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이후’를 열어가는 특이한 교육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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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오지에서 아이들의 교실을 아름답게 꾸며온 선생이 있다. 교실에는 아이들이 쉴 수 있는 소파와, 드러누워 한숨 잘 수 있는 텐트도 들여놓았다. 책상마다 예쁜 보자기, 수놓은 유리창 커튼, 클림트의 그림 ‘키스’, 교실은 한 폭의 무능도원이었다.

강정희 선생. 전남대 사범대학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이후 40년 남도의 오지학교를 떠돌며 교육의 현장에 선 그녀의 이력에는 한 가지 특이한 것이 있다. 신춘문예에 등단한 소설가.

<고전을 공부하는 교사들의 모임>에서 나는 선생을 만난 이후 지금까지 그 고운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데, 그녀는 문순태 작가의 생오지 문예창작촌에서 문학 수업을 받으면서 소설 쓰기를 배운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선생이 선보인 작품은 소설집이 아닌 수필집이었다. 『다정한 교실에서 20,000시간』(살림터), 선생의 교육 수기였다.

 

나는 고흥반도 끝, 가난하고 바람 많은 면소재지 중학교에 발령받는다. 내 자취방에 아이들을 불러 놓고 라면을 끓인다. 아이들이 말한다. 부모님이 농협에 진 빚의 이자가 불어나 걱정이라고, 엄마가 많이 아파서 몇 해 전에 돌아가셨다고…연탄으로 덥힌 방 아랫목에 둘러앉으면 무슨 말이든 다 할 수 있었다.

 

금방이라도 라면 냄비가 방 안에 들어올 것 같은, 범상치 않은 교육 수기이다. 선생의 교육은 교실에 제한되지 않았다.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가까운 전통찻집에 간다. 그날 아이들은 교실에서와 달랐다. 매우 달랐다. 평소 독서나 공부에 관심이 없고 수업을 진행하려는 나에게 단체로 공격적이던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이 둥근 테이블에 순한 양처럼 토끼처럼 둘러앉아서 시를 낭독하는 것이었다.

 

고백에 따르면 선생의 종교는 기독교도 아니요, 불교도 아니다. 그녀의 종교는 ’학교‘이다. 그녀가 매일 예배를 드리는 공간은 성당도 아니요, 절도 아니다. 그녀의 예배당은 ’교실‘이다. 교실은 강정희 선생의 알파이자 오메가이다. 그녀의 셈법에 의하면 학생은 12년 동안 20,000시간을 교실에서 보낸다.

이쯤 되면 왜 강정희 선생이 ‘아름다운 교실’을 만들고자 애를 쓰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공간이 인생을 바꾼다.”는 철학 그대로 선생은 특이한 교육을 열어나가고 있었다.

 

‘교실에서 하룻밤’, ‘도서실 밤샘독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저녁밥 해 먹기와 요리 대회, 영화 보고 토론하기, 책 읽고 토론하기 등등 재미난 게 끝도 없이 많다. 밤을 지낸 사람들은 이전과는 다른 사이가 된다. 선생님과 서로 비밀을 나눠 가진 듯 특별한 사이가 된다. 밤을 지냈던 공간도 특별한 공간이 된다.

 

나는 더 이상 강 선생의 수기집을 앉아서 읽고만 있을 수 없었다. 강진의 작천 중학교는 광주에서 그리 먼 곳이 아니다. 나는 터미널로 달려가 버스를 탔고, 영암에서 택시를 타고 작천 중학교 교실에 갔다. 가서 보았다. 복도에포스트잇으로 붙여놓은 아이들의 ‘오일팔’ 삼행시가 눈에 들어왔다. 정태희의 삼행시를 읽는다.

 

오-오직 세상을 위해 자발적으로 일어선 사람들

일-일평생 살아가면서 잊어선 안 되는 역사들

팔-팔 뻗고 한마음 한뜻으로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해 준 모든 분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집시다. 5.18 잊지 않겠습니다.

 

공간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삶을 변화시킨다는 것이었다. 삶을 나의 뜻대로 바꾼다는 것은 삶의 주체가 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주체적 인간을 키운다는 것, 지금 이곳에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 이것이 교육의 본령이 아니라면 무엇이 교육이겠는가? 막힌 속이 뻥 뚫린 듯하였다. 이것이 ‘After 전교조‘의 대안이 아닐까?

 

황광우

 

30만부가 나간 '철학콘서트'에 이어 '역사콘서트'와 '촛불철학'을 출간했다. 지난 5년 동안 운사 여창현의 문집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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