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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를 빛낸 의인들 (18)임동규
임동규가 연행된 것은 1979년 3월 13일이었다. 악명 높은 남영동 분실의 취조실은 지금까지 경험해 본 그 어떤 곳보다 철저하게 설계된 곳이었다. 일주일간 잠을 재우지 않는 릴레이 수사가 진행되었다.
광주를 빛낸 의인들(17) 빛고을의 의사(醫師) 김범수, 의인(義人) 김범수
김범수는 어려서부터 광주의 수재로 소문이 났다. 1917년 18세의 어린 나이로 경성의학전문대학을 합격하였다. 전남 출신 학생으론 유일하였다.
광주를 빛낸 의인들(16) 학생탑 밑에 숨은 김한동 선생의 사연
김한동(1915년생)은 1929년 광주고보에 입학하여 그해의 대시위에 참여하였다. 당시 김한동은 14세의 1학년 학생이었다. 그는 이 일로 퇴학을 받았다. 두 차례의 시위로 학생들은 큰 희생을 치렀다. 250여 명이 구금되거나 퇴학을 당했으니 교실이 텅 비었다.
광주를 빛낸 의인들(15) 독립훈장 신설
나는 요즈음 대한민국에 대해 깊은 의구심을 품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에 맞선 선열들의 피나는 희생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건립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상식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광주를 빛낸 의인들(14) 이 땅에 정의는 있는가?
나의 어머니는 1919년 해남 북평면 신월리에서 태어나셨다. 1932년 전후 신월리에 야학이 개설되었고, 어머님은 이 야학에서 국문을 깨우쳤다. 야학의 서가에 꽂힌 문학 도서들은 어머니의 영혼을 사로잡았다. 춘향전과 심청전을 비롯하여 조웅전과 배비장전등 조선의 전래 문학 서적들을 어머니는 통째로 암송하였다.
광주를 빛낸 의인들(13) 오월에 생각하는 장재성 선생
해방 조국에서 총살당한 광주학생독립운동 ‘주역’
광주고보 재학시절 첫 비밀결사독서모임 ‘성진회’ 조직해 항일해방이후 시국사범으로 수형중6·25 발발하자 불법 처형당해광주 긍지에도 독립유공자 못돼유족·후배 등 7월 추모제 계획
2020년은 6·25가 7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500만...
광주를 빛낸 의인들(12) 의병대장 기삼연 선생의 묘를 참배하다
전남 장성군 황룡면 아곡리, 이것이 의병장 기삼연 선생의 묘소를 찾아 나선 내가 확보한 정보의 모든 것이었다. 광주에서 장성으로 가는 길은 순탄하였다. 차는 하서 김인후의...
광주를 빛낸 의인들(11) 심남일 의병장을 찾다
“왜놈을 쓸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으리”
한말 전남 중·남부서 의병 일으켜
영암 전투때 日 평금산 대장 사살
광주를 빛낸 의인들(10) 광주학생독립운동 장재성, 부끄러운 광주
광주학생 독립운동의 원조는 성진회요, 광주학생 독립운동의 주역은 독서회이며, 성진회를 창립하고, 독서회를 조직한 이는 장재성 씨였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광주를 빛낸 의인들(9) 소탈하고 정의심 많고 따뜻한 삶을 살다간 박기순
기해(己亥)년이 저물어 간다. 나는 한 해 내내 ‘의향 광주’를 탐구하였다. ‘광주가 왜 의향이지?’ 한말 호남 의병장들의 삶을 들여다보니, 왜 광주가 의향인지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아, 이래서 광주가 의로운 고을이었구나.’
광주를 빛낸 의인들(8) 서암 양진여
나는 매일 버스를 탄다. 일곡동에서 버스를 타고 산수동에 소재한 ‘오월의 숲’에 가는 것이 반복되는 나의 하루 여정이다. 서일초등학교 앞 정거장에서 15번 버스를 타면, 차는 설죽로를 따라 가다가 말바우 시장 앞에서 서암로를 따라 간다.
광주를 빛낸 의인들(7] 호남의사열전을 읽고
송사 기우만, 1909년 ‘호남 의사 열전’을 집필하면서 피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먼저 간 의병장들은 모두 그의 동지였고, 제자였다. 의병장 12인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그의 소명이었다. 길지 않은 글이었다. 호남 의사 열전에 기록된 의병의 열악한 사정은 차마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었다. 광주 인근의 산야가 다 의병의 전적지였음을 나는 왜 이제야 아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