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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은 하나의 사건이다. 한 권의 책에 담긴 지은이, 만든이, 읽는이의 고뇌와 정성을 기억한다.



Title≪공산주의 선언 ≫ “공산주의혁명 앞에서 전율케 하라!” 칼 맑스ㆍ프리드리히 엥겔스2021-05-10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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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선언

해제

이 책에 번역된 글이 처음 발표된 것은 1848년 벽두다. 170년 가까이 된 글이다. 그 문서가 나온 지 약 70년 후인 1917, 역사상 처음으로 맑스주의자임을 공표하고 자본주의사회를 폐지하겠다는 세력이 국가권력을 장악했다. 그리고 그들 볼셰비키가 이룬 혁명 역시 약 70년이 흐른 뒤에 사실상 자본주의에게 항복을 선언했다.

어쩌면 그 나라가 해체된 덕에 우리는 훨씬 더 자유롭게 개방된 마음으로, 하지만 더욱 근본적이고 진지한 자세로 선언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맑스와 엥겔스는 공산주의 사상을 체계화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에 걸쳐 정리한 것은 독일 이데올로기선언이다.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의 폐지가 모든 인간의 자유로운 생활의 기초가 될 수 있는가?

◌ ≪선언이 대결하고자 했던 상황은 지금 사라졌는가? 사적 소유의 폐지가 유일한 해결 방식인가? 선언의 주장이 현실로 될 수 있을 것 같았던 상황이 종료된, 선언이 발표된 지 170년 가까이 된 오늘날에는 이 두 가지 질문이 유령이 되어 떠돌고 있다. 선언은 공산주의와 공산주의자가 무엇인지를 선언했을 뿐, 이 질문에 답하고 있지 않다.

20161
김태호

공산주의 선언

유령이 유럽에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 유령이. 옛 유렵의 모든 세력이 이 유령에 맞선 신성한 몰이사냥을 위해 동맹을 맺었다. 교황과 짜르가, 메테르니히와 기조가, 프랑스의 급진파와 독일의 경찰관들이.
정권을 잡고 있는 자신의 적수들로부터 공산주의적이라는 비방을 받지 않았을 반정부당이 어디 있으며, 더 진보적인 반정부 인사들과 반동적인 적수들에게 공산주의라고 낙인찍는 비난을 되돌리지 않았을 반정부당이 어디 있는가?
두 가지 결론이 나온다.
공산주의는 이미 유럽의 모든 세력에게 하나의 세력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공산주의자들이 자신들의 견해, 자신들의 목표, 자신들의 지향을 전 세계 앞에 공공연하게 표명해, 공산주의 유령이라는 소문에 당 선언 자체로 맞서야 할 시기다.
이러한 목적으로 매우 여러 국적의 공산주의자가 런던에 모여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딸리아어, 플라망어, 덴마크어로 발표된 다음의 선언을 기초한다.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¹

이제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²는 계급투쟁의 역사다. 자유민과 노예, 파트리키우스와 플레브스, 남작과 농노, 쭌프트 회원과 직인, 요컨대 억압자와 피억압자는 끊임없는 대립 속에서 맞섰으며, 때로는 감춘 채 때로는 드러내 놓고 끊임없이 투쟁했고, 그러한 투쟁은 번번이 사회 전체의 혁명적 개조로 끝나거나 투쟁하는 계급들이 몰락하는 것으로 끝났다.
우리는 이전의 역사 시대 거의 어디서나 사회가 여러 신분으로 철저히 구분되어 있고 사회적 지위가 잡다한 등급으로 나뉘어져 있음을 본다. 고대 로마에는 파트리키우스, 기사, 플레브스, 노예가 있었고, 중세에는 봉건영주, 봉신, 쭌프트, 회원, 지인, 농노가 있었으며, 게다가 거의 모든 이러한 계급 안에는 다시 특수한 등급들이 있었다.
봉건사회가 몰락하면서 생겨난 현대 부르주아사회는 계급대립을 폐지하지 않았다. 낡은 계급들, 억압의 낡은 조건들, 투쟁의 낡은 모습들 자리에 각각 새로운 것을 앉혀 놓았을 뿐이다.
그렇다 해도 우리 시대, 부르주아지 시대는 계급대립을 단순화했다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사회 전체가 점점 더 두 개의 커다란 적대적 진영으로, 서로 대립하는 두 개의 커다란 계급으로 분열하고 있으니,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가 그것이다.
(……)
부르주아지는 백 년도 채 안 되는 자신들 계급지배 동안, 과거의 모든 세대를 합친 것보다 더 많고 더 거대한 생산력을 창조했다. 자연력 정복, 기계장치, 공업과 농경에 대한 화학의 응용, 기선 항해, 철도, 전신, 전 대륙의 개간, 하천을 운하로 만들기, 모두 땅 밑에서 솟아난 듯한 인구, 이와 같은 생산력들이 사회적 노동의 무릎 위에서 졸고 있었다는 것을 이전의 어느 세기가 알아챘단 말인가.
(……)
부르주아지가 봉건제를 때려눕힐 때 쓴 무기들이 지금은 부르주아지 자신에게 겨눠져 있다.
하지만 부르주아지는 자신에게 죽음을 가져오는 무기들을 버려 냈을 뿐만 아니라, 이 무기들을 지니게 될 사람들도 낳았다. 현대 노동자들, 프롤레타리아들.
(……)
이제까지의 모든 운동은 소수의 운동이었거나 소수의 이해관계에 따른 운동이었다. 프롤레타리아운동은 엄청난 다수의 이해관계에 따른 엄청난 다수의 자립적인 운동이다. 지금 사회의 최하층인 프롤레타리아트는 공적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계층들의 상부구조물 전체를 공중으로 날려 버리지 않고는 몸을 일으킬 수 없고 똑바로 설 수도 없다.
내용상으로는 그렇지 않다 해도 형태상으로는,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은 처음에는 일국적이다. 각국의 프롤레타리아트는 당연히 맨 먼저 그들 자신의 부르주아지와 끝장을 봐야 한다.
(……)
부르주아계급의 존재와 지배를 위한 본질적 조건은 사인(私人) 수중으로의 부의 누적, 자본의 형성과 증식이며, 자본의 조건은 임금노동이다. 임금노동은 전적으로 노동자들 상호간의 경쟁에 의거해 있다. 부르주아지를 무의지와 무저항의 담당자로 삼는 공업의 진보는 경쟁을 통한 노동자들의 고립화 자리에 연합체를 통한 노동자들의 혁명적 단결을 앉혀 놓는다. 이리하여 대공업의 발전과 더불어, 부르주아지가 생산하며 생산물들을 취득하는 기초 자체가 부르주아지 발밑으로 빠져나간다. 부르주아지는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무덤을 파는 사람들을 생산한다. 부르주아지의 몰락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는 똑같이 불가피하다.

1.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부르주아지란 현대 자본가계급, 즉 사회적 생산수단의 소유자이자 임금노동의 고용자를 의미한다. 프롤레타리아트란 자기 자신의 생산수단을 갖고 있지 않아서 살기 위해 부득이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해야 하는 현대 임금노동자계급을 의미한다. (1988년 영어판)
2. 역사: 모든 쓰인 역사를 말한다. 1847년에는 사회의 전사(前史), 즉 기록된 역사 앞서 존재한 사회조직은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1988년 영어판) 


프롤레타리아와 공산주의자들

공산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 일반과 어떠한 관계에 있는가?
공산주의자들은 결코 다른 노동자당들과 대립하는 특수한 당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결코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이해관계로부터 분리된 이해관계가 없다.
그들은 특수한 원리들을 세워 거기에 따라 프롤레타리아운동을 짜 맞추고자 하지 않는다.
(……)
공산주의자들의 당면 목적은 그 밖의 모든 프롤레타리아당의 당면 목적과 같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으로의 형성, 부르주아지 지배의 전복,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정치권력의 전취가 그것이다.
(……)
모든 소유관계는 영속적인 역사적 교체에, 영속적인 역사적 변화에 놓여 있다.
예를 들면 프랑스혁명은 부르주아적 소유를 위해 봉건적 소유를 철폐했다.
하지만 현대의 부르주아적 사적 소유는 계급대립에, 즉 일부에 의한 다른 일부의 착취에 의거하는 생산물의 산출 및 취득의 최후이자 가장 완성된 표현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 이론을 하나의 표현으로 집약할 수 있으니, 사적 소유 폐지가 그것이다.
사람들은 우리가 모든 인격의 자유, 활동, 자립성 따위의 기초를 이룰 소유, 몸소 벌어들인, 스스로 노동하여 얻은 소유를 철폐하고자 한다며 우리 공산주의자들을 비난해 왔다.
노동하여 얻고 벌어들이고 스스로 얻은 소유! 너희들은 부르주아적 소유에 선행했던 소부르주아적, 소농민적 소유에 대해 말하는가? 우리는 그러한 소유를 철폐할 필요가 전혀 없으니, 공업의 발전이 그것을 철폐했고 또 나날이 철폐하고 있다.
아니면 현대 부르주아적 사적 소유에 대해 말하는 것인가?
(……)
자본가라 함은 생산에서 순수한 인격적 지위뿐만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인 지위를 차지함을 말한다. 자본은 공동의 생산물이며, 많은 성원의 공동 활동에 의해서만, 사실 결국은 사회 모든 성원의 공동 활동에 의해서만 가동될 수 있다.
자본은 이와 같이 결코 인격적 힘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힘이다.
따라서 자본이 사회 모든 성원에게 속하는 공동의 소유로 변한다면, 그것은 일신상의 소유가 사회적 소유로 변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소유의 사회적 성격이 변할 뿐이다. 소유의 사회적 성격이 그 계급적 성격을 상실하는 것이다.
(……)
너희들은 우리가 사적 소유를 폐지하려 한다고 기겁을 하고 있다. 그러나 너희들의 현존 사회는 그 사회 성원의 십 분의 구에게 사적 소유가 폐지되어 있으며, 사적 소유는 오로지 이들 십 분의 구에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존재한다. 따라서 너희들은 우리가 사회의 압도적 다수의 무소유를 필수 조건으로 전제하는 소유를 폐지하고자 한다고 우리를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너희들은 우리가 너희들의 소유를 폐지하고자 한다고 비난한다. 우리는 그렇게 하고자 한다.
(……)
가족폐지! 초급진주의자들이라 해도 공산주의자들의 이 파렴치한 계획에 대해서는 격분한다.
현대의 가족, 부르주아적 가족은 무엇에 근거하고 있는가? 자본에, 사적 영리에. 가족은 부르주아지에게만 완전히 발전된 형태로 존재하며, 그 보완물은 프롤레타리아들이 어쩔 수 없이 가족 없이 지내는 것과 공창(公娼)이다.
부르주아들의 가족은 당연히 이러한 자신의 보완물이 사라질 때 함께 사라지며, 또 이 두 가지는 자본이 없어질 때 함께 사라진다.
(……)
하지만 너희네 공산주의자들은 부인 공유제를 도입한다고, 부르주아지 전체가 한 목소리로 우리를 겨누어 외친다.
부르주아지는 자신의 아내를 단순한 생산도구로만 본다. 부르주아지는 생산도구들이 공동으로 이용되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있으니, 부인들도 똑같이 이 공동 이용이라는 신세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
나아가 공산주의자들은 조국을, 국적을 없애려 한다고 비난받고 있다.
노동자들에게는 조국이 없다. 그들에게는 없는 것을 그들로부터 빼앗을 수는 없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우선 정치적 지배권을 얻고 국민적 계급으로 올라서고 스스로를 국민으로서 정립해야 하기 때문에, 비록 부르주아지가 생각하는 의미에서는 절대로 아닐지라도 아직은 그 자체가 국민적이다.
(……)
한 개인에 의한 다른 개인의 착취가 폐지되는 것과 같은 정도로 한 국가에 의한 다른 국가의 착취도 폐지된다.
국가 내부에서 계급들의 대립이 없어짐과 아울러 국가들 상호간의 적대적 입장도 없어진다.
종교, 철학, 이데올로기 관점에서 일반적으로 제기되는 공산주의에 대한 비난은 더 이상 자세하게 논구할 가치가 없다.
(……)
이념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것은 정신적 생산이 물질적 생산과 더불어 변화한다는 것 말고 달리 무엇인가? 한 시대의 지배적 이념은 항상 지배계급의 이념이었을 뿐이다.
(……)
공산주의혁명은 전래의 소유관계들과의 가장 근본적인 단절이므로, 공산주의혁명의 발전 과정에서 전래의 이념들과 가장 근본적으로 단절한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
계급과 계급대립이 있었던 낡은 부르주아사회 자리에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두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체가 들어선다.


사회주의 문헌과 공산주의 문헌

1. 반동적 사회주의

a) 봉건적 사회주의

프랑스와 영국의 귀족들에게는, 자신들의 역사적 지위로 말미암아, 현대 부르주아사회에 대항하는 팸프렛을 집필할 소명이 있었다. 프랑스의 18307월혁명에서, 영국의 개혁혁명에서, 귀족들은 가증스러운 벼락 출세자들에게 또 한 번 사살당했던 것이다. 진지한 정치투쟁은 더 이상 논의될 수 없었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문헌상의 투쟁뿐이다. 그러나 문헌 영역에서도 왕정복고 시대의 낡은 상투어들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귀족들은 짐짓 자신들 이해관계는 안중에 두지 않고 오로지 피착취 노동자계급의 이해관계를 위해 부르주아지에 반대하는 기소장을 작성하는 척해야 했다.
(……)
귀족들은 인민을 자신들 뒤에 끌어모으기 위해 프롤레타리아의 동냥자루를 깃발 삼아 손에 들고 흔들었다. 그러나 인민은 그들 뒤를 따라갈 때마다 그들 엉덩이에 새겨진 낡은 봉건적 문장(文章)들을 알아보고는 불손한 폭소와 함께 흩어졌다.
프랑스의 정통왕조파 일부와 청년 영국이 이러한 구경거리를 가장 잘 보여주었다.
(……)
성직자가 언제나 봉건파와 손을 맞잡았던 것처럼 성직자 사회주의봉건적 사회주의와 손을 맞잡는다.
기독교 금욕주의에 사회주의 색채를 가하는 것보다 더 쉬운 일도 없다. 기독교 역시 사적 소유, 결혼, 국가 따위에 극구 반대하지 않았던가? 그 자리에 자선과 구걸, 독신과 육욕 근절, 수도원 생활과 교회 따위를 두자고 설교하지 않았던가. 기독교 사회주의는 성직자가 귀족의 분노에 봉헌하는 성수(聖水)일 뿐이다.

b) 소부르주아 사회주의

봉건귀족은 부르주아지에 전복되고 현대 부르주아사회에서 생활 조건이 위축되고 사멸되는 유일한 계급이 아니다. 중세 성외시민층과 소농민층은 현대 부르주아지의 선행자들이었다. 공업적으로나 상업적으로 발전이 뒤떨어진 나라들에서는 아직도 이 계급이 대두하는 부르주아지 옆에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
농민 계급이 주민의 반을 훨씬 넘는 프랑스와 같은 나라들에서는, 부르주아지에 반대하여 프롤레타리아트의 편을 드는 저술가들이 부르주아지 체제 비판에다가 소부르주아적, 소농민적 잣대를 갖다 대고 소부르주아층의 관점에서 노동자 편을 드는 것이 당연했다. 이렇게 형성된 것이 소부르주아 사회주의. 시스몽디는 프랑스에서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도 이러한 문헌들의 우두머리이다.
이 사회주의는 현대 생산관계들 속의 모순들을 매우 날카롭게 해부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 소부르주아 사회주의는 반동적인 동시에 유토피아적이다.
제조업에서 쭌프트 제도와 농촌에서의 가부장적 경제, 이것이 이 사회주의가 남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이후의 발전 속에서 이 유파는 겁먹은 채 후퇴하며 꼬리를 감춰 버렸다.

c) 독일 사회주의 또는 진정한사회주의

지배하고 있는 부르주아 억압 밑에서 생겨났고 그 지배에 대항한 투쟁의 문헌적 표현인 프랑스의 사회적 문헌과 공산주의 문헌이 독일에 수입된 것은 부르주아지가 봉건 절대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을 막 시작하던 시기였다.
독일의 철학자들, 얼치기 철학자들, 재사(才士)들은 탐욕스럽게 이 문헌을 제 것으로 삼았으나, 다만 저 저술들이 프랑스에서 이민 올 적에 프랑스의 생활 조건들도 함께 이민 온 것을 망각했을 뿐이다.
(……)
독일 문필가들이 한결같이 했던 일이란 새로운 프랑스 이념들을 자신들의 낡은 철학적 양심과 조화를 이루게 하거나 아니면 차라리 자신들의 철학적 관점에서 프랑스 이념들을 습득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습득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외국어를 습득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즉 번역을 통해 일어났다.
(……)
그들은 프랑스의 원전 뒤에다 자신들의 철학적 어불성설을 썼다. 예를 들면 화폐관계들에 대한 프랑스인의 비판 뒤에다 인간 본질의 외화라고 쓰고, 부르주아국가 에 대한 프랑스인의 비판 뒤에다 추상적 일반자의 지배의 지양이라고 쓰는 등등이었다.
그들은 프랑스인의 설명 밑에 이러한 철학적 언사들을 끼워 넣는 일행동의 철학”, 진정한 사회주의, 독일적 사회주의 과학, “사회주의의 철학적 정초등등의 세례명을 달았다.
이리하여 프랑스 사회주의 공산주의 문헌은 거세되었다. 그리고 이 문헌이 독일인 수중에서는 다른 계급에 대항하는 한 계급의 투쟁을 표현하지 않게 된 까닭에, 독일인은 (……) 어떤 계급에도 속하지 않는, 도대체 현실에는 속하지 않는, 오로지 철학적 환상의 안개 낀 하늘에만 속하는 인간이다.
독일 사회주의는 성직자, 교원, 시골 융커, 관료 따위의 무리를 거느리고 있던 독일의 절대주의 정부들에게, 위협적으로 등장하고 있던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바라마지 않던 허수아비로 봉사했다.
독일 사회주의는 독일의 절대주의 정부들이 독일의 노동자 봉기들을 다루는데 사용한 쓰디쓴 채찍질과 총알에 대한 달콤한 보완물 역할을 했다.
진정한사회주의가 이와 같이 독일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정부들 수중에 있는 무기가 됨과 아울러, 이 사회는 또한 직접적으로 반동적 이해관계, 즉 독일 성외시민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했다. (……)
소부르주아층을 유지하는 것은 현재 독일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
독일 사회주의 측에서도 자신의 소명이 성외시민층의 희떠운 대표자가 되는 것임을 점점 더 인식하게 되었다.
독일 사회주의는 독일 국민을 표준 국민이라고 선포했고, 독일 속물을 표준 인간이라고 선포했다. 독일 사회주의는 이들 표준의 파렴치한 행위 하나하나에 은밀하고 고상한 사회주의적 요소를 부여했으며, 그것들은 그 반대의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독일 사회주의는 공산주의의 조잡하고 파괴적인경향에 직접 반대하고 모든 계급투쟁을 넘어 어느 편도 들지 않는 자신의 고상함을 공포함으로써 최후의 결론을 이끌어냈다. 아주 적은 예를 제외하고는, 독일에서 통칭 사회주의 저술이니 공산주의 저술이니 하며 나돌고 있는 것들은 모두 이 지저분하며 기()를 빼앗는 문헌의 영역에 속한다.

2. 보수적 사회주의 또는 부르주아 사회주의

부르주아 일부는 부르주아사회의 존립을 보장하기 위하여 사회적 폐해를 시정하기 바란다.
여기에 속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경제학자, 박애주의자, 인도주의자, 노동계급 처지 개선가, 자선사업가, 동물 학대 철폐 운동가, 금주 협회 발기인, 잡다하기 그지없는 하찮은 개량가들, 그리고 또한 이러한 부르주아 사회주의는 완전한 체계로 완성되어 있다.
그 예로 우리는 프루동의 빈곤의 철학을 들겠다.
(……)
부르주아 사회주의는 연설조로 말할 때 비로소 가장 적합한 표현을 얻는다.
자유무역!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를 위한 자유무역. 보호관세!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를 위한 보호관세. 독거감옥!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를 위한 독거감옥. 이것이 부르주아 사회주의의 최후의, 진심에서 우러러나오는 유일한 말이다.
부르주아 사회주의의 요체는 바로 다음과 같은 주장에 있다. 부르주아는 부르주아다노동계급의 이해관계를 위한 부르주아.

3. 비판적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최초 운동에 수반되었던 혁명적 문헌은 그 내용상 필연적으로 반동적이다. 그 문헌은 전반적 금욕주의와 조잡한 평등주의를 가르쳤다.
본래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체계들, 즉 생시몽, 푸리에, 오언 등등의 체계들은 위에서 서술한 바 있는,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투쟁이 발전하지 못한 최초의 시기에 떠올랐다.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를 보라)
이러한 체계들의 발명자들은 계급 대립도 보고 지배 사회 자체 안에 있는 해체적 요소들의 작용도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 쪽에서 아무런 역사적 자기 활동도, 그들에게 고유한 정치운동도 알아보지 못한다.
계급대립의 발전은 산업의 발전과 보조를 맞추는 까닭에,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 해방을 위한 물질적 조건들을 거의 발견해 내지 못하며, 이러한 조건들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사회과학을, 사회법칙을 탐구한다.
(……)
비판적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의의는 역사발전에 반비례한다. 계급투쟁이 발전하며 꼴을 갖추어 가는 것과 같은 정도로, 계급투쟁과의 이와 같은 환상적 분리, 계급투쟁과의 이와 같은 환상적 전투는 모든 실천적 가치, 모든 이론적 정당성을 상실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체계의 창시자들이 많은 점에서 혁명적이었다 할지라도, 그 제자들은 번번이 반동적 종파를 형성한다. (……) 그들은 일관되게 계급투쟁을 다시 무디게 하고 대립을 중재하려 애쓴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사회적 유토피아의 실험적 실현, 즉 개별 팔랑스떼르 설립, -콜로니 창설, 소규모 이까리아새로운 예루살렘의 축소판설립 따위를 꿈꾸고 있으며, 이 공중누각을 세우기 위하여 부르주아의 심장과 돈주머니에서 나오는 박애에 호소하지 않을 수 없다.


각각의 반정부당들에 대한 공산주의자들의 입장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견해와 의도를 숨기는 것을 경멸한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이제까지의 모든 사회질서의 폭력적 전복에 위해 달성될 수 있을 뿐임을 공공연하게 선포한다. 지배계급들로 하여금 공산주의혁명 앞에서 전율케 하라. 프롤레타리아들에게는 족쇄 말고는 공산주의혁명에서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들에게는 얻어야 할 세계가 있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1872년 독일어판 서문

지난 25년 동안 상황이 아무리 많이 변했다 하더라도, 선언에 개진되어 있는 일반적 원칙들은 대체로 오늘날에도 대체로 여전히 완전히 정당하다 하겠다. 개별적인 것들은 여기저기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선언자체가 천명하듯, 이러한 원칙들의 실천적 적용은 언제 어디서나 역사적으로 주어지는 상황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
그렇다 해도 선언은 역사적 문서이며, 우리는 그것을 변경할 권리가 더 이상 우리에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훗날의 판은 아마 1847년부터 지금까지의 간격에 다리를 놓아 주는 서설이 붙어 간행될 것이며, 본 판본은 예기치 않았던 것이어서 우리는 그렇게 할 시간이 없었다.

1872624, 런던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1888년 영어판 서문

선언은 처음에는 전적으로 독일의 노동자 연합체였고 이후에는 국제적인 연합체로 된 공산주의자동맹의 강령으로 출판되었는데, 공산주의자동맹은 1848년 이전의 유럽 대륙의 정치 상황에서는 불가피하게 비밀결사였다. 184711월 런던에서 개최된 동맹 대회에서, 맑스와 엥겔스는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당 강령의 출판을 준비할 것을 위임받았다. 원고는 독일어로 작성되어 18481월에, 즉 프랑스에서 224일에 혁명이 벌어지기 몇 주일 전에 인쇄를 위해 런던으로 보내졌다. 프랑스어 번역은 18486월봉기 직전에 빠리에서 나왔다. 미스 헬렌 맥팔레인 손에서 나온 최초의 영어 번역은 1850년에 런던에서 조니 줄리언 하니의 붉은 공산주의자에 게재되었다. 덴마크어판과 폴란드어판도 출판되었다.
(……)

1888130, 런던
프리드리히 엥겔스

이딸리아 독자들에게

1893년 이딸리아판 서문

선언은 자본주의가 과거에 행한 혁명적 역할을 완전히 정당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최초의 자본주의 나라는 이딸리아였다. 봉건적 중세의 종결과 현대 자본주의 시대의 개막은 한 위대한 인물로 시작된다. 중세 최후의 시인 동시에 현대 최초의 시인이었던 이딸리아인 단떼를 가리키는 것이다. 오늘날, 1300년경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새로운 세기가 작동되기 시작하고 있다. 이딸리아는 이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시대의 탄생을 알릴 새로운 단떼를 우리에게 보내줄 것인가?

189321, 런던
프리드리히 엥겔스

칼 맑스ㆍ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김태호 옮김, 공산주의 선언, 박종철출판사, 2016(개정판)

이번 기회에 밝혀 둘 것이 있다. “공산주의라는 한자어가 원래의 뜻을 살리지 못한다면 외국어를 그대로 읽어 꼬뮌주의”(또는코뮌주의”)라고 번역하기도 하는데, 조선과 한국의 역사를 생각하면 공산주의라는 번역이 옳다. 또한 1848년에 나온 공산주의당 선언이라는 문서의 제목을 1872년에 저자들이 직접 공산주의 선언으로 바꾸었으니, 저자들의 뜻에 반하여 이 책 제목을 바꾸는 것은 옳지 않다. 그래서 이 책 한국어판 제목은 공산주의 선언이다. 개정판 역자 후기, 김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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