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어수선하지만, 되새겨볼 영화 ‘패러렐 마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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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어수선하지만, 되새겨볼 영화 <패러렐 마더스>

제목도 낯선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에스파냐가 자랑하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신작 <패러렐 마더스 Parallel Mothers>가 주인공이다. 패러렐은 평행선, 나란하다 혹은 비슷하다는 뜻이다. 에스파냐 원제는 <Madres paralelas>이며, 따라서 영화제목은 ‘비슷한 어머니들’ 정도가 될 것 같다. 같은 운명을 가진 어머니들이란 얘기다.

알모도바르 감독은 우리 관객에게도 상당히 친근하다. 그의 영화 가운데 <내 어머니의 모든 것> (2000), <그녀에게> (2003), <귀향> (2006), <페인 앤 글로리> (2020) 등이 한국 관객들이 주목한 작품이다. 알모도바르는 여성의 심리묘사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인물이고, 페넬로페 크루즈와 여덟 번 같이 작업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패러렐 마더스>는 여러 가지가 혼재돼 있기에 다소 혼란스럽게 다가온다. 하나의 주제나 사건 혹은 상황에 집중하는 기법 대신 감독의 구미에 맞는 질료를 비빔밥처럼 뒤섞어 놓은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하지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도 무엇인가 일관된 흐름을 유지하는 강력한 목소리와 주장이 실려 있다. 그것이 감독의 목소리다. 

닮았지만 다른 여성들

야니스는 불혹에 이른 사진작가다. 정상급 기량을 가진 그녀는 동시에 에스파냐의 쓰라린 과거사에 남다른 관심을 지니고 있다. 그 배후에는 어릴 적에 사별한 엄마와 실종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한다. 더욱이 그녀의 할아버지와 지인들이 어느 땐가 한꺼번에 사라지고 암매장당한 아픈 상처가 깊은 상흔으로 남아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야니스에게 다가오는 법의학 전문가 아르투로는 유부남이지만, 야니스의 매력을 이겨내지 못한다. 그렇게 그들은 하나가 되고, 예기치 못하게 야니스는 임신에 이른다. 뜻밖의 임신에 아르투로는 당황하여 ‘낙태’를 권하지만, 야니스는 요지부동이다. 아이를 낳아 길러보려는 그녀의 의지는 아르투로의 조심스러운 태도를 힘껏 밀어버린다.    

같은 시기에 17살 미성년자 아나가 산부인과를 찾는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아이를 가진 그녀는 후회의 빛이 역력하다. 아이 아버지가 누구인지조차 확인하지 못하는 철부지 아나. 술에 취해 남친과 관계했다가, 그 장면을 동급생들이 휴대전화로 촬영하여 유포하겠다고 협박한다. 어쩔 도리 없이 그들과도 동침해야 했던 성범죄 희생자 아나.

아나의 충격적인 미성년 임신은 우리나라 성범죄자들을 연상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문명의 이기(利器)가 동반하는 악질적인 범죄행각에 동과 서가 따로 없다. 야니스처럼 아나 역시 미혼모의 길을 걸어야 한다. 아나의 어머니는 늦깎이 배우로 자신의 경력을 위해 이혼을 감행하고, 딸의 고통과 외로움에 눈감아 버린다. 변해버린 세상의 풍속도!

야니스와 아나의 인연

그들은 같은 병원에서 같은 날에 똑같이 딸을 순산한다. 그들의 땀과 눈물이 범벅된 얼굴이 갓 태어난 신생아들과 겹쳐진다. 출산의 엄청난 고통과 찬란하게 터져 나오는 환희가 아름답게 교차하는 장면. 병원에서 서로를 위로하고 고무하던 두 사람은 각자의 생활 공간으로 회귀한다. 하지만 그들의 질긴 인연은 그들을 재회로 인도한다. 

어느 날 카페에서 마주치는 두 사람. 아나는 종업원으로, 야니스는 손님으로 마주 앉는다. 서로 안부를 묻다가 야니스는 문득 알게 된다. 아나의 아이가 유아 돌연사로 세상을 버렸다는 아픈 사실을! 그러다가 출산 후 찾아온 아르투로의 말을 떠올린다. 

“아이가 전혀 나를 안 닮았어!”

자기가 아이 아버지가 아님을 확신하는 아르투로 때문에 야니스는 친자확인 유전자 검사를 하기에 이른다. 아, 그 결과는 얼마나 참혹한 것인가? 100% 친자가 아니라는 통지서가 날아온다. 지금까지 애지중지 길러온 세실리아가 자신의 딸이 아니라는 가혹한 통보. 야니스는 아나와 함께 살 결심으로 그녀의 유전자 검체를 연구소로 보낸다.

함께 살면서 사랑하는 그들의 관계가 적잖게 어수선하게 다가온다. 야니스에게 날아온 두 번째 통지서는 그녀를 지옥의 나락으로 인도한다. 세실리아가 아나의 딸일 가능성은 99.99%였다. 영화는 이 지점부터 방향을 틀어 전혀 새로운 경지로 질주한다. 야니스가 아나에게 이런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것인지, 여부의 문제로 전화(轉化)한다. 

당신이라면 진실을 밝힐 수 있을까?

사랑하는 여인이자 어린 여성이며 세실리아의 친모인 아나에게 야니스는 정직하게 실토할 것인가?! 그렇다면 그들의 애정 관계는 어찌 될 것이며, 세실리아 없는 야니스의 삶은 어떤 향방을 가질 것인가? <패러렐 마더스>는 여기서 진실 혹은 정직이라는 주제를 다루기 시작한다. 사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아나는 물론 세실리아까지도 잃어버릴 것이지만, 야니스는 사실을 곧이곧대로 고백한다. 느닷없이 닥쳐온, 말도 표현할 수 없는 상실을 감당하려는 야니스의 절망적인 용기가 화면을 채운다. 이런 야니스에게 희망을 주는 인물은 아르투로다. 야니스에게 거절당하면서도 그는 용기를 내서 아내에게 야니스의 존재를 알리고, 별거에 돌입한다. 

어디 이뿐인가! 에스파냐 정부가 과거사를 청산하고 진실을 밝히는 일에 나선 것이다. 2007년 에스파냐는 <역사 기억법>을 통과시킴으로써 프랑코 쿠데타와 독재 시절인 1936년부터 1975년까지 살해되어 매장당한 10만 이상의 희생자들을 21세기로 불러들인다. 아르투로는 법의학자로서 역사를 소환하고 기억하는 사업의 첨병으로 활약한다.  

그래서일까. 아나와 세실리아를 잃어버린 야니스에게 아르투로가 낭보를 전한다. 그녀의 할아버지와 지인들이 암매장당한 곳을 전격적으로 발굴하기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알려온 것이다. 그녀의 고향마을에서 확대되는 여성들의 수난사와 조용히 망각(忘却)된 지난날의 이야기들이 하나둘씩 펼쳐진다. 그리하여 마침내 영화는 대단원으로 질주한다.

역사와 정직

영화를 보면서 혼란스러웠던 까닭은 야니스와 아나의 관계도 그렇지만, 오래전에 있은 참혹한 역사적 사건과 기억의 현재화 가능성 때문이다. 어떻게 저들을 엮을 것인지가 궁금했던 터였다. 알모도바르는 그것을 정직이라는 어휘 하나로 묶어낸다. 감독은 지극히 현대적이고 용감한 폭로자이자 작가인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말을 인용한다. 

“침묵하는 역사는 없다. 역사의 진실을 아무리 없애고, 왜곡하고, 

부정하려고 해도 역사는 결단코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는, 침묵하지 않는 역사는 개인과 국가에 모두 적용된다. 야니스가 아나에게, 아르투로가 아내에게 정직하게 진실을 밝힌 것처럼 에스파냐도 뼈아픈 진실을 선택한 것이다. 정직한 개인사가 모여 사회사가 되고, 그것들이 다시 묶여 사회사와 국가사가 되는 것이다. 정직한 개인이 사회와 국가의 구성원이 되는 이치와 같다.

지난 2005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발족한 우리나라가 자랑스럽게 다가왔다. 후속 정권의 야만성 때문에 지속성을 상실했지만, 위원회는 2기를 가동하고 있다.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어떤 일이 있든, 피로 얼룩진 한국 현대사의 진실을 낱낱이 밝혀주기를 기대한다. 그것이야말로 먼저 가신 분들을 기리는 유일한 방책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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