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후보의 망언…자질이 보인다

[이창봉의 언어문화 산책] 사과요구하는 국민 조롱하는 SNS '시스템 관리나`, 박근혜의 실정 연상 대통령직책 안일한 인식과 군림하겠다는 태도 엿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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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국민의 힘 대통령 경선후보는 한국 사회에서 현재 가장 큰 논란과 화제의 인물임에 틀림없다. ’1일 1망언’이라는 수식어가 말해 주듯이 거의 매일 그의 기이한 언행이 비판과 성토의 단골 화두가 되고 있다.

정치계와 언론에서 그리고 시민들이 이끄는 SNS 여론 공간에서 윤석열 후보의 발언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글이 넘쳐난다. 학자의 사명은 현상의 이면을 보고 통찰할 수 있는 생각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글에서 필자는 언어학자로서 윤석열 후보가 일련의 실언과 망언 시비를 두고 국민들과 의사소통하는 과정에서 보인 그의 언행을 분석해 그의 언어적 정체성을 파악하고 대통령 후보로서의 자질을 검증하고자 한다.

국민의 분노를 산 망언

윤석열 후보는 지난 19일 국민의힘 부산 해운대갑 당협 사무실을 방문한 자리에서 “전두환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잘못한 부분이 그런 부분이 있지만, 그야말로 정치를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고 주장했다. 많은 국민들이 대통령 후보라는 사람의 입에서 독재자 전두환 시대를 미화하는 말이 나온 것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광주 시민들이 느꼈을 분노를 생각하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망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윤석열 후보가 부적절한 언행으로 물의를 빚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앞서 윤석열 후보는 부산에서 이한열 열사의 사진이 담긴 조형물을 가리키며 “부마항쟁인가요”라고 하고 8월15일 광복절에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는 안중근 의사 영정에 술잔을 올리는 사진과 함께 정작 윤봉길 의사의 말을 올려 조롱 수준의 비판을 받았었다. 이번 전두환 독재 미화 망언에 비하면 이 사건들은 그나마 단순 실수로 변명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가벼운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번 전두환 독재 시대 미화 발언은 이전과는 다른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고 다른 양상을 보였다. 이전 사건들에서는 캠프를 동원해서 즉각 그럴듯한 변명과 핑계로 대처하고 빠져 나갔지만 이번에는 심지어 캠프 내에서조차 사과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 개진이 있는데도 윤 후보 자신이 즉시 사과하지 않고 버티어 왔다는 점이 주목할만하다 (글을 쓰는 지금은 사과 대신 유감을 표명한 상태임).

왜 그는 잘못한 게 없다고 완강한 입장을 취하면서 끝까지 사과하기를 거부했던 것일까? 그 이유는 자명하다. 그의 의식 깊숙이 실제로 전두환 독재 체제에서처럼 인권을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말살하더라도 그저 잘 살게만 하면 잘한 정치라는 ‘기능만능주의적 정치관’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발언을 변호하면서 실제로 “어떤 정부 어느 정권에서도 어떤 효과를 나타낸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벤치마킹을 해서 국민을 위해서 써야 하는 것”이라고 첨언했다. 그의 말은 결국 즉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수많은 민주 투사들을 고문하고 살해하는 잔인한 짓을 하더라도 그저 국민을 잘 살게한 것이 있다면 배우고 그대로 따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극단적인 성과주의적 사고 방식을 신봉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성과만 내면 된다’는 극단적 사고방식 

이런 몰역사적이고 위험한 비민주주의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는 것도 개탄스럽지만, 안팎에서 지적과 비판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윤석열 후보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은 것이 훨씬 더 심각하다. 국민들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백배사죄를 해도 모자랄 판에 거의 이틀이나 되는 시간을 버티며 사과하지 않고 국민과 싸우려 드는 자세를 보이자 국민의 힘 소속 다른 후보들이 나서서 개탄과 성토의 목소리를 더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끝까지 정식으로 ‘사과’ 라는 말을 하는 대신 ‘유감’이고 ‘비판을 겸허히 수용한다’는 말을 했다. 심지어 밤사이 과일 사과를 강아지에게 주는 사진을 SNS에 올림으로써 ‘사과는 개에게나 줘라’는 식으로 국민을 향한 조롱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 정도의 불통과 오만불손은 윤석열 후보가 전직 검사로서 소송에서 반드시 이기려고 노력해야 했던 직업적 요인이 작용했는지 모르겠지만 정치인으로서는 더욱 위험한 성향과 자질을 드러낸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정치란 소신도 필요하지만 전체와 공동선을 위해서 때로는 억울한 면이 있어도 인정하고 타협하는 자세도 필요한 것이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야당의 비판과 국민들의 다양한 다른 목소리를 어떻게 대할지 모습이 뻔히 보인다.

윤석열 측은 망언을 사과하라는 국민들의 요구를 조롱하듯 강아지에게 사과를 주는 사진을 SNS에서 올렸다 삭제했다.
윤석열 측은 망언을 사과하라는 국민들의 요구를 조롱하듯 강아지에게 사과를 주는 사진을 SNS에서 올렸다 삭제했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연이은 그의 발언에 드러난 ‘대통령 직(presidency)’에 관한 인식이 매우 우려스럽다는 점이다. Facebook에서 소통하는 페친인 정선영 작가는 “최고라는 분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놓고, 저는 시스템 관리나 하며 대통령으로서 국민과 소통하며 챙겨야 할 아젠다만 챙길 생각”이라고 한 말이 더 위험하고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정 작가가 주목한 표현이 ‘시스템 관리나’라고 한 부분이다. 정 작가는 “대통령은 정치, 외교, 경제, 국방, 문화 등 모든 방면에 깊고 넓은 식견과 지혜와 경륜이 있어야 하며 그 모든 분야에서 예상치 못했던 예외적인 상황이나 위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빠르고 정확한 판단을 내릴 줄 알아야 한다. 아무리 최고의 전문가들이 있어도 그들의 보고를 듣고 여러 경우의 수를 계산해서 신중한 판단을 내리고 지시할 줄 알아야 한다. 이건 관리‘나’ 해서 될 일이 아니고 그것‘만’ 해서 될 일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시스템 관리나’라는 표현에서 알수 있는 것

여기서 왜 ‘시스템 관리나’라고 한 표현이 왜 정 작가가 분석한 것처험 대통령 직에 대해 안일한 인식을 드러냈는지를 좀 더 자세히 분석해 보자.

‘- 나‘는 문법적으로 한정사(delimiter)로 분류하며 앞 말에 첨가되는 의존 형태소로서 그 앞 말에 대한 ‘특별한 화자 태도(speaker attitude)’를 표현한다. 이 한정사를 붙이게 되면 앞 말이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 흔한 선택 혹은 차선의 선택(a routine choice or the second-best choicet)으로 상쇄하는 화자 태도를 함께 전달하게 된다. 일상에서 전형적인 예로 아래 (1)번 문장에서와 같이 마음 속으로는 다른 것을 먹고 싶은데 라면밖에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 ’라면‘ 다음에 ’- 나(- 이나)‘를 붙여서 그것이 최선은 아니지만 그냥 무난한 혹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함축의 의미를 전달한다.

(1) 집에 라면밖에 없네. 그냥 라면이나 먹자.

즉 분명한 것은 ’- 나‘를 붙이면 여러 선택이 있는데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는 상쇄의 의미를 전달한다는 점이다. ’- 나‘의 이 상쇄적 의미 특성은 신앙심이 깊은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이 아래 (2)번 문장에서처럼 그 어떤 경우에도 자신들이 절대신으로 믿는 하느님의 뒤에 ’- 나‘를 붙이는 경우가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것으로 확인된다.

(2)?? 하느님이나 믿어야 해요.

윤석열 후보는 ’시스템 관리‘라는 표현 뒤에 왜 평범한 목적격 조사 ’- 를‘을 붙이지 않고 ’- 나를‘ 붙였을까? 그의 의식 속에 대통령 직에 대한 인식에서 ’시스템 관리‘가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무의식적으로 ’- 나‘를 사용해서 언어로 표출한 것이다. 바로 뒤에서 그는 “대통령으로서 국민과 소통하며 챙겨야 할 아젠다만 챙길 생각”이라고 한 것이 묘한 대비적 효과를 일으킨다. 적재적소에 전문가를 배치하는 것은 기본인데 그 기본적인 일을 끝낸 후에는 전권을 위임하는 대신 ’시스템 관리‘는 ’- 나‘라는 표현에 반영된 상쇄적 태도로 관리 감독에 신경 안 쓰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국민들 앞에 나서서 멋진 모습 보이는 쇼만 하고 싶다는 것으로 들린다.

혹자는 그까짓 토씨 하나 쓴 것을 분석해서 윤석열 후보의 인식을 너무 혹독하게 비판한 것 아니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윤 후보가 얼마 전 토론장에 손바닥에 ‘왕(王)’자 주술이 쓰여진 채로 등장한 사건은 이 언어적 분석을 바탕으로 한 의식 분석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증거한다. 손바닥에 ‘왕’자를 쓰고 나온 것이 대통령 직을 국민을 섬기며 머슴처럼 국민을 섬기며 일하는 숭고한 봉사직이 아니라 왕처럼 신하들에게 국정을 맡기고 군림하는 자리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세월호 사건에서 ‘대통령의 무사안일’ 경험해

대통령 직에 대해서 이런 안일한 인식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심각한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지 우리는 이미 극단적인 경험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수백명의 목숨이 위기에 처한 세월호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당일 적극적으로 지휘하고 대처하지 못했다고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대통령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않은 사건 이후 정작 밑의 사람들은 그녀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대통령은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고 방어막을 쳤다. 책임공방을 피해가는 효과가 있었지만 그 누구도 이 사건의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적재적소에 전문 인력만 뽑아 놓고 관리’나’ 하는 것이 대통령 책무라는 단순하고 안일한 인식이 이런 파행과 재앙을 낳는 씨앗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대통령 직은 이 나라의 어느 직책보다 숭고한 직책이다. 그야말로 나라 일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총괄하는 직책이다. 그래서 대통령은 늘 깨어있고 늘 공부하고 늘 지휘하고 감독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도 잘하기 힘든 자리다. 시작부터 이 일을 ‘누리는 직책’이라는 인식을 보이는 사람에게서 이런 숭고한 책임감을 기대할 수 있을까?

거꾸로 우리 일반 시민이 깨어 있고 공부하고 감독해야 누리려는 대통령이 아니라 섬기려는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출처더칼럼니스트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University of Pennsylvania)에서 언어학을 공부했고, 언어문화의 보편성과 다양성 관련 주제들을 연구하며 언어를 통해 정치와 사회와 문화를 분석하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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