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표의 『노자의 역설』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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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자는 공동체 대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김용표의 『노자의 역설』을 읽고

“평안하신지요? 코로나로 인해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는 것도 이젠 슬슬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책 조금 보고 글자 몇 자 적다보면 그럭저럭 하루가 지나갑니다.”

제가 김용표 선생으로부터 이 편지를 받은 것은 2020년 7월 16일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저에겐 부러운 직업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교장 선생님을 보면 참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일주일이 멀다 하고, 지산중학교의 교장실을 들렀던 적도 있습니다. 저는 임기를 남겨놓고 홀연히 사표를 쓰는 김용표 선생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직업이 ’백수‘라고 말들 하지만, 그래도 교장은 백수 못지 않게 영예로운 자리가 아닙니까?

“책 조금 보고 글자 몇 자 적다보면 그럭저럭 하루가 지나갑니다.”는 편지의 비밀을 저는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지난 2년 동안 김용표 선생은 『노자의 역설』을 집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 그 좋은 교장직을 사퇴하였던가에 대한 의문도 풀렸습니다. 사직을 하고 아침부터 밤까지 혼신의 열정을 기울여 집필에 매달렸던 거죠.

김용표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축하를 드립니다. 작가의 클라스에 들어오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저는 작가라는 직업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인간의 정신 세계를 만들고 가꾸는 일이 작가의 일 아닙니까?

하루 종일 『도덕경의 역설』을 읽었습니다. 작가 김용표는 서문에서 『도덕경』에 대한 새로운 이론과 관점을 제기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저는 이처럼 진솔하고 소박한 태도가 좋았습니다.

얼마 전의 일입니다. 지난 80년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불온 음반을 전파하였던 민중 가수 오창규 피디가 저에게 그러는 겁니다. “어이, 황 작가, 최진석을 어떻게 생각허요?” 저는 아무 생각없이 다짜고짜 뱉었습니다. “갸, 사기꾼 아뇨?” 그런데 오창규 가수는 놀라운 사실을 고백하였습니다. “아니, 황작가는 무엇을 근거로 그런 말을 하요? 나는 지난 10년 최진석의 신도였어요. 그런데 최근 최진석의 행오를 보니, 지금까지 무얼 보고 최진석을 따라다녔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따, 글 한 줄 보면 그 작가가 사기꾼인지 아닌지 금방 아는 거 아니겠어요?”

저는 1990년대 10년을 『도덕경』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때 우리는 커다란 방황을 하였습니다. 저는 물이 최고라는 상선약수(上善若水)의 글귀에서 얼마나 큰 위안을 얻었는지 모릅니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 가면서 다투지 않는다지요. 공수신퇴(功遂身退), 일을 이루었으면 몸은 물러나는 법이라고 도덕경은 가르칩니다. 그동안 흘린 땀에 대한 보상을 바라기 때문에 배신을 하고, 변절을 하지요. 그 시절 제가 일관된 삶을 살수 있었던 것은 도덕경의 무소유 정신을 익혔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 『도덕경』을 이번에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노자의 역설』은 놀라웠습니다. 제가 아는 김용표는 철학 전공자도 아니고, 한문학 연구자도 아닙니다. 그런 분이 노자와 장자만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공자와 맹자를 포함하여 왕필과 하상공을 자유자재로 거론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부지런한 독서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집필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잘못 언급한 곳이 딱 하나 있었습니다. 자연과학을 언급한 곳입니다. “도가도 비가도”를 풀이하면서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 원리>를 원용한 것은 과욕이었습니다. 전자는 세계의 본질을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것을 말하고, 후자는 물질운동에 있어서 속도와 상태를 동시에 확정할 수 없음을 말하지요.

저는 오랜만에 『노자의 역설』을 읽으면서 김용표의 내면에 잡입하였습니다. 좀체 말을 하지 않는 김용표, 참으로 많은 말을 하더군요. 『도덕경의 역설』을 읽으면서 김용표가 추구하는 가치, 인격의 전형을 알았습니다.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소박한 삶,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김용표에게 도덕의 기본은 타인의 존중입니다. 겸손은 가장 얻기 힘든 미덕이다라는 T.S. 엘리엇의 경구를 좋아하더군요. “이 세상에 당신만 존재한다고 하자. 당신은 존재하는 것인가?”라는 물음은 섬뜩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작가가 김용표라는 인격의 조각상을 다듬어가면서,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점은 “말의 절제”였습니다. 봅시다.

비트겐쉬타인: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침묵해야 한다. (11쪽)

노자: 말이 많으면 자주 궁해진다.(30쪽)

법구경; 지혜로운 자는 칭찬이나 비난에 흔들리지 않는다 (66쪽)

용표거사: 고요는 덕의 시작이다.(131쪽)

어떤 이: 못난 놈의 못난 말도 묵묵히 들어줄 수 있어야 어른이다. (236쪽)

몰리노스: 세 가지를 침묵하라. 말에서 욕망에서 생각에서 침묵하라.”(249쪽)

일타 스님;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250쪽)

막스 피카르트: 말은 인간의 본질이고, 침묵은 신의 본질이다. (250쪽)

김윤나 : 당신의 말은 당신을 닮았다.(260쪽)

노자: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모른다.(266쪽)

디오게네스: 두 개의 귀와 하나의 혀가 있는 것은 많이 듣고 적게 말하라는 뜻이다.(310쪽)

공자: 하늘은 말을 하지 않는다.(328쪽)

저는 하루 종일 김용표와 수다를 나누었습니다. “그쵸, 정말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여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 이가 있죠.” 그런데 저는 김용표의 침묵 찬양론을 동의하기 힘들었습니다. “뭐라구요? 말은 인간의 본질이고, 침묵은 신의 본질이라구요?” 그렇다면 저는 침묵일랑 신에게 맡기고, 죽는 날까지 말을 하는 인간으로 살렵니다.

“하늘은 말을 하지 않는다.”고 공자가 자공에게 말을 한 것은 자공이 하도 말을 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야, 주둥아리 좀 그만 벌이자.” 이런 뜻이었습니다. 김용표 작가님, 인간에게서 말을 뺏으면, 무엇이 남나요? “당신의 말은 당신을 닮았다.”는데, “말은 당신의 인격이다.”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김용표 선생님!

“성공한 자는 공동체 대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255쪽)는 구절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라고 말은 많이 하지만 도대체 우리 주위에 공동체에 대해 책임감을 갖는 이가 몇이나 있는가요? 혹시 자신은 성공한 자가 아니라고 자책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저는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가진 이라면 ’할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 책에서 가장 가슴에 와 닿았던 구절 하나를 뽑아 보겠습니다. ”북진통일을 앞장서 주장했던 이가 가장 먼저 도망갔고, 북한박멸을 외치던 이가 가장 부패했다.“(224쪽)

책을 쓰셨으니, 이제 우리 밤새도록 수다를 떨게요. “죽음을 기억하라. 메멘토 모리(Memento mori)”(239쪽) 선생님 덕에 라틴어 ‘메멘토 모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말을 기억하라. 메멘토 딕툼(Memento dictum)”

2022년 9월 29일 출간례 하루 전에 황광우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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