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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은 하나의 사건이다. 한 권의 책에 담긴 지은이, 만든이, 읽는이의 고뇌와 정성을 기억한다.



Title≪누가 헤밍웨이를 죽였나≫-집시 아나키스트 헤밍웨이-박홍규2021-04-13 19:09
Writer

누가 헤밍웨이를 죽였나

머리말
집시 아나키스트 헤밍웨이

아나키즘은 자유-자치-자연을 중시하는 삼자(三自)주의다. 즉 자유(自由)로운 개인이 자치(自治)하는 사회를 이루면서 자연(自然)과 함께 조화를 이루어 산다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아나키즘이다.
헤밍웨이는 자유-자치-자연을 침해하고 파괴하는 전쟁과 같은 국가의 악, 국가의 자치, 국가의 파괴를 증오했다.
그런데 그런 국가는 헤밍웨이 시대보다 지금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헤밍웨이를 읽을 필요가 읽고, 나는 이 책을 쓴다.

그동안 헤밍웨이를 실존주의나 허무주의니 등으로 보는 여러 주장이 있었는데, 그런 규정은 국가로부터 자유를 주장하는 아나키즘을 배격하는 탈정치적인 주장이다.
이는 자본주의만 용인되는 우리나라에서 특히 그렇다. 우리나라는 국가주의만 용인되는 국가자본주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국내외에서 나온 책들이 헤밍웨이를 하나같이 천편일률적으로 허무주의나 실존주의자 따위로 보는 것에 의문을 가져 이 책을 쓴다.

사회에 무관하거나 사상이 없는 문학은 있을 수 없다. 어떤 예술가도 정치적 입장이 없을 수 없다.
헤밍웨이 초기 작품인 무기여 잘 있어라는 전쟁에 반대하는, 가장 위대한 반전문학 작품이다. 따라서 누구보다도 우리가 그의 작품을 읽어야 한다. 전쟁에 미쳐 있는 이 나라에서 널리 읽혀야 한다.

미국에서 헤밍웨이 작품은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다. 전쟁에 반대하여 탈영한 병사의 이야기인 무기여 잘 있어라를 비롯하여 그의 모든 작품은 미국인의 전쟁을 애호하는 제국주의적 애국심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를 읽지 못하게 하는 여러 가지 잡설이 존재한다.
나는 헤밍웨이를 실존주의자나 허무주의자라고 보는 견해는 몰라도 적어도 공산주의자라고 보는 견해(조갑제)는 절대로 반대한다.
누군가를 공산주의자라고 하는 경우, 그것도 공산주의를 적대시하는 미국이나 한국에서인 경우에는 그를 죽이기 위해서라는 점에서 정말 조심해야 한다.

자유를 믿고 작은 정부를 믿는다는 것이 바로 아나키즘이다. 그러니 헤밍웨이는 아나키스트다.
헤밍웨이는 미국인이었지만 미국이라는 국가에 충성하지 않았음은 사실이다. 여러 전쟁에 참가했지만, 어느 쪽에 대해서도 충성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스페인 시민전쟁에서 스페인 공화국에 충성한 듯했지만 그때도 정말 그가 충성한 것은 집시와 같은 스페인 인민들이었다. 그는 민중에게 충성했지 그들을 지배하는 권력이나 국가에 충성하지 않았다. 그에게 국가라는 추상체는 의미 없는 관념에 불과했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독재 국가권력의 과도적 역할을 하는 공산주의는 그에게 맞지 않았다. 그는 집시처럼 정처 없이 세상을 떠돌아다녔다. 헤밍웨이는 집시처럼 예술과 모험을 사랑하고 과장하는 버릇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부제를 집시 아나키스트 헤밍웨이라고 했다.

헤밍웨이는 특히 개인의 의지보다도 국가나 민족의 우위를 주장하는 국가주의나 민족주의, 그리고 전체의 목표에 국민이나 민족을 총동원하는 전체주의 파시즘에 철저히 저항했다.
성인이 된 뒤 그는 히틀러나 무솔리니는 물론 스탈린이나 처칠, 심지어 미국 대통령인 루스벨트까지 혐오했다. 그는 개인의 자유의지를 존중하고 자유의지에 근거한 민주주의를 신봉했다.

권력 유지를 위해 자신의 신념을 왜곡하는 기회주의의 허위에 헤밍웨이는 언제나 분노했다.
사회주의자에서 반공주의자로 변신한 이탈리아 파시스트 무솔리니가 그 전형이었다.
그런 보기는 우리나라에도 너무나 많다. 공산주의자였다가 반공주의자가 되는 것이 한국에서는 너무나 쉽다. 그래서 나는 그의 작품을 그런 기회주의자들에 대한 분노로 읽는다.
기회주의자라는 최고로 비겁하고 비열한 사기꾼에 대한 헤밍웨이의 분노는 특히 유효하다. 그런 자들을 쓸어버리기 위해서 말이다.
이 땅에는 비겁하고 야비하고 저열한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특히 지도층이라는 자들 중에 얼마나 많은가?

헤밍웨이를 하드 보일드 작가라고 부르게 한 짧은 문장의 파편적 중복도, 권력의 집중적 구속을 혐오하여 무엇보다도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지 그의 특별한 남성주의적 미학따위의 멋 부림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 하드 보일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또는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 냉담한 태도. 헤밍웨이 식의 비정한 문체
자연과 인간에게 어떤 거짓말도 하지 않는다는 그의 인생관에서 그런 문체가 나온 것이다.
허황되고 감상적이며 부정확한 언어를 제거하고, 명료하고 적확하게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존엄성과 자연의 생명력을 구체화하는 것에 적합하다고 그는 보았다.

헤밍웨이의 삶에 대한 재평가는 미국의 경우 이미 1980년대에 수많은 전기의 출간에 의해 이루어졌다. 지금 우리가 헤밍웨이를 새롭게 읽어야 하는 이유는 과거의 무지가 낳은 냉전과 반공 이데올로기의 현실에 대한 극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해방 직후부터 엄청난 열기로 번역되고 소개된 그는 전혀 아나키즘의 관점에서 이야기되지 않았다. 대신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게 실존주의니 허무주의니 하고들 떠들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어로 소개된 그의 작품을 읽은 지 한 세기가 다 되어가는 지금 우리는 그를 다시 민주주의 작가, 그중에서도 가장 철저한 민주주의자인 집시 아나키스트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모두 10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이중 짝수 장들인 2, 4, 6, 8, 10장에서 각각 다루는 우리 시대에, 에덴동산, 강을 건너 숲속으로,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여명의 진실등은 그동안 헤밍웨이 작품 중에서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그 여섯 작품을 매우 중요하게 본다, 존 레논이 <이메진>에서 노래한 반문명과 자유를 다룬 우리 시대에, 반윤리와 자유를 다룬 에덴동산, 반소유와 자치를 주제로 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반군대와 자치를 다룬 강을 건너 숲속으로, 그리고 반제국과 자연을 주제로 한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여명의 진실은 헤밍웨이를 아나키스트로 보는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흔히 성장소설이나 연애소설 내지 청춘소설로 여겨졌던 무기여 잘 있어라,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각각 반전쟁과 자유, 반도덕과 자유, 반파쇼와, 자치 등의 내용을 갖는 반체제 소설로, 특히 기독교적 구원의 주제 등으로도 해석된 노인과 바다를 가장 아나키즘적 반체제와 자연의 소설로 이해한다.

이상 열 편의 대표작들은 자유, 자치, 자연을 주제로 3~4편씩 묶을 수 있다. 최초의 헤밍웨이는 자연을 추구하다가 1920년대의 청춘에 자유, 1930년대의 장년에 자치를 추구하고, 다시 1940~1950년대의 만년에 자연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나는 헤밍웨이를 아나키스트, 그리고 그의 생각을 아나키즘으로 본다. 

1장 왜 헤밍웨이가 집시 아나키스트인가

극우익 조갑제는 헤밍웨이를 좌파 내지 공산주의자라고 보았다.
그 이유는 헤밍웨이가 스페인 시민전쟁을 다룬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좌파인 공화파도 프랑코처럼 잔인했음에도 공화파를 비난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하지만 이는 조갑제가 헤밍웨이 소설을 제대로 읽었는지 의문을 품게 하는 말이다. 그 소설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 공화파가 프랑코파를 학살하는 10장이었는데 조갑제는 그것을 모른단 말인가? 그 밖에도 헤밍웨이는 그 소설에서, 또는 여타의 글에서 공화파의 그런 문제점을 충분히 지적했으니 조갑제의 비판은 도저히 옳다고 할 수 없다.

헤밍웨이는 살아생전에는 FBI에 의해 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FBI가 자신을 괴롭힌다고 헤밍웨이가 생각한 것을 과거의 전기 작가들은 피해망상이라고 썼지만, 1983년에 정보공개법에 의해 공개된 FBI파일에는 수사관들이 헤밍웨이를 조사했다고 적혀 있다.
FBI파일1942108일에 시작되어 헤밍웨이 사후 13년째인 1974115일까지 이어진다.
FBI파일의 최초 부분은 헤밍웨이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크룰 팩토리라는 스파이조직을 만들어 하바나의 미국대사관을 위해 파시스트에 대한 정보수집활동을 한 것에 대한 기록이다. 1942년에 오면 그의 활동을 적대시하는 기록들이 나타나고 그를 공산주의자로 보고 감시하는 것으로 바뀐다.
그러나 FBI파일1943년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나왔을 때 하바나의 공산당 기관지가 헤밍웨이를 배신자라고 비난한 것을 기록한 뒤 그에 대한 기록을 10년간 중단한다. 그 이유는 FBI기 헤밍웨이를 더 이상 공산주의자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렌 조셉스(Allen Joephs, 1942~)1994년 헤밍웨이를 예술적 아나키스트라 불렀다. 아나키스트가 공산주의자 이상으로 문제가 되는 미국에서 가능한 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아나키스트앞에 예술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이라 생각되지만, 굳이 필요하다면 나처럼 집시아나키스트라고 함이 적절하다.
아나키스트란 한국에서 테러리스트로 오해되기도 하지만, 이는 일제 강점기에 아나키스트들이 일제권력자 등을 암살한 역사와 그 점을 특히 부각시킨 몇몇의 영화 등으로 인해 잘못 부각된 이미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나키즘은 기본적으로 비폭력주의자들이다. 그 대표로 톨스토이와 간디를 들 수 있다. 그들은 부당한 침략전쟁에 대한 저항까지 부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모든 전쟁에 반대했다.
따라서 침략전쟁을 찬양하는 전쟁주의자나 전쟁예찬론자나 군대를 찬양하는 군사주의자와는 분명한 선을 긋는다. 나아가 국가권력을 비롯한 모든 권력에 대한 긍정에서 비롯되는 국가주의나 권력주의에도 분명히 반대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나키스트는 반권력주의자이고 반전체주의자, 즉 반파시스트이다.
헤밍웨이는 모든 전쟁을 증오했다. 무엇보다도 전쟁에 반대한 아나키스트였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도 주인공 로버트 조던(Robert Jorden)은 마리아(Maria)의 말에 대해 자신은 반파시스트라고 말한다.

헤밍웨이는 정치꾼을 싫어했다.
좌파든 우파든 간에 그들을 일이 아니라 정치로 먹고 사는’, ‘정치놈팡이라고 부르고 그들에게 기관총을 겨누겠다고 말했다.
그는 무기여 잘 있어라등에서도 그런 자들이 전쟁을 일으킨다고 비판했다. 그런 비판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헤밍웨이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소설에서 전쟁을 긍정한 것이 아니다. 그가 표현하고자 한 것은 전쟁이라는 극단적으로 비인간적인 상황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죽어가는 인간의 위대함이다.
전쟁이란, 어떤 전쟁도, 긍정될 수 없다.

헤밍웨이는 죽을 때까지 개인을 존중한 개인주의자였다. 흔히 공동체주의의 표현이라고 오해되는 노인과 바다도 한 개인의 이야기이지 집단의 이야기가 아니다.
노인과 바다는 빈곤의 소설이다. 1952년까지 십여 년의 쿠바 생활에서 헤밍웨이가 본 것은 쿠바의 가난이었다. 당시에도 쿠바는 사회주의 나라였다.
그가 좋아한 쿠바는 사회주의 쿠바가 아니라 억압과 가난 속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영원한 패배 속에서 살아가지만 언제나 우아함을 잃지 않는 인민이었다.
헤밍웨이는 그들 인민이 자유롭고 자치하며 자연 속에서 살아가기를 바랐다. 그래서 노인과 바다를 썼다.

그의 소설은 그의 삶이고 그의 몸이다. 그의 글은 그의 삶 자체다. 글과 삶이 이처럼 합치되고 통일되는 작가는 다시없다.

220세기 초, 우리 시대에의 반문명과 자유

헤밍웨이는 도시 생활, 특히 영화나, 연극, 오페라나 발레 관람 등을 싫어했다. 그의 옷차림은 정해져 있었고 구두는 한 켤레였고 내의는 없었다.
그는 독서광이자 미술광이었다.

헤밍웨이 시대는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velt, 1858~1919)가 영웅으로 받들어진 시대였다. 헤밍웨이가 태어나기 한 해 전인 1898, 스페인 전쟁의 영웅으로 의용 기마대를 이끌고 용감하게 적진으로 돌진해 쿠바에서 벌어진 상후안 고지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미국의 영웅이 된 그는 전쟁이 끝나고 2년 뒤 미국 부통령이 되었고, 이어 1900년 대통령인 맥킨리가 암살당하자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는 전쟁광이었으며 특히 열등한 인종과 민족을 경멸했다. 지식인 군인이었던 루스벨트는 정치가, 기병대장, 사냥꾼, 세계여행가, 탐험가, 동식물학자, 등산가, 체육인, 대중문학가 등 그야말로 팔방미인으로, 시력이 낮고 발육이 늦었던 헤밍웨이를 비롯한 당시의 모든 미국인의 롤 모델이었다.

헤밍웨이의 아버지는 산부인과 의사로 낚시 및 사냥, 권투 등을 즐기고 청교도적 윤리관을 가진 보수적인 사람이었으나 유약하여 평생 우울증에 시달렸다. 반면 성악가 출신인 어머니는 양성애자로 여성 제자를 사랑했고 대가 센 편이었다.
여섯 남매 중 장남이었던 헤밍웨이는 어머니보다 아버지를 좋아했으나 사춘기를 지나면서 역시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럼에도 아버지가 가르쳐준 자연 사랑은 그의 평생을 지배한 점에서 강조할 필요가 있다.
헤밍웨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대학을 진학하는 대신 기자가 되었다. 그곳에서 7개월밖에 근무하지 않았지만 그는 그곳에서 글 쓰는 법을 배웠다.

그리하여 헤밍웨이 26세 나이였던 1925년 최초의 단편집 우리 시대에In Our Time를 발표하였다.
• ≪우리 시대에는 프롤로그로 시작하여 에필로그로 끝나는 논문 형식을 취하고, 그 속에 15편 단편 앞에는 머리글(vignette)이 있다.
• ≪우리 시대에는 전쟁이 일어나는 시점에서 시작되어 전쟁이 끝나고 왕이 영화 <마지막 황제>의 선통제 푸이처럼 쇠락하는 모습을 그리는 것으로 끝난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이 오랜 전제정을 끝내고 혁명과 사회주의 정권으로 나아가는 유럽의 대전환의 시대상, 특히 자본주의의 모순을 묘사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점이 철저히 무시되었다.
8편의 <혁명가> 전후로 전쟁과 투우 이야기를 배치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혁명을 투우로 비유한 것이라 생각한다. 투우사는 혁명가고 그가 죽이는 황소는 과거의 전제 군주를 상징한다.
• ≪우리 시대에에서 나타난 전쟁과 전후 혁명이라는 구조는 그 뒤에 이어지는 헤밍웨이의 모든 작품에도 해당되는 것이다. 즉 제1차 세계대전을 다룬 무기여 잘 있어라와 전후 혁명의 희망을 다룬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5 그리고 스페인 시민전쟁을 다룬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쿠바혁명을 연상케 하는 노인과 바다 등이다.

3장 제1차 세계대전, 무기여 잘 있어라의 반전쟁과 자유
41920년대 파리, 에덴동산반윤리와 자유
51920년대 스페인,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반도덕과 자유
61930년대 미국,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반소유와 자치
7장 스페인 시민전쟁,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반파쇼와 자치
8장 제2차 세계대전 이탈리아, 강을 건너 숲속으로의 반군대와 자치
91940년대 쿠바, 노인과 바다의 반문명와 자연
101950년대 아프리카,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여명의 진실의 반제국과 자연

맺음말
헤밍웨이는 아나키즘의 본질에 지극히 가까운 사람이다

헤밍웨이 자신 그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작품들을 대부분 싫어했다.
헤밍웨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작품부터 읽는 것이 유익하다,
그는 누구보다도 전쟁을 증오했다. 그런데 그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한국인 번역자가 헤밍웨이가 무기여 잘 있어라에서는 전쟁을 부정했다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는 전쟁을 긍정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한 것에 분노하여 이 책을 썼다.
그가 625전쟁에 참전했는지 아니면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는지는 알 수 없고, 만약 참전했다면 그것을 정의를 위한 전쟁이라 생각하고 참전했는지 모르지만, 625전쟁이든 베트남전쟁이든 어떤 전쟁이든 정의롭다고 볼 수 없다.
나는 내가 자유-자치-자연이라고 파악하는 아나키즘의 본질에 지극히 가까운 사람이 헤밍웨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우리는 헤밍웨이를 알고 그의 작품을 읽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박홍규, 누가 헤밍웨이를 죽였나, 푸른들녘,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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