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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은 하나의 사건이다. 한 권의 책에 담긴 지은이, 만든이, 읽는이의 고뇌와 정성을 기억한다.



Title<새해에 집에서 온 편지를 받고> ≪다산의 풍경≫-정약용 시 선집2021-01-10 21:07
Writer

<새해에 집에서 온 편지를 받고> 다산의 풍경-정약용 시 선집

무등산에 올라

서석산(瑞石山)은 뭇 사람이 우러러보는 산
꼭대기엔 옛 눈이 쌓여 있어라.
태곳적 모습 변치 않고
차곡차곡 쌓아 높고 우뚝하구나.
섬세하게 뻗어 나간 산줄기들
새기고 깎아 뼈와 마디를 드러내었네.
오를 때는 길도 없고 까마득하더니
한참 뒤엔 발아래 풍경이 즐비하네.
편벽된 행동은 빛처럼 쉽게 드러나지만
지극한 덕은 어둠처럼 분간하기 어렵지.
사랑스러운 이 산의 충만함
쌓아서 간직함에 빈틈이 없네.
천둥과 비에도 깎이지 않고
하늘이 만든 그대로의 모습으로
가만히 구름과 안개를 피워
대지의 열기 식혀 주곤 한다네.

과거에 낙방하고

1

전국(戰國) 시대에도 옛 기풍이 있어
유능한 인재면 누구나 발탁하여
유세(遊說)하던 이가 재상이 되고
떠돌이 나그네도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과거 시험이 생기고는
꾸며댄 글만 날로 어지럽네.
영광과 굴욕이 한 글자로 결판나
평생 하늘과 땅 차이로 살아가니
강직한 이는 고개 숙이기 부끄러워
산야에 버려지길 기꺼워했네.

2

세상 건너기란 술 마시는 일처럼
처음 마실 땐 몇 잔이지만
마시고 나면 쉬이 취하고
취한 뒤엔 마음이 흐릿해져
몽롱하게 일백 병을 기울여
코를 들이박고 계속 마시네.
산속엔 홀로 거처할 곳 많아
슬기로운 이는 벌써 찾아갔는데
마음만 간절할 뿐 가지를 못해
공연히 남산 북쪽만 지키고 있네.

――――――
* 다산은 대과(大科; 문과)에 수차례 불합격하였다.

나의 운명

1

서해(西海)엔 신선의 복숭아가 있고
동해(東海)엔 신선의 대추가 있어
먹으면 환골탈태하여
영원히 늙지 않는다고 해
사람들 다투어 흠모하고
훌훌 털고 먼 길을 떠나지만
내 오직 집을 지키고
처자(妻子)와 오순도순 살아가리.
밭에는 기장 심고
논에는 벼를 심어
부지런히 김매어 기르면
가뭄도 장마도 상관없이
가을에는 수확이 있어
이 한 목숨 보전할 테지.

2

번쩍이는 비단옷 입고
말 타고 종로 길을 달려가
말을 내려 대궐 문에 들어서
공손히 궁중의 임금을 모시면
이 마음 참 즐겁겠지만
때로 근심이 따르리니
더 나은 건 잠시 물러나
어리석고 못난 맘 지키는 것.
욕심 없이 고요하여 하려는 일 없고
담담하고 소박해 바라는 일 없으면
세상 길 아무리 좁고 야박해도
썩은 선비 한 사람은 받아 주겠지.
만약 받아 주지 않는다 해도
운명이니 또한 기꺼워하리.

시골집

냇가 부서진 집 바리때같이
북풍이 띠지붕 걷어가 서까래만 앙상.
오래된 재 위에 눈 쌓인 부뚜막은 썰렁하고
체 눈처럼 숭숭 뚫린 벽 틈으로 별빛이 비치네.
집안 살림 초라하기만 해
팔아도 일곱 푼이 안 되네.
삽살개 꼬리 같은 조 이삭 셋
닭 염통 같은 매운 산초 한 꼬챙이.
항아리 깨져 새는 곳은 베로 막았고
떨어지려는 시렁은 새끼줄로 묶었네.
놋숟가락은 접때 이장(里長)이 가져가고
무쇠솥은 오래잖아 이웃 부자가 앗아 갔지.
이불이라곤 다 해진 비단 이불 한 채니
부부유별(夫婦有別)은 말이 안 되지.
구멍 난 저고리에 어깨 팔꿈치 드러낸 아이들
태어난 바지 버선은 걸쳐 보지도 못했지.
큰애는 다섯 살에 기병(騎兵)으로 등록되고
작은애는 세 살에 군적(軍籍)에 올라
두 아이 세금으로 오백 푼을 바쳤으니
어서 죽었으면 싶은데 옷과 신이 다 뭐람.
강아지 세 마리와 아이들이 함께 자는데
호랑이는 밤마다 울타리에서 으흥.
남편은 산에서 나무하고 아내는 방아품 파니
대낮에도 닫힌 문에 슬픔이 가득.
아침 점심 굶고는 밤에 와 밥을 짓고
여름에는 가죽옷 겨울에는 베옷.
깊이 박힌 냉이 캐려면 언 땅이 녹아야 하고
술지게미 먹으려면 시골에 술이 익어야지.
지난봄에 꿔다 먹은 곡식이 닷 말이니
올해는 살아갈 방도가 없어라.
포졸이 대문에 들이닥칠까 겁날 뿐
관아에서 맞는 건 걱정거리도 아니라네.
아아, 이런 집들이 천지에 가득한데
깊디깊은 궁궐에서 어이 다 살피리.
()나라의 직지사자(直指使者)
큰 고을 수령도 뜻대로 처결했건만
이 폐단의 근원은 어지러워 바를 수 없으니
공수(龔遂)와 황패(黃霸)가 있어도 뿌리 뽑기 어려우리.
유랑하는 백성을 그렸던 정협(鄭俠)을 따라
애오라지 이 광경 시로 그려 대궐에 바쳐야지.

――――――
()나라의 직지사자(直指使者) : 조선의 암행어사와 같은 벼슬이다.
공수(龔遂)와 황패(黃霸) : ()나라 때 선정을 베풀어 이름난 지방관이다.
정협(鄭俠) : ()나라의 관리로, 가뭄에 굶주려 떠도는 백성의 모습을 <유민도(流民圖)>라는 그림으로 그려 신종(神宗)에게 올렸고, 이에 신종은 실정(失政)을 뉘우치고 왕안석의 신법을 혁파했다.

그리운 고향집

소동파는 남해에 귀향 가서
아미산(峨眉山)의 그림으로 시름 달랬지.
내 지금 소내 그림 보고 싶은데
여기 화공(畫工) 없으니 누가 그릴까.
엷은 먹을 찍어 밑그림 그려 보니
먹 자국 어지러워 분탕질이 되었네.
거듭 그려 보니 솜씨가 나아져
산세(山勢)와 물빛은 아직 또렷치 않지만
대담하게 비단에 옮겨 그려
사랑방 서북쪽 모퉁이에 걸었네.
푸른 산기슭 돌아가는 곳엔 철마(鐵馬)가 서 있고
우뚝 솟은 기이한 바위에선 금빛 오리가 날고
남자주(藍子州) 주변에는 향기로운 풀이 푸르고
석호정(石湖亭) 북쪽에는 맑은 모래가 펼쳐지고
멀리 돛단배는 필탄(筆灘)을 지나고
나룻배는 귀음(龜陰) 간다 외치고 있는 듯.
검산(黔山)은 절반이 구름 속에 아득히 잠겼고
백병봉(白屛峰)은 멀리 석양 속에 외로이 섰고
하늘가 높은 데 보이는 수종사(水鍾寺)
두 물이 모이는 지세(地勢)가 잘도 들어맞네.
우리 집 정자로 통하는 문은 소나무 그늘이 덮었고
우리 집 뜰에는 배꽃이 가득 피었네.
우리 집이 저기 있어도 갈 수가 없어
공연히 그림 보며 서성이게 되네.

――――――
* 소동파가 귀양살이하면서 고향의 아미산을 그린 것처럼, 다산도 그리운 마음을 담아 고향 소내를 그렸다.
철마(鐵馬) : 다산의 고향 산 위에 철마가 있었고 그로 인해 그 지역을 마현(馬峴)이라고 불렀다 한다.

살짝 취하여

살짝 취해 무더운 기운은 못 느껴도
바람 시원한 물가 정자가 그립네.
호탕한 성품이라 독수리에 마음이 가고
묶인 몸이라 부평초(浮萍草)가 부럽네.
병이 들어 장기(張機)의 의술을 공부하고
배가 고파 육우의 다경은 버렸네.
고향 생각 나라 걱정에
아침 저녁 바다만 바라본다네.

율정의 이별

객점(客店)의 새벽 등불 파리하게 꺼질 듯
일어나 샛별 보니 이젠 슬픈 이별이어라.
말없이 서로 가만히 바라보며
애써 목소리 가다듬다 흐느껴 울고 마네.
머나먼 흑산도엔 바다와 하늘뿐인데
형님이 어찌 여기에 오셨단 말인가.
고래는 이빨이 산처럼 커서
배를 삼켰다 뿜어냈다 하고
지네는 크기가 쥐엄나무만 하며
독사는 등나무 덩굴처럼 얽혀 있다지.
내가 장기(長鬐)에 있을 때
낮이나 밤이나 강진(康津)을 바라보며
날개를 활짝 펴고 푸른 바다 건너
바다 가운데서 형님을 만나고 싶었는데
지금 나는 강진으로 옮겨 왔지만
구슬 없는 빈 상자만 산 것 같아라.
마치 어리석은 아이가
헛되이 무지개를 잡으려 한 것 같네.
서쪽 언덕 금방 닿을 듯한 곳에
선명하게 보이는 아침 무지개.
아이가 쫓아가면 무지개는 더욱 멀어져
가도 가도 자꾸만 서쪽 언덕에 있어라.

새해에 집에서 온 편지를 받고

해가 가고 봄이 온 걸 도통 몰랐는데
하루가 다른 새소리 이상하다 싶었지.
비 내리면 고향 생각 덩굴같이 자라나고
겨우내 야윈 몰골은 대나무 같네.
세상 꼴 보기 싫어 대문도 늦게 열고
아무도 안 올 줄 아니 이불도 늦게 개지.
아이들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의서(醫書) 보고 빚은 술 한 단지 부쳐 왔네.
어린 종이 천 리 길 가져온 편지를 받고
객점(客店) 작은 등잔 아래 홀로 한숨짓네.
어린 아들이 농사를 배운다니 아비도 반성케 되고
병든 아내가 옷 꿰매 보냈으니 남편 사랑 알겠네.
좋아하는 거라고 멀리 찰밥을 싸 보내고
배고플까 봐 이번에 투호(投壺)를 팔았다네.
답장을 쓰려니 달리 할 말이 없어
뽕나무 수백 그루 심으라 당부하였네.

――――――
투호(投壺) : 병이나 항아리 따위에 붉은 화살과 푸른 화살을 던져 넣어 화살의 숫자로 승부를 가리던 놀이

최지녀 편역, 다산의 풍경-정약용 시 선집, 돌베게, 2008

다산이 살았던 18세기 중반에서 19세기 초반에 이르는 시기는 변화와 혼란의 시기였다. 정조(正祖, 1752~1800)라는 개혁 군주가 등장하여 정치적 변화를 모색하며 많은 난관에 부딪혔던 시기이기도 하고, 서학(西學), 곧 천주교가 유입되어 조정과 사회에 큰 분란을 일으켰던 시기이기도 하며, 부패한 제도와 관료로 인해 백성들이 큰 고통에 시달렸던 시기이기도 하다. 다산은 이런 변화와 혼란의 한복판에 있었던 지식인이다. 시인은 아파하는 사람이라고 했던가. 다산의 시에서는 시대의 아픔과 그로 인한 개인의 아픔을 고스란히 읽을 수 있다. -<해설> ‘따뜻한 사실주의 다산 정약용의 시 세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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