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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세계에 대한 과학적 인식”≪세계관과 변증법적 유물론≫문영찬 2021-02-05 21:54
Writer

세계관과 변증법적 유물론

서문

한국의 사회운동은 박근혜 정권에 맞서 반파쇼 민주주의 투쟁을 전개하였고 이러한 노력이 촛불시위와 맞물리면서 박근혜를 퇴진시키고 문재인 정권으로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한국의 사회운동은 문재인 정권 들어서서 박근혜 정권 때와는 또 다른 위기에 부딪히고 있는데 그것은 헤게모니의 위기이다. 문재인 정권의 개혁이 추진되면서 또 북-미 회담 등으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정세가 격동하면서 한국의 사회운동은 방향을 상실하고 있다. 그리하여 노동자계급과 민중들은 무기력하게 문재인 정권의 헤게모니에 끌려가고 있다.
노동자계급이 이러한 상황에 놓인 것은 근본적으로 노동자계급이 하나의 독자적 계급으로 서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이 독자적 계급으로 서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세계관을 온전하게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이 하나의 독자적 계급으로 서기 위해서는 자신의 세계관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의 세계관을 갖는 것이 노동자계급이 독자적 계급으로 서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아니지만 적어도 필요조건 중의 주요한 부분임은 분명하다.
노동자계급이 하나의 독자적 계급으로 서는 것은 궁극적으로 당 건설을 요구하는 문제이다. 당을 가질 때만, 사회주의의 기치를 펄럭이는 당을 가질 때만 노동자계급은 온전히 독자적 계급으로 설 수 있다. 노동자계급이 독자적 세계관을 갖는다는 것은 그러한 길에 이르기 위한 중요한 디딤돌을 마련하는 것이다

노동자 계급의 세계관으로서 변증법적 유물론은 소련 붕괴 후에 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의 집요한 공격을 받으면서 청산되고 매장되었다.
소련 붕괴 후 밀려들었던 서유럽의 철학들, 예를 들면, 푸코, 들뢰즈, 데리다, 하버마스, 지책 등등의 철학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변증법에 대한 부정이다.
20세기에, 80년대 운동에서 혁명의 대수학으로 불렸던 변증법은 이러한 공격들에 의해 청산되고 매장되는 과정을 거쳤던 것이다.
그에 따라 노동자계급은 독자적 세계관을 상실하고 민주노동당 혹은 정의당 류의 개량주의에 빠지거나 아니면 노동운동 내의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의미하는 조합주의에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현실의 사회운동은 자본주의에 의해 배제되는 자들의 연합을 의미하는 배제에 대한 저항이라든지 혹은 환경, 여성, 성소수자, 인권 등의 다양한 영역들에서 저항의 연합으로 대체되었다.
이른바 신좌파적인 운동이 대세가 된 것이다.

유럽에서 68혁명 후에 배태되었던 신좌파 운동은 계급투쟁 노선의 청산을 핵심으로 하는데 그러면서도 내세우는 것은 자본주의의 억압에 맞서는 다양한 이질적인 세력의 연합을 모토로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은 이들 다양한 세력 중의 하나로 규정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저항은 하지만 전망이 없는 운동의 하나의 흐름으로 되었는데 이 과정은 실제로는 노동운동과 계급투쟁 노선의 해체 과정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신좌파적인 계급투쟁 노선의 청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이 하나의 독자적 계급으로 재정립되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를 위해서 자본주의 사회에 존재하는 계급 중에서 특수한 계급으로서 노동자계급이라는 위상, 저항하는 세력 중 처음부터 끝까지 변혁적인 계급으로서 노동자계급이라는 위상, 계급사회를 극복하고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할 유일한 세력으로서 노동자계급이라는 위상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세계관을 위한 투쟁은 바로 그러한 노력의 첫걸음이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의 세계관으로서 변증법적 유물론을 다시 세워내는 것은 일차적으로 변증법적 유물론을 자신의 세계관으로 하는 운동을 강화시키는 것을 필요로 한다.
실천적 측면을 떠나 이론적 측면에서 보면 그것은 한편으로 부르주아적, 소부르주아적 철학을 비판하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다른 한편으로 변증법적 유물론이 인류의 철학 발전의 합법칙성의 결과로 탄생했다는 것을 논증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변증법이 맑스와 엥겔스에 의해 유물론적으로 개작되고 인간 사회에 대한 유물론이 완성되면서 총체적인 변증법적 유물론이 완성되었음을 논증할 필요가 있다.

세계관을 가진 계급 혹은 세력과 세계관을 갖지 못하는 계급 혹은 세력은 현실에서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세계관을 가질 때만 하나의 독자적 계급으로 서는 것이 가능해진다.
세계관은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는 세계를 파악하게 해주는 하나의 나침판과 같은 것이다.
그러한 나침판의 도움을 빌어 세계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획득할 때 노동자계급의 운동은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해방운동으로 발전할 것이다.

1장 세계관과 철학의 근본문제

_세계관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 인식한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인식이 체계화되고 총체성을 띠는 과정이 곧 세계관 형성의 과정이다.
그러나 사람마다 삶의 방식이 다르고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상이하므로 세계관도 상이할 수밖에 없고 세계관이 무엇인가에 대한 규정 또한 상이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사회에서 차지하는 지위가 어떠한가에 따라, 사회적 존재와 계급의 존재에 따라 세계관은 판이하다.
사회에서 많은 수의 사람들이 종교를 믿고 있는데 그들은 종교적 세계관을 갖고 있다. 이들은 믿음에 따라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철학은 지식을 기초로 세계관을 제공하는 역할을 해왔다.
다양한 철학 사조들의 공통점은 지식에 기초한다는 것이다. 종교는 믿음 혹은 계시가 본질이지만 철학은 종교와 달리 일차적으로 지식에 기초한다.
지식은 먼저 자연이라 일컬어지는 이 세계에 대한 지식을 말하며 또한 사회에 대한 지식과 인간의 정신, 의식, 사고에 대한 지식을 말한다.
이러한 지식들이 축적되고 체계화되면 그것은 곧 세계관으로서 역할하게 된다. 따라서 철학적 지식은 자신의 세계관과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데 중세 유럽의 경우 지배계급은 민중들에게는 종교만이 필요하고 철학이 필요하지 않다고 하여 민중들이 철학에 접근하는 것을 가로막았다.

철학의 역사 전체에 걸쳐서 자연을 일차적으로 볼 것인가(유물론唯物論), 정신을 일차적으로 볼 것인가(관념론觀念論)라는 경향 간의 대립이 의연히 관철되었다.

고대철학은 본원적이고 자연성장적인 유물론이었다. 그러한 유물론인 한에서 고대철학은 물질에 대한 사유의 관계를 분명히 할 수 없었다. 이 점에 관해 똑똑히 알아야 할 필요성으로부터 육체와 분리될 수 있는 영혼에 관한 학설이 나왔고, 이 영혼의 불멸성에 대한 주장이 나왔으며, 마지막으로 일신론이 나왔다. 이처럼 낡은 유물론은 관념론에 의해 부정되었다. 그러나 철학이 더 발전해 나가면서 이 관념론도 역시 더 유지될 수 없게 되어 현대 유물론에 의해 부정되었다. 부정의 부정인 이 현대 유물론은 낡은 유물론의 복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천 년에 걸친 철학 및 자연과학에 담겨 있는 사상 내용 전체와 이 이천 년의 역사 자체에 담겨 있는 사상 내용 전체를 이 낡은 유물론의 영속적 기초에 첨가한 것이다. 그것은 더 이상 철학이 아니라 단순한 세계관이며, 이 세계관은 과학의 과학이라는 특별한 과학에서가 아니라 실제적인 과학들에서 확증되고 실증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철학은 지양되었다. 말하자면 극복되는 동시에 보존되었다’; 형식에서 보면 극복되었고, 그 현실적 내용에서 보면 보존되었다.” _엥겔스
여기서 주목되는 점은 엥겔스가 더 이상 철학이 아니라 하나의 단순한 세계관이라고 언급한 점인데 이는 철학과 세계관의 관계에 대한 뛰어난 묘사이다.
철학이 지양되고 하나의 단순한 세계관이 되기 전에 철학은 일종의 지식의 총체였다. , 자연, 우주, 사회, 도덕, 정신 등 이 세계의 모든 것에 대한 지식의 총체가 철학이었고 이러한 지식의 총체를 담는 그릇이 세계관이었다. 철학(philosophy)이라는 용어 자체가 고대 그리스에서 지혜에 대한 사랑을 의미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철학의 발생 자체가 인류의 지식이 어느 정도 축적되어서 일목요연한 체계가 발생하면서부터였다는 점에서 철학은 지식의 총체를 가리키는 것이었고 그러한 상태가 근대과학이 발생하기까지 이천 년 이상이나 이어져 왔다.
그러나 역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 근대과학이 발전하여 기존의 지배적 철학이었던 관념론과 형이상학이 과학의 발전 자체에 의해 부정되고 무너져가면서 새롭게 맑스, 엥겔스에 의해 정립된 변증법적 유물론은 더 이상 기존의 철학과 같이 과학의 과학, 지식의 제왕이 아니라 단순한 세계관이 되었고 이를 일컬어 엥겔스는 철학의 지양이라고 했다.
따라서 기존에 철학에 담겨 있던 많은 영역들은 분화되어 발전하는 개별과학의 대상이 되어 그 영역에서 실증적으로 대상을 탐구하고 법칙을 발견하는 것으로 전화되었고 그에 따라 철학에서 남아 있는 것은 세계를 인식하는 총체적 관점을 의미하는 세계관으로 되는 것이다.
현대 유물론은 고대 유물론의 관점을 계승하면서도 그와 비교할 수 없이 풍부한 내용을 내포하게 되었고 철학을 지양하고 단순한 세계관으로 자신을 정립했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과학적 세계관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이 근대와 현대의 과학 발전과 모순되지 않으며, 그 성과와 끊임없이 발전하는 과학의 내용을 자신의 내부로 포섭하고 과학의 발전을 추동한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천상계와 지상계라는 구분을 무너뜨려 세계관적 충격을 가져왔고 뉴튼의 만유인력은 우주가 상호연관된 하나의 전체라는 인식을 성립하게 했다. 또한 결정적으로 19세기 근대과학의 3대 발견, 즉 진화론, 세포의 발견, 에너지 보존 및 전화의 법칙 등은 변증법적 자연관의 성립을 가져왔다.
자연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유동하고 변화하며 상호연관되어 있고 상호전화하는 운동으로 가득 차 있다는 자연관, 변증법적 자연관의 성립은 변증법적 유물론의 성립을 예비하는 것이었다.
변증법적 자연관에 더하여 인간사회에 대한 과학이 맑스와 엥겔스에 의하여 수립됨에 의해 총체적이고 과학적인 세계관으로서 변증법적 유물론이 성립할 수 있었다. 그 이전에 인간사회는 관념론의 최후의 도피처였다
맑스와 엥겔스는 19세기 유럽 전체에 걸쳐 발전하는 자본주의를 분석하면서 물질적 삶, 물질적 생산의 문제가 역사발전의 추동력임을 인식하였고 한편으로는 생산력의 발전, 다른 한편으로는 물질적 생산에서 형성되는 사람 간의 관계, 생산관계라는 개념을 정립하면서 생산력과 생산관계 간의 모순에 의해 역사가 추동된다는 점을 발견하였다.
이를 기초로 생산관계에서 비롯되는 계급관계와 계급투쟁이 인류역사의 본질을 이룬다는 역사인식을 정립하였다.
역사에 대한 과학적 관점, 유물론적 관점의 정립됨에 따라 자연, 사회, 정신 등 일체의 영역에 걸친 유물론적 관점의 정립이 가능했고 과학적 세계관이 정립되었다.
변증법적 유물론의 성립은 변증법적 자연관과 인간역사에 대한 유물론, 역사과학이 성립하고 상호 맞물리면서 이루어진 것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혁명적 세계관이다
혁명은 어느 한 계급의 의지와 무관하게 발생하는 것이고 그 사회구성체가 수명이 다하여 필사적인 질적인 비약을 통해 새로운 사회구성체로 이행하는 것으로, 인간집단의, 계급의 혁명적 실천 없이는 불가능하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혁명이 하나의 자연사적 과정임을 인식하게 하여 혁명의 철학적 토대, 세계관적 토대를 제공한다.
인간의 역사는 인간 자신의 목적성을 띠는 실천으로 인해 자연의 역사와 구분되지만 인간 상호간의 목적을 가진 실천들이 어우러져 이루어지는 역사는 동시에 하나의 자연사라는 것을 변증법적 유물론은 전적으로 승인한다.
혁명의 자연사적 필연성을 승인함에 의해 변증법적 유물론은 이 사회의 혁명적 계급, 노동자계급의 세계관이 되었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혁명적 실천의 의의를 정확히 드러내준다.
맑스는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 11번에서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다양하게 해석해 왔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라고 파악하여 혁명적 실천의 의의를 전면에 드러내주었다.
실천, 혁명적 실천을 맑스가 철학의 영역에 끌어들임에 의해, 그리고 실천을 인간의 인식과정의 하나의 요소로 파악함에 의해 철학과 정치의 통일을 이룰 수 있었고 인간의 인식과정에 대한 과학을 정립할 수 있었다.
마오쩌둥(모택동)실천론에서 실천인식재실천재인식이라는 정식을 정립했는데 이는 실천을 인식과정의 하나로 승인하면서 인식과 실천의 통일과 상호작용을 통한 인식과 실천의 부단한 상승을 보여준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혁명의 대수학임을 분명히 한다.
모순 개념은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적 적대를 설명하는 철학적 토대가 되며 양적 변화의 질적 변화로의 전화는 사회혁명을 설명하는 철학적 고리가 된다.
부정의 부정, 지양 등의 개념 등은 사회운동이 과학으로 성립할 수 있는 철학적 토대가 된다. , 변증법은 혁명의 대수학으로서 계급투쟁의 과학을 가능하게 한다.
인간의 인식과 이 세계의 일치로서 변증법은 형식논리학을 넘어서는 고차적 인식인데 자연과 세계의 온갖 변화, 인간사회의 적대와 모순들, 인간 사고의 변화무쌍함을 정직하고 과학적으로 인식하게 하여 인간이 이 세계를 변혁하는 무기로 작용한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혁명의 자연사적 필연성의 승인, 혁명의 실천적 의의를 전면화하여 인식과 실천의 통일을 이루는 것, 혁명의 대수학으로서 변증법을 자신의 무기로 삼는 것을 통해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세계관이 되었다.

_철학의 근본문제

철학은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의 문제라는 점에서 세계관의 개념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계급사회가 발생한 이후로 사회는 계급으로 분열되었고 사회적 처지, 사회적 존재가 다름에 따라 사람들은 다양한 세계관을 갖게 되었다.
존재에 대한 사유의 관계, 자연에 대한 정신의 관계에 관한 문제, 철학 전체의 최고의 문제는 모든 종교와 마찬가지로 야만적인 상태에서 나타난 편협하고 무지한 표상들에 그 뿌리를 가지고 있다. 존재에 대한 사유의 지위에 관한 문제, 다음과 같은 문제: 무엇이 본원적인가, 정신인가 아니면 자연인가? 신이 세계를 창조했는가 아니면 세계는 영원한 옛날부터 거기에 존재하는가?
이 문제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철학자들은 두 개의 큰 진영으로 갈라졌다. 자연에 대해 정신의 본원성을 주장하고, 따라서 어떤 종류든 결국 세계의 창조를 받아들인 철학자들은 관념론 진영을 이루었다. 자연을 본원적인 것으로 여긴 그 밖의 철학자들은 유물론의 다양한 학파에 속한다.” _엥겔스.
자연의 존재, 물질을 일차적으로 보는 철학자들은 유물론의 진영으로, 정신, 사유, 의식을 일차적으로 보는 철학자들은 관념론의 진영으로 나누어진다. 이러한 엥겔스의 정의는 논리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타당하다.
존재와 사유, 물질과 의식의 문제는 논리적으로 철학의 근본물음이다. 자연과 정신이라는 개념보다는 물질과 의식이라는 개념이 한층 더 엄밀한 것이며 철학과 과학의 발전을 담고 있는 개념이다.

고대 유물론은 이 세계, 자연을 근원적으로 보았지만 당시 과학의 발전의 한계로 인하여 자연의 최고의 산물인 인간의 정신, 사고, 사유를 해명할 수 없었다. 인간의 정신은 어떻게 발생하고 존재하고 변화하는지, 정신과 자연과의 관계는 무엇인지에 대해 고대 유물론은 답을 할 수 없었고 부동의 정신, 현실 세계 너머의 이데아의 세계를 주장하는 관념론에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강력한 종교의 권력은 신에 의한 세계의 창조, 지배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종교는 정신이 이 세계, 자연, 물질보다 선차적이라는 관념을 필요로 했고 중세 유럽에서 카톨릭의 지배는 이러한 관념론적 인식의 풍부한 토대였다.

고대 유물론이 정신을 해명하지 못하여 관념론에 밀려났지만 현대 과학은 의식이 물질의 산물이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20세기의 뇌과학, 생리학 등의 발달은 의식, 정신이 뇌라는 물질의 내적 성질임을 증명하고 있다. , 의식의 이차적 성격, 파생적 성격이 과학에 의해 입증되고 있다.
철학의 근본물음에 대한 유물론적 해결은 현대 과학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철학의 근본물음의 두 번째 측면은 이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가, 이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진리 혹은 진리에 가까운 것인가이다.

이 세계에 대한 인식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이 세계에 대한 인식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철학자들도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칸트인데 이들은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라고 불린다. 아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이론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에서는 세계의 인식가능성을 전적으로 승인하고 있고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이 세계에 존재함을 완전히 승인한다.
세계의 인식가능성을 승인하는 이유는 물질, 자연이 일차적이고 정신은 이차적인 것이라고 보는 점에 근거한다. 정신은 이차적인 것으로서 근본적으로 현실 세계, 자연의 반영으로서의 성질을 지니기 때문에 우리의 인식은 세계에 대해 거의 정확하게 인식가능하다고 본다.
관념론자들은 사유가 곧 존재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사유와 존재가 동일하다고 본다. 주관적 관념론자들은 세계는 인간의 감각에 불과하다고 본다.

철학의 근본물음은 사회의 영역에서는 다르게 변형된다. 여기에서는 물질과 의식, 존재와 사유라는 범주가 사회적 존재와 사회적 의식 중 어느 것이 선차적인가 라는 문제로 변형된다.
사회적 존재가 일차적인가, 아니면 사회적으로 획득한 의식이 일차적인가라는 물음에 맑스주의는 사회적 존재의 일차성을 주장한다.
의식은 결코 의식된 존재 이외의 어떤 것일 수 없다.”_ 맑스
이는 명확히 의식에 대한 존재의 선차성을 주장하는 것으로, 이러한 인식에 기초하여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는 테제가 정립된다.
이 테제로 인해 역사적 유물론이 성립할 수 있었다. 생산력과 생산관계, 계급대립과 계급투쟁, 사회구성체의 성립과 변동 등 역사적 유물론의 주요 범주들은 사회적 의식에 대한 선차성에 기초하여 성립된 것들이다.

_세계의 통일성

세계관 그리고 철학의 근본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 세계의 통일성이라는 범주이다.

이 세계는 천상의 세계와 지상의 세계와 나누어진 두 개의 세계인가, 아니면 무수한 연관의 사슬로 이루어진 하나의 전체인가라는 문제는 직접적으로 세계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중세적 세계관을 붕괴시키는 것이었다.
갈릴레이의 역학이 정립되면서 수많은 별들, 천상계의 운행법칙, 운동법칙이 지상의 운동법칙과 동일하다는 것이 입증되었을 때 천상의 세계와 지상의 세계로 세계를 둘로 나누어보는 세계관이 붕괴하고 세계의 동일성 관념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뉴튼이 발견한 만유인력의 법칙은 태양계와 우주에 존재하는 많은 행성과 별들에도 상호간에 끌어당기는 인력, 만유인력이 존재함을 지적하여 이 세계에 존재하는 물질들의 상호연관성이라는 관념이 생기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브루노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열렬히 선전하고 자신의 과학적 세계관을 굽히지 않아 종교법정에 의해 화형을 당하기도 했다.
빛의 성질(우주의 물질과 지구의 물질은 차이가 없다), 운석에 대한 분석(지상과 우주는 통일적인 세계), 원자와 분자 개념의 성립(생물계와 동물계의 구성원리가 같다), 진화론(인간은 신의 창조물이 아니며 동물과의 동일성이 존재한다) 등 오랜 기간에 걸친 철학과 과학 발전을 통해 이 세계가 하나의 전체라는 개념, 세계의 통일성이라는 개념은 확립되었다.

세계가 하나일 수 있기 전에 먼저 그것이 존재해야 하므로 세계의 존재가 그 통일체의 전제이기는 하지만, 세계의 통일체의 요체가 그 존재에 있는 것은 아니다. 정말이지, 우리의 시야를 넘어서는 지점부터는 존재는 일반적으로 하나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다. 세계의 진정한 요체는 그 물질성에 있으며, 이 물질성은 요술쟁이의 두세 마디 공문구가 아니라 철학과 자연과학의 장기간의 걸친 지속적 발전에 의해 증명된 것이다.” _엥겔스.
이 세계가 하나의 통일체라는 것은 관념론에 의해서도 가능하다. 헤겔의 경우 자연과 이 세계는 절대정신의 외화(外化)이다. 따라서 절대정신에 의해 이 세계의 통일성은 담보된다. 그러나 이러한 통일성은 허구이다. 또 존재라는 개념은 정신적 존재에 대해서도 가능하며 따라서 반드시 현실적인 존재를 말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것만 갖고 세계의 상호연관성을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세계의 통일성의 내용인 세계 만물의 상호연관성은 엥겔스의 말대로 바로 그 물질성에 의해 담보되는 것이다. 이 세계가 물질적 세계이고 그러한 물질적 구성원리가 세계의 근본법칙이고 물질성에 의해 만물의 상호연관이 규정된다는 것을 인식할 때만 그것을 철학적으로 표현하는 개념인 통일성이 과학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세계의 통일성에 대한 관념은 하나의 세계관을 형성하기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계의 통일성 개념에 의해 세계에 대한 총체적 인식이 과학적으로 뒷받침되고 일체의 허황된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천상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중요한 것은 천상의 세계라는 정신적 환락을 쫓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모순을 극복하려 노력하는 삶이라는 것 등이 바로 세계의 통일성이라는 개념에 의해 뒷받침된다.

2장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의 역사

_철학의 발생

고대 사회에서 철학의 탄생은 그 전에 인간의 지식이 원시단계에서 지적 단계로 발전하였음을 전제로 한다.
인간은 일상생활에서 만물에 대한 관찰을 수없이 되풀이함으로써 자신 이외의 사람, 동물, 식물, , 강 등이 자신과는 독립적으로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자신과 독립되어 있는 객관적 실재로 이해하는 것은 과학적 사고의 출발점이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로써 관찰을 통해서 얻는 지식의 축적, 세계에 대한 분석과 종합, 체계화 등이 가능하게 되었고 이러한 지식의 축적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면서 일정 시점에서 철학이 발생하게 되었다.
지식의 축적을 기초로 한 철학의 발생은 전통적인 신앙과의 충돌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신앙에서 과학적 사고로! 이것이 철학 발생의 본질이었다.
종교 혹은 신앙이 발생했던 것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무력감 때문이었다. 여기에 인간 사고에 있어서 추상능력, 일반화의 능력이 공상과 결합되면서 태양신, 산신령 등 자연물과 결부된 종교적 관념이 발생했다.
그러나 인간의 지식이 축적되고 체계화되면서 과학적 사고 혹은 로고스(이성)를 추구하는 철학이 종교적 관념과의 투쟁 속에서 발생했다.

인류의 유년기, 고대 사회에서 철학의 발생은 고대 이집트, 인도 등에서 그 원형이 보인다.
역사상 처음으로 지식과 신앙이 공공연히 충돌하였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역사상 최초의 달력이 만들어졌고 체계적인 천문학의 관측이 실시되었고 농업발전은 기아학의 맹아를 탄생시켰고 수학이 발전했다. 그리하여 철학의 맹아가 나타났는데 맹아적 형태로 자연 현상들의 물질적 근원에 관한 문제가 이미 제기되었고 모든 생물을 만들어내고 또 모든 것의 근원이 되는 차가운 물과, 마찬가지로 또한 공간을 채우는 모든 것 속에 들어있는공기에 관한 기술(記述)이 발전되었다.” 그러나 이집트에서 철학과 과학사상은 높은 수준에 이르지 못했는데 이는 강력한 종교적 관념 때문이었다.
고대의 인도는 이집트보다 훨씬 더 발전한 철학과 과학사상을 보여주고 있다. 의식적으로 관념론에 맞서는 인도의 유물론은 철학적으로 매우 발전된 모습을 띠는데 우파니샤드에서는 원질 곧 물ㆍ불ㆍ공기ㆍ빛ㆍ공간ㆍ시간 등의 하나가 바로 세계의 근본원소라고 보는 학설이 여러 곳에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영혼이란 다만 의식의 총체에 불과하다. 이들(물ㆍ불ㆍ흙ㆍ공기)로부터 생긴 후 그것(영혼)은 원소로 돌아간다. 인간이 죽으면 의식은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이러한 인식은 인간의 정신, 의식을 유물론적으로 해명하려 시도한 것이었다. 여기서는 의식의 일차성, 절대성이 부정되고 있고 물질적 원소들이 궁극적인 것이라는 사상이 명백히 나타나고 있다.
고대 인도의 원자론은 고대 그리스의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과 비교되는데 고대 인도의 유물론이 매우 높은 수준으로 발전했음을 말해준다.
이외에도 중국 등 많은 곳의 고대 문명에서 지식의 축적이 신앙과 충돌하면서 철학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철학의 발생은 기원전 6세기에 원시공동체가 노예제 체제로 교체되던 시기에 이루어졌다.
고대 그리스의 유물론 철학은 흔히 자연철학이라고 불린다. 그 창시자는 탈레스. 그는 세계의 근본요소(아르케)를 물()에서 찾았다.
탈레스의 제자 아낙시만드로스는 세계의 근본요소를 (아페이론; 무한자)에서 찾았다. 아낙시만드로스에게는 자연발생적인 변증법적인 사고가 보이는데 그는 아페이론으로부터 그 속에 있는 차가운 것과 뜨거운 것, 건조한 것과 습한 것이라는 대립물이 분리되어 모든 물체가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대립물이란 관념이다. 세계를 어떤 대립되는 요소간의 관계로 설명한 것은 직관에 기초한 변증법적 관념의 발전이었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제자 아낙시메네스는 세계의 근본요소를 공기라고 보았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아페이론과 아낙시메네스의 차이는 아페이론이 직관에 기초한 추상임에 반해 아낙시메네스는 공기의 희박화와 농밀화라는 물리적 과정으로 세계를 설명함으로써 철학에서 물리적 사고를 개척했다는 점이다.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는 자연철학자 혹은 자연 발생적인 유물론자로, 이들의 활동 시기는 그리스에서 이집트 등 동방의 학문을 흡수하면서 철학이 발생하던 시기였다.

자연 발생적인 유물론 이후의 시기는 이전 시기를 이어가면서도 철학에서 당파가 발생하고 이 당파의 투쟁이 뚜렷이 형성된 시기였다. 대표적인 사람이 헤라클레이토스(유동의 철학-유물론자)파르메니데스(부동의 철학-관념론자)였다.
헤라클레이토스(세계의 근본요소는 불)는 자연발생적인 변증법을 거의 완성된 형태로 제출했고(대립물의 동일성 혹은 통일성, 대립물의 상호전화,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 반대로 파르메니데스는 변증법에 의식적으로 반대하면서 부동(不動)의 정신이 근본적 요소라는 관념론의 원형-관념론의 기본적인 정신을 제기했다.
파르메니데스의 논리를 보면 첫째, 그는 헤라클레이토스와 정반대로 운동과 변화를 억견(臆見)이라고 치부하여 부정한다. 운동과 변화는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사고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둘째, 그러면, 운동, 변화하지 않는 것, 즉 부동의 것이 진정한 진리가 된다. 셋째, 운동, 변화하는 것은 물질, 자연이므로 부동의 것은 정신적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넷째, 따라서 부동의 정신적 존재가 이 세계의 본질이 된다. 또한 그러한 부동의 정신만이 존재하는 것이며 우주와 세계 전체는 이러한 부동의 정신의 단일한 실재일 뿐이다.
헤라이클레이토스의 변증법에 따르면 현실에서의 운동과 변화는 존재와 비존재의 통일이다. 그런데 운동과 변화를 억견이라고 부정하는 파르메니데스의 입장에서는 비존재가 부정된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고 한 것은 말할 수도 생각할 수도 없다고 본다. 그것은 사고의 대상이 되지 않고 그것을 사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비존재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는 오직 존재일 뿐이며 그것은 단일한 부동의 정신이다. 하지만 공상과 상상은 존재하지 않은 것에 대한 사고(思考)이다.
❍ ❶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는 것은 없다.(파르메니데스 존재이론)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도 있는 것이다.(피타고라스의 이원론) 존재와 비존재는 동일하고 또한 동일하지 않다.(헤라클레이토스의 변증법)
부동의 정신만이 진정한 존재라는 파르메니데스의 관념론은 그 원형을 보여주면서 플라톤으로 이어지고 고대 그리스 자연철학의 시대를 넘어서 오늘날까지 존재하는 관념론적인 철학적 당파의 시대를 열었다.
엥겔스는 노동을 통해 인간의 문화와 문명의 발생이 가능해졌지만 그 결과 종교, 법 등 정신의 생산물들이 사회에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함에 따라 인간이 자신의 행위를 손(노동)이 아니라 사유로부터 설명하게 되고 이러한 점이 물질에 비해 정신을 일차적으로 보는 관념론적 토대가 되었다고 파악하고 있다.
이는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가, 그리고 육체노동에 대한 정신노동의 지배가 관념론의 뿌리임을 말하는데 파르메니데스의 관념론은 당시 사회의 지배계급인 귀족계급의 이데올로기로서 자연철학, 고대 유물론에 맞서 의식적으로 창출되었다.
헤라이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는 자연이 근원적인가 정신이 근원적인가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대립했고 또 세계를 생성과 소멸, 유도의 관점에서 볼 것인가 아니면, 부동성, 절대성의 관점에서 볼 것인가라는 점에서 방법론상의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이후의 철학의 역사에서 유물론과 관념론의 대립, 변증법과 형이상학의 대립의 원형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_테모크리토스 노선과 플라톤 노선의 투쟁

데모크리토스엠페도클레스, 아낙사고라스의 고대 유물론자들의 견해를 흡수 연장하며, 나아가 이들을 극복하고 원자론을 확립함으로써 고대 유물론을 완성했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원자의 운동은 영원히 존재하며 시간상의 기원을 갖지 않는다. 원자 스스로 운동성을 지니고 있다는 추론에 의해 그는 물질과 운동의 통일성이라는 유물론의 초석을 세웠고 자연과 세계에 대한 설명에 있어서 세계 전체는 물질의 운동에 다름 아니다라는 견해로 나아갈 수 있었다.
데모크리토스의 직접적 선행자는 스승인 레우키포스였는데 그는 고대 그리스 최초로 원자와 공허(空虛)에 관한 학설을 제기하고 인과성의 원리도 정식화하였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은 고대 유물론의 정점이었다. 세계 전체를 원자라는 물질의 운동으로 설명한 것, 운동에 대해 원자의 자기 스스로의 성질로 파악한 것, 공허라는 비존재를 원자의 운동의 조건으로 파악하여 운동에 대한 변증법적 관점을 정립한 것, 인식론에 있어서 감성과 이성의 구별을 정립하여 유물론적 인식론의 초석을 놓은 점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이러한 원자론의 성과는 당시 과학의 한계를 반영하고 있는데 우연성을 부정하고 필연성만을 주장하여 숙명론에 빠진 점, 인간 정신에 대해 원자의 결함과 분리로 파악하는 기계론적 설명을 보여서 이후 물질에 대한 인간정신의 선차성을 주장하는 관념론에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는 점 등이 한계이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이 고대 유물론을 완성된 형태로 제출한 것이었다면, 고대 관념론 또한 플라톤에 의해 완성된 형태로 제출된다. 파르메니데스가 부동의 정신의 단일한 존재를 주장하여 관념론의 원형을 주장했다면 플라톤은 그러한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을 계승하여 발전시켜 이데아론을 제출하여 객관적 관념론의 창시자가 된다.
데모크리토스와 거의 동시대 사람으로 기원전 5세기에 활동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에 배우고 소크라테스 죽음 후에 아카데미아라는 철학연구기관을 창설한다. 그는 정치적으로 민주주의 당파에 반대하고 귀족계급의 이익을 옹호하였으며 데모크리토스 사상에 대해 반대하여 활동하였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현실세계 너머의 일종의 정신세계인 이데아의 세계를 주장하는 이론이다. 그 이데아의 세계는 계층적인데 맨 위에 선()의 이데아가 있고 그 아래 덕()의 이데아가 있는 식이다.
그의 이데아론은 이데아 자체가 정신적 본질로서 영구불변의 부동의 것이라는 점에서 파르메니데스의 부동의 정신적 존재 이론을 계승한 것이다. 그러나 플라톤의 이데아가 파르메니데스와 다른 점은 부동의 정신적 존재를 실제적 존재로 끌어올린 점인데 그 과정에서 플라톤이 사용한 방법은 보편의 자립화, 실재화이다.
플라톤은 개별과 보편의 관계를 그르치고 부당하게 보편을 자립화하여 개별로부터 독립시켜서 이데아의 세계를 창조했다. 그리고 현실의 세계, 감각의 세계는 이러한 이데아의 세계로부터의 파생물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이후 역사에서 많이 등장하는 객관적 관념론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데 객관적 관념론은 인간의 정신적 본질을 절대화하고 자립화하여 인간으로부터 분리시키고 독립적으로 실재화하는 것이다.

플라톤은 이데아론으로써 보편의 절대화와 자립화를 추구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연 발생적인 변증법의 일면을 보인다.
그러나 플라톤은 이러한 자연발생적인 변증법적 인식에서 궤변으로 나아간다. 반대되는 것들은 그 반대로부터 생겨난다는 것을 절대화하여 생명은 죽음으로부터 생겨난다고 비약을 한다.
플라톤은 이데아론에 기초하여 자신의 철학을 전개하는데 보편의 절대화와 자립화를 진리로 치부하고는 그러한 철학에 기초한 철학자가 다스리는 이상 국가론을 전개한다.
철학자들이 이 나라에 있어서 군왕들로서 다스리거나, 아니면 현재 이른바 군왕 또는 최고 권력자들로 불리는 이들이 진실로 그리고 충분히 철학을 하게되지 않는 한, 그리하여 이게, 정치권력과 철학이 한데 합쳐지는 한편으로, 다양한 성향들이 지금처럼 그 둘 중의 어느 한쪽으로 따로따로 향해 가는 상태가 강제적으로나마 저지되지 않는 한, 인류에게 있어서는 나쁜 것들의 종식은 없다네.” _ 플라톤 국가<정체(政體)>
이는 정치가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에 기초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올바르지만 철학자가 곧 정치권력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비약이라고 할 수 있고 당시 그리스 현실과 맞아 떨어지지 않는 것이며 자신의 이데아론이 그리스의 지배적인 철학과 정치현실이 되어야 한다는 강변에 불과한 것이다.
그의 이상 국가는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일종의 전체주의 사회라 할 수 있다. 이상 국가에서는 여성과 아이들 그리고 재산이 공유의 대상이 된다.
플라톤은 또한 이데아론에 입각하여 자신의 예술론을 펼치는데 현실의 세계가 이데아의 세계의 모방이며, 예술은 현실 세계의 모방이므로 예술은 모방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여 예술을 매우 낮게 평가하였다.

플라톤 철학의 의미는 이전의 파르메니데스의 철학을 계승하여 이데아론으로써 관념론을 고대세계에서 완성했다는 점이다.
플라톤에 이르러 이전의 자연철학, 유물론과 구별되는 관념론, 정신을 세계의 일차적 요소로 보는 철학이 완성된 모습을 나타내었다.
고대 유물론과 원자론이 밀려나고 플라톤의 철학과 관념론의 흐름이 지배적으로 된 것은 고대 유물론과 원자론이 인간정신의 한계를 제대로 해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는 근대에 접어들어 자연과학이 발전하고 변증법적 자연관이 성립되면서 극복된다.

문영찬, 세계관과 변증법적 유물론, 노사과연, 2018

<차례>
서문
1장 세계관과 철학의 근본문제
2장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의 역사
3장 맑스, 엥겔스에 의한 철학에서의 혁명
4장 부르주아적, 소부르주아적 철학사조에 대한 비판
5장 과학의 발전과 그에 대한 철학적 일반화
6장 철학과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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