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후보의 사과가 ‘억지 사과’인 언어학적 이유

'사과'의 4가지 적정조건 다 어겨. 국정최고책임자의 기본자질 갖췄는지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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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김건희 씨의 거짓과 과장 경력 논란이 거의 사실로 드러나면서 비판 여론이 일파만파로 퍼지자 윤석열 국민의 힘 대선 후보는 마침내 엊그제 대국민 사과를 했다. 다음은 언론에 보도된 윤 후보의 사과문 전문이다.

“제 아내와 관련된 논란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하다.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경력 기재를 정확하게 하지 않고 논란을 야기하게 된 것, 그 자체만으로도 제가 강조해온 공정과 상식에 맞지 않는 것임을 분명히 말씀드린다. 국민께서 저에게 기대하셨던 바 결코 잊지 않겠다. 과거 제가 가졌던 일관된 원칙과 잣대, 그것은 저와 제 가족, 제 주변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이 되어야 한다. 아내와 관련된 국민의 비판을 겸허히 달게 받겠다. 더 낮은 자세로 국민께 다가가겠다. 죄송하다.”

윤석열 후보의 사과 직후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는 윤 후보의 사과를 두고 ‘억지 사과’라며 혹평했다. SNS 공간에서도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전혀 사과의 진정성을 느낄 수 없으며 오히려 오만한 태도만 느껴진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왜 이런 혹독하고 싸늘한 반응이 나오게 된 것일까?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17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배우자 김건희 각종 논란에 사과한 뒤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사과’가 적절했는지 의심하는 이유 

‘사과’는 언어학 분야에서 화행(speech act) 현상으로 이해하고 분석한다. ‘화행’이란 말로써 특정 행위(사과, 거절, 약속, 경고 등)를 하는 수행문 발화를 뜻한다. 오스틴(Austin)이라는 학자는 수행문 발화가 적절(felicitous)하기 위해서는 크게 4가지 적정 조건, 즉 1)명제내용조건(content condition), 2)준비조건(preparatory condition), 3)성실조건(sincerity condition), 4)본질조건(essential condition)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결국 사과 행위가 적절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과의 내용이 충실해야 하고, 사과의 맥락적 상황이 명확하고, 화자가 사과할 자격이 충분해야 하며, 화자가 마음속으로 진정한 사과의 마음을 갖추어야 하며, 후속 화행과 행동이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이 이론적 배경을 기반으로 윤석열 후보의 사과 발언을 분석해 보자.

첫째, 윤석열 후보의 사과는 그 내용이 충실하지 못하다. 사과의 전제는 잘못의 인정이다. 구체적으로 누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를 적시하고 인정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제 아내와 관련된 논란‘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을 했는데 그런 논란 자체가 일어나기까지 자기와 아내가 무슨 잘못을 했고 책임질 부분이 무엇인지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없다. 사과를 하게 된 맥락적 구체성이 없다. 또한 사과문 어느 곳에서도 아내의 잘못을 확실히 인정한 표현을 찾아볼 수 없다. 연속된 발화에서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경력 기재를 정확하게 하지 않고 논란을 야기하게 된 것‘이라는 표현에서는 단순히 부주의로 정확히 쓰지 못한 것이 논란을 야기한 듯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를 읽게 된다.

특히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같은 표현의 삽입은 사과의 진정성을 희석하는 부정적인 인식을 준다. 마치 이 일을 비판하고 성토하는 많은 이유를 인정하지 않으며 따지며 반박하고 싶지만 그냥 무시하고 사과하라니까 할 수 없이 한다는 인상을 준다.

사실 윤석열 후보는 이렇게 불필요한 어구를 삽입해서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지난달 윤석열 후보는 ‘전두환 옹호 발언’에 대해 후회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후회가 문제가 아니다”면서 “발언이 잘못됐거나, 발언으로 상처를 줬다면 거기에 대해 질책을 받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답했었다. 이 발언에서 ‘-다면’ 절은 소위 감쇠 조건절(attenuating conditionals)의 기능을 한다. 어떤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조건화해서 약화하고 희석시키는 수사적 효과를 일으킨다. 즉 조건을 달고 사과를 하는 발화를 함으로써 사과의 진정성을 쇠퇴시키는 것이다.

‘마음에 상처를 주어서 죄송합니다“라고 ’-어서‘ 연결어미를 사용해서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을 전제로 확실히 인정하면서 사과하는 것과 ”마음에 큰 상처를 주었다면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조건을 달고 사과를 하는 화행 사이에는 청자에게 들리는 발화효과행위(perlocutionary act)의 강도가 확연하게 다름을 알 수 있다.

‘조건’을 붙이는 사과는 사과 아냐

둘째, 자격이 없는 사람이 사과 화행을 하고 있다. 심각한 잘못을 한 주체는 윤석열 후보의 아내인 김건희 씨다. 김건희 씨는 논란 사건 초기에 자신이 일으킨 거짓과 과장 경력 논란 관련 자신의 의견을 밝힌 바 있다. 그녀는 “돋보이려고 한 욕심”이었고 “그것도 죄라면 죄”라고 했다. 그러다가 국민들의 비판과 성토 여론이 빗발치자 “사과할 의향이 있다”고 밝히고서는 전혀 공적인 자리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윤 후보는 취재진이 ‘부인이 사과할 의향을 밝힌 것과 관련한 입장’을 묻자 “대선후보의 부인이 아무리 결혼 전 사인 신분에서 처리한 일들이라 해도, 국민이 높은 기준을 가지고 바라봤을 때 미흡하게 처신한 게 있다면 국민께 송구한 마음을 갖겠다고 한 것 같은데, 그런 태도는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기서도 감쇠 조건절 (attenuating conditionals)을 사용해서 ‘미흡하게 처신한 것’을 확실하게 인정하지 않고 조건화하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결국 윤석열 후보가 대신 사과를 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아내를 대신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 대해서 그녀의 잘못은 무엇이고 본인이 잘못한 부분이 또한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밝힌 적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윤석열 국민의 힘 대선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씨. 사진= 연합뉴스

 

셋째, 화자가 진정으로 마음속으로 깊이 사과의 뜻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이 일이 터졌을 때 윤석열 후보의 첫 반응은 결혼 전 일이라며 남의 일인 것처럼 받아들였었다. 겸임 교수 이력 관련 논란에 대해서는 “겸임 교수라는 건 시간강사이다. 현실을 좀 잘 보고 관행이라든가 이런 것에 비추어 어떤 것인지를 좀 먼저 보시라”라고 했다. 윤 후보의 그릇된 인식은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낳았으며 특히 현직에 있는 겸임 교수와 시간 강사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사실 책임 있는 화자라면 이번 대국민 사과에서 전국의 겸임 교수와 시간 강사들에게 자신의 그릇된 인식으로 상처를 준 것에 대해서 명확하게 사과했어야 했다. 이번 사과 화행에서 그 어느 부분에서도 사과의 대상을 명시하고 구체적인 사과를 한 곳이 없다.

사과뒤 행동도 충실하지 않아

넷째, 후속 화행과 행동이 전혀 뒷받침이 되고 있지 않다. 그는 “과거 제가 가졌던 일관된 원칙과 잣대, 그것은 저와 제 가족, 제 주변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가 그토록 주장하던 공정과 상식의 잣대는 성역 없이 누구에게나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므로 자신의 아내도 철저히 수사받고 법적으로 책임을 다해야 함을 분명히 했어야 했다. 말로는 자기 자신과 가족에게도 같은 잣대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했지만 사과를 한 이후에 보인 그의 언행은 자기 모순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기자들이 의혹 사안에 대해 질문하면 무시하고 일절 함구할 뿐만 아니라 짜증나는 표정으로 질문도 제대로 받지 않고 도망가듯 퇴장하곤 했다. 윤석열 후보가 진정성 있게 사과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했다면 사과 화행 이후에도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지적이 나오면 그에 걸맞는 수준으로 사과의 뜻을 재차 밝히고 구체적인 의혹 사안에 대해서도 철저히 검증과 수사도 받겠다는 태도를 보였어야 한다. 말은 “아내와 관련된 국민의 비판을 겸허히 달게 받겠다”고 한껏 낮은 태도를 보이고서는 전혀 그에 준하는 깊이 반성하고 겸허한 언행을 보이고 있지 않다. 종합하면 이번 윤석열 후보의 사과 화행은 4가지 적정 조건을 심각하게 위반한 ‘진정성 없는 억지 사과’라고 할 수 있다.

‘말’에서 자질이 보인다…걱정스런 후보

사실 이런 평가를 하게 된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윤석열 후보의 사과는 늘 이런 식의 패턴을 보여왔다. 윤석열 후보는 크고 작은 망언과 말실수로 끊임없이 비판과 지적을 받아왔다. 그때마다 보인 대응 방식과 사과가 일정 패턴이 있다. 윤석열 후보는 일단 비판과 지적을 받으면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변명과 궤변으로 버틴다. 그러다가 여론이 악화되어 지지율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억지로 사과하는 행태를 보인다. 지난달 전두환 옹호 발언으로 사과 여론이 빗발칠 때에도 처음에는 변명으로 버티다가 여론의 흐름이 나빠지자 억지로 사과하는 듯한 행보를 보였었다. 그러기에 사과의 진정성을 느낄 수가 없다.

말은 정직하다. 말은 은연중 그 사람의 마음속 진심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그는 왜 이런 언행을 반복적으로 보이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화자의 마음속에 진정성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깊은 마음속으로는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을 안 하는 것이다.

윤석열 후보의 이런 언행의 기저에는 비판을 수용하지 않는 오만함과 독선적 태도가 깔려 있다고 본다. 이런 성정과 태도를 가진 사람이 국가의 최고 권력자로서 국정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을 때 다양한 비판과 지적의 목소리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생각해 보면 깊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는 남의 의견을 기꺼이 듣고 비판을 수용할 수 있는 열린 마음과 자세이다. 최근에 일어난 윤석열 후보 배우자를 둘러싼 거짓과 과장 경력 논란을 두고 그가 보인 언행은 그가 지도자로서 이 기본적인 자질을 갖고 있는지를 의심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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