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과 대결, 혐오를 부르는 더러운 언어

‘설거지론’과 ‘퐁퐁남’에 깔린 은유: [여성은 음식], [결혼생활은 설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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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과 대결, 혐오를 부르는 더러운 언어
‘설거지론’과 ‘퐁퐁남’에 깔린 은유: [여성은 음식], [결혼생활은 설거지]

나익주 (한겨레말글연구소)

‘일그러진 청년서사 ‘설거지론’…그들은 왜 여성들을 노리나.‘ 얼마 전 우연히 보았던 한 신문의 기사 제목이다. ’무슨 뜻이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설거지론’에 눈길이 갔다. 직감적으로 ‘설거지’에 ‘이론’이나 ‘담론’의 ‘론(論)’이 달라붙은 합성어임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부제로부터 ‘설거지론’의 의미가 남성과 여성 사이의 무언가 불편한 관계를 지칭할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사를 다 읽기 전까지는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다. 이 신조어는 지난 10월 중순 쯤 온라인 남성 중심 커뮤니티(예: 에펨코리아)를 중심으로 새롭게 등장하여 이제는 주요 언론에서 특집 기사로 다룰 만큼 널리 퍼져 있었다. 이 기사 이외에도 물론 제목에 아래 표현과 같이 ‘설거지론’이 들어있는 다른 기사들을 몇 개 더 찾아서 읽었다.

  • 두려운 남자들, 설거지론의 역설: 관계 맺기에 실패한 남성들의 프레임
  • 20대 남성은 왜 ‘설거지론‘에 열광했나
  • 설거지론에 드리운 혐오의 그림자
  • 설거지론’의 대두, 사랑이 소멸된 시대의 자화상
  • “나도 퐁퐁남이었다”…남초 강타한 ‘설거지론’이 뭐기에

이 기사들을 다 읽고서 ‘설거지론’이 “연애 경험이 없거나 적지만 경제적 역량이 있는 남성이 결혼 전 여러 다른 남성과의 성관계 경험이 있는 여성과 결혼해 그 여성을 떠받들고 산다.”는 주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주 드물게 ‘설거지론’이 우리 사회의 실재를 반영한다고 긍정하는 내용도 있었지만 이러한 기사들은 대부분 ‘설거지론’이 ‘결혼생활’을 ‘남이 먹었던 음식 그릇을 내가 씻는 설거지’에 빗댄다면서 여성 혐오성 표현이라 비판하고 있었다.

‘설거지론’에서 드러나는 우리들의 천박한 인식:
[여성은 음식] 은유

이 은유에서 나오는 언어 표현은 무수히 많다. 대학시절 지나가던 여학생을 보고 ’감칠맛나게 생겼네‘ ’먹음직스럽네’ ‘저런 애랑 사귀면 훗국이나 마시는 거야‘라고 낄낄대던 한 선배의 발언이나, 몇 해 전 한국 최고의 명문대 남학생들이 단톡방에서 주고받았던 ‘콩 한쪽(비유적 여성)도 나눠 먹어야지’ ‘존나 포도 따듯이 툭툭 따 먹으삼’ ‘먹버(여성을 먹고 버린다)’ ‘봉씌먹(얼굴에 봉지를 씌우고 먹는다)’ ‘아 진짜 새내기는 따먹어야 하는데” “○○(여학생 이름)은 다 맛볼라 하네” “○○은 먹혔잖아” 등의 발언은 모두 은유적 사고 [여성은 음식]에서 언어적으로 발현한 사례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러한 표현을 일상의 언어생활에서 드러내 놓고 당당하게 사용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표현을 공적인 자리에서 사용하거나 일상의 사적인 대화에서리도 빈번하게 사용한다면, 어느 누구든지 교양 없고 천박하다고 비판을 받는다. 언젠가 ‘변사또가 춘향이를 따먹었다.’라고 말했던 정치인과 여성 아이돌 가수에게 ‘요즘은 횟집에서도 자연산만 찾는다고 하는데 성형을 몇 번이나’라고 말했던 정치인이 심한 비판을 받았던 이유도 바로 이 은유의 언어적 발현 사례를 공개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설거지론’: [여성은 음식] 은유의 품격있는 발현인가?

행여 ‘설거지론’이 ‘여성’을 은유적으로 묘사할 때 ‘따먹다’ ‘감칠맛나다’ ‘맛보다’ ‘마시다’ 등의 낱말을 사용한 표현에 비해 덜 원색적이거나 더 교양있게(?) 들린다면, 이것은 ‘론(論)’자 덕택이지 결코 [여성은 음식]이라는 은유적 사고의 발현인 ‘설거지’ 덕택이 아니다. 나에게는 실제로 ‘설거지론’이라는 표현은 그저 교양없고 원색적인 표현으로 들릴 뿐이다.

‘설거지론’과의 긴밀한 연결 속에서 등장한 ‘퐁퐁남’이나 ‘퐁퐁단’도 역시 [여성은 음식] 은유와 [결혼 생활은 설거지] 은유의 결합으로부터 나오며, 혐오와 배제, 갈등을 조장하는 나쁜 언어이다. 글자 그대로는 ‘퐁퐁남’이 식기 세제를 대표하는 ’퐁퐁‘을 사용해 설거지를 하는 남자’를 지칭하겠지만, 은유적으로는 “자신에 대한 애정 없이 자신의 경제력만 보고 자신과 결혼한 부인을 섬기며 사는 바보”라는 비하의 의미를 담고 있다. 더 나아가 ‘퐁퐁단’은 기혼남 전체를 비하하는 은유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설거지론’과 ‘퐁퐁남’ ‘퐁퐁단’은 모두 [여성은 음식] 은유와 [결혼생활은 설거지] 은유의 결합으로부터 나온다. (이 두 은유의 구체적인 ‘하위대응’은 아래 표를 참조하시오.)

근원영역(개념):

[설거지]

목표영역(개념):

[결혼생활]

신선한 음식 여성(혼전 성관계 경험 없음)
남은 음식 여성(혼전 성관계 경험 있음)
식사 성관계
신선한 음식을

먹은 사람

혼전 성관계 상대자

 

남은 음식을

먹는 사람

현재의 남편

 

음식 찌꺼기 아내의 다양한 욕구
설거지 아내를 부양하는 활동
씻어야 할 그릇 아내의 마음
세제(예: 퐁퐁) 남편의 부외 노동
[결혼생활은 설거지] 은유의 구체적 하위대응

 

갈등과 배제, 혐오를 부르는 더러운 표현 ‘설거지론’과 ‘퐁퐁단’이 아주 단시간에 급속하게 확산되는 현상을 보면서, 마음이 분노와 부끄러움, 안타까움, 허망함으로 뒤범벅되어 복잡한 상태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여러 의문이 일었다.

[여성은 음식]이라는 허접하기 그지없는 은유적 인식을 반영하는 언어 표현들이 도대체 어떻게 하나의 ‘이론’이나 ‘담론’이라는 이름을 달고서 이렇게 빠르고 퍼져나가 소모적인 대결을 부를 수 있을까? 엄청난(?)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해 [여성은 음식] 은유로부터 언어적 표현 ‘설거지론’과 ‘퐁퐁단’을 맨 처음 끌어낸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의도에서 그렇게 했을까? 혐오를 담고 있는 이러한 표현이 갈등과 대결을 초래할 것임을 그들은 정말 몰랐을까?

 

 

 

낮에는 영어 교사, 밤에는 언어학자로 살아온 두 얼굴의 사나이. ‘동고송’의 전신인 '고전을 공부하는 교사모임'의 창립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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