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학생운동의 ‘정신적 지주’ 송홍 선생 마침내 서훈

지난해 심사비대상 분류…반려 1년만의 성과. 장재성기념사업회, 포기 않고 재신청 끝 ‘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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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고송은 “인문활동”과 더불어 “의향활동”을 힘차게 펼치고 있습니다.
동고송 의향활동의 하나로 이번 3•1절에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이자 참스승) 송홍 선생께서 대통령표창 서훈을 수여받습니다.

그간 송홍선생 서훈에 대해 보훈처에서는 심사조차 거부하며 미서훈자로 분류해왔습니다. 서훈이 수여되기까지 숱한 힘든 과정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가슴벅찹니다. 함께 기쁨을 나눕니다.


 

CBS매거진(월-금:오후5시5분-6시) 3월 1일(화) 17:35
진행: 송원대학교 선은애 교수
시사보도프로그램 담 당: 조성우PD

CBS매거진 2부 시작합니다.
이번 시간에는 광주전남 지역의 화제의 인물과 만나보는 <사람 이야기>를 함께 하는데요.
오늘은 삼일절을 기념해 항일운동에 앞장섰던 송홍 선생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송홍 선생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로 3.1절 기념식에서 독립유공자 대통령 표창으로 서훈을 받았는데요.자세한 이야기를 장재성 기념 사업회 황광우 운영위원장과 나눠봅니다.
위원장님은 안녕하세요

1. 송홍 선생의 삶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광주학생독립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봐야겠죠, 광주학생독립운동은 대한민국의 항일운동사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일제강점기 우리 선배들이 추진한 독립운동은 혁명운동이었습니다. 이승만처럼 강대국에게 독립을 청원하는 운동이 아니라면, 우리의 독립운동은 일본제국주의와 싸워 해방을 쟁취해야 하는 혁명운동이었습니다.
1919년 3.1운동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혁명운동의 서막이었구요.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들의 대시위는 혁명운동의 본격적 전개를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다들 알다시피 광주학생들의 대시위는 전국으로 만주로 해외로까지 번져가지 않았습니까?

2.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요 인물들에 대한 소개도 간략하게 해주시죠.

두 분을 소개합니다. 장석천 선생과 장재성 선생입니다. 장석천은 광주 시위를 서울로 전파한 분입니다. 그 분은 유인물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청년 학생들이여, 광주를 사수하라. 반항과 유혈이 있는 곳에 결정적 승리가 있다. 궐기하라. 이 다음은 우리들의 것이 아니냐?”
장석천 선생은 일경의 혹독한 고문으로 시체가 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나와 바로 순국하였습니다.

장재성 선생은 광주학생독립운동으로 가장 긴 옥고를 치른 분입니다. 4년의 옥고를 치렀습니다. 광주 무등산 중머릿재에서 후배들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빼앗긴 나라에서 노예로 살 수는 없지 않느냐? 자유인으로 사느냐, 노예로 사는냐는 우리가 결정할 일이다.”
1950년 7월 5일 광주형무소 수감 중, 양산동 인근 야산에서 처형되었습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이 아직까지 독립유공자로 서훈받지 못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 너무 가슴 아픕니다.

3. 그렇다면 송홍 선생께서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로 상징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1929년 대시위로 광주고보 500명 학생들 중, 투옥되고 퇴학당한 학생이 자그만치 250명이 넘었습니다. 광주고보 학생들에게 민족혼을 일깨우신 분이 송홍 선생이었습니다.

4. 송홍 선생께서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신 건지도 전해주시죠.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대한문 앞에서 상소투쟁을 하다가 일본헌병에 붙들려 구금되었구요, 망해가는 나라의 구국의 방략을 찾기 위해 중국을 방문합니다. 서양의 과학기술문명을 도입하여 부국강병을 이루어야 한다는 신념을 세우고, 친구들은 모두들 항일투쟁을 벌일 때, 서석초등학교 교단에 섭니다. 이후 광주고보 교단에서 한문을 가르치면서 민족혼을 일깨웠구요, 1930년 일제의 야수적 탄압에 항의하는 뜻으로 교직을 사퇴하였습니다.

5. 그런데 송홍 선생은 그동안 여러차례 서훈 신청에도 불구하고 좌절을 겪었습니다. 이유는 무엇인가요?

국가보훈처는 일제 총독부의 문서를 근거로 독립유공자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송홍 선생처럼 독립운동을 위해 엄청난 역할을 하신 분, 예컨대 흥학관을 세워 청년들에게 독립운동의 공간을 제공한 최상현 같은 분들이 유공자 심사 과정에서 심사비대상으로 분류되어왔던 것입니다.

6. 황광우 운영위원장이 송홍 선생의 서훈 확정에 큰 역할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어떻게 준비하셨나요?

문재인 대통령께서 광주정신 이행을 공약으로 내걸었죠. 이낙연 씨가 국무총리를 하는 마당에서 광주학생독립운동 유공자들의 서훈을 신청하면 모두 포상될 줄 알았죠. 2019년 73인의 유공자에 대해 포상을 신청했습니다만, 45인이 심사과정에서 탈락했어요.
나라의 독립을 위해 청춘을 바친 분들이잖아요? 왜 대한민국 정부는 독립운동가들을 홀대하는가,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세상에 김범수 선생, 이기홍 선생 이런 분들이 친일분자라는 거요? 독립운동가를 두 번 죽이는 짓을 국가보훈처가 하고 있더라구요.

7. 뒤늦게나마 서훈을 받게 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위원장님은 이번 서훈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보시나요?

75년만에 서훈이 되었습니다. 만시지탄입니다. 하루 빨리 모든 독립운동가 유공자들, 광주의 300명이 독립운동의 영예를 인정받길 바랍니다.

8. 여전히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지만 제대로된 역사적 평가를 받지 못하는 분들도 많이 계시죠,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시죠.

허허. 3.1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유관순과 상해임시정부의 김구를 삭제하고 역사 교과서를 쓸 수 있을까요? 그런데 지금 우리 교과서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이 누구인가, 아이들에게 가르치지 않고 있어요. 독립운동의 사건은 있었는데, 독립운동의 사람이 없는 거예요. 유령들이 이끌었을까요? 정부는 아직도 독립의 주역들에게 포상을 하지 않고 있잖아요.
300명이 넘은 분들이 아직도 심사비대상으로 처리되고 있어요. 광주출신 국회의원들, 뭣 하는지 모르겠어요.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들이 역사 교과서에 실려야만 광주 정신이 계승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무등일보: http://honam.co.kr/detail/c3QycN/663805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로 상징되는 송홍 선생이 정부로부터 드디어 서훈을 받게 됐다. 송홍 선생은 그 동안 여러차례 신청에도 불구하고 심사비대상으로 분류돼 심사 조차 받지 못하고 대상자에서 제외되는 등 좌절을 겪었지만 이번 서훈 확정으로 한을 풀 수 있게 됐다.

25일 (사)장재성기념사업회(이하 사업회)에 따르면 송홍 선생은 다음달 1일 거행되는 3·1절 기념식에서 독립유공자 대통령 표창으로 서훈을 받는다.

광주학생독립운동 당시 장재성을 필두로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왕재일, 박준채, 황남옥 등 광주고보의 학생들이 모두 송홍 선생의 제자들이다. 왕재일과 장재성은 광주고보 3학년 시절부터 5학년까지 송홍 선생에게 수업을 받았고, 최창규와 정우채, 박준채와 황남옥 등 대다수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들은 광주고보 1학년 시절부터 5학년까지 선생에게 독립정신을 고취 받았다. 이처럼 송홍 선생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였다.

송홍 선생은 지난 1930년 많은 제자들이 광주학생독립운동으로 투옥되자 장기간 수업을 거부하면서 일제의 부당한 조치에 대한 항의 끝에 사직서까지 제출하기도 했다.

당시 교단을 떠나 독서와 집필에 전념하던 송홍 선생은 1945년 광복을 맞고 칠순의 노구를 이끌고 다시 교단에 서서 제자들에게 충효 정신과 미풍양속을 역설했다. 이후 1949년 6월18일 광주 자택에서 향년 78세로 한 맺힌 일생을 마감했다.

이처럼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 송훈 선생의 서훈 확정으로 독립운동사의 올바른 자리매김에도 큰 기폭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업회는 이번 서훈에 앞선 지난 2020년 5월 광주지방보훈청장에게 광주학생독립운동 관련한 73명에 대한 서훈 요청서를 전달해 28명이 서훈받은 바 있다.

이때 송훈 선생 또한 요청 대상자에 포함해 신청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심사비대상으로 분류돼 심사 조차 받지 못하고 반려되기도 했다.

이번 서훈 확정은 황광우 사업회 운영위원장의 오랜 시간에 걸친 관련 사료 발굴과 조사, 각고의 노력으로 이뤄낸 결실로 평가된다.

황광우 운영위원장은 “송훈 선생의 경우 여러번 심사비대상으로 심사조차 거부 당했던 일을 생각하면 이번 서훈 확정은 가슴 뜨거운 일”이라며 “이번 서훈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올바른 역사적 계승을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광주일고 동문 등의 뜻을 모아 지난 1966년 11월2일 광주일고 교정에 송훈 선생의 공적을 기리는 흉상을 건립됐다. 광주일고 교정에 세워진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과 송홍 선생의 흉상 앞에는 현재까지 참배객이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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