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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은 하나의 사건이다. 한 권의 책에 담긴 지은이, 만든이, 읽는이의 고뇌와 정성을 기억한다.



Title≪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나의 한살매-백기완2021-02-15 22:41
Writer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백기완  

 

머리말 : 다시 반딧불이를 찾아서

내가 대여섯 살 적이다. 밤하늘을 날아가는 콩알만 한 불빛이 하도 멋있어 나보다는 한 서너 살 위인 어느 언니한테 물었다.
언니, 저게 뭐야.”
, 저거, 반딧불이지.”
반딧불이? 반딧불이는 왜 밤하늘을 날아가는 거야. 저네 집은 아궁이 아니냐.”
, 저기 저 숲으로 가는 거야. 거기엔 반딧불이의 어머니가 있거든.”
쪼매난 불빛이 어머니를 찾아간다는 말에 나는 그만 뭉클, 대뜸 와라와라 쫓아 들어갔다. 그러나 된통 시꺼먹고(혼나고) 말았다. 캄캄한 숲속엔 끄름(그을음) 같은 어두움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몇 날 뒤 또 물었다.
야 임마, 가다가 마니까 그렇지. 끝까지 가보아야지.”
끝까지 기보아야 한다는 그 말에 또다시 시껌. ‘이참엔 끝을 보고야 말리라하고 깊이깊이 들어갔다가 길을 잃고 말았다. 허둥지둥, 마침내 무지땀으로 범벅이 되어 나오는 내 꼴을 본 그 언니의 말이었다.
못난 놈. 넌 임마, 반딧불이만도 못하구나.”
, 날더러 반딧불이만도 못하다고?”
어릴 때 그 한마디는 내 한살매(일생)를 내려치는 채찍 같았다. 그때부터 나는 무어든 하기를 하기를 차름(시작)하기만 하면 끝까지 해보려고 해왔다.
그렇다. 사람은 꾀로 되는 게 아니다. 억척 같은 끈기, 그도 아니면 목꽂이(온몸으로 들이대는 것) 같은 대들(도전)이 사람을 만든다. 인석들아.’ 그러면서 어떤 일에든 아각대곤(아우성치곤) 했지만, 그러나 나에게 엥겨지는 건 마냔 꺽임(좌절)과 깜떼(절망)뿐이었다. 한살매 한 일도 없지만 하는 일 쭉쭉 죄 진꼴(실패)이었다. 이 말이다. 나는 나를 누를 단추도 없었다
그래도 누더기 하나만은 남았다고 할까. “사람은 한살매 내내 쓰디쓴 꺾임과 아뜩한 깜떼만 먹고만 산다그거였다.
이 글들은 바로 그 억은(모자란) 삶의 그림자 같은 이야기일 터. 그런데도 이것들을 한 석 달 동안 <한겨레>에다 주접을 떨었더니 사람들이 하는 말, “잃기도 어렵고 낱말도 어렵다그랬다. 따라서 마땅히 불을 질러버렸어야 할 것인데도 이렇게 글묵()으로 엮으면서도 그 어렵다고 하는 낱말들을 나는 하나도 바꾸질 않았다. 도리어 이따금 낑겨져 있던 영어와 한문 낱말들을 이 잡듯 모두 빼버렸다. 몽땅 우리말만 썼다.
읽기가 힘이 든다는데 왜 그랬느냐라는 것은 묻질 말아 달라. 내 맛대(대답)는 한숨밖에 없으니 무슨 말을 따로 하겠는가.
다시 진꼴의 어두움 속으로 반딧불이를 찾아 뛰어드는 느낌이다.

글쓴이 백기완 

1 새벽은 한살매 어둠 속을 걷는 이의 발끝에서 열린다

야 부심아. 배고픔 것쯤은 참아야 돼. 모두가 주리고 있는 이참에 제 배지만 부르고 제 등만 따스고자 하면 너, 어더렇게 되는 줄 알아. 키가 안 커.
너 어서 커서 어른이 되고 싶잖아.
그러니까 배가 고프다고 허리를 꺽으면 안 되는 거야.”
배가 고프다고 울면 키가 안 큰다는 바람에 쭉밥()이 나 눌데() 윗목에서 쿨적이자 난딱 안아다가 아랫목에 뉘어주시던 아, 우리 어머니.

내 한살매(일생)를 매겨온 새김말
아주마루로(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내 소꿉동무
내가 맨 처음 배운 노래는
나를 키운 것은 글묵()이 아니라 한 가닥 옛이야기였다
내가 겪은 8.15

2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맨바닥만 기고 살아 서럽기 그지없는 사람들. 그들을 일으키는 건 무엇일까.
따끔한 물 한 모금?
아니다.
그러면 늦은밤 가마솥에서 펄펄 끓은 밑()두부 한 바가지?
아니라니까.
그러면 무엇이드냐. 맨바닥을을 기고 사는 사람들보다 더 서러운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 그때 무언가가 비로소 벌떡 일어난다는 걸
나는 몸으로 겪어본 사람이다.


서울서 내가 바구(필요)한 거, 그건 주먹이었다
네놈들이 나가야지그랬어야지
, 해방된 역마차
내 눈을 틔워준 스승, 가대기 언니
, 썽풀이 춤
눈물의 주먹
내가 일으킨 세딱(세 가지)싸움
릴케를 찾아 헤맨 한 해
나에게 한숨을 가르쳐준 어린 알맥이(노동자)
내가 뵌 백범 선생

3 너도 젊은 한때가 있었던가

백기완이 너도 젊은 날이 있었드냐고 물으면, 나는 서슴없이 맞대한다.
그렇다. 나도 내 뼈를 갉아 애나무로 삼고, 내 피땀을 뽑아 거름으로 삼으며 온통 불을 지른 젊은 한때가 있었다. 그렇다. 나는 그런 젊은 날에 마주해 요만큼도 뉘우침 따위는 안 한다. 도리어 모이면 으르고 뽑아대고 뜨거운 것이 빛나던 그런 젊은 날의 눈물이 있었다. 이 새끼들아라고 맞대하기를 머뭇대질 않는다.

내가 겪은 6.25
누가 떵이(천재)일까
내가 처음으로 해치운 못된 미따꾼(미군)
찢어진 집안, 찢어진 살덩이
달동네라는 말 한마디 썼다고 매다는 나라
우리가 반드시 읽어야할 바발(작품)이란
백기완이, 너도 젊은 한때가 있었던가
젊어 한때 내가 치켜든 말뜸
, 그 가시나 어딘가 살아만 있다면
이 강산 봄 새뜸(소식)을 글월(편지)로 쓰자
달거지

4 저 들녘의 이름 없는 풀잎으로

4달 불쌈(4월 혁명).
그것은 이 땅 오천 해 갈마(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요, 이 땅별(지구)에서 가장 힘이 센 미검뿔빼꼴(미제국주의)이 틀어쥔 이 땅 쪼개놓기, 이른바 냉전 물코(체제)를 낼판(결정적)으로 뒤흔들어놓은 맨 처음의 부림(변혁), 온골(세계) 갈마의 빼돌(전환점)을 이 땅의 랭이(민중)들이 일군 엄청난 불쌈(혁명)이 아니고 그 무엇이랴.

내가 저치(장가) 가던 이야기
저치도 못 가보고 죽을 뻔했던 이야기
첫딸
우리 세 언애(형제)
내가 겪은 4달 불쌈(4월 혁명)
갈매기 바다 위에 날지 말아요
널마(대륙)의 술꾼 이야기
얼마나 눈물 바닥을 바싹 더 말려야
흘떼(강물)는 뛰어드는 데가 아니라 저어가는 데라니까
찬굿(영화)으로 꾸미려던 어린 엿장수 이야기

5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여보게 젊은이들!
이 썩어문드러진 모랏돈빼꼴(독점자본주의)에 살고는 있다고 하더라도 그 속에 낑길 생각일랑은 아예 하질 말게.
아니, 모랏돈빼꼴을 믿고 따르고 함께 살 생각일랑은 아예 가짓(시늉)도 말게. 그보다는 이 썩어문드러진 모랏돈빼꼴을 왕창 부림(변혁)하려는 어기찬 물살에 한 방울 맑은 이슬로 뛰어들어야 하질 않겠는가.

통일문제연구소의 맨 처음 집데(주소)
마흔다섯 해 앞서와 똑같은 목소리로
젊은이들이여! 어디선가 그대들 부르는 소리 안 들리는가
쇳소리
굴대솔(방송인)이 될 뻔했던 이야기
꽁치통조림
, 참말로 사람이 없구나

6 길을 잃더라도 발길을 돌리지 마라

그것은 강원도 어느 깊은 덤()골이었지
열여섯쯤 된 계집애의
등허리에 핀 부스럼에서
이따만 한 구더기를 파내주고
, 우리들은 얼마나 울었던가
나는 한살매를 저 가난의 뿌리와 싸우리라 하고
또 누구는 그 민중한테 장가를 들거라 하고
그렇다
백술을 달구름(세월)에 깎여도 기완아
너는 늙을 수가 없구나


목숨을 건 싸움, 유신 깨트리기
항일민족 글나(문학)의 밤
찬굿(영화) 포도의 계절
장준하, 그는 누구던가
나와 문익환 목사
쩨쩨한 짜나리가 거머쥔 나라
파리새끼한테 띄운 글월
때속(감옥)에서 만난 김지하
녹슬은 기찻길
이 개망나니 새끼들아

7 딱 한술 깨져 천해를 산다는 것

이제 무엇을 두려워하랴 우리는 모였고야
고개 숙여 눈물 젖을 깜도 없이
벗이여! 일어나라
압제를 밟아대고 외간것들(외세)을 밟아대고
! 자유 해방 통일, 끝내 승리의 그날까지
투사는 딱 한술 깨져 새날을 빚는 것
투사는 딱 한술 깨져 천해를 사는 것
! 그 아우내 그 넋살은 다시 살이 되어
벗이여 일어나라
벗이여 일어나라

러시아 어느 찰니(시인)한테 띄우던 글월
딸들의 일어남
벗이여 일어나라
살다보니 만났다 멀어져간 사람들
, 천해 만에 온 때활(기회)을 잃었구나
남북정치협상회의, 거기서 나는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가
목꽂이와 곧은목지

8 나는 늙지 않겠다

사람의 마지막이란 삶의 들락()이 꽈당 하고 닫히는 게 아니다.
죽음이라는 그 마지막이 바로 새로운 삶을 열어가는 첫발임을 알아야 한다.
내 한살매란 갖은 꺾임(좌절)과 온갖 깜떼(절망)로 내몰리는 품(비극)의 거퍼(연속)였다.
여기서 그 꺾임과 깜떼를 도리어 먹거리로 삼질 않으면 살 수가 없었던 것이니, 죽어서도 다시 사는 삶, 그거이 참짜 사람답게 사는 한 살매(일생).

노녘(북쪽) 누님께 띄우는 글월
돌빔 이야기
죽어서도 사는 삶
퉁차기(축구) 온골(세계) 큰잔치와 나
내 찬굿글묵(영화극본) 쾌지나 칭칭 나네
이 딱선이를 어찌 한단 말인가
한나(통일), 그날 노래마당(음악회)이야기
하얀 종이배
나 혼자 웅질 대는 안간 소리, ‘비나리

☞ ≪추천의 글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크게 공헌한 백기완 선생은 그에 못지않게 우리 문화예술에도 많은 영향을 끼쳐, 가령 이 분야에서 바른 길잡이로서 그가 한 몫은 아무리 높이 쳐도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그의 회고록은 제국주의와 외래문명이 우리의 삶과 문화를 얼마나 심하게 일그러트리고 더럽혔는가를 새삼스럽게 알게 한다. 이 회고록에 담긴 메시지를 오늘을 사는 우리들 모두 엄숙하게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신경림(시인)

백기완 선생의 삶은 책 제목 그대로 사랑도 이름도 명예도 남김없이산 민중의 삶, 민중 속의 삶, 민중의 분노와 희망을 노래한 삶이다. 세상에 눈뜨기 시작한 어린 시절, 들녘의 이름 없는 풀잎처럼 산 젊은 시절, “산 자여 따르라고 외친 장년 시절, 길을 잃더라도 발길을 돌리지 않고 다시 어두움 속으로 반딧불이를 찾아 나서고 있는 노년 시절까지, 그 삶의 전모가 한 편의 감동적인 서사시처럼 펼쳐진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지닌 의미를 일깨우는 들불 같은 얘기들이다. -김세균(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떠올리기만 해도 정신 번쩍 든다고 하는 백 선생. 그러나 이 책으로 만나보니 선생은 한 방울 이슬 같았다. 그러다가 그 이슬 한 구석에 쭈그린 짐승의 생명력 같은 패기, 쪽빛처럼 맑은 생각들, 들이대는 해방의 정서, 그 희망에 놀라 나는 소릴 질렀다. 이건 찬비다.
착하게 살고자 해도 좌절과 절망만 강요받고 있는 서민들, 분노의 노동자, 농민, 일천만 비정규직이 함께 젖어야 할 찬비라, 비키다니 한 방울인들 놓칠세라, 우리 팔을 벌리자. -단병호(전 민주노총 위원장)

백기완이 증언하는 한국 현대사와 그의 삶을 담은 자서전. 달동네, 동아리, 새내기 등의 우리말을 만들어낸 저자의 역량이 집대성된 이 책 속에는 통일운동가 백기완의 삶이 한 편의 서사시처럼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교보문고 책소개

백기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나의 한살매, 한겨레출판, 2009

백기완(1932~2021) :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일생을 반독재ㆍ노동ㆍ민중ㆍ해방통일 운동에 바친 영원한 재야인. 1932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나 1946년 부친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왔다. 국민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였지만 남북 분단으로 가족들이 헤어지는 비극을 겪으며 통일 문제와 사회 모순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고, 1950년대엔 농민ㆍ빈민 운동에 투신했다. 문맹 퇴치를 위한 야학에 참여하던 중 19604·19 혁명에 뛰어들었고, 이후 1964년 재야운동가들과 함께 한일협정 반대운동에 참가했다. 1960년대 중반 한일협정 반대운동을 계기로 통일민주화운동에 앞장섰으며, 3선개헌 반대와 유신철폐 등 1970년대 제3공화국 하 민주화운동에서 남다른 역할을 했다. 1974'유신헌법철폐 100만 명 서명운동'을 주도하여 긴급조치 제1호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최초로 구속되어 징역 12, 자격정지 12년 형을 받고 복역 중 1975년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1979'YWCA 위장결혼사건'을 주도하고 그 위원장을 맡아 계엄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구속,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19804, 징역 16개월 형을 받고 복역중 19813·1절 특사로 석방되었다. 민주화운동 외에도 1972년 백범사상연구소를 설립하여 1980년 해체될 때까지 소장직을 맡으면서 백범어록등을 출간했다.
1984년 다시 통일문제연구소를 설립하고 소장직을 맡아 자신의 저작과 통일 및 민주화운동에 관련된 책자들을 발간하고 있다. 1987년 대통령선거에서 대통령 후보로 추대되었으나 선거 이틀 전 후보를 사퇴했고, 1992년 제14대 대통령선거에 민중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999년 계간지 노나메기를 창간했다. 2000년대 이후로도 시민사회 운동에 동참해왔으며, 한양대학교 겸임 교수로 임명되었다.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1985), 벼랑은 거머쥔 솔뿌리여(1999), 백기완의 통일이야기(2003), 부심이의 엄마생각(2005),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2009), 버선발 이야기(2019) 등의 저서를 썼다.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은 그의 시 <묏비나리>의 일부 구절을 황석영이 차용하고 김종률이 곡을 붙여 만든 곡으로, 이후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곡으로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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