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소수간 출간례를 잘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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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를 빛내주신 분들과 축하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 일시: 2021년 10월 29일 오후6시
  • 장소: 광주학생운동기념 역사관
  • 주최: 사단법인 인문연구원 동고송

7년의 준비와 노고로 완간하게 된 구양수 소동파의 편지글, 구소수간.

“한 통의 편지가 얼굴을 마주하는 것보다 낫다”고 옛사람들은 말했지요.

이제 구소수간의 편지글을 넘기면서 두 대가의 문향을 맡길 바랍니다.

youtube: https://youtu.be/RoBmZUKjkMg

영릉(英陵)의 왕에게 바치는 노래

오늘은 잔치 날,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는 큰일을 치를 때 大事라 하였다.
세종이 글자를 맹그신 지 575년이 지난 오늘
구소수간이 한글로 풀이되어 출간되었으니
우리는 이 <구소수간 풀이집>을 영릉의 왕에게 바치노라.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어리석은 백성이 뜻을 전달하고 싶어도
자신의 마음을 글로 쓸 수가 없던 시절이 있었다.
시집 간 딸이 친정의 어머니가 보고 싶어도
“어머니 보고 싶어요”라고
딸의 간절한 마음을 어머니에게 전하는 편지를 쓸 수 없던 시절이 없었다.
왕은
백성이 하늘임을 알았던 영명한 왕은
백성이 쉽게 쓸 수 있는 글자 스물여덟 자를 맹글었다.
훈민정음은 백성의, 백성에 의한, 백성을 위한 문자였다.

왕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당대의 석학 정인지로 하여금
“천지자연의 소리가 있다면 천지자연의 문자가 있어야 한다”며
훈민정음의 철학적 원리를 밝히도록 하였다.
훈민정음은 조선인만을 위한 국수적 문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천지자연의 문자
인류를 위한, 세계인의 문자였다.
정인지의 훈민정음 해례는 이렇게 탄생하였다.

왕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아들 수양대군으로 하여금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한글로 적도록 하였다.
그것은 유학의 나라 조선에서
반역이었다.
‘혁명’이란 아름다운 두 글자는 이럴 때 쓰는 문자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문화 혁명이었다.

왕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왕은 몸소 시를 지었다.
“달 그림자 즈믄 가람에 비초나이다.”
천 개의 강에 달 그림자가 비춘다는 이 아름다운
월인천강지곡을 지었다.
세계사에 시를 짓는 왕이 있었던가?
시를 읽는 알렉산더는 있었고
산문을 지은 카이사르는 있었으나
시를 짓는 왕은 없었다.
세종은 투 잡의 임금이었으니
낮에는 정사를 돌보는 왕이요,
밤에는 시를 짓는 시인이었다.

왕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왕은 성삼문과 신숙주를 만주로 보냈다.
언어학자 황찬에게 물었다.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루 황.
하늘 天의 음은 무엇인가요?
[tiān] 인가요, 천인가요?
땅 地의 음은 무엇인가?
[dì]인가요, 지인가요?
검을 玄의 음은 무엇인가요?
[xuán] 인가요, 현인가요?
누루 黃의 음은 무엇인가요?
[huáng]인가요, 황인가요?
이렇게 하여 마침내
한자를 읽는 동국의 정운이 획정되었다.

왕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불휘 깊은 나무 바람에 아니 묄 새
꽃 좋고 여름 하나니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아니 그칠 새
내를 이루고 바다에 가나니“
5천 년 조선인이 사용해오던 그 토속의 말로
조선인의 마음이 담긴
조선인의 시를 맹글었다.

왕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가람이 파라니 새 더욱 해오
뫼이 퍼러니 꽃빛이 불 붙는 듯 하다
올 봄이 본댄 또 지나가노니
어느 날이 내 돌아갈 해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두보의 시 절구(絶句)를 우리말로 옮겼다.
“風急天高猿嘯哀(풍급천고원소애)
바람은 세차고 하늘은 높은데 원숭이 울음소리는 슬프고“
우리가 학창 시절 고문 시간에 배웠던
두보의 시 등고(登高)도
세종에 의해 조선의 음을 얻게 되었다.

왕은 몸이 편치 않아
54세의 수를 넘기지 못하였다.
눈을 감는 그 날까지
왕은 마음에 담은 꿈을 놓지 못하였리라.
시경 300수의 시를 어쩌나,
공자의 논어를 옮겨야 하는데,
어린 백성이 구양수와 소동파의 글을 읽도록 해야 하는데…

600년의 세월이 흘러
구소수간이 한글로 풀이되었으니
세종이 애독한 구소수간이 한글로 풀이되었으니
이것이 대사가 아니면
무엇이 대사이겠는가?

구소수간 출간례에서 황광우

 

저는 아룁니다

저는 아룁니다. 보통 책의 세 배나 되는 두께에, 압도적인 무게, 그리고 빼곡한 한자…. 그대가 보내온 ‘구소수간’을 마주한 순간, 놀라움을 뭐라 말로 할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해 내셨구나!’ 감탄하면서도 슬그머니 책을 한쪽으로 밀어놓으며, 후일 언젠가 자유인으로 한가로이 한없는 시간을 누릴 수 있을 때 꼼꼼히 읽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내 출간례에서 저의 소회를 발표하라는 무거운 과제를 주시니, 이는 읽기를 미루는 저의 얄팍한 속내를 꿰뚫어봄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감히 고사하지 못하고 그러마고 수락을 하고 말았습니다. 생업에 바쁜 저를 배려하여 앞부분만 조금 읽고 오라고 하셨지만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도리가 아니지요.

그리하여 저는 낮에는 아이들과 분주하게 지내고, 밤이면 고적한 관사 방에 앉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즐겨 듣던 FM 라디오도 끄고, 각오를 단단히 하고 손에 연필을 들고 추천사 머리말부터 차례로 책에 빠져들었죠. 독서라기보다는 공부였습니다. 가을밤의 고요와 적막에 기대어 옛 님 두 분의 나직한 서간체에 정밀하고 오묘한 주석까지, 행간에 감추어진 의미는 없는지 문장 사이에 묵향이라도 나는지 깊은 숨을 쉬며 공부하였습니다.

구양수라는 인물이 간결하고 곡진한 문체로 심금을 울립니다.
‘시가 사람을 곤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대개 시인이 곤궁해진 연후에 시가 좋아진다.’
시의 궁극을 말하며, 역시 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의 눈을 흐리게 하는 물질의 폐해를 부정할 근거가 없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모든 물건은 다 진실로 볼만한 것과 즐거워할 만한 것이 있으니, 물건이 반드시 괴이하고 장엄하고 화려해야만 즐거움을 주는 것이 아니다‘
소동파는 생애 후반기에 장자의 제물론에 달했다는데 저도 이제 그 경지를 알 듯도 합니다.
유사 이래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시기가 그렇지만, 두 분 다 어려운 시기 감당하기 어려운 고초를 겪으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향기로 뜻이 맞는 사람들과 교유하며, 고졸한 글을 남겨 읽는 이의 마음이 절로 맑아짐을 경험하게 하시니 문장의 힘에 감복하게 됩니다.
세종임금이 일찍이 이런 책을 읽으셨기에 자애롭고 타인과의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 그리고 편지마다 안부를 묻고 안녕을 기원하며 한세상 살다 간 사람들, 지금은 다 어디에 있을까요?
천년의 세월을 털고 그대의 손끝에서 다시 살아난 두 분이 현대 한국의 팬들을 갖게 되니 이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부디 어지러운 세상을 환히 비추는 등대 같고 가로등 같은 책이 되기를 기원 드립니다.

머리를 조아려 다시 아룁니다. 천 년 전 선인들의 향기로운 서간을 읽다보니, 작금의 사람들이 인터넷 뉴스에 마구잡이로 다는 댓글과 생각 없이 주고받는 천하고 박한 말을 내뱉는 행태를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예의가 깃든 말, 서로 높이는 말, 비유가 담긴 말, 얇은 비단과 얌전한 한지에 감싼 듯 은은한 마음을 적은 문장을 주고받는다면 우리네 삶도 한층 우아해질 텐데요, 이런 격 있는 글을 잃어버린 세상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범인이 읽어내기도 어려운 책을, 7년여 성상을 매달려 번역하신 그대의 노고에 감탄하다가 문득 측은한 생각이 들었답니다. 눈이 아프게 자료를 찾고, 자나 깨나 구절 하나 글자 하나를 붙들고 궁리를 하고, 쓴 글을 이리 고치고 저리 다듬고…. 무릇 ‘사람의 생이란 흰 망아지가 지나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듯 너무도 빨리 지나가는 것’이라는데, 그대는 그 짧은 생애의 한 순간에 이런 장대한 발자국 하나를 새기셨습니다. 부디 다시금 통찰하여 장차 이 책에 이어 세인의 기대에 부응하는 좋은 결실을 내십시오.

다가오는 추위에 몸을 보중하세요. 분명 이 서간의 번역에 몰두하느라 몸에 탈이 나지 않았으리라고 어찌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이만 접습니다.

2021년 가을에 ‘구소수간’ 출간을 기념하여
강정희 드림

 

 

 

안녕하세요. 사단법인 인문연구원의 웹진 동고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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