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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은 하나의 사건이다. 한 권의 책에 담긴 지은이, 만든이, 읽는이의 고뇌와 정성을 기억한다.



제목≪옛그림 인문학≫-오늘, 우리를 위한 동양사상의 지혜- 박홍순2020-11-03 21: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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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그림 인문학

서문 옛그림과 떠나는 동양사상 산책

조선의 회화는 사대부 문인에 의해 그려진 작품이 많다. 평생을 학문적 탐구와 논쟁 속에 살아가거나, 더 적극적으로는 문신으로서 직접 정치 활동에 몸담았던 이들이다. 설사 그림 그리는 일을 담당했던 관청인 도화서의 화원을 비롯한 직업화가라 하더라도 그림과 시서(詩書)가 분리되지 않는 조선의 문화적 전통 속에서 학문과의 친근성이 상당히 높다. 그러한 의미에서 조선의 회화에서는 그 어느 나라 미술보다 깊은 정신성이 묻어난다. 외적인 아름다움에 머물지 않는 긴 여운을 남긴다.

동양사상의 다채로운 발상과 만나려 할 때 옛그림은 훌륭한 출발이 된다. 공자ㆍ맹자 중심의 유가 사상을 회화적으로 구현할 정도가 아니겠냐고 따분해할지 모르겠지만, 셈세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하면 제자백가는 물론이고 이후 확장된 다양한 동양사상의 흐름과 만난다. 종교적으로도 여전히 불교가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고, 선불교의 특성상 도가적인 문제의식이 적지 않게 배어든다. 심지어 민간을 기반으로 무속신앙도 단절 없이 도도한 흐름을 형성한다.

1. 학문의 지혜: 진짜 나를 찾아서

배움, 달빛 언덕에서 시를 논하는 행복 - 공자 논어
O 정선(鄭敾)<독서여가도>는 책을 읽다 잠시 쉬는 자기 모습을 담았다. 평소에 어지간히 독서에 빠져 살았는지 책장에 책이 가득하다. 선비는 책을 읽다가 쉬는 중이다. 한쪽 팔에 기대어 비스듬히 풀어진 모습으로 마당의 화초에 눈길을 준다. 오른손에 펼쳐진 부채에는 조선의 산과 강이 펼쳐진다. 자연스럽게 공자가 논어(論語)<학이(學而)> 에서 언급한 구절이 떠오른다.

O 우고 때때로 익히면 매우 기쁘지 않겠는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온다면 매우 즐겁지 않겠는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성내지 않는다면 매우 군자다운 것이 아니겠는가?

O 학문은 먼 곳에서 찾아온 벗처럼 즐겁다. 조선 후기의 문인 화가로 정선, 심사정과 함께 삼재로 불린 조영석(趙永錫)<설중방우도(雪中訪友圖)>도 논어의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온다면 매우 즐겁지 않겠는가?”라는 이 구절을 회화적으로 구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O 조선 대표화가 김홍도(金弘道)<송석원시사야연도(松石園詩社夜宴圖)>는 학문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O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만족스럽다.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 하더라도성내지 않는다는 것은 타인의 인정을 목표로 하는 학문이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타인에 의한 평가에 좌지우지되는 공부가 기쁨을 줄 리 만무하다.

O
자신을 위한 공부는 무엇보다도 자기 마음에 충실함을 전제로 한다. 자신의 마음에서 기대감이 꿈틀거리는 분야나 주제에 대해 알고자 할 때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보고 있지 않아도 스스로 열중한다.

내 안의 서로 다른 나: 김홍도의 다중자아? - 왕양명 전습록

O 흐트러짐을 허용하지 않는 선비로서의 자화상 조선을 대표하는 단원(檀園) 김홍도의 <사인초상(자화상)>은 전형적인 유가 선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자화상은 대략 30대 초반, 늘잡아도 중반 즈음의 모습으로 보인다.

O 김홍도는 비록 중인 출신이었으나 유학 공부에 갈증을 느꼈다. 스승인 강세황(姜世晃)은 김홍도에 대해 <단원기(檀園記)>에서 시와 문장도 그 묘를 다하여 풍류가 호탕하였다라고 하였다. 김홍도의 이름이나 자() 혹은 호()를 보더라도 부모나 집안, 주변 사람들의 기대나 자신의 다짐이 어느 정도 드러난다. 홍도라는 이름만 해도 공자의 논어(論語)<위령공(衛靈公)> 의 다음에서 가져온 것이다.

O 사람이 도를 넓히는 것이지,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니다.

O 이 가운데 도를 넓힌다홍도(弘道)’를 이름으로 삼았다.

O 김홍도의 자는 사능(士能)’이다 이는 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 편에 나오는 다음 대목에 근거한다.

O 일정한 생업이 없으면서도 일정한 마음을 지니는 일은 오직 선비만이 가능합니다. 백성들로 말하면 일정한 생업이 없으면 일정한 마음도 없습니다. 진실로 일정한 마음이 없다면 방탕하고 그릇된 일과 악하고 사치스런 일들을 하지 않는 게 없게 될 것입니다.

O 이 가운데 선비만이 가능하다사능(士能)’을 자로 삼은 것이다.

O 단원이라는 호는 그가 평소 존경하던 중국 명나라의 선비 화가 이유방(李流芳)의 호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이유방은 사대부 출신으로 시인이자 서화가로 명성을 떨쳤다. 그의 글은 중국은 물론이고 조선에서도 최고로 평가받았다. 산수화도 뛰어나서 당대의 손꼽히는 화가 대열에 들었다.

O
서른 즈음의 이 <자화상>은 그의 정체성을 일정하게 반영하는 이름이나 자, 호와 참으로 많이 닮았다.

O 여러 명의 자신이 들어 있는 자화상 또 하나의 자화상 <포의풍류도(布衣風流圖)>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림의 분위기로 볼 때 대략 40~50대의 모습인 듯하다. 묘하게도 선비로서의 긴장감과 한껏 이완된 편한 분위기, 나아가서는 자기만족과 과시에 가까운 모습이 공존한다. 무언가 하나로 규정하기 어려운, 뒤죽박죽 섞인 모습이다.

O 그림에 적어 놓은 글귀도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고 삶을 즐기고 싶어 하는 김홍도의 마음을 전한다.

O 흙벽에 아름다운 창을 내고
   여생은 관직에 나가지 않고 시나 읊조리고 살리라.

O 김홍도 자신의 모습으로 보이는 <월하취생도(月下吹笙圖)>에서는 자유분방하게 풍류를 즐기는 일상만 가득하다. 여기에서는 단지 발이 보이는 정도가 아니다. 아예 다리는 허벅지까지 옷을 올리고, 팔도 걷어붙여서 점잔 빼는 구석이 어디 한 군데도 없다.

O 신선이 불던 생황을 <월하취생도>에서는 자신이 분다. 자신을 신선으로 여기는 마음을 슬쩍 비춘다. 깔고 앉아 있는 파초 잎도 풍류를 한껏 더 느끼게 한다. 옛시인이 시를 썼다가 그냥 개울물에 띄워 버렸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잎이니 말이다.

O 술병도 작은 호리병에서 커다란 항아리로 바뀌어서 단지 흥을 돋우는 정도가 아니라 코가 비뚤어질 때까지 마시려는 마음을 보여준다. 더욱 풀어진 옷차림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김홍도 스스로가 붙인 몇 가지 호에도 술과 관련한 내용이 두드러진다.

O 취화사(醉畵史)라는 호는 술 취한 환쟁이’, 접취옹(輒醉翁)이라는 호는 곧 취하는 늙은이라는 뜻을 지닌다. 주변 사람들의 전하는 바에 따르면 평소에 술을 무척 즐겼으며, 때로는 취중에 빠르게 붓을 놀려 순식간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O 자화상 속에 나타나는 여러 모습, 다양한 정체성 가운데 무엇이 진짜 김홍도일까? 우문일 수 있다. 김홍도의 내면에는 다른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이질적 요소들이 더욱 강렬하게 충돌하거나 오랜 기간 공존한 게 아닌가 싶다. 중국 명나라 때 양명학을 정립한 사상가로 잘 알려진 왕양명(王陽明)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O 양명의 사상을 담은 전습록(傳習錄)에는 도가에서 중시하는 기()에 대한 적극적 수용이 나타난다. 기와 직접 연관성을 갖고 나타나는 감정에 대해서도 상당히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보통 유가에서는 희()ㆍ노()ㆍ애()ㆍ구()ㆍ애()()ㆍ욕()으로 대표되는 감정, 즉 칠정(七情)이 뜻을 흐트러뜨리거나 혼란스럽게 한다고 보고, 심한 경우에는 뜻을 가로막기에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하지만 양명이 보기에 기가 부차적 현상이 아니듯이 여기에 직결된 칠정도 배척하거나 외면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O 칠정은 사람에게 응당 있어야 할 것이다. 구름이 해를 가린다고 하늘에 구름이 생기지 말라고는 할 수 없다. 칠정이 스스로 흘러나오는 것은 모두 양지의 역할이며 그것으로는 선악을 구분할 수 없다.”

O 양명의 해석에 따르면 신중함과 경건함, 예의와 법도 등 유가에서 강조하는 가치 자체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상반되어 보이는 요소들이 한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에 뒤섞여 나타난다고 해서 잘못이라고 탓할 일이 아니다.

O 거대하고 복잡한 현대 사회는 물론이고 자아를 안정되게 유지할 것으로 예측되는 전통 사회에서조차 사실 정체성이 오직 하나라고 믿는 것은 신화에 가깝다. 나를 규정하는 정체성은 하나가 아닌 여럿일 가능성이 크다. 나를 여럿으로 보는 시선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욱 절실하다. 진정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내 안에 있는 여럿을 인정해야 한다. 

박홍순 지음, 옛그림 인문학, 마로니에북스, 2018

목차

서문: 옛그림과 떠나는 동양사상 산책

1. 학문의 지혜: 진짜 나를 찾아서

배움, 달빛 언덕에서 시를 논하는 행복 - 공자 논어
정선 <독서여가도> / 김명국 <인하독서도> / 이형록 <책가도> / 조영석 <설중방우도> / 김홍도 <송석원시사야연도>

내 안의 서로 다른 나: 김홍도의 다중 자아? - 왕양명 전습록
김홍도 <사인초상> / 김홍도 <포의풍류도> / 김홍도 <월하취생도>

하늘과 사람을 알다 - 일연 삼국유사, 순자 순자
김두량 <월야산수도> / 고구려 벽화 <해신과 달신> / 김희겸 <적성래귀>

옛 지식인의 현실 고뇌 - 사마천 사기
김정 <숙조도> / 신윤복 <소나무와 매> / 김정희 <세한도> / 윤두서 <진단타려도>

2. 인생의 지혜: 다채로운 우리 삶을 향한 관점

세계관, 어디에서 세상을 보는가? - 한비자 한비자, 장자 장자
심사정 <노안도> / 강희언 <인왕산도> / 안견 <몽유도원도> / 정선 <금강전도>

인생관, 두보인가 이백인가? - 두보 시선, 이백 시선
오명현 <노인의송도> / <송시열 초상> / 채용신 <전우 초상> / 이경윤 <고사탁족도> / 강희안 <고사관수도>

생사관, 죽음과 마주하다 - 김시습 금오신화, 법구 법구경
김명국 <은사도> / 고구려 벽화 <묘주 초상> / 불암사 <감로탱화> / <김시습 초상>

생활관, 밥이 하늘이다 - 최시형 해월법설, 박제가 북학의
양기훈 <뇌경> / 김홍도 <대장간> / 김득신 <대장간> / 권용정 <보부상> / 윤용 <협롱채춘도>

3. 정치의 지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고전 속 문제의식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 정약용 목민심서, 묵자 묵자
김홍도 평안감사향연도/ 김득신 외 <환어행렬도> / 김홍도 <취중송사도>

죄와 벌 - 한비 한비자, 정약용 목민심서
신윤복 <유곽쟁웅>, <주사거배> / 김득신 <밀희투전> / 김윤보 형정도첩

전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 - 제갈량 장원, 맹자 맹자
강희언 <사인사예> / 무용총 <기마도> / 삼국지연의도/ 민화 <무신도>

하나를 위한 우리 - 신채호 조선상고사, <대아와 소아>
변박 <부산진순절도> / 안중식 <백악춘효도> 여름본 / 장승업 <호취도>, <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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