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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은 하나의 사건이다. 한 권의 책에 담긴 지은이, 만든이, 읽는이의 고뇌와 정성을 기억한다.



Title≪다산의 마지막 습관≫-기본으로 돌아간다는 것-조윤제2021-01-07 19:40
Writer

다산의 마지막 습관

매일 마주하는 풍경에 물렸지만 오늘도 새로운 길에 돌아오진 못했다.
내가 겪어온 세월만큼 단단해진 줄 알았다. 하지만 익숙해진 길에 길들여졌을 뿐이었다.
하루하루 내려앉아 나를 가두게 된 껍질, 습관.
습관이 내일의 운명이 된다면, 나는 매일 새롭게 운명을 시작할 것이다.”

정약용은 공부의 정점에서 육십 년간 쌓은 성취를 모두 내려놓았다.
그렇게 나를 모두 비우고 새로운 습관을 채우기 시작했다.
돌아보니 내가 도달한 공부의 끝은 이미 어릴 때 모두 배운 것이었다.

내 나이 예순, 한 갑자를 다시 만난 시간을 견뎠다. 나의 삶은 모두 그르침에 대한 뉘우침으로 지낸 세월이었다. 이제 지난날을 거두어 정리하고,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 이제부터 빈틈없이 나를 닦고 실천하고, 내 본분을 돌아보면서 내게 주어진 삶을 다시 나아가고자 한다. -정약용, <자찬묘지명>에서

시작하는 글

다산은 마흔이 될 때까지 누구나 부러워할 인생을 살았다. 어린 시절부터 탁월한 문재(文才)로 천재 소리를 들었고, 성균관에 들어가서도 뛰어난 재주로 정조의 눈에 들었으며 이후 과거에 급제하면서 일찌감치 관직의 길로 나섰다.

다산은 화려했던 자신의 과거를 가리켜 를 잃어버린 시간이었다고 했다.
다산은 누명을 쓰고 머나먼 땅으로 귀양을 떠났을 때뿐 아니라 과거를 구가했던 20여 년까지도 를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했다.

하지만 다행히 다산은 를 찾았다. 의외로 머나먼 바닷가 귀양지에서였다. 그의 삶에서 가장 큰 비극의 시간이었지만 그곳에서 잃어버린 를 찾았다.
그것은 자기 삶의 의미와 가치가 학문에 있고, 오직 집필을 통해서만이 삶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학자라는 정체성에 대한 깨달음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힘이 된 것은 바로 소학에서 얻은 수신이었다.

▢ ≪소학은 남송 시기 사람인 주자(朱子)와 그의 제자 유청지(劉淸之)가 함께 만든 책으로, 논어, 맹자, 예기등 백여 권의 고전에서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내용을 간추려 교육(입교 立敎), 인간의 길(명륜 明倫), 수양(경신 敬身), 고대의 도(계고 稽古), 아름다운 말(가언 嘉言), 선행(善行)의 여섯 편으로 묶은 책이다.

독실하게 실천할 방법을 찾아보니 오직 소학심경만이 특출하게 빼어났다. 진실로 이 두 책에 침잠해 힘써 행하되 소학으로 외면을 다스리고 심경으로 내면을 다스린다면 현인의 길에 이르지 않을까?” -정약용, <심경밀험>에서

입교(立敎)
위학일익(爲學日益, 배움은 하루하루 쌓아가는 것)

배움이란 매일 채워도 끝이 없다.

많은 것들을 폭넓게 배우되 설익은 지식으로 남을 가르치려 하지 마라. 지식과 덕은 마음에 쌓아 갈무리하는 것이지, 밖으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 아니다. -예기(禮記) <내칙(內則)>

근본을 두텁게 배양하고 얄팍한 문채(文彩)는 마음속 깊이 감춰두고 드러내지 말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가 저술에 마음을 두는 것은 당장의 근심을 잊고자 함이 아니다. 한 집안의 부형으로서 귀향하는 처지가 되었으니 저술이라도 남겨 허물을 벗고자 하는데 어찌 그 뜻이 깊지 않다고 하겠느냐?” -정약용,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명륜(明倫)
자승자강(自勝自强, 자기를 이기는 자가 진실로 강한 자이다)

예의란 타인이 아닌 스스로를 이겨내는 자세다.

부모가 살아 계실 때에는 벗에게 목숨 거는 일을 허락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만약 친구와 같이 길을 가다가 환란을 당하면, 어버이가 있음을 핑계로 구원해주지 않아서도 안 된다. -예기, <곡례>

오직 덕행으로 사귄 벗만이 처음에는 서로 마음으로 감동하여 사모하고, 오래되면 화합하여 감화되며, 마침내 금석처럼 친밀해져 떨어질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벗 삼기는 지극히 어려우나, 일단 삼고 나서는 변함이 없으니 이것이 군자의 벗 삼는 도리라 할 만하다.” -정약용, 남하창수집(南荷唱酬集)<서문>에서

친구란 같은 위치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는 존재다. 누구에게나 친구는 있지만 진짜 친구는 드물다.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또 하나의 세상과 만나는 경험이다. 친구 사이라면 서로를 스승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해야 어른이 된다.

경신(敬身)
독립불개(獨立不改, 홀로 서 있으되 달라지지 않는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은 단단한 몸가짐에서 나온다.

남의 은밀한 곳을 엿보지 말고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 남의 오래된 잘못을 말하지 말고 희롱한 듯한 표정을 지어서는 안 된다. 갑작스레 오지 말며, 갑작스레 가서도 안 된다. -예기<소의(少儀)>

어떤 사람이 아홉 가지 일은 모두 악한데 한 가지 일이 우연히 착하다 해도 그는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고, 또 아홉 가지 일은 착한데 한 가지 우연히 일이 악하다고 해도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어떤 항아리가 그 전체는 모두 깨지고 주둥이만 온전하다 해도 깨진 항아리라고 하며, 그 전체는 온전한데 오직 구명 하나만 뚫렸어도 깨진 항아리라고 합니다. 사람이 매사에 선을 다하지 못한다면, 끝내 착하지 않은 사람이 됨을 면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선을 이루기 어려움이 이와 같습니다.” -정약용, <매선당기(每善堂記)>에서

군자는 배부른 것을 구하지 않으며, 편안한 거처를 추구하지 않는다. -논어 <학이(學而)>

남을 사랑하는데 친해지지 않을 때에는 자신의 인자함을 돌아보라. 남을 다스리는데 다스려지지 않을 때는 자신의 지혜를 돌이켜보라. 남을 예로써 대하는데 화답하지 않으면 자신의 공경하는 태도를 돌이켜보라. 행하는데 얻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모두 스스로에게 그 원인을 보아라. 내가 바르면 천하가 내게 돌아온다. -맹자<이루 상 離婁上>

몸을 아끼고자 마음을 잃지는 마라. 가난은 궁핍한 상태가 아니라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갈망에 잠식된 상태다.

남들만큼 살기 위해 스스로를 포기하지 말라.

계고(稽古)
이대사소(以大事小 큰 나라로 작은 나라를 섬김)

강자는 머리를 숙여 자신의 정수리를 보여준다.

맹모가 말하기를 이곳은 참으로 자식을 살게 할 만한 곳이다하고 마침내 그곳에 거처했다. -열녀전(列女傳)

사람을 만나려거든 그의 흠집을 인정하라.

내가 남에게 베풀지 않은 것을 가지고 남이 먼저 내게 베풀어주기를 바라는 것은, 너희들의 오만한 근성이 아직도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로는 평소 일이 없을 때도 공손하고 화목하고 근신하고 충성해 집안의 환심을 사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요. 절대로 마음속에 보답을 바라는 오만한 근성을 남겨두지 말아야 한다. -정약용

허물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허물을 고칠 줄 모르는 게 부끄럽다.

예로부터 성현이 다 허물을 고치는 것을 소중히 여겼고, 혹 도리어 애초에 허물이 없는 것보다 낫다고까지 했으니 무슨 까닭인가? 대개 사람의 정서는 매양 잘못된 곳에 대해서는 부끄러움이 성냄으로 바뀐다. 그래서 처음에는 꾸미려고 하고, 나중에는 괴격(乖隔, 어그러져서 동떨어짐)하게 되니, 허물을 고치는 것이 허물이 없는 것보다 어려운 까닭이다.” -정약용, <도산사숙록>에서

가언(嘉言)
붕정만리(鵬程萬里 전도가 양양한 장래)

감히 짐작할 수 없는 말의 내공을 갖춘다.

아이가 먼저 마음을 차분하게 가다듬고, 사물을 자세히 살피며, 공손하고 경건한 태도를 가지도록 가르쳐야 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학문을 배우지 않아 남녀 할 것 없이 어릴 적부터 교만하고 게을러졌으며 자라서는 더욱 흉포해지고 사나워졌다. 이는 어렸을 때 해야 할 일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장횡거(張橫渠), 장자전서(張子全書)

배울 때를 놓치면 평생 어른이 되지 못한다.

악이 작다는 이유로 행해서는 안 되며 선이 작다는 이유로 행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삼국지(三國志)<촉지(蜀志)>

악은 평범함사소함이라는 가면을 쓴다. 악은 피할 수 없으니 쌓이지 않도록 주의하라.

성인이 지은 주역 64괘 가운데 많은 것이 후회()와 한스러움()으로 괘상(卦象)을 세웠다. 이를 볼 때 성인인들 어찌 뉘우침이 없었겠는가. 만약 성인이라고 해서 뉘우침이 없다면 그들은 우리와 같은 부류가 아니니, 무엇 때문에 흠모하겠는가? 안자(顔子)를 인()하다고 하는 까닭은 같은 잘못을 두 번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이고, 자로를 용감하다고 하는 이유는 자신의 잘못을 듣기 좋아했기 때문이다. 참으로 뉘우친다면 잘못은 허물이 될 수 없다.” -정약용, <매심재기(每心齋記)>에서

다른 사람을 아는 것은 지혜로움이지만, 자신을 아는 것은 명철함이다. -노자, 도덕경

선행(善行)
일일청한(一日淸閑, 마음이 맑고 편안한 하루)

하루만이라도 다산처럼 살아본다는 것

학문은 아래에서 높은 곳으로 거슬러 흐른다.

오직 독서라는 한 가지 일은 위로 성현을 따라가 짝할 수 없고, 아래로 뭇 백성을 깊이 깨우칠 수 있으며, 그윽하게는 귀신의 정상에 통달하고, 밝게는 왕도와 패도의 방법과 계략을 도우며, 짐승이나 벌레의 부류를 초월해 큰 우주도 지탱할 수 있으니, 이것이 곧 인간의 본분이다.” -정약용, <윤종문에게 준 글>에서

스스로에게 너그럽다면 모두에게 부끄러워진다. 스스로가 구부러졌는데 다른 사람을 바로 펼 수는 없다.

맡은 일을 부지런히 행하고 그 밖의 일은 감히 삼가지 않음이 없다. 이것이 내가 남들이 알아주기를 구하는 나만의 방법이다. -동몽훈(童蒙訓)

형제는 또 다른 나이니 우애란 말도 새삼스럽다. 형은 먼저 태어난 나이고 동생은 나중에 태어난 나다.”

누구나 누군가의 귀한 아들이고 딸이다.

각 고을의 수령은 백성과 가장 가까이 있는 관직이기에 다른 관직보다 그 임무가 더 중요하다. 그러므로 반드시 덕행과 신망, 위신이 있는 적임자를 선택해 임명해야 한다. 또한 수령은 언제나 청렴과 검소함을 생활신조로 삼아, 명예나 재물을 탐내지 말고 뇌물을 결코 받아서는 안 된다. 나아가 수령은 백성에 대한 봉사 정신을 기본으로 국가의 영(정령 政令)을 빠짐없이 두루 알리고, 백성들의 뜻이 어디 있는지 그 소재를 상부에 잘 전달하며, 상부의 부당한 압력을 배제해 백성을 보호해야 한다. 수령이라면 백성을 사랑하는 애휼정치(愛恤政治, 불쌍히 여기고 은혜를 베푸는 정치)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정약용, 목민심서에서

아직 부끄러운 줄을 안다면 더 나아질 수 있다.

조윤제, 다산의 마지막 습관, 청림출판,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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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학일익 : 爲學日益, 배움은 하루하루 쌓아가는 것. 노자, 도덕경48.
* 자승자강 : 自勝自强, 자기를 이기는 자가 진실로 강한 자이다. 노자, 도덕경33.
* 독립불개 : 獨立不改, 홀로 서 있으되 달라지지 않는다. 노자도덕경25.
* 이대사소 : 以大事小 큰 나라로 작은 나라를 섬김. “以大事小者, 樂天者也; 以小事大者, 畏天者也. 樂天者保天下, 畏天者保其國. 詩云, ‘畏天之威, 于時保之.’”(이대사소자, 낙천자야; 이소사대자, 외천자야. 낙천자보천하, 외천자보기국. 시운, ‘외천지위, 우시보지’) “큰 나라로 작은 나라를 섬기는 자는 하늘의 이법을 즐기는 자요, 작은 나라로 큰 나라를 섬기는 자는 하늘의 이법을 두려워하는 자입니다. 하늘의 이법을 즐기는 자는 천하를 지킬 수 있고, 하늘의 이법을 두려워하는 자는 제 나라를 지킬 수 있습니다. ‘시경에서도 하늘의 위세를 두려워하나니, 이리하여 나라를 길이 지키도다!’라고 했습니다.” 맹자<양혜왕>.
* 붕정만리 : 鵬程萬里, 전도가 양양한 장래. 붕새가 날아갈 길이 만 리. 머나먼 노정. 또는 사람의 앞날이 매우 양양하다. 장자<소요유편(逍遙遊篇)>.
* 일일청한 : 一日淸閑, 마음이 맑고 편안한 하루. 一日淸閑 一日仙, 오늘 하루 마음을 맑고 청결하게 하면 그 하루가 신선이 되는 날이다.명심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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