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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은 하나의 사건이다. 한 권의 책에 담긴 지은이, 만든이, 읽는이의 고뇌와 정성을 기억한다.



Title≪신, 만들어진 위험≫-신의 존재에 대한 의심이 시작된 당신에게- 리처드 도킨스2021-04-02 22:05
Writer

, 만들어진 위험

1부 신이여, 안녕히

1. 너무나 많은 신

인류 역사 내내 세계 모든 곳에서 수천 명의 신이 숭배를 받아왔다. 다신론자는 동시에 많은 신을 믿는다. 보탄(오딘)은 북유럽인의 최고신이었다. 그 밖의 북유럽 신들로는 발드르(미의 신), 토르(천둥의 신)와 그의 딸 스로드가 있었다. 스노트라(지혜의 여신), 프리그(어머니 여신), (바다의 여신) 같은 여신도 있었다.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도 다신론자였다. 12명의 그리스 신과 여신은 같은 일을 한다고 알려진 로마의 신들과 짝을 이룬다. 예를 들면 천둥ㆍ번개의 신 제우스(로마의 신은 유피테르), 그의 아내 헤라(유노), 바다의 신 포세이돈(넵투누스),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베누스), 그리고 신들의 전령 노릇을 한 헤르메스(머큐리), 술의 신 디오니소스(바쿠스)가 있다.
지금까지 존속하는 주요 종교 중 힌두교는 수천 명의 신을 섬기는 다신교다.
수많은 그리스인과 로마인은 자신들의 신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신들에게 기도하고, 동물을 제물로 바쳤으며, 행운이 찾아오면 그들에게 감사하고, 일이 잘못되면 그들을 탓했다.
그런 고대인들이 틀렸다는 걸 우리는 어떻게 알까? 왜 지금은 아무도 제우스를 믿지 않을까?
다른 건 몰라도 우리 대부분은 그 오래된 신들에 관한 한 무신론자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여러분도 그럴 거라고 예상하지만 나는 유피테르, 포세이돈, 토르, 베누스, 큐피드, 스노트라, 마르스, 오딘, 아폴로를 믿지 않는다. 나는 오리시스, 토트, 누트, 아누비스, 그의 형제 호루스 같은 고대 이집트 신들을 믿지 않는다.
나는 안야누, 마우, 응가이, 아프리카 태양신들을 믿지 않는다. 또한 빌라, 그노위, 왈라, 우리우프라닐리, 카라우르,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이 섬기는 태양의 여신들도 믿지 않는다.
나는 엄청나게 많은 하늘의 신, 강의 신, 바다의 신, 태양신, 별의 신, 달의 신, 날씨의 신, 불의 신, 숲의 신 중 어느 누구도 믿지 않는다. 그 밖에도 믿지 않을 신은 너무도 많다.
그리고 나는 유대인의 야훼의 신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여러분이 유대인, 그리스도인, 또는 이슬람교인으로 자랐다면 야훼를 믿을 가능성이 꽤 높다. 그리스도교인들과 이슬람교인들은 (아랍식 이름인 알라) 유대인의 신을 받아들였다. 그러니까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는 고대 유대교의 분파이다.
그리스도교 성경의 첫 번째 부분은 순수하게 유대교의 경전이고, 이슬람교의 성서인 코란은 유대교 경전들에서 일부가 유래했다.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를 함께 묶어 아브라함종교라고 부르는데, 세 종교 모두 신화상의 족장 아브라함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유대인의 시조로 추앙받는다.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이 세 종교를 일신교라고 부르는데, 이는 신자들이 오직 하나의 신만을 믿는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현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가 일신교인지는 석연치 않다
내가 주장한다는 표현을 쓴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자기의 부족 신 야훼를 섬겼지만 그렇다고 가나안 사람들이 섬긴 다산의 신 바알 같은 라이벌 부족들의 신을 믿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야훼가 더 힘이 세고, 질투가 매우 심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야훼는 다른 신들에게 추파를 던지다 들키면 화를 당할 거라고 엄포를 놓았다.
현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가 일신교인지는 석연치 않다. 예컨대 그들은 사탄(그리스도교), 또는 샤이탄(이슬람교)이라 불리는 사악한 마귀의 존재를 믿는다. 마귀는 베엘제블, 늙은 닉, 사악한 자, 적대자, 벨리알, 루시퍼 등으로 불리는데, 그리스도인과 이슬람교도는 마귀를 신이라 부르지는 않지만 신과 같은 힘을 가진 자로 간주하며, 마귀가 사악한 힘으로 선한 힘에 맞서 장대한 전쟁을 벌인다고 생각한다. 이 개념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에서 왔을 것이고 이 조로아스터교는 아브라함 종교에 영향을 주었다. 조로아스터교는 지금도 인도에 소수가 남았다.
그리스도교는 다른 면에서 봐도 다신교에 가깝다. ‘아버지, 아들, 성령세 분이 한 분이요, 한 분이 세 분(삼위일체)으로 묘사되는데, 이 표현이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 수 세기 동안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삼위일체는 마치 다신교를 일신교에 쑤셔 넣는 공식처럼 들린다. 그리스도교를 삼신교라 불러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다음에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있다. 로마가톨릭교도에게 마리아는 실질적으로 여신이다. 그들은 마리아를 머리 꼭대기에 작은 왕관을 얹은 천국의 여왕으로(때로는 우주의 여왕으로까지!) 묘사한다. 그리고 로마가톨릭교도는 성인들 개개인에게 기도한다. 성 안드레아는 생선 장수들의 수호성인, 성 베른바르드는 건축가들의 수호성인, 성 굼마는 나무꾼들의 수호성인, 성녀 리드비나는 스케이팅 선수들의 수호성인이다. 등등.

2. 그런데 그것이 사실일까?

우리가 성경에서 읽는 것이 얼마나 사실일까?
예수는 히브리와 관련 있는 셈족의 언어 아람Aram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신약의 책들은 원래 그리스어로 쓰였다. 그리고 구약의 책들은 히브리어로 쓰였다.
귓속말 전달놀이(영국) 또는 전화기 놀이(미국)라는 파티용 게임이 있다. 예를 들어 10명이 한 줄로 늘어서서 첫 번째 사람이 두 번째 사람에게 뭔가 이야기를 속삭이고 두 번째 사람은 그 이야기를 다음 사람에게 속삭인다. 다음 사람은 그 다음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마침내 마지막 이야기가 열 번째 사람에게 도달하면 그는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모두에게 말한다. 애초의 이야기는 특별히 간단하고 짧지 않는 한 크게 바뀌기 마련이고, 대개는 우스꽝스럽게 바뀐다. 단어도 바뀌고 이야기의 중요한 내용도 바뀐다.
문자가 발명되기 전, 그리고 과학적 고고학이 시작되기 전, 구전되는 이야기는 귓속말 전달놀이 같은 왜곡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역사를 아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런 이야기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시인 호메로스가 이야기를 글로 적을 무렵에는 아킬레스와 헬레네의 이야기는 수 세대의 구전을 거치며 왜곡되어 있었다. 그들이 실존한 사람인지는 알기 어렵다. 우리는 호메로스가 누구였는지, 그가 언제 살았는지, 전설 그대로 맹인이었는지, 한 사람이었는지 여러 명이었는지 모른다.

❍ ≪구약에 나오는 이야기들도 마찬가지이다. 호메로스의 이야기가 그리스 전설인 것과 마찬가지로, 아브라함과 요셉의 이야기는 히브리 전설이다.

❍ ≪신약은 어떨까? 우리는 예수에 대해 실제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에겐 어떤 증거가 있을까? 복음서들이 증거일까?
복음서들이 신약첫 부분에 실려 있어서 여러분은 그 책들이 가장 먼저 쓰였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신약에서 가장 오래된 책들은 끝부분에 있다. 바로 바울로의 서신들이다.
유감스럽게도 바울로는 예수의 인생에 대해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많은 내용이 예수의 종교적 의미, 특히 그의 죽음과 부활이 갖는 종교적 의미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역사라고 주장할 수 있을 만한 건 거의 없다. 어쩌면 바울로는 독자들이 예수의 인생 이야기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울로 본인도 예수의 인생 이야기를 몰랐을 수 있다.
이때 복음서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라. 아니면 바울로는 그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바울로의 서신들에 예수에 관한 사실이 없다는 점은 역사학자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예수를 섬기기 바랐던 바울로가 예수가 실제로 한 말이나 한 일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니 이상하지 않는가?

역사학자들을 애태우는 또 한 가지 점은 복음서 말고는 역사책에서는 예수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37-100년경)는 그리스어로 이렇게 썼다.
이 무렵 예수라는 현명한 사람이 살았다. 정녕 그를 사람으로 불러야 한다면 말이다. 왜냐하면 그는 놀라운 일을 행했고, 진리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스승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유대인과 그리스인이 그를 따랐다. 그는 메시아였다. 그리고 우리 중에 있는 유력한 사람들의 고발로 빌라도가 그를 십자가형에 처했을 때, 처음부터 그를 사랑한 사람들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 그는 3일 만에 다시 살아나 그들 앞에 나타났다. 하느님의 예언자들이 그 일을 예언했고, 그 밖에 예수와 관련한 1,000가지 놀라운 일을 예언한 터였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딴 그리스도인이라는 집단이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많은 역사가는 이 단락이 훗날 그리스도인 작가가 끼워 넣은 날조일 거라고 의심한다. 가장 의심스러운 문구는 그는 메시아였다이다. 유대교 전통에서 메시아는 오래 전에 약속된 유대인의 왕, 또는 유대인의 적들과 싸워 승리하기 위해 태어날 군사 지도자를 부르는 명칭이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가 메시아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독실한 유대교도에게 예수는 전혀 군사 지도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누가 너를 때리면 다른 뺨도 내밀라는 그의 평화 메시지는 우리가 군인에게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그 시대의 로마 압제자에 대항에 유대인을 지휘하기는커녕 예수는 순순히 그들의 손에 처형당했다.
예수가 메시아라는 것은 요세푸스 같은 독실한 유대교도에게는 미친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만일 요세푸스가 어떻게든 자신이 배운 것을 거슬러 전혀 그래 보이지 않는 인물인 예수를 메시아라고 확신했다면 아마 난리법석을 떨었을 것이다. 그저 그는 메시아였다라고 한마디 툭 던지고 말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문장은 그리스도인이 나중에 날조한 것처럼 들린다. 현재 대부분 학자들은 확실히 그렇게 믿고 있다.

그 밖에 예수를 언급한 초기 역사가로는 로마인 타키투스가(56-120)가 유일하다. 하지만 그가 썼다고 여겨지는 글 역시 날조로 의심받는다.

그리스도교의 공식 경전으로 합의된 책들인 정경(正經)이 최종적으로 정해진 것은 바울로가 죽고 나서 몇백 년 후였다.
오늘날 (개신교) 그리스도인이 읽는 성경신약27권과 구약39권으로 이뤄진 표준 정경이다(로마가톨릭교도와 그리스정교회 신자들은 외경이라 부르는 책들을 추가한다).
마태오, 마르코(마가), 루가, 요한의 복음서가 정경에 포함된 유일한 복음서이지만 비슷한 시기에 예수의 다른 복음서가 많이 쓰였다.
그런 복음서로는 <베드로의 복음서> <필립보의 복음서> <막달라의 복음서> <도마의 콥트어의 복음서> <도마의 유년기 복음서> <이집트인의 복음서> 그리고 <이스가리옷 유다의 복음서> 등이 있다.
네 복음서가 선택된 것은 어느 정도는 역사보다 시적 상상에서 연유한 이상한 이유들 때문이다.
네 권의 복음서가 있어야 한다고 확신한 인물은 그리스 초기 역사에서 교회의 아버지들로 알려진 인물들 가운데 한 명이었던 이레나이우스로, 로마공의회가 열리기 2세기 전에 살았다.
그는 땅에는 네 귀퉁이가 있고 바람도 4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듯 <요한의 묵시록>을 보면 신의 왕좌 곁에 각기 4개의 얼굴을 가진 네 생물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이 대목은 구약의 예언자 에스겔의 영감을 받은 듯하다. 에스겔의 꿈에 소용돌이 속에 네 생물이 나타났는데 저마다 4개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기도 넷, 저기도 넷. 여러분은 넷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러므로 정경은 네 권의 복음서를 갖춰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종류의 추론이 신학에서는 논리로 통한다.

복음서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데 따른 또 다른 문제는 구약의 예언을 실현하려는 집착이다. 특히 <마태오의 복음서>가 그렇다.
가장 눈에 띄는 예는 마리아가 예수를 낳았을 때 처녀였다는 전설을 지어냈다는 것이다.
마태오는 조금의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독자들에게 뻔뻔하게 말한다.
이 모든 일로써 예언자를 시켜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어쩌면 부끄러움은 적절한 단어 선택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가 누구였든) 마태오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우리와는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는 예언을 실현하는 것이 실제로 일어난 일보다 더 중요했다. 그는 왜 내가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라고 말했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마태오는 그 예언을 완전히 오해했다. 예언은 <이사야> 7장에 있다. <이사야>에 적힌 내용을 보면 분명히 이사야는 먼 미래가 아니라 자기 시대에 임박한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는 아하스 왕에게 그들 면전에 있는 한 젊은 여인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그녀는 이사야가 말하는 그 순간에 임신한 상태였다.

마태오가 인용한 동정녀라는 단어는 이사야가 사용한 히브리어로는 알마almah’였다. 알마에는 동정녀라는 뜻이 있지만 젊은 여인이라는 뜻도 있다. 영어 단어 ‘maiden’과 비슷한데, 이 단어도 두 가지 뜻을 갖고 있다.
그리스어로 번역된 구약번역본인 70인역에서아마 마태오도 이걸 읽었을 것이다알마는 파르테노스parthenos’로 번역되었다. 이 단어는 실제로 동정녀를 뜻한다.
요컨대 단순한 번역 오류가 세계적인 성모 마리아신화를 낳고, 로마가톨릭교도들이 마리아를 일종의 여신, 즉 천상의 여왕으로 숭배하게 만든 것이다.
** 히브리어 구약그리스어 구약으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알마라는 단어가 젊은 여인이라 번역되어야 맞는데 동정녀로 잘못 번역되고, 마태오는 그대로 믿고 예언을 실현하려는 집착에서(마리아를 젊은 여인이라 고쳐 써야 맞는데) 동정녀<마태오의 복음서>에 썼으며, 이것이 후세에 성모 마리아라는 신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3. 신화와 그 기원

구약이 실제로 쓰인 시점에 대한 단서를 문장의 시대착오에서 얻을 수 있다. 시대착오는 뭔가가 엉뚱한 시대에 튀어나오는 것을 말한다.
<창세기>에 그런 시대착오가 나온다. <창세기>는 아브라함이 낙타를 소유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고고학 증거에 따르면 낙타는 아브라함이 죽었다고 추정되는 때로부터 수 세기가 지난 뒤에 가축화되었다.
바빌론 유수 시점에는 낙타가 이미 가축화되어 있었으니, <창세기>가 실제로 쓰인 시점은 바로 이때다.

그러면, <창세기> 첫 부분에 나오는 신화들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는? 노아의 방주는?
노아 이야기는 바빌로니아 신화인 우트나피시팀 전설에서 직접 유래했다. <창세기>가 바빌론 유수 때 쓰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 이야기는 길가메시 서사시에 나오는 데, 전설상의 수메르 왕 길가메시가 죽지 않는 방법을 찾아 나선 여행길에서 우트나피시팀으로부터 직접 들은 대홍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마다 세부사항은 다르지만 본질은 노아와 방주 이야기와 비슷하다.
그리스 신화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신들의 왕 제우스는 몹시 화가 나서 온 세계에 홍수를 일으켜 인류를 끝장내겠다고 결심한다.
• ≪성경을 신봉하는 켄터키주의 그리스도인들은 노아 이야기가 다신교에 뿌리를 두고 있는 줄은 까맣게 모른 채 돈을 걷어 거대한 나무 방주를 지었고, 사람들은 입장료를 내고 그곳을 방문한다.
만일 노아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방주에서 나온 캥거루 한 쌍은 터키의 아라바트산노아의 방주가 멈춰 선 장소에서부터 오스트레일리아까지 어떻게 도중에 자손을 전혀 남기지 않고 껑충껑충 뛰어갔을까?
모두 합쳐 101쌍인 여우원숭이는 아무 데도 들르지 않고 마다가스카르로 직행했을까? 그리고 나무늘보는아주 천천히—남아메리카까지 터덜터덜 걸어갔을까?

아담과 이브 이야기(피그미족의 창조 신화와 비슷하다), 노아와 방주 이야기는 역사가 아니다.
교양 있는 신학자 가운데 그것을 역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고대 신화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좀처럼 분명하지 않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현대 신화의 예는 태평양에 있는 뉴기니를 비롯하여 멜라네시아의 다양한 섬에서 유행하는 화물 숭배cargo cults’이다.
2차 세계대전 때 많은 섬이 일본,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군대에 점령되었다. 이런 전초기지에는 물자(식량, 냉장고, 라디오, 전화기, 자동차 등)가 풍부하게 공급되었다.
특히 전시에 배달되는 물품의 규모는 태평양의 섬 주민들을 현혹시켰다. 그들이 볼 때 어떤 외국인도 농작물을 재배하거나, 자동차를 만들거나, 그 밖에 유용한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놀라운 물건들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그 물자들이 큰 화물 수송기에서 실려 왔기 때문이다.
섬사람들은 그 모든 멋진 화물들이 신들, 또는 조상들(조상들도 신처럼 숭배를 받았다)로부터 오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외국인 침입자들은 그런 물자를 얻기 위해 어떤 유용한 일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종교의식을 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결론 내렸다.
분명 화물신cargo gods을 기쁘게 해 하늘에서 더 많은 물건을 내려달라고 부탁하기 위한 의식일 터였다. 그래서 섬 주민들은 화물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그 의식을 모방하기로 했다.
섬 주민들은 숲의 빈터에 모조 관제탑, 모조 신호탑, 모조 활주로와 모조 비행기를 완비한 그들만의 공항(비행기가 도착하는 신성하고 거룩한 장소)을 만들기로 했다.
전쟁이 끝나 군사 기지가 철수되고 하늘에서 화물이 더 이상 도착하지 않자 섬 주민들은 재림을 기대했다. 그들은 화물신을 기쁘게 해서 추억으로 남은 잃어버린 풍요의 시대를 되찾기 위해 두 배의 노력을 기울였다.
화물 숭배는 서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많은 섬에서 수십 차례에 걸쳐 독립적으로 생겨났다. 그중 몇몇은 아직도 건재하다.
타나섬(바누아투)에서는 존 프롬을 숭배하는 비슷한 신앙이 아직도 존재한다. 존 프롬은 메시아 같은 가공의 인물로, 타나섬 주민들은 언젠가 그가 예수처럼 자신을 돌보기 위해 돌아올 거라고 믿는다.
존 프롬은 미국에서 온 존John from America’으로 알려진 군인에게서 유래한 듯하다. 또 다른 화물 신앙은 톰 네이비Tom Navy’를 숭배한다. 각각의 경우 신의 이름은 오래된 부족 신에서 유래된 인물에 접목되었다. 우트나피시팀이 노아가 되었을 때처럼!
타나섬에 유행하는 또 다른 신앙은 프린스 필립을 신으로 숭배한다. 이 경우는 화물이 아니고, 훤칠하고 잘생긴 해군 장교이다. 흰 제복을 입은 그는 눈부시게 찬란해 보였음이 틀림없고, 신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멋있어서 올 때마다 군중에게 환호를 받았다.
그가 타나섬을 방문한 1974년 이래 프린스 필립 신화는 줄곧 성장해왔고, 일부 주민은 2018년에도 여전히 그의 재림을 고대했다.

4. 선한 책?
5. 선해지기 위해 신이 필요할까?
6. 우리는 무엇이 선인지 어떻게 판단할까?

2부 진화,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7. 분명 설계자가 있을 거야
8. 있을 법하지 않은 것들로 가는 단계
9. 결정과 직소퍼즐
10. 상향식인가, 하향식인가?
11. 우리는 종교적 성향을 가지도록 진화했을까? 우리는 친절하도록 진화했을까?

12. 과학에서 용기를 얻자

신이 생명체를 창조했다는 게 단순한 상식이던 때가 있었다.
다윈은 그 상식을 깨뜨렸다.

나는 종종 왜 19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인류가찰스 다윈의 모습으로진화의 완전한 진실을 알아챘는지 궁금했다.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는 실제로 그리 어렵지 않다. 수학을 몰라도 그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 다윈은 수학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약간 늦었을 뿐 같은 개념을 독립적으로 발견한 앨프레드 윌리스도 수학자가 아니었다.
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을까? 목욕탕 안에서나 밖에서나 생각에 빠졌던 아르키메데스나, 지구 둘레를 계산하고, 자전축 기울기를 정확하게 추측한 에라토스테네스 등 그 똑똑한 고대 그리스인들은 동식물들의 유목적적이고 아름다운 동식물들이 어떻게 설계된 것인지 궁금했을 것인데 왜 지극히 간단한 생각, 다윈의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갈릴레오도 마찬가지고, 뉴턴도 마찬가지다.

왜 그렇게 오래 걸렸을까?
내 생각은 이렇다. 생명체의 복잡성, 아름다움, 유목적성은 명백히 지적인 창조자의 손에 설계된 것처럼 보였음에 틀림없다. 그래서 다른 생각을 고려하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전투에 임하는 물리적 용기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지적 용기 말이다.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 가능성을 심사숙고하고 이렇게 말할 용기. 설마 그럴 리가. 그래도 틀릴 셈 치고 그 가능성을 조사해 보자.”
대포알과 깃털이 같은 속도로 떨어진다는 것은 확실히 말이 안 되는 얘기였다. 하지만 갈릴레오는 그 가능성을 조사하고 증명할 지적 용기가 있었다.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가 한때 하나였다가 서서히 멀어졌다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얘기로 들렸다. 하지만 베게너는 그 생각을 따라갈 용기를 냈다.
인간의 처럼 명백히 설계된무언가가 실제로는 설계되지 않았다는 것은 완전히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았다. 하지만 다윈은 그 말도 안 되는 가능성을 조사할 용기가 있었다.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라는 간단한 진리는 그 모든 똑똑한 그리스인, 다윈 이전의 그 모든 대단한 수학자와 철학자의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명백히 보이는 것을 거역할 지적 용기가 없었다.
그들은 하향식 창조를 (잘못) 보이는 것들에 대한 경이로운 상향식 설명을 간과했다. 진정한 설명이 아주 간단하다는 사실은 그것을 끈질기게 조사해 자세하게 알아내는 데 훨씬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요즘 신을 섬기는 사람들은 창조자가 있다는 증거로 생명 세계를 거론하는 것을 포기했다. 생명에 관한 한 다윈주의 진화가 완전한 설명을 제공한다는 것을 이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다른 틈새로 관심을 돌렸다. 그것은 우주론과 물리학의 기본 법칙 및 상수를 포함한 모든 것의 기원이다.
1,000억 개의 은하가 있는 팽창하는 우주는 20세기의 발견이었다. 많은 과학자는 타당한 이유로우리 우주 같은 우주가 수십억 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 견해에 따르면 우리 우주는 수십억 우주가 있는 다중우주 속의 한 우주일 뿐이다.
물리학의 기본상수란 중력상수 G와 같은 값이다. 원지름의 파이π는 수학적으로 필요한 상수로 측정할 수 있는 값이다. 물컵에 있는 물 분자의 개수도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중력상수 G는 왜 그런 값을 갖는지 모른 채 그냥 받아들이는 숫자로, 물체가 서로 끌어당기는 힘의 값을 구할 때 곱해주는 상수이다. 물리학자들은 G가 우주 전체에서 동일하다고 믿지만, 왜 그 값을 갖는지는 모른다.
만일 G가 조금만 달라도 우주는 아주 아주 다를 것이다. 만일 G가 지금보다 작았다면 중력이 너무 약해서 물질을 덩어리로 모으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은하도, 별도, 화학도, 행성도, 진화도, 생명도 없을 것이다. G가 지금보다 약간만 더 컸더라면 우리가 아는 항성들은 존재할 수 없었을 테고, 존재하더라도 지금처럼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항성들은 자체 중력에 의해 모두 붕괴해서 아마 블랙홀이 될 것이다. 항성도, 행성도, 진화도, 생명도 없다.
G는 물리상수 중 하나일 뿐이다. 다른 물리상수로는 빛의 속도 c, 원핵을 묶는 힘인 강력strong force’이 있다. 이런 상수는 10여 개가 넘는다. 각각의 값은 알려져 있지만 왜 그 값을 갖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리고 모든 경우에 대해 그 값이 달랐다면 우리가 아는 우주는 존재할 수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신학자들은 신이 배후에 숨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다. 마치 옛날 라디오에 달려 있던 돌리는 손잡이 같은, 여러분도 조작할 수 있을 법한 손잡이로 기본상숫값을 맞췄기라도 한 것처럼.
모든 손잡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가 존재하도록, 따라서 우리가 존재하도록 정확하게 맞춰져야 한다. 이 때문에 창조적 지능일종의 신, 손잡이를 돌리는 초월자이 그러한 미세 조정을 했다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이것은 단호히 거부해야 할 유혹이다. 그 모든 손잡이가 그렇게 미세 조정되었다는 건 있을 법하지 않은 일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이 추론에 신을 끌어들이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단지 해결을 한 단계 뒤로 퇴보시킬 뿐이다.
코끼리의 1,000조 개 세포 하나하나, 공작이나 벌새의 은은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색깔은 물론, 생명의 그 모든 복잡성, 제비의 속도와 우아함, 앨버트로스나 독수리의 미세 조정된 비행 표면, 뇌나 망막의 당혹스러운 복잡함까지, 이 모든 것이 누군가의 도움도, 지시도, 감독도 없이 물리법칙만으로 생겼다.
그에 비하면 물리법칙과 물리상수의 기원처럼 비교적 간단한 것을 설명하는 일은 아마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물론 우리는 그 문제를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윈과 그의 계승자들이 더 큰 문제(생명이 설계되지 않았다는 것과 필요에 맞게 미세 조정되었다는 것)를 해결했다는 사실에 용기를 얻어야 한다.

과학은 경이롭지 않은가? 여러분이 신으로 메울 수 있기를 바라는, 인류가 모르는 빈틈을 발견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이렇게 조언하겠다.
역사를 돌아보면 절대 과학에 내기를 걸지 못할걸!”

인류는 존재한다.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아는 것은 여기서 우리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우리를 탄생시키는데 딱 알맞은 조건들을 갖춰야 한다.
우리가 녹색식물에 둘러싸여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녹색식물(궁극적인 식량원으로 필요)이 없는 행성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생명체를 탄생시킬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하늘에서 별을 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별이 없는 우주는 수소와 헬륨보다 무거운 화학원소가 없는 우주로, 이런 우주에서는 진화가 일어날 만큼 화학물질이 풍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아는 생명은 액체 상태의 물이 필요하다. 물은 오직 좁은 범위의 온도에서만 액체로 존재한다. 우리 행성(지구)은 우연히 태양으로부터 딱 적당한 거리에 있고, 그래서 물이 액체일 수 있다.
우주에 있는 대부분의 행성은 그들의 항성에 너무 멀리 있거나 너무 가까이 있다.
모든 항성에는 골디락스 존(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고, 아기 곰의 죽처럼딱 적당한)이 있다. 지구는 태양의 골디락스 존에 있다. 우리 행성이 골디락스 존에 있지 않았다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었다.

행성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우주에도 해당할 것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우리 우주는 다중우주에 있는 많은 우주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다중우주는 인플레이션(급속 팽창)이라 불리는 이론의 결론이다.
다중우주에 있는 수십억 개의 우주가 모두 동일한 법칙과 기본상수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할 이유는 전혀 없다. 중력상수 G의 값은 각기 다른 우주에서 다이얼의 모든 위치에 놓일 수 있다. 오직 소수의 우주에서만 G최적의 지점sweet spot’에 맞추어 있을 것이다.
소수의 우주만이 물리법칙과 상수가 우연히 생명체의 진화에 딱 맞게 되어 있는 골디락스 우주이다. 그리고 당연히 우리는 그 소수의 우주 한 곳에 있어야 한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우리 우주가 골디락스 우주여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수십억 개쯤 되는 생명 친화적이지 않는 평행 우주들 가운데 하나의 생명 친화적인 골디락스 우주.
설마 그럴 리가!
하지만 그건 사실이다라고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 물리학자는 이 문제를 더 연구할 필요가 있다.
나는 우리가 과감하게 용기를 내어 성장함으로써 모든 신을 단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 그런가?

역자 후기

그를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무신론자로 만들어준 만들어진 신이후 도킨스가 종교에 대한 책으로 다시 돌아왔다.
교실에서 진화론과 함께 창조론도 가르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 내세를 무분별하게 믿음으로써 911과 같은 치명적인 사건을 일으키는 사람들, 자연재해 앞에서 신 앞에 무릎을 꿇고 왜냐고 울부짖는 사람들을 보면서 종교가 일으키는 정신 지배, 악영향, 혼란을 오랫동안 성토해왔던 도킨스는 이 책에서 좀 더 단도직입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신을 믿어야 하는가?” 우주의 존재와 생명체의 복잡성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에게 신이 필요할까? 선하게 살기 위해 신이 필요할까?

왜 신을 믿느냐고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성서 때문에’, 그리고 성서는 우리가 선하게 살도록 돕는 책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도킨스는 그 이유가 왜 합당하지 않은 지 차례차례 밝혀나간다. 그동안의 역사에서, 그리고 세계 모든 곳에서 무수히 많은 신이 숭배받아왔는데 왜 당신이 믿는 신만이 옳은가?
성서의 책들 사이의 모순된 내용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기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왜 어떤 기적은 믿고 어떤 기적은 믿지 않는가? 성서에 등장하는 신이라는 인물은 정말 선한가?
마지막으로, 성서에는 좋은 말도 있다고(그건 사실이다) 항변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묻는다. 좋은 구절과 나쁜 구절을 무엇으로 판단하는가? 그런 판단 기준이 있다면 성서는 왜 필요한가?

도킨스가 믿지 않은 신은 나 역시 믿지 않는 신이라고 말하면서 이런 비판을 빠져나가는 종교 지도자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은 인간의 언어로 묘사할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도킨스는 다른 지면에서, 그런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이 분명하게 밝힌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상대와의 싸움은 미끄러운 비누조각과 싸우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잡으려 하는 족족 손에서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도킨스 자신이 믿지 않는 신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밝힌다.
우주를 설계할 만한 과학적ㆍ수학적 지능을 가지고 있고, 세상 모든 존재의 생각과 기도를 들을 여력이 있으며, 그 존재들의 선행과 죄에 일일이 신경 쓰고, 사후에 상을 내리거나 처벌하는 존재.”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그것이 당신이 믿는 신이 아니라면 나는 당신과 싸울 까닭이 없다. 하지만 당신이 믿는 신이 그런 신이 아니라면 도대체 왜 교회에 가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신을 믿지 않기 위해 넘어야 할 이보다는 높은 허들은 생명 세계의 있을 법하지 않은복잡성 문제다.
과학이 해결하지 못한 많은 문제들, 진화 과정이 애초에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물리법칙이 어디서 올까?
신을 믿는 사람들은 이 틈을 타 그 틈새를 신으로 메우려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설계했다는 신은 설명이 아니라 설명되어야 할 존재다.

이 책의 원제는 ‘Outgrowing God’이다. outgrow는 성장하고 성숙해지면서 어떤 생각이나 습관을 버린다는 뜻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독자의 연령대를 낮추어 청소년까지 아우르는 책이다. 도킨스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어린아이들에게 부모가 믿는 종교로 꼬리표를 붙이는 습관을 비판했고, 유년기 세뇌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역설했다.

1부와 2부에 걸쳐 도킨스는 신에서 벗어나기위한 두 가지 허들을 넘는다. 도킨스 본인에게는 2부의 생명의 복잡성문제가 좀 더 높은 허들이었지만, 누구에게는 어렸을 때 뇌리에 박힌 1부의 이른바 성서의 진실이 더 높은 진실인지 모른다.
어느 쪽 장애물이 더 높든, 신과 성서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1부보다 2부가 훨씬 흥미로운 무신론 변론으로 다가온다.
2부는 신을 믿지 않을 이유를 넘어 신이 불필요함을 처음부터 끝까지 과학으로 증명하기 때문이다. 도킨스는 신 없이도 복잡한 생명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생명의 자기조립 과정을 통해 멋지게 보여준다. _김명주

리처드 도킨스, 김영주 옮김, , 만들어진 위험, 김영사, 2021

리처드 도킨스 Richard Dawkins : 신과 인간 사이 가장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 선 세계적 석학, 다윈 이후 가장 위대한 생물학자. 영국 <프로스펙트>가 전 세계 100여 개국의 독자들을 대상으로 뽑은 세계 최고 지성 1. 과학과 철학을 넘나드는 다수의 명저를 통해 종교의 비합리성과 그것이 사회에 끼치는 해악을 역설해왔다.
1941년 케냐 나이로비에서 태어나 영국 옥스퍼드대학교를 졸업했다. 옥스퍼드대학교 과학의 대중적 이해를 위한 찰스 시모니 교수직의 초대 교수를 지냈고, 현재는 옥스퍼드대학교 뉴칼리지의 펠로이자 왕립학회 회원으로 있다. 그동안 왕립문학원상(1987), 왕립학회 마이클 패러데이상(1990), 국제 코스모스상(1997), 키슬러상(2001), 셰익스피어상(2005), 루이스 토머스 과학저술상(2006), 갤럭시 브리티시 도서상 올해의 작가상(2007), 데슈너상(2007), 과학의 대중적 이해를 위한 니렌버그상(2009) 등 수많은 상과 명예학위를 받았다. 동물행동학에 정통할 뿐만 아니라 분자생물학, 집단유전학, 발생학 등 과학 전 분야를 두루 섭렵했다.
대표작인 이기적 유전자1976년 출간 이후 30년 넘게 과학계를 떠들썩하게 한 세기의 문제작이며, 2006년 출간과 동시에 과학계와 종교계에 파란을 몰고 온 만들어진 신은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과학적 논증을 통해 증명하면서, 종교의 잘못된 논리가 세계사에 남긴 수많은 폐단을 지적한 명저로 평가받았다. 그 밖에 신 없음의 과학,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 지상 최대의 쇼, 에덴의 강, 무지개를 풀며, 조상 이야기, 악마의 사도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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