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3주년 광주학생독립운동에 부쳐<상> 부끄러운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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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주년 광주학생독립운동에 부쳐<상> 부끄러운 광주

@황광우 (사)인문연구원 동고송 상임이사입력 2022.10.31. 19:06

  
황광우 작가 ㈔인문연구원 동고송 상임이사

1929년 광주에서 일어나 전국적으로 확산된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올해로 93주년을 맞이한다. 민족차별교육에서 발단하여 민족독립만세 운동으로 발전한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있기까지 나라의 독립을 위해 희생한 독립운동가들의 헌신적인 활동이 있었다. 광주3·1운동의 주역 김범수 선생을 비롯해 1929년 11월 3일 대시위와 백지동맹의 주역 이기홍 선생,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전국으로 확산시킨 장석천 선생, 광주학생 독립운동의 주역 장재성 선생 등을 세차례에 걸쳐 조명하면서 그 역사적 운동의 과정과 의미, 후세대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를 되짚어본다. <편집자 주>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고 쓴 어느 시인은 이어 고백했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 1992년이었으니 나의 낙향은 삼십 년째 접어든다. ‘의향 광주’의 뿌리를 찾아갈수록 오늘의 광주가 부끄럽기만 하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청춘을 바쳤건만, 광주 사람들은 선배 독립투사의 이름을 모르며 산다. 국가보훈처는 괴이한 논리를 앞세워 독립투사에 대한 서훈을 거부하고 있고, 광주시는 독립투사의 고가 앞에 표지판 하나 세울 줄 모른다. 해마다 망월동을 찾아 수만 명의 사람들이 광주를 찾건만, ‘의향 광주’를 만든 선배 독립투사들에 대해선 무심하다. 잘 알다시피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아 건립된 국가이다. 그렇다면 3·1운동의 주역은 미국독립전쟁을 이끈 건국의 조상(forefathers)에 해당하는 셈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국가보훈처는 건국의 조상에게 침을 뱉고 있다.

김범수 선생을 아시는가? 1919년 경성의전에 재학 중이던 광주의 수재였다. 친구들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제작, 배포한 활동으로 투옥되었다. 3·1운동의 경우 일본 경찰에게 뺨 한 대만 맞아도 서훈을 주는 것이 타지역의 상례이다. 증언자만 있으면 말이다. 그런데 옥고를 치른 법적 문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김범수 선생에겐 서훈을 주지 않는다. 이상하다. 광주 사람이라 홀대하는 것이 아닌가?

김범수 선생은 감옥에서 석방되어 곧바로 경성의전에 복학했다. 경성의전은 오늘의 서울대 의대에 해당한다. 조선총독부 의원에서 수련 과정을 거치고, 바로 고향 광주로 돌아와 개업했다. ‘남선의원’이다. 선생은 병원 치료를 받지 못하는 가난한 광주 사람들에게 무상의 의술을 베풀었다.

그런데 국가보훈처는 조선총독부 의원의 수련의 과정을 친일 행위로 못 박고선 서훈을 거부했다. 무식한 처사였다. “조선총독부 의원은 오늘날의 서울대병원과 같은 기관으로서 경성의전 출신이 의사가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수련 과정”이었다는 서울대 명예교수 황상익의 증언을 듣고서야 국가보훈처는 자신의 무지를 정정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다른 사유를 들어 서훈을 거부하는 것이다. 김범수 선생이 남노당원으로 활동했다는 신문 기사가 있다는 것이다. 속이 터지는 일이었다. 독립유공자를 발굴하여 훈장을 가져다주어야 할 국가보훈처가 독립유공자에게 서훈을 주지 않으려는 꼬투리나 잡고 있으니 말이다. 이상하지 않는가?

김범수 (1899~1951)선생

나는 그렇게 말했다. “좋소. 김범수 선생이 남노당원이 아님을 내가 입증하겠소. 그러면 서훈을 하겠소?” 국가보훈처의 담당 공무원은 내 앞에서 그러리라고 약속을 했다. 국가보훈처가 제시한 근거는 1961년 보도된 신문 기사였다. 당시의 기사에 의하면 박창규 씨가 검찰의 심문과정에서 김범수의 안내로 남노당에 입당했다고 자백했다는 것이다. 애가 타는 일이었다. 국가보훈처는 박 모 씨의 말 한마디를 가지고 선생에게 서훈을 줄 수 없는 증거로 내세우는 것이다. 1961년이면 김범수 선생이 타계한 지 10년 후의 해였다. 그것도 김범수 선생과 아무 친분이 없는 인물의 말이었다. 그것도 검찰의 심문과정에서 나온 말이었다. 도무지 증거로서 채택할 수 없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를 가지고 독립투사를 모멸하는 꼬투리로 사용하고 있으니 국가보훈처의 정신 상태가 이상하지 않는가? 나는 생각했다. “만일 김범수 선생이 대구 출신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모멸을 당하고 있을까?” 나는 박창규 씨의 판결문을 찾아냈다. 60년 전의 판결문을 참으로 힘들게 찾았다.

나의 예측은 정확했다. 판결문은 이렇게 명시했다. “박창규의 진술은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이므로 증거로서 채택하지 않는다.” 대법관 7인 전원 일치 판결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보훈처는 고집을 피우고 있다. 2022년 광복절에도 서훈을 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김범수의 손녀, 김행자 씨는 말했다. “아휴, 징글징글해요. 이제 포기해야 할까 봐요.” 광주가 부끄럽다. 광주에서 살고 있는 내가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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