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uly 24, 2021
(사)인문연구원 동고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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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를 빛낸 의인들 (18)임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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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규가 연행된 것은 1979년 3월 13일이었다. 악명 높은 남영동 분실의 취조실은 지금까지 경험해 본 그 어떤 곳보다 철저하게 설계된 곳이었다. 일주일간 잠을 재우지 않는 릴레이 수사가 진행되었다.

광주를 빛낸 의인들(17) 빛고을의 의사(醫師) 김범수, 의인(義人) 김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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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는 어려서부터 광주의 수재로 소문이 났다. 1917년 18세의 어린 나이로 경성의학전문대학을 합격하였다. 전남 출신 학생으론 유일하였다. 

광주를 빛낸 의인들(16) 학생탑 밑에 숨은 김한동 선생의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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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동(1915년생)은 1929년 광주고보에 입학하여 그해의 대시위에 참여하였다. 당시 김한동은 14세의 1학년 학생이었다. 그는 이 일로 퇴학을 받았다. 두 차례의 시위로 학생들은 큰 희생을 치렀다. 250여 명이 구금되거나 퇴학을 당했으니 교실이 텅 비었다.

광주를 빛낸 의인들(15) 독립훈장 신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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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즈음 대한민국에 대해 깊은 의구심을 품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에 맞선 선열들의 피나는 희생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건립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상식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광주를 빛낸 의인들(14) 이 땅에 정의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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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머니는 1919년 해남 북평면 신월리에서 태어나셨다. 1932년 전후 신월리에 야학이 개설되었고, 어머님은 이 야학에서 국문을 깨우쳤다. 야학의 서가에 꽂힌 문학 도서들은 어머니의 영혼을 사로잡았다. 춘향전과 심청전을 비롯하여 조웅전과 배비장전등 조선의 전래 문학 서적들을 어머니는 통째로 암송하였다.

광주를 빛낸 의인들(13) 오월에 생각하는 장재성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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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조국에서 총살당한 광주학생독립운동 ‘주역’ 광주고보 재학시절 첫 비밀결사독서모임 ‘성진회’ 조직해 항일해방이후 시국사범으로 수형중6·25 발발하자 불법 처형당해광주 긍지에도 독립유공자 못돼유족·후배 등 7월 추모제 계획 2020년은 6·25가 7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500만...

광주를 빛낸 의인들(12) 의병대장 기삼연 선생의 묘를 참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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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성군 황룡면 아곡리, 이것이 의병장 기삼연 선생의 묘소를 찾아 나선 내가 확보한 정보의 모든 것이었다. 광주에서 장성으로 가는 길은 순탄하였다. 차는 하서 김인후의...

광주를 빛낸 의인들(11) 심남일 의병장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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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놈을 쓸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으리” 한말 전남 중·남부서 의병 일으켜 영암 전투때 日 평금산 대장 사살

광주를 빛낸 의인들(10) 광주학생독립운동 장재성, 부끄러운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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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학생 독립운동의 원조는 성진회요, 광주학생 독립운동의 주역은 독서회이며, 성진회를 창립하고, 독서회를 조직한 이는 장재성 씨였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광주를 빛낸 의인들(9) 소탈하고 정의심 많고 따뜻한 삶을 살다간 박기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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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己亥)년이 저물어 간다. 나는 한 해 내내 ‘의향 광주’를 탐구하였다. ‘광주가 왜 의향이지?’ 한말 호남 의병장들의 삶을 들여다보니, 왜 광주가 의향인지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아, 이래서 광주가 의로운 고을이었구나.’

광주를 빛낸 의인들(8) 서암 양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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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버스를 탄다. 일곡동에서 버스를 타고 산수동에 소재한 ‘오월의 숲’에 가는 것이 반복되는 나의 하루 여정이다. 서일초등학교 앞 정거장에서 15번 버스를 타면, 차는 설죽로를 따라 가다가 말바우 시장 앞에서 서암로를 따라 간다.

광주를 빛낸 의인들(7] 호남의사열전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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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사 기우만, 1909년 ‘호남 의사 열전’을 집필하면서 피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먼저 간 의병장들은 모두 그의 동지였고, 제자였다. 의병장 12인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그의 소명이었다. 길지 않은 글이었다. 호남 의사 열전에 기록된 의병의 열악한 사정은 차마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었다. 광주 인근의 산야가 다 의병의 전적지였음을 나는 왜 이제야 아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