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애(Amor fati)’와 회복 탄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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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애(Amor fati)’와 회복 탄력성

언제부턴가 ‘회복 탄력성’이라는 용어가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회복 탄력성의 사전적인 의미는 “질병과 변화 혹은 불운에서 신속하게 회복하는 능력”이다. 회복 탄력성은 사람마다 편차가 있다. 공을 튀기면 공의 크기와 탄성에 따라 되 튀는 정도가 다른 것과 똑같은 이치다. 어떤 이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나락까지 떨어졌다가도 처음보다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하지만 나락에서 영영 헤어나오지 못하고 오래도록 고통받는 사람도 있다.

이런 차이가 개인의 능력이나 세계관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아니면 21세기 한국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양극화와 불평등에서 발원하는 것인지는 논의가 필요하다. 오늘날 국가가 담당하는 구실은 근대 이전 사회의 국가나 가문, 지역과 집안의 구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차대하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사회적 성취와 실패, 행운과 불운, 희망과 절망의 원인 제공자로 국가를 가장 먼저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국가의 얼굴과 기분과 마음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다. 회복 탄력성을 말할 때, 국가보다 개인을 먼저 고려해야 하는 이유는 거기 있다. 정말 절실한 상황에서 국가는 자주 알리바이를 주장한다. 국가가 돌봐야 할 대상이 너무 많다는 이유를 댄다. 맞는 말이다. 중세 기독교의 신이 전지전능했던 것처럼 현대국가 역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느닷없이 닥치는 불행과 절망 같은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 회복 탄력성을 스스로 길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밥과 자유

간단한 명제가 있다. “사람은 밥만으로 살 수 없다.” 한국의 이천만 가구 가운데 37만 가구가 온전한 주거 형태가 아니며, 8만 가구가 여전히 연탄에 의지해 살아간다. 월세방, 옥탑방, 지하방과 반지하방, 비닐하우스에 이르기까지 거친 거주상황은 변함이 없다. 연탄가스의 추억을 여전히 경험해야 하는 사람도 적잖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절대빈곤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그래서 밥 이외의 무엇인가가 일상에 필수적인 요건이 된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나는 그것을 ‘자유’라고 부른다. 배부르고 살만한 세상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첫 번째 가치가 자유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스스로(自) 말미암다(由)’는 뜻을 가진 단어 자유는 문자 그대로 “나의 선택에 대한 무한책임을 내가 감당하는 것”이다. 나의 언어와 사유와 행동의 시발점부터 종착점까지 모든 것을 나의 책임으로 두는 것, 그것이 자유다. 성공과 실패, 환희와 좌절, 만족과 불만에 이르는 온갖 결과의 최종 결재자로 자신을 염두에 두는 행위가 자유다.

자유에는 고도의 사회적-도덕적 책임이 뒤따른다. 선택했다면 그것을 끝까지 감당하겠다는 굳건한 의지와 실천이 동행해야 한다. 하지만 잠시 돌아보면 자유를 주장하되, 책임을 지지 않는 허다한 행태가 우리 사회 곳곳에 출몰한다. 탐욕과 분노가 차고 넘치다 보니 어리석은 행동이 불러오는 각종 범죄와 부조리, 불의가 차고 넘친다. 특별한 본보기가 필요 없을 만큼 한국 사회는 크고 작은 욕망의 충돌 때문에 오늘도 파열음과 파찰음이 어지럽게 춤춘다.

누구의 죄인가?!

하루가 멀다 않고 아파트 가격이 올랐다. 저렴한 한국 언론은 사실 보도에 충실한 척하면서 무능한 정부를 비난하고 깎아내리기에 전념한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겨났는지, 근본적인 동인(動因)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언론은 찾기 어렵다. 과도한 토지 보상을 바라는 지주, 물불 가리지 않고 이익을 탐하는 시행사와 거대 시공사, 그리고 넉넉한 대출과 이자 회수로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은행. 팔짱 끼고서 자리보전하는 금융 감독원과 국토부, 지자체.

결국 최악의 상황에 있는 당사자는 아파트를 원하는 실소유자, 즉 우리나라 국민이다. 지주와 시행사, 시공사, 은행, 국가기관들이 담합(談合)하여 온 국민을 ‘봉’으로 만들어 고혈을 짜내는 구조가 50년 넘도록 이어지고 있다. 이런 까닭에 이제 막 삶을 시작하려는 20-30대 청춘들의 절망과 비애가 하늘을 찌른다. 아무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왜 결혼 안 해, 애는 왜 안 낳아?” 같은 비난만 퍼붓기 일쑤다. 이런 책임추궁은 그야말로 무지와 무책임의 극치다.

젊은이들이 행복하고 평안하게 일상을 영위하도록 인도하는 제도를 만들고, 그것을 충실하게 실현하는 것이 당면과제 아닐까?! 지금 이 나라 사회-정치-경제 구조는 중증(重症) 질환에 신음하고 있다. 20:80이 아니라, 1:99로 전환해가면서 주인과 노예의 봉건제 사회로 빠르게 회귀하고 있다. “산이 내게로 오지 않으면, 내가 산으로 가겠다”는 마호메트의 명언이 절실한 시점이다. 국가가 침묵한다면, 자각한 다수가 졸고 있는 언론과 국가를 작동시켜야 한다.

‘운명애’와 회복 탄력성

삶이 호락호락하지 않을 때 우리는 돌아봐야 한다. 지나간 시기의 선각자들이 남겨준 지적-정신적 유산을 들여다봐야 한다. 이런 점에서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는 좋은 본보기다. 니체는 약관(弱冠) 25살 나이에 바젤 대학교 고전 문헌학 교수가 된다. 하지만 불과 10년 후 그는 극심한 편두통에 시달리면서 교수직을 사임한다. 10년 동안 받은 봉급에서 나오는 연금이 그의 일평생 생활비가 된다. 그런 까닭에 니체는 생의 마지막까지 가난에 시달린다.

로마에서 만난 희대의 매혹적인 여인 루 살로메에게 청혼하지만, 그녀는 차갑게 거절한다. 니체의 사유와 인식을 엮은 철학 서적은 누구 하나 출판하지 않는다. 궁핍한 살림에서 자비출판을 감행해야 했던 인간 니체. 1889년부터 그는 정신질환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5)에 등장하는 초인(Uebermensch)은 필시 그 자신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닐까?! 가난과 병마와 거절과 냉담한 세상에 굴하지 않는 불멸의 인간상을 구현한 니체.

<즐거운 지식>에 제시된 ‘운명애’는 니체 사유의 정수(精髓)다. 가혹한 운명이 닥쳐와도 그것을 수용하고, 극복하는 강력한 개인의 초상을 구현한 니체. 그의 파란만장한 일생과 궁극적인 승리는 삶을 대하는 긍정과 낙관, 굴복하지 않는 위대한 인간의 전형이다. 회복 탄력성은 느닷없이 생겨나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우리가 부단히 연마하고 길러나가야 할 생의 동반자다. 독자 여러분의 강인한 회복 탄력성과 생의 무한긍정을 기원하며 글을 맺는다.

<달서문화 만개>, 2021년 제14호 22-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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