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인물열전] 씨리즈와 <역사를 만든 사람들> 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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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호남인물열전] 씨리즈에 대해

 

저는 지난 3년 동안 의향 광주의 역사적 뿌리를 더듬었습니다. 유럽인에게는 [플루타르코스영웅전]이 있습니다. 중국인에게는 [사기열전]이 있구요. 저는 [호남인물열전]을 쓰고 싶었습니다.

 

2019년 제1권 [빛고을 아름다운 사람들]을 썼습니다. 김남주, 윤한봉, 윤상원, 박효선의 일대기를 담았습니다. 2020년 제2권 [나는 왜 이제야 아는가]를 썼습니다. 기삼연, 고광순, 김태원, 심남일, 전해산, 안규홍 등 호남의병장들의 삶을 담았습니다. 2021년 제3권 [이름 없는 별들-호남독립운동가열전]을 썼습니다. 보시다시피 26인의 호남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담았습니다.

[호남독립운동가열전]을 쓰면서 왕재일의 가계에 주목하였습니다. 왕재일의 증조부 왕석보, 조부 왕사각이 황현의 스승이었습니다. 왕석보와 왕사각이 남긴 시집이 [개성가고]입니다. [호남독립운동가열전]에 ‘구례의 시인들’이라는 글에서 왕석보와 왕사각의 작품 10여 수를 감상할 수 있을 겁니다. 왕재일은 [호남절의사]를 쓴 언론인이자, 시인이었습니다. [개성가고]와 [호남절의사]를 왕재일의 아드님이신 왕준석 님께 드립니다.

이 책에는 독립운동가의 애환을 담은 한시가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매천 황현의 시를 비롯하여 해학 이기, 학산 윤윤기가 남긴 주옥같은 한시를 읽기 바랍니다. 성진회의 주역, 왕재일과 정우채는 한시를 남긴 마지막 선비였습니다.

 

둘. 달력 <역사를 만든 사람들>에 대하여

 

달력 <역사를 만든 사람들>은 제가 지난 3년 동안 탐색한 의향 광주의 뿌리찾기 작업에서 만난 분들의 말을 담은 달력입니다.

 

사람이 태어나 역사의 꼭대기에 오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역사의 꼭대기 그 다음은 벼랑이요, 낭떠러지였습니다. <역사를 만든 사람들>은 모두 천 길 낭떠러지로 몸을 던진 분들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태어나 천 년 후에도 기억될 말 한마디를 남기는 것은 매우 희귀한 일입니다. 이 달력에는 천 년 후에도 향기를 뿜을 아름다운 말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호남창의회맹소의 선봉장이었던 김태원 의병장은 동생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라가 위태로운 이 시기, 어찌 앉아 죽을 것인가?”

 

승산이 있어 벌인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한번 나서면 죽으리라는 것을 알고 벌인 싸움이었습니다. 심남일 의병장은 이렇게 읊었습니다. “살아 돌아와 처자식을 다시 보지 못할 것을 알고 떠나는 길이다.”

 

1980년 5월 26일 윤상원은 사직공원에서 전홍준을 만나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제 걱정은 마십시오. 지금은 이 싸움을 마무리할 때입니다. 우리가 역사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누군가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1993년 귀국한 김포 비행장에서 윤한봉은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에게 오월은 명예가 아니라 멍에였다. 나는 도망자다. 퇴비처럼, 짐꾼처럼 살겠다.” 얼마나 진솔한 고백입니까?

 

참으로 위대한 말, 천고에 길이 남을 말이었습니다. 2500년 동안 인문의 향기를 뿜은 『논어』의 명구보다 더 값있는 말들이 이곳에서 탄생했습니다. 오직 역사의 꼭대기에 선 사람, 벼랑 앞에 선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셋. 『호남독립운동가열전』에 대하여

 

제가 호남독립운동가들에 관한 책을 쓰겠다고 다짐한 것은 1992년의 일입니다. 꼭 30년만에 저의 다짐을 실천하게 되었습니다. 무작정 써 갔습니다. 호남의 독립운동가들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밀양의 의열단 기념관에 갔다 온 노성태 선생으로부터 “의열투쟁의 선구자가 기산도”라는 이야기를 듣고서 그제야 기산도를 찾았습니다. 을사오적을 처단한 나인영이 보성 출신 청년인 줄 몰랐습니다. 그 나인영이 대종교를 중창한 나철의 속명인 줄 몰랐습니다.

 

양한묵을 찾으러 해남에 갔습니다. 양한묵 기념관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김철을 만나러 함평에 갔습니다. 기념관을 다 둘러보아도 김철을 알 수 없었습니다.

 

송진우가 기삼연의 제자요, 담양 출신인 것도 몰랐습니다. 책을 탈고하는 시점에서 나승규의 유족이 자료를 보내 주었습니다. 출판사에 원고를 넘긴 시점에서 임경석 교수가 장석천에 관한 자료를 보내 주었습니다.

 

책을 다 쓰고 나니, 그제야 호남독립운동사의 비밀이 저에게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책을 다 쓰고 나서야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넷. 광주학생독립운동에 대하여

 

독립운동은 혁명운동이었습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광주학생혁명운동이었습니다.

 

박준채와 박기옥의 댕기머리 사건으로 광주학생독립운동을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댕기머리 사건으로 광주학생독립운동이 발발하였다고 말하는 것은 그 이전부터 있었던 수많은 학생들의 맹휴투쟁을 망각하게 만드는 역사 왜곡입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일으킨 청년학생들의 그 뜨거운 혁명적 결의를 폄훼하는 진실 왜곡과 진실 은폐입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1919년에 타오르기 시작한 조선인의 혁명운동이 그 절정에 오른 “전 조선청년학생 혁명운동”이었습니다. 레닌이 이동휘에게 왜 200만 루블, 우리 돈으로 2000억 원을 주겠다고 약속했을까요?

 

저는 오랫동안 이 사실의 의미를 몰랐습니다. 1917년 10월 일어난 러시아혁명은 위대했지만, 외로웠습니다. 영국을 필두로 미국, 일본 제국주의국가들의 침략을 받을 것이 불을 보듯 분명하였습니다. 1918년 12월 독일에서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이 혁명의 리더 로자룩셈부르그가 죽임을 당하였고, 혁명은 패배로 돌아갔습니다. 러시아 혁명가들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때 동방의 끝, 코리아에서 혁명의 불길이 타올랐습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고, 이어 상해임시정부가 들어섰습니다. 그래서 레닌은 1920년에 400억 원에 해당하는 금괴를 주었습니다. 레닌이 보기에 코리아의 3.1운동은 혁명운동의 시작이었습니다.

 

1925년 서울에서 혁명운동의 사령탑이 만들어졌습니다. 김재봉, 박헌영의 1차 지도부는 곧 검거되었습니다. 1926년 강달영, 권오설의 2차 지도부는 6.10 만세운동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검거됩니다. 1927년 김철수, 고광수의 3차 지도부는 신간회를 만들고 검거됩니다. 1928년 차금봉과 김재명이 4차 지도부를 구성합니다.

 

광주 청년운동의 대표 김재명이 4차 지도부의 투톱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1927년 당시 광주전남을 대표한 분은 강석봉과 김재명이었습니다. 1928년 강석봉은 일본으로 피신하였고, 김재명이 중앙 사령탑으로 올라가면서 광주 전남의 혁명운동을 장석천, 강해석, 나승규 등이 맡게 됩니다. 광주 청년 김재명이 중앙 사령탑의 투톱이 된 것은 조선팔도에서 광주 전남의 청년학생운동이 가장 왕성했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성진회는 겉으로 보면 학생들의 학습모임이었지만, 그것은 학생들의 혁명결사였습니다. 1929년의 독서회도 학생들의 혁명결사였습니다. 성진회와 독서회 멤버들은 혁명운동의 전선에 자원한 학생혁명군이었습니다. 성진회와 독서회로 조직된 광주청년학생들이 있었기에 1929년 11월 3일 대시위가 가능했습니다.

 

김재명이 이끈 중앙 사령탑의 휘하에 <조선청년총동맹>이 있었구요. <신간회>가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광주에서 타오른 혁명운동의 횃불은 전 조선으로 간도로 만주로 번져나갔던 것입니다.

 

따라서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전 조선청년학생혁명”이었습니다. 이 혁명운동의 최선두에 선 사람이 장석천이요, 장재성이요, 강영석이요, 나승규였습니다. 왕재일이요, 정우채요, 이기홍이었습니다. 보십시오. 장석천의 격문을.

 

“청년학생들이여, 궐기하라. 광주를 사수하라. 우리의 선혈 한 방울까지 항쟁적 전투에 바치자. 유혈과 반란이 있는 곳에 결정적 승리가 있다. 이 다음은 우리의 것이 아니냐?”

 

김재명과 장석천은 나이 서른에 반송장으로 출소하였고, 이내 숨을 거두었습니다. 숨을 거둔 장석천의 집이 광주일고 교문 바로 옆에 있습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1919년 3.1운동에서부터 시작된 혁명운동이 그 절정에 이른 운동이었습니다. 민주 성지 광주는 의병의 성지요, 독립의 성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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