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수> 심훈이 그린 박헌영과 주세죽, 그리고 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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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마다요. 중학교 1학년 때 밤을 새워 <상록수>를 읽었지 뭐예요?”
“심훈이 박헌영과 경기고등학교 동창이었대요. ”
“두 분이 그런 사이였나요?”
“여기 심훈이 쓴 장편 <동방의 애인>을 구해 왔으니 읽어 보시구려. 박헌영과 주세죽의 연애를 소설로 쓴 거라오.”
내가 <동방의 애인>이라는 소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임경석의 <독립운동열전>에서였다. 소설 속 주인공 ‘동렬’은 박헌영을 모델로 삼았고, 동렬의 연인 ‘세정’은 주세죽을 형상화한 인물이란다. ‘살갗은 희나 좀 강팔라서 성미는 깔끔하여도 그야말로 대리석으로 아로새긴 듯한’ 인물이 주세죽이었다.

‘혁명’은 심장을 고동치게 한다. ‘사랑’도 그렇다. 혁명과 사랑을 다룬 심훈(1901~ 1936)의 소설이 있었다니, 나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바로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밀집도서 깊숙이 처박혀 있는 소설 <동방의 애인>은 쉽게 대출되지 않는 희귀도서였다. 심훈의 문학전집은 종이가 누렇게 빛이 바랬고, 표지는 너덜너덜했으며, 세로로 읽어가는, 그야말로 고문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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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훈

심훈 문학전집의 서문을 쓴 이는 이희승(1896~1989)이었다. 한글을 연구한 죄로 옥고를 치른 분.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딸깍발이’로 유명한 분이시다. 시대의 유행에는 뒤떨어졌으나 신념을 지키며 살아가는 선비, 딸깍발이 이야기가 지금도 뇌리에 선명히 남아 있다. 이희승 선생은 중학 시절의 심훈을 잘 알고 있었다. 그에 의하면 꽃미남 심훈은 여학생들에게 어찌나 인기가 높았던지 여학생들이 미행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내가 깜짝 놀란 것은 심훈의 투옥 경력이었다.

“의협심이 도타와서 불우한 학우를 도와주기를 좋아하였으며, 기미년 3.1운동 당시에는 선두에 나서서 만세를 부르다가 일경에 검거되어 옥고도 겪은 일이 있었다.”

과연 그랬다. 심훈은 1919년 3월에서 8월까지 옥고를 치른 애국 투사였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의 시가 그냥 작성된 것이 아니었다.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라고 읊었던 것은 심훈의 진심이었다.

전집에는 심훈이 옥중에서 어머님께 쓴 편지가 실려 있었다. 19세의 나이에 서대문 형무소에 갇힌 심훈을 나는 만났다.

“어머님! 주황빛의 벽돌 담은 화로 속처럼 달고 방 속에서는 똥통이 끓습니다. 밤이면 가뜩이나 다리도 뻗어 보지 못하는데 빈대, 벼룩이 다투어가며 진무른 살을 뜯습니다.”

이런 고초를 겪은 분이었기에 민중의 애환을 대변한 <상록수>를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한 달 동안이나 쪼그리고 앉은 채 날밤을 새웠습니다. 그렇건만 생지옥 속에 있으면서도 하나도 괴로워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의 눈초리에나 뉘우침과 슬픈 빛이 보이지 않고 도리어 그 눈들은 샛별과 같이 빛나고 있습니다그려!” 3.1운동의 앞장을 서다 옥고를 치렀던 선배들의 의연한 모습을 심훈은 이렇게 전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상록수> 당선 후기였다. ‘추창산필(秋窓散筆)’이라는 수필에는 1930년대 조선의 지식인이 겪던 가난한 삶이 적혀 있었다. 당선 고료 500원은 요즘 돈으로 5천만 원에 달하는 큰돈이었다. 한턱 단단히 내라는 지인들의 축전이 오기가 무섭게 10여 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책상 서랍 속에는 은전 몇 푼이 구를 뿐이다”고 고백하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작가란 거지다. 작가의 삶은 빈대의 삶이요, 채무의 연속이다. 그래서 심훈은 당선금으로 묵은 빚 갚고, 동네 청년들 야학에다가 일조하고, 꿈에도 그리던 축음기 한 대 장만하고 그러고 났더니 수중에 은전 몇 푼 남더라는 것이다.

추창산필에서 가난한 작가의 높고 외로운 마음에 심취된 나는 그제야 <동방의 애인>을 열었다. 소설의 주인공 동렬은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감옥 문을 나오자마자 상해로 망명길에 오른다.

“상해! 상해! 흰옷 입은 무리들이 그 당시에 얼마나 정다이 부르던 도회였던고! 모든 우리의 억울과 불평이 그곳의 안테나를 통하여 온 세계에 방송되는 듯하였고, 이 땅의 어둠을 헤쳐 볼 새로운 서광도 그곳으로부터 비치어올 듯이 믿어보지도 않았던가?”

자신이 상해 망명객이었던 심훈은 자신의 체험을 녹여 이 소설을 썼다. 상해의 거리 풍경 묘사라든가 상해 망명객의 일상생활에 관한 서술이 그것이다.

“동렬이와 진이는 삼천리 강토니 이천만 동포니 하는 민족에 대한 전통적 애착심을 버리고 새로운 문제를 내걸었다. 왜 우리는 이다지 굶주리고 헐벗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였다. 전 세계의 무산대중이 짓밟히는 것이 모두 이 문제 때문에 신음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고 <동방의 애인>은 망명객의 의식 변화를 이렇게 술회하였다. 그러니까 상해로 망명 간 젊은이들은 굶주리고 있는 무산자 대중의 현실에 눈을 뜬 것이다. 그랬다. 1919년 3.1운동 이전의 시기 독립운동가들의 사상이 민족주의였다면, 1919년 3.1운동 이후 독립투쟁에 뛰어든 젊은이들은 사회주의를 신봉하였다.

큰사진보기주세죽(왼쪽)과 박헌영.
▲  주세죽(왼쪽)과 박헌영.

“얼마 후에 동렬과 진이와 세정이는 x씨가 이끄는 00당 xx부에 입당하였다”고 소설은 썼다. x씨가 본 두 청년 동렬과 진에 대한 인물평이 재미있다. 동렬(박헌영)은 “몸가짐이 침착하고, 두뇌가 면밀하여 책임비서감”이었고, 진(김단야)은 “사람된 품격이 걱실걱실하여 겉으로 보기에는 덤벙대는 듯하나 정의감이 굳센 용감한 청년”이었다. 동렬은 박헌영이었고, 진은 박헌영의 동료 김단야였다. ‘걱실걱실’하다는 것은 “성질이 너그러워 말과 행동을 시원스럽게 하는 모양”을 뜻하는 말이다. 청춘 남녀가 만났으니 결론은 예정대로였다.

“결혼식 날은 왔다. 청첩도 없이 서로 입으로만 전한 것이었건만 정각인 오후 여덟 시에는 한 시간 전부터 남녀 동지들이 각처에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전등불은 짙은 미색으로 장내를 은은히 비추고 천정에는 오색의 만국 국기를 우산살 같이 늘였는데 내지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선명히 물들인 <옛날기>도 한몫 끼어서 ‘나도 여기 있다’는 듯이 너펄거렸다.”

<옛날기>는 무엇일까? 분명 <태극기>였다. 심훈은 왜 <태극기>를 <태극기>라고 쓰지 못하였을까? <태극기>를 <태극기>라고 부르지 못하는 식민지 백성의 서러움에 눈물이 났다.

“지금부터 김동렬, 강세정 두 동지의 결혼식을 거행합니다.” 선언이 끝나자, 몇 사람의 청년은 앞으로 나서며 ‘인터내셔널’을 부르기 시작하였다. “깨어라 노동자의 군대, 굴레를 벗어 던져라.”

나는 잠시 40년 전 나의 결혼식을 회상하였다. 그때 나의 동료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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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황광우는 베스트셀러 <철학콘서트>의 저자이다. 1980년대에는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와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을 집필하여 민주화운동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고교 시절 첫 옥고를 치른 이래 20대에는 학생운동에, 30대에는 노동운동에, 40대에는 진보정당운동에 땀을 흘렸다. 지금은 인문연구원 동고송과 장재성기념사업회를 이끌면서 역사정신과 인문정신을 탐색하고 있다.

작가 황광우
▲  작가 황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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