예술인 것이다.

나는 수시로 글씨를 쓴다.
서예를 통하여 선비가 되어보겠다고 마음먹었으니 선비가 되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글씨는 계속 쓸 수밖에 없다.
나는 앞으로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위하여 서예를 더욱 더 연구하고 창작하여 서예를 중심으로 새로운 인류문화를 추구하는 데에 나의 남는 시간과 힘을 사용할 생각이다.

김병기 지음, 축원祝願ㆍ평화平和ㆍ오유傲遊-김병기의 수필이 있는 서예, 도서출판어문학사, 2020

김병기(金炳基): 부친 영재 김형운 선생 종외조 강암 송성용 선생 사사. 중국문화대학 박사-논문 <황정견의 書法에 대한 연구>. 중국 시학·미학·서예학 논문 60여 편 집필. 서예평론문 180여 편 집필. 1회 원곡 서예학술상 수상. 한국서예학회 회장 역임. 한국 중국문화학회 회장 역임. 세계서예전북Biennale 총감독 역임. 미국, 폴란드, 이탈리아, 러시아 등 구미지역 7개국 초청 서예전 및 서예 특강. 국제서예가협회 부회장. 강암연묵회 회장. 대한민국 서예대전 초대작가. 대한민국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 전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서예는 단순한 글쓰기가 아니다.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내야 하는 서예!
수필을 통해 서예를 통해 서예를 살아 숨 쉬게 한다.

서여기인(書如其人)!
서예는 그 사람을 그대로 드러내는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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