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총질’에 깔린 개념적 은유는?:
[논쟁은 전쟁], [정당은 건물]
나익주 (한겨레말글연구소)
올여름을 지나는 내내 신문과 방송의 보도 기사에서 거의 매일 등장하는 한 어구가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바로 ‘내부 총질’이다. 사전에 실려 있는 명사 ‘총질’과 명사 ‘내부’는 글자 그대로의 의미는 각각 “총을 쏘는 일”과 “물건이나 공간의 안쪽 부분”이다. 형태적으로 두 명사의 결합이기 때문에, ‘내부 총질’의 글자 그대로의 의미는 당연히 두 명사의 의미적 합인 “어떤 물건이나 공간의 안쪽 부분에서 물리적으로 총을 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실제의 담화나 텍스트에서 이 어구를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 사용한 사례는 아직 본 적이 없다.
‘내부 총질’: ‘정치인들’이 총잡이가 되었나?
실제로 올여름의 언론 보도에 등장하는 이 어구의 모든 사용도 역시 축자적이 아니라 비유적이며, 주로 정치인들이 자신이 속한 정당이나 그 구성원을 비판하기 위해 표출하는 의견을 지칭한다. 대부분의 언론 보도는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의 내부 갈등을 묘사하기 위해 ‘내부 총질’을 비유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성상납 증거 인멸 교사 의혹’을 받는 이준석 대표에 대해 이 정당의 중앙윤리위원회에서 당원 권리를 6개월 동안 정지시키는 중징계 결정을 내리고 십여 일 남짓 지난 뒤 권성동 권한대행에게 보낸 윤 대통령의 문자 덕택에 ‘내부 총질’은 언론 보도에서 그 위상을 더욱 드높이고 있다.
- 권 대행의 휴대전화 사진을 통해 윤 대통령이 “우리당도 잘하네요 계속 이렇게 해야.”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가 바뀌니 달라졌다.”고 보낸 사실이 노출됐다. 권 대행은 “대통령님의 뜻을 잘 받들어 당정이 하나 되는 모습을 보이겠습니다.”고 답했다. (머니투데이 2022.7.27.)
- 나경원 “이준석, 내부총질에 해당해…‘李폭탄’에 아쉬워”: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은 15일 윤석열 대통령과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을 겨냥한 이준석 대표의 기자회견에 대해 “실질적으로 내부총질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여권 내부의 갈등, 당과 대통령실 또는 정부에 리스크가 좀 있는 것을 하나씩 걷어내고 있는 와중에 이 대표의 폭탄이 떨어져 너무 아쉽다”고 덧붙였다. (동아일보 2022.8.15.)
- 유 전 의원은 “대통령과 윤핵관 대신 국민과 민심을 두려워하라.”고 쓴소리를 했는데요. 윤 대통령에게도 활 끝을 겨눴습니다. “비대위 탄생의 원인은 윤 대통령의 ‘내부 총질, 체리 따봉’ 문자 때문”이라고 못 박은 겁니다. “본인의 문자로 이 난리가 났는데 모르쇠로 일관하며 배후에서 당을 컨트롤하는 것은 정직하지도, 당당하지도 못한 처신”이라고 맹비난했죠. (제이티비시 2022.8.30.)
- 하지만 통합형 당대표의 길은 요원해 보인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첫 최고위 회의에서 “‘내부 총질 중지, 총구는 밖으로, 이재명 당대표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라’라는 것이 당원과 국민이 내린 지상명령”이라고 강조했다. 사실상 내부 비판을 하지 말라는 엄포로 읽힌다. (세계일보 2022.8.30.)
물론 위의 마지막 발췌문에서 보듯이 ‘내부 총질’이 여당의 갈등만을 보도하는 데 동원되는 것은 아니며,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표출된 갈등과 이견을 보도하는 데도 사용되고 있다. 사실은 어떤 조직이나 집단의 구성원들 사이에 오가는 비판적인 의견은 다 ‘내부 총질’이라고 묘사할 수 있다. 이것은 ‘내부 총질 일삼는 전교조’ ‘내부 총질로 무너지는 교육계’ ‘내부 총질로 날이 새는 지도부’ 등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언어 표현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내부 ‘총질’: [논쟁은 전쟁] 은유
낱말 ‘총질’을 듣는 순간, 한국인들의 마음속에서는 ‘아군’ ‘적군’ ‘과녁’ ‘발사’ ‘총격전’ ‘직격’ ‘부상’ ‘사망’ 등 전쟁과 관련이 있는 수많은 사물과 행위와 사건의 영상이 떠오르고, 또한 이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지식도 떠오른다. 달리 말하면, 낱말 ‘총질’은 [전쟁] 프레임을 우리 마음속에서 활성화한다. 이것은 ‘총질’이 전쟁의 필수적인 무기 중 하나인 ‘총으로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기사 발췌문에서 “총을 쏘는 일”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 이 낱말은 결코 실제의 물리적인 전쟁을 지칭하지 않으며 이견을 제시하거나 서로를 비난하고 비판하는 정당 구성원들의 행위를 지칭한다. 이견과 비판, 비난은 논쟁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표출하는 언어적 행위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국민의힘’의 내부 갈등을 묘사하기 위해 언론 보도에서 사용하는 어구는 단지 ‘내부 총질’만이 아니다. 아래의 발췌 기사문에서 보듯이 ‘저격하다’ ‘직격하다’ ‘주적’ ‘맞서다’ ‘폭탄’ ‘전쟁’ ‘정조준’ 등의 낱말도 함께 사용하고 있다.
- 며칠 전에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윤 대통령을 저격하는 쇼츠 영상을 올리기도 했는데요.…… “비대위 유지, 이준석 전 대표 추가 징계라는 의원총회의 결론은 국민과 민심에 정면으로 대드는 한심한 짓”이라고 쏘아붙였는데요. ‘바보짓을 했다’, ‘상식과 양심을 개에게 줘버렸다’는 거친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다음 총선 공천에만 혈안이 돼 윤 대통령과 윤핵관의 눈치를 살폈다고 직격한 겁니다. (제이티비시 2022.8.30.)
-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자신에게 ‘주적’이라는 표현을 쓴 여권의 ‘고위 인사’ 발언이 실린 언론 보도를 공유하며 “어떤 고위 인사인지 몰라도 ‘주적은 이준석’이라는 표현까지 썼네요.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프레시안 2022.9.2.)
그러면서 “여권 내부의 갈등, 당과 대통령실 또는 정부에 리스크가 좀 있는 것을 하나씩 걷어내고 있는 와중에 이 대표의 폭탄이 떨어져 너무 아쉽다”고 덧붙였다. (동아일보 2022.8.15.)
- 김근식, 장제원 저격했나…… “이 대표의 법적 승리는 확인했으나 지금 국민의힘 복귀는 정치적으로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당을 나락으로 빠트리는 끝없는 전쟁을 중단하고 이제 잠적과 잠행, 집필과 묵언으로 사태를 지켜보기 바란다”고 이준석 전 대표를 정조준했다. (디지털타임스 2022.8.28.)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 사용될 때, ‘총질’ ‘저격’ ‘직격’ ‘주적’ ‘폭탄’ ‘전쟁’ ‘정조준’ 등의 낱말은 모두 [전쟁] 개념과 관련이 있는 용어이다. 따라서 이러한 표현을 듣는 순간 한국인들은 바로 마음속에서 [전쟁] 프레임을 활성화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제시한 언론 보도에서는 이러한 어구가 ‘물리적인 전쟁’이 아니라 서로를 비난하고 비판하는 정치인들의 갈등―일종의 논쟁―을 지칭한다. 하지만 이러한 언론 보도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한국어 사용자는 아무도 없다. 오히려 별다른 인지적 노력도 없이 거의 자동적으로 이해한다. 바로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으며 [논쟁] 개념을 이해할 때 인지적 무의식으로서 작동하는 개념적 은유 [논쟁은 전쟁] 덕택이다. 이것은 이러한 기사문이 개념적 은유 [논쟁은 전쟁]의 언어적 발현 사례라는 것을 보여준다.
[논쟁] 개념을 [전쟁] 개념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언어 표현은 위와 같은 기사만이 아니다. 우리는 ‘방어할 수 없는 주장’ ‘상대방 논증의 모든 약점을 공격한 패널’ ‘과녁을 빗나간 그의 비판’ ‘다자 간 토론에서 완전히 밀린 그 후보’ ‘여당의 논리를 능숙하게 격파한 야당’ ‘그녀와의 논쟁에서 한 번도 승리한 적이 없어’ 등의 언어 표현을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이러한 표현도 다 [논쟁은 전쟁] 은유의 언어적 발현 사례이다.
[논쟁은 전쟁] 은유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대응으로 구성된다. 참전국은 토론자에, 공격은 상대편 논증의 약점을 지적하는 발화 행위에, 방어는 자기 논증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발화 행위에, 무기(총, 칼, 폭탄 등)는 증거에 대응한다. 그리고 전쟁에서 아군은 같은 지역 내에 있고 적군은 이 지역 밖의 다른 지역에 있듯이, 논쟁에서도 지지자는 조직 내에 있고 반대자는 조직 밖(즉 다른 조직 내)에 있다. 전쟁에서 아군을 향한 공격이 이적 행위이듯이, 논쟁에서도 자기 조직의 구성원을 향한 비난은 나쁜 행위이다.
‘내부’ 총질: [정당은 건물] 은유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언론 보도에 등장하는 명사구 ‘내부 총질’의 명사 ‘총질’은 글자 그대로 “전쟁 중의 발사 행위”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비유적으로 “정치인들이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언어적 행위”를 지칭한다. ‘내부 총질’의 ‘내부’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 ‘내부’의 의미는 글자 그대로 “어떤 물리적인 건물의 안쪽”을 가리키지 않으며, 비유적으로 “어떤 정당의 구성원”들을 가리킨다. 명사구 ‘내부 총질’을 듣거나 읽는 순간 ‘총질’의 비유적 의미를 바로 이해했듯이, 한국인 모어 화자들은 ‘내부’의 비유적인 의미도 역시 아무런 어려움 없이 이해한다. 이것은 [정당]을 [건물]의 관점에서 은유적으로 이해하는 사고방식―[정당은 건물] 은유―이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정당은 건물] 은유의 존재는 ‘내부 총질’뿐만 아니라, 역시 ‘국민의힘’ 내분을 보도하고 있는 다음과 같은 기사 발췌문에서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비언어적으로 발현된 사례인 함께 실려 있는 사진도 이 은유의 존재를 보여준다. ‘건물을 쌓다’나 ‘건물이 무너지다’에서 보듯이, 동사 ‘쌓다’와 ‘무너지다’는 축자적으로 ‘건물’ 개념과 관련이 있는 사건을 지칭한다. 하지만 아래 기사에서는 이 두 동사가 지칭하는 대상은 물리적인 건물이 아니라 어떤 정치적 목적으로 모인 사람들의 결사체(정당)이다. 따라서 이 은유적인 ‘건물’(정당)의 ‘내부’는 구성원들이다.
-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1일 오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쌓는 건 2년, 무너지는 건 2주”라는 짧은 메시지를 냈다. 2020년 총선 패배 이후 ‘김종인 비대위’와 자신이 대표를 지내면서 쌓은 당의 모습이 최근 짧은 시간 내에 무너져 내렸다.“고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내부 총질’의 의미적 토대가 되는 또 다른 은유인 [정당은 건물]은 다음과 같은 대응으로 구성된다. 건물의 토대는 정당의 지지자에, 건물의 골격은 정당이 추구하는 가치나 이념에, 건물의 강도는 정당 구성원들의 결속력에, 건물의 내부는 정당의 구성원에 각각 대응한다. 토대나 골격 구조, 강도가 약하면 건물이 허물어지듯이, 지지자가 없고 추구하는 가치나 이념이 분명하지 않고 구성원들 사이에 결속력이 느슨하면 정당은 존재할 수 없다.
왜 ‘내부 총‘격’’이 아니고 ‘내부 총‘질’’인가?
자신과는 다른 견해를 피력하는 ‘국민의힘’ 대표의 행위에 대해 대통령은 권한대행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 왜 ‘내부 총격’이라 쓰지 않고 ‘내부 총질’이라 썼을까? 또한 기자들은 왜 ‘내부 총격’이 아니라 ‘내부 총질’이라는 어구를 사용해서 이 정당의 내분을 보도했을까? 세계 내에 존재하는 객관적인 사건으로서의 이 ‘내분’을 바라보는 관찰자들인 국민들의 부정적인 태도를 반영하기 위해 ‘총질’이라는 낱말을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평가와 관련해서 ‘총격’은 중립적인 태도를 전달하지만, ‘총질’은 접사 ‘질’이 담고 있는 부정적인 가치를 그대로 이어받아서 전한다.
전쟁에서 총격전을 벌일 때 아군과 적군은 보통 공간상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으며, 아군의 병사들은 경계가 있는 어떤 그릇 물건(예: 참호, 건물)의 안에 함께 있는 반면에 적군의 병사들은 이 그릇 물건의 밖에 위치해 있다. 전형적으로 총은 ‘밖’의 ‘그들’(적군)을 향해 쏘는 것이지 ‘안’의 ‘우리들’(아군)을 향해 쏘지 않는다. 만일 어떤 병사가 의도적으로 ‘안’의 ‘우리’를 향해 총을 발사한다면, 이것은 전형적인 총격전에서 벗어난 행위로 아군에게 피해를 끼치고 적을 이롭게 하는 이적 행위이다. 결국 이 병사는 이 발사 행위로 인해 결국 군법 행위에 회부되어 처벌을 받게 된다.
실제 전쟁의 시가전에서 한 병사가 건물에서 총을 ‘안’의 병사(아군)를 향해 쏘는 것은 ‘밖’의 병사(적)을 총으로 살상하는 것보다 결코 용인할 수 없는 더 끔찍한 자해 행위이다. [논쟁은 전쟁]과 [정당은 건물] 은유 덕택에 물리적인 건물 내의 총격은 은유적인 건물인 ‘정당’ 내부에서 벌어지는 대결(논쟁)에 대응한다. 그리고 ‘정당 내부의 저급한 논쟁’을 묘사하는 데는 당연히 중립적인 어구인 ‘내부 총격’보다 부정적인 평가를 강하게 전달하는 어구인 ‘내부 총질’이 더 적절해 보인다.
요약하면, 언론 보도에 편재하는 ‘내부 총질’을 읽는 순간 바로 아무런 어려움 없이 그 뜻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것은 개념적 은유 [논쟁은 전쟁]과 [정당은 건물]이 우리의 사고과정에 내재하기 때문이다. [논쟁] 개념을 [전쟁] 개념의 관점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여행] 개념이나 [(예술 작품) 창작] 개념이나 [식물 재배] 개념의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는 [논쟁] 개념의 다른 측면도 있다. 아무리 [정치는 전쟁] 은유가 우리 마음속에 내재한다고 해도, 정치권이 함께 성찰하면서 목적지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여행]이나, 씨앗을 뿌리고 가꾸어 나가는 [식물 지배]나, 불후의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는 [창작]으로서의 [정쟁(정치적 논쟁)]을 할 수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