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보세

한 권의 책은 하나의 사건이다. 한 권의 책에 담긴 지은이, 만든이, 읽는이의 고뇌와 정성을 기억한다.



Title님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 시민군 대변인≪윤상원 일기日記 1960-1979≫ 황광우 편2021-06-14 21:33
Writer

윤상원 일기日記 1960-1979

윤상원의 일대기

윤상원은 1950년 광주 근교 임곡의 천동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윤석동, 어머니 김인숙 사이에서 3남 4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57년 임곡 초등학교에 들어갔고, 19604학년 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사다 준 일기장이었다.
임곡 들판 너머엔 황룡강이 흐르고 있었다. 어린 상원은 여름이면 강에서 수영을 하였고, 겨울이면 들판에서 스케이팅을 탔다. 봄이면 산하를 물들이는 진달래꽃과 벚꽃 속에 파묻혔다. 자연은 위대한 학교였다. 상원은 닭들도 천대해서는 안 된다는 깨달음을 일기에 적었다.
1963년엔 광주북중학교에 입학하여, 낯선 도시 생활을 시작한다. 주말이면 김치 그릇을 들고 임곡의 집으로 갔고, 주초엔 그릇에 김치를 담아 광주로 나오는 생활을 반복하였다. 1966년엔 살레시오 고교에 입학한다. 태권도를 시작하였고, 성당에서 기독교의 교리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2 시절엔 에덴써클을 만들기도 했고, 여름방학엔 시골 친구들과 별을 헤며 술을 마시기도 하였다. 입시의 높은 벽으로 인해 힘든 사춘기의 시절을 보냈다.
1969년에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고 재수를 하게 되었다. 상원이 대학에 들어간 것은 1971, 박정희가 부정선거로 김대중을 누르고, 대학에서 군사훈련을 강제하던 시기였다. 상원은 연극반에 들어가 소포클레스 작 오이디푸스 왕에서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를 맡아 열연하였다.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대학에 돌아온 것은 1976년이었다.
윤상원은 김상윤을 만나 학생운동가로 재탄생한다. 1978년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였으나 상원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입사한 지 6개월 만에 사표를 던지고 상원은 다시 광주로 내려온다. 광주의의 한남 플라스틱 공장에 취업하여 노동자의 힘든 하루를 몸소 체험하였다.
한 여성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박기순이었다. 들불야학의 창립자이자, 윤상원을 들불야학의 강학이 되도록 이끈 여성이었다. 불행히도 그해 1226, 불의의 사고로 영면한다. 기순의 영혼은 상원의 가슴에서 살아 있었다.
1980518, 김상윤도 사라지고 윤한봉도 사라졌다. 박관현도 사라졌다. 송백회와 극단 광대, 그리고 들불야학 형제들이 빛고을을 지켜야 했다. 상원은 투사회보를 만들었고, 궐기대회를 이끌었다. 그는 최후의 일인까지 투쟁할 것을 선언하였다. 525일 항쟁지도부를 만들었고, 526일 외신기자회견을 열었다. 전두환은 탱크와 계엄군으로 광주를 한국에서 고립시켰으나, 역으로 윤상원은 외신기자와 진실을 무기로 전두환을 국제 사회에서 고립시켰다. 527일 새벽 2시 계엄군이 진격하자, 윤상원은 고교생들에게 집에 돌아가 역사의 증언자가 되라고 설득하였다. 새벽 4, 그는 끝까지 도청을 지켰다.
190710, 호남창의회맹소를 조직한 의병장 기삼연은 190812일 일본 경찰에게 총살을 당했다. 불법 총살이었다. 1929113일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이끈 장재성은 195075일 광주형무소에 수감 중 농장다리 인근으로 끌려가 헌병에게 총살을 당했다. 물론 불법 총살이었다.
1980527일 새벽 4, 항쟁의 심장이자 두뇌였던 윤상원은 계엄군의 총격으로 사망하였다. 1982, 신부 박기순과 영혼결혼식을 올린 신랑 윤상원은 산 자여 따르라를 외치며 살아남은 자들의 영혼을 불러내었다. 윤상원과 함께 도청을 사수한 전사들은 한국 민주주의의 영원한 초석이 되었다.

2021419
황광우 씀

초등학교 시절 일기

196016

팽이

아침 일찍 일어나 보니
눈이 함빡 쌓여 있었다.
그래서 팽이를 쳤더니
윙윙 소리를 냈다.
동생은 이것을 보고
! 팽이 봐라
하며 소리를 질렀다.

196017

눈사람

눈이 녹아서
물이 줄줄
내리기 시작했다.
내가 만든 눈사람도 녹아
줄줄 흘렀다.
눈사람은
조그만 덩이가
되고 말았다.

6026

즐거운 봄

따뜻한 봄 날씨다.
봄 아지랑이 흐르며
아기 풀 돋는
즐거운 봄이다.

사람의
희망의 봄이다.

산들바람 불어오는
새 버들잎 흔들이며
꾀꼬리 부르다.

1960228

개구리
 

! 일요일이다.
일요일이라 해서
늦잠을 잤더니
해가 솟았구나.
들에 가보니

개구리도 봄이라고
개골개골 하구나.

60424

봄이 어서 와

비가 쏟아져
밭에 대단히 좋았다.
보리에도 시금치, 상치 같은
모든 것이
고개를 서며 일어섰다.

지금은
봄이 어서 와
벌이 날고 꽃이 피고
종달새가 높이 떠서
노래 부르겠다.

61121

참다운 사람

일찍 학교에 가니
벌써 앞길 눈이 치워졌다.
누가 이렇게 치워 놓았을까.
이렇게 치워 놓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학교에 가니 종안이가
내리는 눈을 맞아가며
치우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장한 일인가.
단지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사람이 아니다.

옳고 그름을 분간하는 사람이
참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남을 위해서 봉사하는 일이
값어치 있는 일이다.

중학교 시절 일기

1964108

소풍날

소풍날이다.
2학년들은 수원지로 가기로 했다.
그러나 나는 오늘
결석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누구나 즐기는 소풍을 안 간다는 것은
내 자신이 생각해도 이상했다.

나는 돈이 한 푼도 없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 같이 즐길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집에서 놀다가
450분 차를 타고 집으로 갔다.

등학교 시절 일기

1967103

코스모스

붉게 또는 분홍빛으로 핀
코스모스.

언제 보아도 다정스런 꽃이다.
너무 아름답지도 또 너무
초라하지도 않는
알맞게 아름다운 꽃.

누구나 반겨주고

어디서나 볼 수 있어
너는 좋다.

붉게 또는 분홍빛으로 핀
코스모스

대학교 시절 일기

197764

상윤 형!

문병란 선생님께서 몹시 다치셔서
대학병원에 입원하고 계신다고 들었다.
황일봉이는 눈을 다치고.
왜 진실 되게 살려는 사람들에게
이런 엄청난 불행이 왔을까?

오늘 문병을 가기로 하였다.
전대 종합병원 10병동 826호실 앞엔
낯익은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문병 오신 손님들은 노크하고 밖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상윤 형 글씨임이 분명하여
문병객이 많음을 알 수 있었다.

상윤 형!
그 정성 어린 간호의 모습에서
형의 인간 됨을 여실히 볼 수 있었다.

내가 보호자가 되었노라고
하며 허허 웃는다.

1978119

잘 사는 세상

어떻게 해서 하루가 갔는가?
갈잎 낙엽 지듯 하루가 갔는가.
어제 마신 술이 아직도 몽롱하다.
배꽃같이 하얀 스티로폼을 켠다.
손잡이를 뱅뱅 돌린다, 돌린다.
아픈 가슴 타들어 가듯
스티로폼은 갈라지고
규격품 상품을 만들어낸다.

하나에 둘에……
열에 서른에 한나절이 가고 또
마흔에 정오가 되고.
백 원짜리 밥, .
이것만이 즐겁다.
120원도 못 버는 이 한 시간.
이것마저 종은 빨리 울리고.

에헤라 대야.
기계는 돌아간다.
사람이 돌아간다.
싸구려로 막 돌아간다.
긴 굴뚝의 연기 속에
우리의 피와 땀은 용해되어 날아가는데
그래도 100억 불이다.
천 불이다.
잘 사는 세상이다.

19781227

영원한 노동자의 벗 기순이가 죽던 날

불꽃처럼 살다간 누이야.
왜 말없이 눈을 감고 있는가?
두 볼에 흐르는 장밋빛 볼 서럽디 서럽도록 아름답고
난 몰라라 무엇이 그대의 죽음을 말하는가를
아무리 쳐다봐도 너는 살아 있었다.
죽을 수 없었다.
흰 솜으로 그대의 콧구멍을 막고
흰 솜으로 그대의 열린 입술을 막았을 때
난 속으로 외쳤단다.
콧구멍과 입을 막으면 참말로 죽을 거라고
그대는 정말 죽었는가?
믿어지지 않는 사실을 두고 모든 사람은 섧게 운다.
모닥불이 탄다.
기순의 육신이 탄다.
훨훨 타는 그 불꽃 속에
기순의 넋은 한 송이 꽃이 되어
우리의 가슴 속에서 피어난다.

O 황광우 편, 윤상원 일기日記 1960-1979, 글통, 2021

일기를 시적으로 편집했습니다.
19781227영원한 노동자의 벗 기순이가 죽던 날 은 시로 적혀 있습니다. 물론 다른 것은 글로 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일기는 이렇습니다.

424
비가 쏟아져 밭에 대단히 좋았다. 보리에도 시금치, 상치 같은 모든 것이 고개를 서며 일어섰다. 지금은 봄이 어서 와 벌이 날고 꽃이 피고 종달새가 높이 떠서 노래 부르겠다.

103일 화 fine
개천절을 맞이했다. 경축일임엔 틀림없지만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겠다. 전남 농대로 소풍을 가게 됐다. 수많은 사람들이 가을을 맞으러 찾아왔다. 붉게 또는 분홍빛으로 핀 코스모스, 언제 보아도 다정스런 꽃이다. 너무 아름답지도 또 너무 초라하지도 않는 알맞게 아름다운 꽃. 누구나 반겨주고 어디서나 볼 수 있어 너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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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란 선생님께서 몹시 다치셔서 대학병원에 입원하고 계신다고 들었다. 황일봉이는 눈을 다치고. 왜 진실 되게 살려는 사람들에게 이런 엄청난 불행이 왔을까? 오늘 문병을 가기로 하였다. 전대 종합병원 10병동 826호실 앞엔 낯익은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문병 오신 손님들은 노크하고 밖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상윤 형 글씨임이 분명하여 문병객이 많음을 알 수 있었다. 상윤 형, 그 정성어린 간호의 모습에서 형의 인간 됨을 여실히 볼 수 있었다. 내가 보호자가 되었노라고 하며 허허 웃는다.

119일 목
어떻게 해서 하루가 갔는가? 갈잎 낙엽 지듯 하루가 갔는가. 어제 마신 술이 아직도 몽롱하다. 배꽃같이 하얀 스티로폼을 켠다. 손잡이를 뱅뱅 돌린다, 돌린다. 아픈 가슴 타들어 가듯 스티로폼은 갈라지고 규격품 상품을 만들어낸다. 하나에 둘에…… 열에 서른에 한나절이 가고 또 마흔에 정오가 되고. 백 원짜리 밥, . 이것만이 즐겁다. 120원도 못 버는 이 한 시간, 이것마저 종은 빨리 울리고. 에헤라 대야, 기계는 돌아간다. 사람이 돌아간다. 싸구려로 막 돌아간다. 긴 굴뚝의 연기 속에 우리의 피와 땀은 용해되어 날아가는데 그래도 (연간 수출 총액) 100억 불이다. (일인당 국민 소득) 천 불이다. 잘 사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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