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관되게 정체성 지키는 대선후보가 이긴다

"중도층은 허구...부동층이 있을 뿐이다" 자기 중심지키며 지지자에 감동주는 후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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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대선 경쟁이 치열하다. 불과 1주전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여론 조사에서 윤석열 후보가 오차 범위 밖에서 이재명 후보를 앞서가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지배적이었다. 상황은 급반전되어 최근 여론 조사 결과는 두 후보 간 지지율이 박빙 양상을 보이거나 오히려 이 후보가 앞서가고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불과 1주일 사이에 어떻게 이런 급반전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윤석열의 마이너스 Vs 이재명의 플러스

정치계와 언론에서는 그 주요 원인으로 윤 후보 측의 마이너스 요인과 이 후보의 플러스 요인이 겹친 상황을 주목하고 있는 듯하다. 윤 후보의 경우 무엇보다도 먼저 후보 자신이 중요한 행사 때마다 보인 무성의한 태도와 부족한 언어 능력 등으로 자질과 능력 평가에서 실점을 많이 했다. 또한 캠프와 선대위 구성에 있어서의 갈등과 분열 양상으로 그의 리더십과 정치력의 실체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반면 이 후보는 지지율 하락의 위기를 반전의 기회로 만들기 위해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을 내세우며 민주당의 혁신 즉 내적 충실을 다지고 있다. 후보 자신의 정치적 비전을 실현하는 데에 필요한 개혁적인 인사들이 중심이 되는 ‘기민한 선대위’를 구성하고 인적 쇄신을 이어가고 있다.

정치계와 언론계의 이 지적들이 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무릇 모든 현상의 이면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게 마련이다. 이 글에서 필자는 한 언어학자의 정치적 혜안을 빌려 현상의 내면을 보는 통찰의 창문을 열어서 현상의 파편들을 다 모아 설명할 수 있는 근본적인 요인을 찾아보려고 한다.

“누구나 진보-보수 정체성을 다 갖고 있어”

인지 언어학(Cognitive Linguistics)의 거두이자 미국의 대표적인 양심 지성 중의 하나인 죠지 레이코프(George Lakoff) 교수는 영향력 있는 여러 저서를 통해 미국 정치에서 진보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그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유권자들의 행동과 사고를 지배하는 것은 바로 ‘프레이밍(framing)’으로서 미국 사회에서 보수 진영이 자신들의 정치적인 정체성과 세계관을 프레임(frame)에 담아 성공적으로 전파하며 주도해 온 반면 진보 진영은 보수 진영의 프레이밍에 속절없이 중심을 못 잡고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하였다.

특히 그는 진보 진영이 중도층 표를 더 얻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쉽게 포기하고 타협하며 우클릭 행보를 하는 것이야말로 치명적인 잘못이라고 지적하였다.

레이코프 교수는 『Thinking Points(생각의 갈래들)(2006)』이라는 책에서 ‘이념적 중심(ideological center)’ 개념과 ‘중도파’ 개념을 거부하고 ‘이중개념주의자(biconceptuals)’ 개념을 도입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모두 ‘개념적으로 이중적’이다. 보수 진영의 지배적인 정체성은 “엄격한 아버지 모형”이고 진보 진영의 지배적인 정체성은 “자애로운 부모 모형”인데 그 누구도 어느 한쪽의 모형으로만 세상을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두 모형은 근본적으로는 배타적이지만 우리의 두뇌 속에는 둘 다 존재하며 문화적으로도 둘 다 존재한다는 뜻이다. 즉 사람들은 개별 사안에 따라 이 두 생각의 모형 틀을 탄력적으로 적용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예로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진보적이지만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보수적이며 진보적인 국내 정책을 지지하지만 대외 정책 접근에 있어서는 국익을 우선하는 매우 보수적인 대외 정책을 지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상대의 가치를 활성화시키면 성공할 수 없다”

레이코프 교수의 지적은 한국의 진보주의 정치인들에게 의미심장한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의 진보진영은 기울어진 운동장 환경을 들먹이며 막연히 중도층 끌어안기 전략을 내세우곤 했는데 진보 쪽에서 더 가운데로 이동하여 더 많은 중도파를 끌어안아야 한다는 생각은 스스로를 덫(trap)에 가두는 ‘자해행위’라고 할 수 있다. 레이코프 교수는 그렇게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것은 당신의 가치가 아니라 상대편 가치를 활성화시킬 것이기 때문에 성공할 수 없으며 또한 고유의 가치를 포기하는 것이어서 고유의 지지자들을 소외시킬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진보주의자들은 원래 지지자들에게 설파하는 동일한 가치와 정치적 원칙을 가지고 부동층 유권자들에게 지속적으로 동일한 맥락의 메시지로 지지를 호소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재명 후보가 레이코프 교수의 지적을 염두에 두고 선거 운동의 대전환을 도모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최근에 이 후보와 그의 진영이 보인 행보의 줄기는 후보 자신의 진보적 가치와 사회 혁신 추진에 충실한 자기 정체성 유지 모습을 강화하는 흐름이 주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이 후보의 이러한 내적 충실 행보는 고유 지지자들을 결집시켰을 뿐만 아니라 후보가 주장한 개별 사안과 정책에 있어서의 차별적 우수성을 보고 이중개념주의자(biconceptuals)들이 그를 지지하는 쪽으로 이동하도록 유인하는 힘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즉 이 후보가 우측으로 이동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자리를 더 강하게 지킴으로써 이중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그에게 다가온 것이다.

그러나 가장 최근에 일어난 사건인 이 후보의 조국 교수 사건 관련 사과 발언과 자기 캠프 내 인사 결정 과정에서 자신이 임명한 인사를 향한 부당한 사생활 공격에 맞서 단호한 모습을 보이지 못한 행보는 현명한 결정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후보 고유의 정치적 정체성을 굳건히 지키지 못하고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내적 충실 행보를 일관되게 지키지 못해서 마이너스 효과를 내고 있다고 보인다.

자기 정치적 정체성에서 벗어난 윤석열

레이코프 교수의 지적은 당연히 보수 진영에도 의미 깊은 정치적 조언이다. 윤석열 후보의 행보는 레이코프 교수가 설파한 방향성과 정반대였다. 그는 표를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자기 영혼도 팔 것 같은 행보를 이어왔다. 대표적인 예가 모든 종교와 종파를 다 접촉하고 종교 행사에 무차별적으로 참석하고 그때마다 인기성 발언을 해서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의 중심을 전혀 지키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 점이다. 그의 이러한 우왕좌왕 행보는 모든 종교를 포용하는 열린 마음을 보였다기보다는 모든 종교를 이용해 표를 얻으려는 얄팍한 수를 보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각 지방을 순회하면서 자신이 그 지역의 아들이라고 서슴치 않고 겹치기 발언을 한 것은 스스로의 출신 배경 정체성을 흐리는 인상을 주고 말았다.

윤 후보의 가장 심각한 오류와 파행은 중도 확장성을 고려해 ‘김종인-김한길-김병준’ 소위 3김 라인이 이끄는 선대위를 꾸리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과의 합치를 신중히 고민하지 않고 한 팀이 되기에는 화합에 문제가 있어 보이는 사람들까지도 무리하게 끌어들여서 지속적으로 분쟁과 갈등을 야기한 것이다. 급기야는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할 국민의 힘 당 대표인 이준석 대표와는 거의 결별 수순의 갈등으로 치달았다 극적으로 봉합했는데, 이로 인한 그의 손상은 한마디로 ‘처참한’ 지경이다.

윤 후보의 이런 행보는 레이코프 교수가 지적한 ‘자기의 정치적 정체성’을 지키라는 기본 교훈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다. 그 결과 국민의 힘 내 당원과 지지자들이 대거 반발하는 일까지 벌어졌을 뿐만 아니라 윤 캠프 쪽이 제시한 사안 별로 구체적으로 와닿지 않는 정책을 보고 실망한 이중개념주의자들이 다수 이재명 후보 쪽으로 이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후보는 정체성 지키고, 유권자가 다가오게 해야

이런 총체적인 변화가 최근의 지지율 반전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고 본다. 이제까지의 지적과 논의에 비추어 볼 때 두 후보 모두에게 주는 교훈은 자명하다. 정치인은 스스로의 중심을 더욱 굳건히 지켜서 고유 지지자들의 지지를 더욱 공고하게 다지고 사안 별로 현명한 정책을 개발하고 구인해서 이중개념주의자들이 자기편으로 다가오도록 이끌어야 한다.

후보 자신이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다가오게 해야 한다. 중도층은 허구다. 부동층이 있을 뿐이다. 부동층 표를 얻기 위해서는 정치인 자신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중심을 더 확고히 지키고 그 중심 속에서 차별적인 경쟁력을 보일 때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이다.

결론은 자기의 정치적 정체성의 중심을 지키고 의리를 지키는 정치로 감동을 주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올곧은 정치이다.

 

 

출처더칼럼니스트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University of Pennsylvania)에서 언어학을 공부했고, 언어문화의 보편성과 다양성 관련 주제들을 연구하며 언어를 통해 정치와 사회와 문화를 분석하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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