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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은 하나의 사건이다. 한 권의 책에 담긴 지은이, 만든이, 읽는이의 고뇌와 정성을 기억한다.



Title≪연경, 담배의 모든 것≫-18세기 조선의 흡연 문화사-이옥2021-03-06 21:23
Writer

연경, 담배의 모든 것

서문 안대회

담배는 한국인의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코드의 하나다. 17세기 이래 한국인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열렬히 담배를 피웠고, 자연스럽게 산업과 문화를 비롯한 인간생활 전반에 그 자취를 남겨놓았다. 이 신비한 아메리카산 풀을 선조들은 남령초라 부르며 매혹되었고, 꽤 많은 작품과 사료를 남겼다. 전통시대 흡연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자료도 상당히 풍부하고, 관련 유물도 많이 남아 있다.

지금부터 이백 년 전 이옥(李鈺, 1760~1815)연경()이란 작은 책자를 지어, 담배가 조선 사람의 생활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또 흡연이 어떻게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등 다방면에 걸친 흡연 문화를 독특한 문체로 기록하였다. 늘 사랑하여 피우는 인생의 벗으로서 담배의 모든 것을 기록하고 싶다는 열망을 책으로 지었다.

서설: 18세기 조선의 흡연 문화사 안대회

1. 한국에 담배가 전해진 시기는 지금부터 400년을 전후한 조선 중엽 광해군 무렵이다. 포르투갈 상인이 담배를 일본에 전했고, 일본은 조선에 전했으며, 조선은 이를 다시 여진과 중국 북방지역에 전해주었다. 한국은 동아시아 담배 유통의 중간적 역할을 했고, 담배 명산지 가운데 하나였다.

2. 담배와 흡연을 다룬 저작 가운데 최고의 작품연경(). 제목을 직역하면 담배의 경전이다. 1810년 이옥(李鈺)이 쓴 단독 저술이다.

책은 서문과 4으로 구성되었다. 구성과 내용은 가음과 같다.

연경서(烟經序): 5월에 쓴 저자의 자서
연경 첫째 권: 담배씨를 거두는 내용인 수자(收子)’부터 담배 뿌리를 보관하는 엄근(罨根)’까지 담배를 경작하는 방법과 과정을 17조에 걸쳐 상세하게 기록했다.
연경 둘째 권: 담배의 원산지와 전래, 담배의 성질과 맛, 담배를 쌓고 자르는 방법, 태우는 방법 등을 19조에 걸쳐 소개하였다.
연경 셋째 권: 담배를 피우는 데 사용되는 각종 용구를 12조에 걸쳐 상세하게 설명했다.
연경 넷째 권: 흡연의 멋과 효용, 품위와 문화를 10조에 걸쳐 다각도로 묘사하였다.

3. 이옥(李鈺, 1760~1815)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에 문필 활동을 한 문인이다. 본관은 전주(全州)l고 자()는 기상(其相)이며, 문무자(文無子)ㆍ매화외사(梅花外史)ㆍ화석산인(花石山人)을 비롯한 많은 호를 사용했다. 한평생 소품문 창작에 전념해 발랄하고 흥미로운 작품을 많이 남겼다. 성균관 유생으로 있던 1792년 국왕이 출제한 문장 시험에 소품체(小品體)를 구사하여, 정조 임금으로부터 불경스럽고 괴이한 문체를 고치라는 엄명을 받기도 했다.

연경서(烟經序, 1부 연경의 서문)에서 그, 기록할 만한 가치가 조금이라도 있는 것이라면 기록한다는 저술의 정신을 언급했다. 연경이 결코 한때의 붓장난의 소산이 아니라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 정치나 철학, 윤리나 문학 따위의 주제만이 서술의 대상이 아니라, 사소하고 무의미하다고 여겨지던 사물도 저술의 대상으로 의미를 지닌다는 생각을 표명하였다.

4. 이옥의 연경에 앞서 정약용이 유득공의 연경을 읽고 그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나 아쉽게도 유득공이 정말 연경을 지었는지는 현재로서는 확인할 수 없다.

5. 이옥의 연경외에도 담배를 주제로 한 의미있는 자료들이 속속 모아졌다. 이 책의 2부는 담배를 애호하는 이유와 감흥을 표현한 옹호론자의 자료와, 흡연의 폐해를 고발하고 금연의 당위성을 입증하려 한 금연론자의 글을 실었다.

담배를 제재로 쓴 산문 작품의 글
이옥: <담배연기(烟經)> 연경과 제목이 같은 산문으로, 우연히 법당 안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제지를 당하고 쓴 글로 산문이다.
이옥: <남령의 한평생> 담배를 의인화하여 쓴 가전체 소설. 장군으로 각색.

담배를 주제로 쓴 가전체 작품
임상덕: <담파고의 일생(淡婆姑傳> 담배를 의인화하여 쓴 가전체 소설. 비구니로 각색.

흡연 옹호론자의 입장을 대변한 글
이빈국: <금연론을 반박하다(南草答辯)>
정조(正祖): <남령초(南靈草)>
박사형: <남초가(南草歌)>

금연론자의 글
이덕리: <금연책을 제안한다(記烟茶)> 금연론자의 입장에서 담배의 해독과 금연을 주장했다.
이현목: <담바고 사연> 금연론을 적극적으로 주장한 글.
윤기: <어른과 어린이의 윤리와, 높은 자와 낮은 자의 질서가 담배로 인해 파괴된다> 금연론을 적극적으로 주장한 글로 흡연으로 인한 폐해를 조목조목 비판하여 금연이 실시되어야 함을 주장했다.

6. 이옥의 연경,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조선시대에 지어진 거의 유일한 담배 관련 단독 저술이다.

연경 문체가 독특하다. 지나치다 싶을 만큼 간명하게 사실을 밝힌 문체의 특징을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담배와 흡연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우리 문화의 일부를 구성하는 중요한 대상이다. 더욱이 조선 후기에는 그렇다. 이옥의 연경이 발견되기 전까지 조선시대 특유의 흡연 문화는 우리의 눈에 그다지 뜨이지 않았거나 미지의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 연경이 발견된 이후에는 그런 것들에 관심이 더 가고, 그에 관한 지식이 풍부해졌다. 이옥은 연경이라는 저술을 통하여 새로운 지식의 영역을 창출했다고 말할 수 있다.

 

연경서(烟經序)

옛날 사람들은 일상생활의 하나인 음식을 주제로 하여, 관련된 사실을 기록해 저서로 남기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그래서 단문창(段文昌)식헌(食憲) 50권을 지었고, 왕적(王績)주보(酒譜), 정오(鄭䫨)주보續酒譜), 두평(竇苹)주보(酒譜)를 지었다. 또 육우(陸羽)다경(茶經)을 지었다.
(……)
이렇게 마시고 먹는 음식 외에도, 품위있게 즐기는 데 도움을 주거나 지난날의 사실을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될 만한 저술을 지었다.
(……)
이러한 저술을 통해 옛날 사람들은 기록할 만한 좋은 점을 한 가지라도 가졌다면 그 물건이 보잘것없다고 해서 팽개쳐두지 않았음을 잘 알 수 있다. 감춰진 사실은 구석구석 뒤져서 모으고, 심오한 비밀은 훤하게 드러낸 뒤에 갖가지 내용을 수집하여 팩으로 엮어 후세 사람에게 제시해주었다. 이들 저서가 곳곳에 버려진 사물을 훤히 드러냄으로써 천하 모든 사람들과 후세의 자손들이 누구나 할 것 없이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만들었다. 책을 지은 분들의 마음 씀을 헤아려 본다면, 그분들의 책이 글을 쓰다가 일시적으로 해본 붓장난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
천하 사람들이 담배를 피운 지는 아주 오래되었다. 인암쇄어(蚓庵琐语)에서는 숭정(崇禎) 초엽에 담뱃잎이 여송(呂宋)으로부터 전래되었다고 하였고, 송완(宋琬)수구기략(綏寇紀畧)에서도 앞의 책을 인용하고서 명말(明末)에 등장한 재앙의 하나라고 말했다. 그러니 담배가 남쪽 오랑캐 땅으로부터 중국에 전래된 지 거의 네 번째 병자년(丙子年)을 맞는 셈이다.(병자호란이 일어난 첫 번째 병자년인 1636년으로부터 180년 뒤인 1816년이다.)
조선에서는 이식(李植)택당집(澤堂集)<남령초가(南靈草歌)>가 실려 있고, 임경업(林慶業) 장군의 가전(家傳)금주(錦州)의 전투에 담배를 싣고 가서 곡식과 바꿨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 동방에 담배가 등장한 지도 거의 200년이 된다.
(……)
꽃이 필 때 연기를 내뿜고 달이 뜰 때 연기를 들이마시노라면, 담배는 술을 마실 때의 오묘한 맛을 겸비하였고, 파란 연기를 피워내노라면, 담배는 향을 사를 때의 깊은 멋까지 갖추고 있다. 담뱃대를 은으로 만들고 담배통을 꽃무늬로 아로새겨 즐기노라면, ()를 마시는 풍치(風致)까지 간직하였고, 담배 꽃을 가꾸고 담배 향을 말리노라면, 진귀한 열매와 이름난 꽃에 비교해도 부끄러울 것이 전혀 없다.
그렇다면 200여 년의 역사에서 문자를 이용해 담배를 기록한 책이 있을 법도 하건만, 그런 것을 기록으로 남긴 저술가가 있다는 이야기를 아직 들은 바가 없다.
(……)
나는 담배에 심한 고질병이 있다. 담배를 사랑할 뿐만 아니라 즐기는 사람이다. 그래서 스스럼없이 남들이 비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망령을 부려 자료를 정리하여 저술을 정리하여 내놓는다. 엉성하고 그릇되고 거칠고 더러워서, 숨겨진 사실을 드러내고 비밀스런 이치를 밝혀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담배를 기록하여 저술한 의도만은 위에서 말한 주록(酒錄)이나 화보(花譜)를 저술한 의도에 거의 부합한다고 자부한다.
경오년(庚午年, 1810) 매미가 우는 5월 하순에 화석산인(花石山人)은 쓴다. 

남초노래(南草歌) 이현목(李顯穆)

털벙거지 쓴 서울내기를
한양 대로에서 만났네.
연초 피우는 그를 보고
앞에 다가가 인사를 했네.
비록 구면은 아니나
담배 한두 대만 주오.”
그 사람 힐끗 보더니만
댁은 어디 사람이오?” 묻네.
한양 사오.”
세상 인심을 어찌 그리 모르시오.
연초는 돈 한 닢에
겨우 열 대를 얻는다오.
기름 먹힌 쌈지에 고이 넣어두고
하루 동안 피울 셈인데
잎 하나를 쉽게 여기겠소.
혼자 피우기도 넉넉지 않다오.
지친(至親)인 사촌 사이에도
겨우 한 번 피우게 하고
새 사돈을 보게 될 때나
너그럽게 담배를 권하지요.
언젠가 사대부 집을 보니
연초 아낄 줄을 다 알더군요.
얼굴이 익은 사람이 아니면
담배 피우는 걸 허락 안 하고,
낯이 익은 사람을 만나야만
담배를 피우라고 권합디다.
허나 한 대는 허락해도
두 대는 좋아하지 않고
세 대는 정말 괴로워서
양미간을 찡그리는 기색이 벌써 나타나지요.
손님이 가면 담뱃갑을 매만지며
소매 속에 감추지 않았다고 후회하지요.
세상 인심이 이러한데
더구나 생면부지한테야 어쩌겠소.
나더러 박정하다 하지 마오.
주고받는 것은 풍속 따라 하는 법이니.”
그 말 듣고 할 말이 없어
그저 탄식이나 내뱉네.

18세기 자료인 이 시는 서울 사람들의 담배 인심이 몹시 사나움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이옥 지음, 안대회 옮김, 연경, 담배의 모든 것, 휴머니스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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