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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은 하나의 사건이다. 한 권의 책에 담긴 지은이, 만든이, 읽는이의 고뇌와 정성을 기억한다.



Title “내가 손수 개간한 이곳” <東坡 八首> ≪정본완역 소동파시집 3≫ 2020-12-24 21:16
Writer

<東坡 八首>

내가 황주에 도착한 이듬해에 날마다 살기가 어려워지자 친구 마정경이 내가 밥도 제대로 못 먹는 것을 슬퍼하여 나를 위해 군청에 부탁하여 옛날 군사 주둔지 수십 묘를 얻어 주어 그 안에서 몸소 농사지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 땅은 오랫동안 버려져 있어서 가시덤불에 덮인 자갈땅이 된 데다 큰 가뭄까지 들어 개간하느라 근력이 거의 다 소진되고 말았다. 이에 쟁기를 놓고 탄식하며 이 시를 지어 스스로 자신의 수고를 위로하고 내년의 수입을 기대함으로써 노고를 잊으려 한다.

    • 其一

廢壘無人顧 穨垣滿蓬蒿
폐누무인고 퇴원만봉호
誰能捐筋力 歲晩不償勞
수능연근력 세만부상노
獨有孤旅人 天窮無所挑
독유고려인 천궁무소도
端來拾瓦礫 歲旱土不膏
단내습와력 세한토부고
岐嶇草棘中 欲刮一寸毛
기구초극중 욕괄일촌모
喟然釋耒歎 我廩何時高
위연석뢰탄 아름하시고

거들떠보는 이 없는 황폐해진 보루 터
쑥대가 가득 돋은 무너진 담장
그 누구라 쓸데없이 근력만 소모하고
세밑에 일한 보람 거두려고 아니할까?
오로지 외로운 나그네만이
천운이 다하여 도망갈 곳 없으매
마침내 와서 기왓조각과 자갈을 치우는데
날씨가 가물어서 흙마저 메마르네.
가시덤불 풀숲에서 갖은 고생 다하는 건
난쟁이 곡식이나마 거두려는 것이네.
후유 하며 쟁기 놓고 탄식하나니
내 창고는 언제나 그득히 찰까?

    • 其二

荒田雖浪莽 高庳各有適
황전수낭망 고비각유적
下隰種秔稌 東原蒔棗栗
하습종갱도 동원시조율
江南有蜀士 桑果已許乞
강남유촉사 상과이허걸
好竹不難裁 但恐鞭橫逸
호죽불난재 단공편횡일
仍須卜佳處 規以安我室
잉수복가처 규이안아실
家僮燒枯草 走報暗井出
가동소고초 주보암정출
一飽未敢期 瓢飮已可必
일포미감기 표음이가필

황폐한 밭 울퉁불퉁 제멋대로 생겼지만
높은 곳과 낮은 곳이 나름대로 쓰일 테니
낮고 습한 곳에는 볍씨를 심고
동쪽 둔덕엔 밤 대추를 모종하리라.
장강의 남쪽에 촉에서 온 사람 있어
뽕나무의 씨앗을 주기로 했고
멋진 대를 심는 것도 어려울 게 없지만
대 뿌리가 아무 데나 뻗어갈까 두렵네.
그리고 또 좋은 자리 골라잡아서
아담한 집도 한 채 지어야 되겠는데
아이놈이 마른 풀을 불태우다가
우물이 나왔다고 달려와서 얘기하니
배불리 먹는 것은 기약할 수 없어도
물 하나는 마음껏 마시게 됐네.

    • 其三

自昔有微泉 來從遠嶺背
자석유미천 래종원령배
穿城過聚落 流惡壯薘艾
천성과취락 유악장달애
去爲柯氏陂十畝魚蝦會
거위가씨피 십무어하회
勢旱泉亦竭 枯萍黏破塊
세한천역갈 고평점파괴
昨夜南山雲 雨到一犁外
작야남산운 우도일리외
泫然尋故瀆 知我理荒薈
현연심고독 지아리황회
泥芹有宿根 一寸嗟獨在
니근유숙근 일촌차독재
雪芽何時動 春鳩行可膾
설아하시동 춘구행가회

옛날부터 가느다란 개울이 있어
먼 산의 등성이에서 흘러나오는데
성곽을 꿰뚫고 부락을 지나가며
나쁜 기운 흘려보내 쑥대를 튼튼히 했네.
흘러가서 가씨의 못을 이루어
십 묘에 고기와 새우가 모여 있는데
날씨가 가물자 개울도 말라 버려
갈라진 흙덩이에 마른 부평초가 붙어 있었네.
어젯밤에 남산에 구름이 끼었더니
쟁기 하나 들어가고 남을 만큼 비가 오매
졸졸대는 오래된 도랑을 찾아가 보고
내가 황무지를 손질해 놓은 줄을 알았네.
진흙 속의 미나리에는 묵은 뿌리가 있는데
아아 한 치짜리만 남아 있을 뿐이네.
눈처럼 하얀 싹이 언제나 돋으려나?
봄철의 비둘기는 회 칠 만해지려 하는데.

    • 其四

種稻淸明全 樂事我能數
종도청명전 낙사아능수
毛空暗春澤 針水聞好語
모공암춘택 침수문호어
分秧及初夏 漸喜風葉擧
분앙급초하 점희풍엽거
月明看露上 一一珠垂縷
월명간로상 일일주수누
秋來相穗重 顚倒相撑拄
추래상수중 전도상탱주
但聞畦隴間 蚱蜢如風宇
단문휴롱간 책맹여풍우
新舂便入甑 玉粒照筐筥
신용편입증 옥립조광거
我久食官倉 紅腐等泥土
아구식관창 홍부등니토
行當知此味 口腹吾已許
행당지차미 구복오이허

청명이 되기 전에 볍씨를 파종하면
무슨 즐거운 일 있을지 손꼽을 수 있나니
가랑비가 하늘에 자욱하여 봄철의 못이 어둑해지면
물에 침을 놓았다는 유쾌한 말이 들리리.
초여름에 때맞추어 모를 옮겨 심으면
날리는 잎이 고개를 들어서 차츰차츰 기뻐지고
달 밝을 때 이슬 내리는 볏잎 위를 보노라면
하나하나 진주가 실오리를 드리우리.
가을에 서리 맞은 이삭이 무거우면
거꾸로 매달린 채 서로서로 지탱하고
여기저기 황금빛 논두렁에서
비바람이 치듯이 메뚜기 소리만 들리리.
벼를 갓 찧어서 바로 시루에 넣으면
하얀 옥 알갱이가 광주리를 비추리.
나는 오래 관아의 곡식을 먹었나니
색이 붉게 변한 것이 진흙과 같았는데
이제 곧 이 맛을 알게 된 지라
입과 배가 벌써부터 기대에 찼네.

    • 其五

良農惜地力 幸此十年荒
양농석지력 행차십년황
桑柘未及成 一麥庶可望
상자미급성 일맥서가망
投種未逾月 履塊已蒼蒼
투종미유월 이괴이창창
農父告我言 勿使苗葉昌
농부고아언 물사묘엽창
君欲富餠餌 要須縱牛洋
군욕부병이 요수종우양
再拜謝苦言 得飽不敢忘
재배사고언 득포불감망


훌륭한 농부는 지력을 귀하게 여기는 법
요 십 년을 묵힌 것을 다행이라 여기네.
뽕나무는 아직까지 다 자라지 않았지만
보리 하나는 다행히 가망이 있네.
씨앗을 뿌린 지 한 달이 안 됐는데
흙덩이를 뒤엎고 이미 파릇파릇하네.
농부가 나에게 일러주기를
싹과 잎이 웃자라게 하지 마셔요.
떡과 경단이 풍부하게 하고 싶으면
소와 양을 풀어놔야 합니다하네.
재배하고 이 고언에 감사하나니
배불리 먹게 되면 잊지 못할 것이네

    • 其六

種棗期可剝 種松期可斲
종조기가박 종송기가착
事在十年外 吾計亦已慤
사재십년외 오계역기각
十年何足道 千載如風雹
십년하족도 천재여풍박
舊聞李衡奴 此策疑可學
구문이형노 차책의가학
我有同舍郞 官居在灊岳
아유동사랑 관거재첨악
遺我三寸甘 照座光卓犖
유아삼촌감 조좌광탁락
百裁倘可致 當及春冰渥
백재당가치 당급춘빙악
想見竹籬間 靑黃垂屋角
상견죽리간 청황수옥각

대추나무를 심으면 대추를 딸 수 있고
소나무를 심으면 깎아서 기둥을 만들 수 있지만
이런 일은 십 년 뒤에 성과가 나타날 일
내 계획은 역시 너무 융통성이 없다 해도
십 년이야 어찌 말할 필요 있겠나?
천 년도 풍우처럼 지나갈 텐데.
이형의 노비 얘기 옛날에 들었나니
이 계책이 아마도 배울 만한 것 같구나.
나에게는 동료가 한 사람 있어
벼슬 따라 첨산 밑에 살고 있는데
나에게 세 치짜리 감귤을 보내
그 빛이 좌중을 훤하게 비추누나.
혹시 묘목 백 그루를 구할 수가 있다면
얼음 녹아 촉촉이 땅 적실 때 심을 일
대 울타리 사이로 파랗게 또 노랗게
집 모퉁이에 자리잡고 드리워져 있으리.

    • 其七

潘子久不調 沽酒江南村
반자구불조 고주강남촌
郭生木將種 賣藥西市桓
곽생목장종 매약서시환
古生亦好事 恐是押牙孫
고생역호사 공시압아손
家有一畝竹 無時容叩門
가유일묘죽 무시용고문
我窮交舊絶 三好獨見存
아궁교구절 삼호독견존
從我於東坡 勞餉同一飧
종아어동파 노향동일손
可憐杜拾遺 事與朱阮論
가연두습유 사여주완론
吾師卜子夏 四海皆弟昆
오사복자하 사해개제곤

반자는 오랫동안 벼슬을 받지 못해
장강 남쪽 마을에서 술이나 팔고 있고
곽생은 본래 장군의 후예이건만
서쪽 저자 담 밑에서 약초를 팔고 있네.
고생 또한 일 벌이기 좋아하는 사람이니
어쩌면 고압아의 후손인가 싶은데
집안에 한 이랑의 대밭이 있어
무시로 대문을 두들기게 놓아두네.
내가 가난해져서 옛 친구는 다 절교하고
세 사람만 마음에 나를 담아 두어서
내가 손수 개간한 이곳 동파로
음식을 들고 나를 찾아와서 함께 먹네.
부러워할 만한 두습유께선
일 있으면 주씨 완씨와 의논했다 하거니와
나 또한 복자하를 스승으로 여기나니
세상 사람 모두가 내 형제라네.

    • 其八

馬生本窮士 從我二十年
마생본궁사 종아이십년
日夜望我貴 求分買山錢
일야망아귀 구분매산전
我今反累君 借耕輟玆田
아금반누군 차경철자전
刮毛龜背上 何時得成氈
괄모귀배상 하시득성전
可憐馬生癡 至今夸我賢
가연마생치 지금과아현
衆笑終不悔 施一當獲千
중소종불회 시일당획당

마생은 본래부터 가난한 선비인데
스무 해 동안이나 나를 따라다니며
밤낮으로 내가 꼭 귀하게 되어
자신에게 산 살 돈을 나눠 주길 바랐네.
그런데 나는 지금 되려 누를 끼쳐서
버려진 이 땅을 빌려 농사짓나니
거북이의 등에서 털을 깍는 셈
언제나 담요를 짤 수 있으리?
가련케도 마생은 어리석어서
지금토록 아직 내가 똑똑하다 자랑하며
사람들이 웃어도 끝내 후회 않으니
하나를 뿌려 천 개를 얻어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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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坡(동파) : 소식(蘇軾)이 원풍 4(1081) 2월에 황주성(黃州城) 동쪽에 있는 황무지를 개간하여 만든 농장. 이듬해에 그는 자신의 호를 東坡居士(동파거사)라고 했다.

류종목 역주, 정본완역 소동파시집 3,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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