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적 상념을 부르는 ‘노인 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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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적 상념을 부르는 ‘노인 난민’ : [궁핍은 물리적 재난], [삶은 전쟁]

나익주 (한겨레말글연구소)

등이 반쯤 굽은 할머니가 빈 종이상자를 가득 실은 리어카를 힘겹게 끌고 간다. 가끔 지나가는 보행자 한 두 명이 달라들어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할머니의 리어카를 함께 밀어준다. 내가 나다니는 도시에서 흔히 보는 풍경이다. 이 장면을 볼 때마다 ‘저렇게 하나 가득 채우려면 도시 곳곳을 얼마나 돌아다니실까?’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한 리어카에 얼마나 받으실까?’ ‘자녀는 없을까?’ ‘사회안전망으로 보살필 수는 없을까?’ ‘혹시 건강을 위해서 운동 삼아 저 일을 하실까?’ 등 이런저런 상념에 젖는다. 그러고서는 다시 바쁜 일상에 그런 할머니의 모습은 까마득히 잊어버린다.

‘노인 난민’과 ‘노후 난민’: [궁핍은 물리적 재난] 은유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뒤 이 장면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게 되었다. 지난 여름 신문 기사를 읽다가 눈에 들어온 한 어구 때문이었다. 바로 ‘노인난민(老人難民)’과 ‘노후난민(老後難民)’이다. 온라인에서 검색해 보니 이 두 어구가 들어있는 많은 기사가 나왔다. 아래 인용문은 그러한 기사의 일부이다.

 

・샌드위치 세대로 불리는 대구에 사는 윤모(58)씨는 곧 다가올 정년퇴직에 최근 고민이 나날이 깊어가고 있다. 부모 봉양과 자식들의 대학부터 결혼 뒷바라지까지 딸린 식구를 책임지기에도 바빠 노후 난민으로 내몰릴 위험에 처했기 때문이다. (조선닷컴 2015.7.30.)

・베이비붐세대 은퇴 임박, ‘노후 난민’ 대책 급하다: 고령화에 따른 ‘노후난민 시대’를 맞아 정책적 대응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노후난민(老後難民)이란 의·식·주 등 기본적인 생활 인프라의 혜택을 받을 수 없거나 가족과 사회로부터 고립돼 일상생활에서 곤란을 겪는 고령자를 말한다. (경북일보 2011.11.20.)

・건강복지정책연구원은 “고령화시대에 노인들에 대한 의료비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노인의료비 관리는 불가능해져 2025년 이후에는 노인 계층의 ‘의료난민’, ‘돌봄난민’ 문제에 봉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라포르시안 2022.04.15.)

・고독사ㆍ체납 등 이유로 기피… 살 곳 없어 ‘노인 주택 난민’ 증가: 일본의 노인들이 살 곳을 찾아 전전하는 ‘주택 난민’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 혼자 사는 노인에게 집을 임대했다가 고독사하면 사후 처리로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유로 부동산들이 노인 입주를 거절하기 때문이다. (이투데이 2022.11.22.)

‘노인난민’과 ‘노후난민’은 둘 다 아직은 국립국어원 표준대사전과 연세한국어사전,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 아직 독립적인 표제어로 올라와 있지 않으며, ‘노후 난민(老後難民)’만이 국립국어원의 개방형 지식 대사전인 우리말샘에 신조어구로 올라와 있다. 그래서인지 언론 보도 기사에도 ‘노후난민’이라는 복합명사 형태보다 ‘노후’와 ‘난민’이 연어하는 명사구 ‘노후 난민’이 더 많이 등장한다. 한편 ‘노인난민’은 네이버 오픈사전에 “가족의 부양과 사회적 돌봄을 받지 못하는 노인을 일컫는 말”이라는 해석과 함께 실려 있지만, 예문은 제시되어 있지 않다. 실제 기사에는 거의 대부분 ‘노인’과 ‘난민’이 직접 연어하는 ‘노민 난민’ 형태나 물리적 거리를 두고 호응하는 ‘노인~난민’ 또는 ‘난민~노인’ 형태가 나타난다.

하나의 복합명사(‘노인난민’ ‘노후난민’)이든, 두 명사가 결합한 명사구(‘노인 난민’ ‘노후 난민’)이든, 두 명사가 거리를 두고 호응하는 형식(‘노인~난민’ ‘난민~노인’)이든, 이러한 표현은 다 “가족과 사회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독거노인으로서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고 생활이 어려운 사람”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표현들이 동의적이라는 점에서 앞으로는 ‘노인 난민’과 ‘노후 난민’이라 표기하며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난민’은 글자 그대로 “전쟁이나 재난 따위를 당하여 곤경에 빠진 백성”을 의미하지만, 위에서 인용한 기사에서 ‘노인 난민’과 ‘노후 난민’은 결코 “전쟁으로 곤경에 처한 고령자”나 “지진, 태풍, 홍수, 가뭄, 해일, 화재, 전염병 따위의 물리적 재해를 당한 고령자”라는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 오히려 비유적으로 “가족과 사회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독거노인으로서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고 생활이 어려운 사람”을 가리킨다. ‘노인 난민’과 ‘노후 난민’의 이 의미는 우리 마음속에 깊숙이 자리 잡아 아무런 인지적 노력 없이 거의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사고 기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기제는 바로 경제적 곤란을 물리적 재난으로 간주하는 사고방식, 즉 [궁핍은 물리적 재난]이라는 개념적 은유이다.

‘난민’은 ‘노인’뿐인가?

현재 한국 사회의 ‘은유적 난민’은 노인말고는 없을까? ‘노인 난민’이라는 어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이 가장 높아서 생계 곤란을 겪는 노인들이 많다는 현실을 반영할 뿐이지, 여타의 은유적 난민이 부재한다는 것을 결코 함의하지 않는다. 실제로 한국 사회에는 은유적으로 난민으로 인식되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것은 ‘월세난민’ ‘전세난민’ ‘주거난민’ ‘주택난민’ ‘의료난민’ ‘돌봄난민’ ‘재활난민’ ‘은퇴난민’ 등과 같이 ‘난민’과 결합한 다양한 어구가 기사에 등장하는 데서 알 수 있다. 다음 인용문은 그러한 어구를 포함하고 있는 기사들의 일부 사례이다.

 

・국내 주요 시중은행의 전세자금대출 금리가 6%를 넘어서면서, 서민층의 주거비용 부담이 늘어나고 있다. 금리 상승에 결국 반강제적으로 전세를 월세로 바꾸는 ‘월세 난민’이 쏟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조선일보 2022.7.7.)

・전문가들은 ‘임대차 3법’이 시행되면 오르는 전셋값에 쫓겨나듯 2년마다 집을 옮겨 다니는 ‘전세 난민’이 사라지는 등 임차인 주거 안정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MBN 2020.7.29.)

・더 싼 집으로 ‘난민’ 몰리자···오산 22% 뛰고 천안도 15%↑: 수요가 가장 몰리는 곳은 말할 것도 없이 서울이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집값이 급격하게 오르면서 주택 난민들이 연쇄 이동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수도권에서 먼 외곽 지역조차 집값이 불안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경제 2021.5.7.)

・반지하 20만 가구 퇴출?…이주대책 없인 주거난민 양산: 시장에선 반지하 주택을 급격하게 줄일 경우 도시 빈민들의 주거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수요는 그대로인데 공급만 줄이면 저소득 주민들은 고시원·쪽방·비닐하우스로 이동할 수밖에 없어 이들의 주거 여건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경제 2022.8.11.)

‘월세’와 ‘전세’ ‘주거’ ‘주택’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한 무리의 요소와 지식으로 구성된 [주거] 개념—즉 [주거] 프레임—을 참조해야 한다. ‘주거’는 일정한 곳에 머무르며 먹고 마시고 잠자는 활동(을 하는 곳)으로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흔히 ‘집’이라 불리는 ‘주거’는 추위, 더위, 비바람, 맹수 등 외부 위협을 막아주는 내부 공간이 있는 구조물로서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집’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인간은 사회 생활은커녕 물리적 생존조차도 유지할 수 없다. ‘세입자’나 ‘매입자’로서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세를 놓거나 파는 ‘소유자’에게 시장에서 결정된 가치에 해당하는 돈을 지불해야 한다. 위의 인용문에서 ‘난민’과 결합한 어구인 ‘월세난민’과 ‘전세난민’ ‘주거난민’ ‘주택난민’은 “삶의 터전인 집을 구하는 데 필요한 돈이 부족하여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 의미도 역시 축자적이 아니며 [궁핍은 물리적 재해]라는 개념적 은유에 근거한다.

이 사람들이 반드시 ‘노인’일 필요는 없다. 아래의 기사 인용문에서 보듯이, 삶의 터전을 구할 만큼의 돈이 없다면 청년은 물론 어떤 연령의 사람이든 ‘주거난민’이 될 수 있다.

・대출금리가 치솟으면서 변동금리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이른바 ‘영끌족’과 전세난민으로 불리는 집 없는 서민, 상환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청년층의 빚 부담이 특히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머니투데이 2022.11.15.)

・“도시에서 안정적으로 공간을 빌릴 자본이 없는 청년은 잠재적 난민이다. 원치 않는 이동을 반복하고, 안전하지 않고 익숙하지 않은 공간을 떠돌면서 소진된다.”……통학에 다섯 시간이 걸리지만 경기도에 산다는 이유로 신청조차 하지 못하는 기숙사……. (알라딘 출판사 제공 책소개 중에서)

또한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삶의 터전인 ‘주거’ 비용이 부족한 사람들만이 ‘은유적 난민’이 아니다. 다음 기사 발췌문에서 보듯이 치료나 간병에 필요한 비용을 충분히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도 역시 ‘난민’이다. 은퇴하여 생계비에 허덕이는 사람들도 또한 ‘난민’일 수 있다.

・건강복지정책연구원은 “고령화시대에 노인들에 대한 의료비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노인의료비 관리는 불가능해져 2025년 이후에는 노인 계층의 ‘의료난민’, ‘돌봄난민’ 문제에 봉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라포르시안 2022.04.15.)

・뇌졸중이 발생하면 통상 수년간의 재활치료가 필요한데도 수익을 생각해야 하는 의료기관 입장에선 환자를 내보낼 수밖에 없다. 병원을 나선 장애인은 재활 치료를 집중적으로 받아야 할 시기에 이른바 ‘재활 난민’이 되어 여러 병원을 전전할 수밖에 없다. (서울신문 2015.11.15.)

・월급 받아 생활비와 자녀 교육비 대기도 바쁜 직장인이 월세까지 납부한다면 노후 준비는 언제 하란 말인가. ‘전세 난민’이 미래에 ‘은퇴 난민’이 되지 않을까 우려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주간동아 2011.10.4.)

‘노인 난민’ ‘주거 난민’ ‘재활 난민’ 따위의 표현을 검색한 기사에서 읽으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빈곤 노인’ ‘서민 세입자’ ‘무주택자’ ‘장기 재활치료자’ 등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지닌 표현들이 이미 있는데도 불구하고, 기자들은 왜 굳이 궁핍한 사람들을 묘사하기 위해서 다른 한 명사 뒤에 ‘난민’을 결합한 다양한 명사구를 사용했을까?

[삶은 경주(전쟁)] 은유에서 [삶은 여행] 은유로

이러한 표현의 빈번한 사용은 다양한 부류의 수많은 사람이 생존의 벼랑 끝에 몰려 있는 사회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표현은 궁핍을 이겨내고자 하는 그들의 노력을 최악의 물리적 재난 사례인 전쟁터에서 살아남고자 애쓰는 병사들의 고투에 대응한다고 보는 한국인들의 인식을 반영한다고 본다. 달리 말하면, 이러한 표현은 [궁핍에의 대처]를 [전쟁에서의 생존]으로 보는 은유적 사고의 발현이다.

더 넓은 시각에서 ‘노인 난민’ ‘주거 난민’ ‘재활 난민’ 따위의 표현이 은유적으로 경쟁적인 [삶]의 현실을 치열한 [전쟁]으로 간주하는 한국인들의 사고방식과도 관련이 있다고 보면 나만의 무리한 추론일까. ‘인생 낙오자’ ‘인생의 승자와 패자’ ‘취업 경쟁의 위너와 루저’ ‘치밀한 인생 전략’ ‘입시 전선’ ‘취업 전쟁’ 따위의 일상적인 사용에서 보듯이, 개념적 은유 [삶은 전쟁]는 실제로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현재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한정된 재화를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만이 가득한 삶은 비유적으로 결승선에 먼저 도달해 더 많은 상과 상품을 받기 위한 경주—일종의 은유적 전쟁—이다. 타인을 배려하고 나의 소유를 이웃과 나누는 삶은 비유적으로 목적지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여행에 해당한다. 동요의 한 구절 ‘발맞추어 나가자 앞으로 가자 어깨동무하고 가자 앞으로 가자’에서처럼 말이다. [삶은 경주(전쟁)] 은유보다는 [삶은 여행] 은유가 우리들의 마음속에 더 깊숙이 자리 잡을 때 우리 사회는 더 지속가능한 사회가 되고 모두가 더 평안하게 되지 않을까.

나익주

전남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 대학원과 전남대 대학원에서 영어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UC버클리대 언어학과에서 객원학자로서 은유와 인지언어학을 공부했다. 전남대와 충남대, 광주교대에서 강의했으며, 광주 지산중학교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담화인지언어학회의 학술지 『담화와 인지』 편집위원과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을 맡고 있다. 『은유로 보는 한국 사회』(2020)와 『조지 레이코프』(2017), 『어휘 의미의 인지언어학적 탐색』(2015 공저), 『비유의 인지언어학적 탐색』(2014 공저)을 썼다. 『삶으로서의 은유』(1995/2006 공역), 『몸의 철학』(2003 공역), 『프레임 전쟁』(2007), 『이기는 프레임』(2016), 『과학의 은유: 진리 만들기』(2020 공역) 등의 역서를 펴냈다.

낮에는 영어 교사, 밤에는 언어학자로 살아온 두 얼굴의 사나이. ‘동고송’의 전신인 '고전을 공부하는 교사모임'의 창립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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